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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알제리내 최대 분쟁지역으로 떠오르는 지역 ‘음자브’

알제리 임기대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강의전담교수 2014/01/10

연초부터 알제리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4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가 끊임없이 긴장 국면을 조성하고 있으면서 5개 정당이 현 부테플리카 대통령지지 선언을 했다 (Liberté Algérie, 01. 01). 실업률이 하락하고, 경제 성장 추세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적 분위기가 있지만 중국식품 수입에 의해 알제리 식단이 위협받는 것은 물론 물가 상승이 연초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소식도 있다. 대통령 선거에다 물가가 가장 상승하는 라마단 기간까지 고려한다면 물가상승세에 대한 알제리인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과일이나 야채, 유제품 등의 가격 상승이 두드러져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하다 (Le Maghreb 01. 06).

 

하지만 정작 연초 알제리 사회를 가장 혼란하게 한 일은 ‘음자브’(M'Zab, 알제 서남쪽으로 600km 거리에 위치한 사하라 북부지역)에서 아랍인과 베르베르족의 일파인 모자비트 간에 지속되고 있는 내전 양상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이 두 종족간의 분쟁이 지난 2013년 12월 23일부터 2014년 현재(2014. 01. 07)까지 내전을 방불케 했다. 1월 5일까지의 집계에 따르면 6명 사망, 220여 명 부상, 7명이 혼수상태이며, 60여 명의 경찰들이 부상당했다. 많은 사상자들을 내고 나서야 뒤늦게 정부가 중재를 하고자 나섰지만, 모자비트는 중재안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이다. 학생들은 연말부터 2주간의 방학을 끝냈지만 개학은 미뤄지고 있는 상태이다. 소요 사태가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모자비트의 시위는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총리, 야당(사회주의 힘 연대 당, 노동자당) 등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양측 대표단 (각 12명씩)을 구성하여 중재를 했지만 양 부족 간의 감정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고 중재안 또한 거부된 상태다. 급기야 부테플리카 대통령도 해를 넘기기 전에 양 진영의 자제를 당부하였다(El Watan 2013. 12. 31). 어쨌든 폭력적인 양상은 수그러들었지만 양측 간의 앙금은 오랜 역사 속에서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연초부터 알제리내 최대 부족 간 분쟁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음자브 지역은 애초 ‘모자비트’(Mozabites)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전체 인구의 약 60%에 달한다. 이들은 베르베르족이면서 일찍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수세기 동안 마그레브의 이슬람 왕조 건립을 주도했다. 일반적으로 마그레브에서 믿고 있는 수니 말레키파와는 다른 이슬람 카와리지파의 이바디(아랍어 Al-ibadiya) 교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의 조상은 10세기경 타헤르트 지방에서 루스탐 왕조를 건설했던 사람이며, 시아파 왕국 파티마에 쫓겨 사하라사막으로 피신했다. 게다가 모로코에서 피신한 알모라비드 왕조(Almoravide, 1040~1147) 일부가 음자브에 몰려들기까지 했다. 현지인들은 현재는 아주 소수만 남아 있는 우아르글라 근처인 세드라타(Cedrata, 음자브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km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 일반인의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폐쇄적인 지역으로 사막에서도 가장 덥기로 유명하다)에 모자비트가 처음 도착했으며, 11세기 외부 침략에 맞서 방어를 이유로 계곡지대로 이루어진 현재의 음자브 지역을 건설했다고 한다. ‘모자비트’는 루스탐 왕조가 폐망했던 11세기 들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거나 보존하고자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음자브의 사람들’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다. 5개로 나눠진 각 도시는 부족장의 지배와 지도에 따르며, 자신들이 믿는 이바디즘 이외에는 그 어떤 종교도 용납하지 않는다.

 

음자브 지역에서 모자비트와 사사건건 분쟁을 일으키는 ‘챰바’(Chaâmba)는 아라비아반도의 바누 수라임(Banu Suraym)의 일파이다. 이 둘 간의 대립은 최근까지 알제리 사회에서 소수부족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늘 알제리 사회의 주목을 끌고 있다. 공동체적 삶을 중요시하는 모자비트는 상당히 폐쇄적이어서 아랍인들과는 종종 충돌의 원인이 되어 늘 긴장관계에 있다. 이곳 음자브에 아랍인 ‘챰바’가 18세기 들어 정착하였다. 마그레브의 다른 지역처럼 그들은 수니 말레키파를 믿으며 원래는 유목 생활을 하다 음자브에 들어와 모자비트의 영역을 침입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알제리의 정체성에 부합함을 강조하며 모자비트에게 아랍어 사용을 요구했고, 심지어 아랍문화까지 강요하였다. 이런 긴장 관계는 소수부족의 자치권을 인정해주려는 정부의 중재로 긴장 관계가 완화되는 분위기였다. 2010년 두 종족간의 평화 협정이 처음으로 체결되었다. 이후 아랍인들은 모자비트가 거주하는 지역에 진입하지 않았다. 평화 협정 체결 1년 만인 2011년 12월 30일 두 종족 간 사태가 재발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나서 직접 두 영역에 대한 구분을 더욱 강화시켰지만 공권력은 아랍인들에 훨씬 호의적으로 대하였다. 당연히 모자비트는 분노했고, 아랍인 위주의 배려 정책과 관할 경찰들의 수수방관은 모자비트의 분노를 자극했다. 더 나아가 모자비트는 자신들의 영역이 뒤늦게 들어온 아랍인에 의해 침탈당했다고 분노하였다. 1882년 프랑스에 합병되었다가 독립 후에서야 알제리로 귀속된 음자브의 모자비트는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비교적 보존하고 있지만 이슬람교를 독특하게 믿는 관행이 있기에 오히려 반아랍적 정서가 있다. 알제리 정부 또한 자신들의 문화적 관행을 인정하지 않고 억압하거나 말살하려 한다는 것이 모자비트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모자비트 뿐만 아니라 독립 후 집권 정당인 FLN, 군, 정보국 등은 아랍화라는 명분하에 베르베르 문화 전반을 억압하였다. 음자브 또한 이런 정부 정책이 아랍인들에 호의적이면서 아랍화 정책이 모자비트의 삶의 영역 속에 파고들어 자신들의 고유문화가 파괴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음자브의 인권협회장 Kadel Eddine Fekhar는 연초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공공연하게 정부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 300,000명 정도를 헤아리는 소수의 모자비트가 음자브 지역 7개 도시에 있지만 그들은 산산조각이 나다시피 했다. 처음 아랍인들은 메트릴리, 그리고는 다른 지역에서 왔으며, 독립 이후 많은 다른 아랍인들이 가르다야로 이주해왔다. 그들은 일자리를 찾았고, 평화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을 특별 우대했던 유일 정당(FLN)이 여러 특혜를 주었다. 모자비트 땅을 강탈한 것도 모자라 이런 사태까지 일으키다니... 현재의 아랍인들 전체 거주지가 누구의 땅이었는가? 그 토지 또한 모자비트의 것이고, 모자비트가 땀 흘려 일군 곳이 아닌가” (El Watan 01.04).

 

공동체적 삶을 가장 중요시하는 음자브 지역이 반아랍적 정서를 갖게 된 이유는 정부의 아랍화 정책, 아랍인들의 지역내 침투 증가, 여러 분쟁에도 불구하고 무관심하거나 아랍인 챰바에 호의적인 공권력의 불만에서 기인된다.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적 특이성을 보존하면서도 외부에 그리 배타적이지 않던 모자비트가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정부에 반기를 든 것이다. 반정부적 태도를 지향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에 대해서는 더욱 배타적이게 된다.

 

알제리의 부족 문제를 살펴볼 때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지역 중 하나가 음자브 지역이다. 지역문제는 소수 부족의 문제이며, 알제리내에 퍼져 있는 토착민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에 대한 배려 정책이 무시되는 한 알제리내 베르베르인들의 불만이 극단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2013년 1월 알제리 인 아메나스(In Amenas) 가스전에서 38명의 인질 사망, 27명의 테러범 살해, 이후 북아프리카 테러를 진두지휘하는 마그레브의 이슬람극단주의자 벨목타르(1972~ 가르다야 生) 또한 모자비트이다. ‘서아프리카 지하드 통일운동’(MUJAO)과 연합하여 결성한 이슬람 테러조직 ‘알무라비툰’(Al-Murābitūn, Almoravide의 아랍어 표기이다)이 왜 등장하고, 음자브 출신의 모자비트와 사하라의 투아레그족들이 같이 연합하여 사하라 일대를 왜 불안하게 하는지, 이들이 왜 정부에 대한 불만을 지속적으로 갖고 있는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두 부족 간의 갈등과 정부정책의 미흡이 알제리의 지역 분쟁에 불을 지피면서 극단 테러주의자들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동시에 모자비트의 문화적 자부심과 배타성이 향후 알제리 전체 문화와 어떻게 융합해갈지 연초부터 알제리 사회가 불안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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