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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르완다: 1994년의 아픈 기억

아프리카ㆍ 중동 기타 구자흥 KT Strategic Investment Office 매니저 2014/01/13


1부: 르완다. 1994년의 아픈 기억
2부: 경제부흥만이 살길이다. ICT를 통한 성장
3부: KT의 르완다 진출: 오랜 노력 끝의 결실, 르완다 정부와의 JV설립
4부: 르완다에서의 법인 설립 과정
5부: Financing: 르완다에서의 Financing 한계 및 현실

 

1부: 르완다. 1994년의 아픈 기억



Hotel des Mille Collines (밀 콜린 호텔).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때 후투족의 공격을 피해 이 호텔로 숨어든 많은 투치족을 호텔 지배인이 구한다는 영화 ‘호텔 르완다(Hotel Rwanda)’의 실제 배경이 된 호텔이다. 현대사는 수많은 전쟁과 내전 그리고 테러로 얼룩져 있지만, 20년 전 아름다운 천 개의 언덕을 가진 나라 르완다에서 벌어진 이 대학살만큼 충격적인 사건도 드물 것이다. 르완다 대학살로 이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은 복잡하다. 그리고 대학살로 이어진 두 종족 간의 갈등은 많이 해소되었으나 상처는 여전히 치유 중이다. 르완다 출장 때마다 이용하는 이 호텔과 국회의사당 건물에는 아직도 총격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1994년을 잊지 말라고.

오랜 기간 르완다를 통치해온 소수 민족인 투치족 (인구 약 14% 추정), 그리고 벨기에 식민통치 말기에 정권을 잡은 다수 민족인 후투족 간의 오랜 갈등은 벨기에 식민통치 기간 동안 벨기에의 투치족을 우대하고 후투족을 차별하는 종족차별정책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어 갔다. 그리고 벨기에 식민통치 기간 말에 정권을 잡게 된 다수 족인 후투족에 의해 주변국으로 쫓겨난 투치족은 우간다에서 르완다 애국 전선(RPF: Rwandan Patriotic Front)이라는 단체를 형성, 르완다로의 권토중래를 도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와 불어권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르완다를 통치하고 있던 후투족과의 내전이 발생했다. 장기간 전쟁 끝에 양측은 1993년 휴전을 맺고 공동정부를 구성하였으나 결국 1994년 대통령이었던 후투족하비야리마나(Habyarimana)가 탑승하고 있던 비행기가 르완다 수도 키갈리 공항에서 격추되었고 이 사건의 배후로 르완다 애국 전선이 지목되면서 이는 결국 후투족의 투치족 대량학살인 르완다 대학살(Rwandan Genocide)로 이어지는 참사를 불러왔고 약 100일이라는 기간 동안 약 80 ~ 100만 명의 르완다인들이 살해당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내륙국가, 자원이 많지 않은 국가, 그리고 1994년의 대학살. 르완다를 따라다니는 이러한 부정적인 수식어들을 넘어서기 위해서 경제적인 발전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르완다 정부는 기존 해외원조에 크게 의존했던 경제 구도를 탈피하고자 우선 해외투자유치 및 경제발전에 상당한 공을 들여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했다. 정부차원의 장기 국가 비전인 ‘Vision 2020’을 통해 국가 로드맵을 만들었으며 외국계 기업들이 들어와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꾸준한 사업 환경 개선을 도모했다. 그 결과 2013년 세계은행에서 실시하는‘Doing Business 2014’지표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사업 환경을 개선한 국가로 선정되면서 189개국 중 당당히 32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는 르완다 정부가 그 동안 해외투자유치를 위해 투자자 보호, 사업 시작의 편이성 등 다양한 분야를 정책적으로 장려한 결과물일 것이다.

2011년 이후 2년 만에 찾은 르완다는 정말 눈에 띌 정도로 많이 변했다. 고층 빌딩들이 르완다 수도인 키갈리에 하나 둘 들어서고 있으며 다양한 국가로부터의 해외투자 유치 성공으로 정말 다양한 외국인들을 길에서 심심찮게 볼 수가 있었다. 르완다 수도인 키갈리에서 르완다 북서쪽에 있는 도시 무산제로 가는 데 4시간 이상의 비포장도로를 달렸던 2년 전과는 달리 이제 모든 도로가 포장이 되어서 2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점점 문화시설과 같은 사회적인 인프라도 들어서고 있는 데, 2년 전에는 월드컵이나 챔피언스 리그 축구 경기를 보여주던 동네 소극장들만 있었던 데에 비해서 이제는 버젓이 최신 할리우드 영화를 보여주는 영화관도 들어섰다. 변화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이다.

 

끝나지 않은 1994년

 

현 르완다 대통령인 카가메가 최근 재선(2013년 9월)에 성공하면서 눈부신 경제개발을 이어가고 있는 반면 1994년 르완다 대학살 이후 르완다로부터 쫓겨난 후투족 세력이 인근 국가인 DR콩고, 탄자니아, 브룬디 등으로 망명하여 그 세력을 키우고 있어서 르완다는 아직도 불안정하다고 할 수 있다.

1994년 DR 콩고로 망명한 후투족이 DR콩고의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고 르완다-DR콩고 국경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세력을 키워 계속 르완다에 반격을 가하자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르완다가 DR 콩고 내전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르완다 정부는 당시 DR 콩고 정권 교체에 결정적인 지원(1차 콩고 전쟁)을 하였으나 1997년에 르완다의 지원을 받고 새로 DR 콩고의 정권을 잡은 카빌라(Kabila) 대통령이 후투 반군을 처리하지 않아 DR콩고와 르완다 간 전쟁(2차 콩고 전쟁)이 5년간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DR 콩고와 르완다 국경에 위치한 키부(Kivu) 호수 지역 및 인근 도시인 고마(Goma)에는 DR 콩고에 반기를 든 DR 콩고 반군(투치족)과 1994년에 DR 콩고로 망명한 르완다 후투족 반군이 위치해 있다. 그래서인지 올해에만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4차례 수류탄 테러가 있었으며 2010년부터 매년 3~4차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후투족 반군 세력의 소행일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또한 2012년에는 르완다 정부가 DR 콩고 반군을 지원한다는 UN 보고가 있은 후 영국이 르완다에 대한 공적개발원조를 일시적으로 중단한 일도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김용 총재도 올해 5월 이 지역을 방문해서 분쟁 종식과 평화 정착을 강조하면서 지역 경제 발전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참고자료
1. http://www.economist.com/node/18617876
2. http://www.theguardian.com/world/2008/may/16/congo
3.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03216&cid=770&categoryId=2222
4. The great African war, Congo and Regional Geopolitics, 1996-2006 by Filip Reyntjens: http://books.google.co.kr/books?hl=ko&lr=&id=KPVxJX6ycG8C&oi=fnd&pg=PR5&dq=great+african+war&ots=kBwtILsmY3&sig=ynNZ4x0KA-YTyPKDegxOOIEIFTI#v=onepage&q=great%20african%20war&f=false
5. http://www.absoluteastronomy.com/topics/First_Congo_War
6. http://books.google.co.kr/books?hl=ko&lr=&id=60aMzCAl-BwC&oi=fnd&pg=PT4&dq=second+congo+war&ots=LGbEWWNTZD&sig=U3grJ7sIRo0HwaH1UrXb8XvvOqE#v=onepage&q=second%20congo%20war&f=false
7. http://en.wikipedia.org/wiki/First_Congo_War
8. http://en.wikipedia.org/wiki/Second_Congo_War
9. http://www.bbc.co.uk/news/world-africa-13286306
10. http://www.bbc.co.uk/news/world-africa-1409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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