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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알제리에서의 언어 사용과 새롭게 부상하는 제 2 외국어

알제리 임기대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강의전담교수 2014/02/12

알제리는 흔히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는 국가이지만, 베르베르어가 이웃 모로코와 더불어 공용어의 위상을 갖고 있는 국가이다. 아랍어는 일반적으로 꾸란의 아랍어, 현대 아랍어, 방언 아랍어 등으로 구분된다. 베르베르어와 프랑스어를 혼용하기 때문에 아랍어 전공자들이 현지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게다가 알제리는 프랑스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국가로 프랑스를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프랑스어 화자가 가장 많은 국가이다. 사실상 프랑스어가 공용어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전부터 이 3개의 언어 사용에 균열 현상이 보이고 있다. 아랍어, 베르베르어, 프랑스어를 제외하고 최근 알제리에서 다른 제 2 외국어가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 화자가 알제리에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 국가 중 영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국가였지만, 최근 영어 사용자의 증가세는 기존의 언어 군(群)을 위협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영국과 미국의 합작으로 에꼴(학교)과 학원이 처음 생겨나면서(Le Matin 2012.06.21)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언어 지형도가 바뀌고 있고, 영어 학습자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TOEFL, SAT를 보는 알제리인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영어 학습자의 증가는 해외 이민자들과도 관련된다. 프랑스의 인종 차별과 과거 식민지 관련 적대감을 갖고 있는 알제리인이 프랑스보다 영국 이민을 선호하면서 영국과 관련을 맺고 있는 알제리인이 증가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약 5만여 명의 알제리인이 영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던 7~8년 전에 비하면 영어 사용자는 최근 들어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특히 젊은이들이 영어로의 전환이 빠른 편이다.

 

스페인어의 경우 지리적이며 역사적인 맥락과 결부된다. 모로코의 베르베르어권인 리프지역이 실제 스페인어를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알제리의 스페인어 화자는 일상에서 사용하지는 않는다. 단지 알제리 서부 오랑을 중심으로 아랍어/스페인어 간의 혼성 양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경제적 교류 또한 오랑-바르셀로나(마드리드, 말라가 등) 등으로 직항하는 항공 혹은 항로가 있어 스페인어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 역할을 해준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제외한 언어로 최근 중국어, 터키어, 한국어와 같은 아시아어가 알제리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알제리 언론이 집중 보도를 했다(El Watan 2014.02.05). 인접 모로코에서 일본어가 주목받고 습득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알제리에서 아시아 언어의 역사는 한국과 가장 먼저 관계를 맺었다. 2005년 알제대학교 통번역학과와 어학센터에서 아시아 언어로는 처음으로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었다. 당시 강의를 담당했던 필자는 알제리인의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떤 아시아 언어도 알제리에서 강의하거나 연구되지 못했기에 더 큰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당시 알제리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첫째, 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특히 한국에 대한 알제리 정부 차원의 관심에 힘입은 바가 크다. 알제리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2003년 방한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대국민 담화에서 알제리가 배워야 할 모델로 한국을 꼽으며 국민들에게 강조하곤 했다. 게다가 한국은 알제리와 같은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는데 이렇게 빨리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적인 대상이었다. 둘째, 아시아 기업으로의 취업에 대한 열망이 학생들에게 담겨 있었다. 당시 학생들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가 서로 비슷한 언어로 생각하여 3개 언어 중 하나를 습득하면 3개 국가의 기업에 취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동아시아 국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알제리인이 한국어 수업에 몰려왔지만, 취업을 위한 전략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국어의 경우 2006년 한국 대통령이 알제리를 국빈 방문하여 알제리인의 기대치는 더욱 커갔다. 셋째,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자신의 조국 알제리를 떠나려는 젊은이들의 욕구를 반영하였다. 학생들은 한국에 가서 새로운 문화, 특히 한국의 첨단 기술을 익히고자 했다.

 

2007년 들어서면서 거의 눈에 띄지 않던 중국인들의 알제리 입국이 늘어났다. 이후 2~3년 사이에 알제리 내 중국인이 약 2십만 명 이상이 되었으니 길가는 아시아인은 대개 중국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국과 알제리 간의 관계가 증진되었다. 특히 건설 분야에서 중국인들은 엄청난 수의 노동자를 보내서 알제리 내 중국 열풍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에도 불구하고 중국어 학습자는 거의 없고, 2009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사립학교가 생겼고 중국어 학습자도 늘어났다. 공교육 기관에서는 중국어를 다루지 않았던 것이다. 2009년 2월 알제-북경 직항이 열리면서 중국과의 관계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중국어 또한 <미래의 언어>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하게 된다(El Watan 2014.02.05). 학습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교류는 알제리에서 중국어를 경제어의 위상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한자 습득의 어려움이 많아 중국 당국은 중국 문화를 일차적으로 전파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알제 2대학교의 어학센터에서 중국어를 강의하고 있는 리 링홍씨는 중국 내 중국어 강좌 개설 이외에 중국 공자학원 등과 같은 문화 시설을 중국 정부가 설립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언급하고 있다(El Watan 2014.02.07). 이를 토대로 경제 이외에도 더 많은 일반 대중이 중국문화를 대하고, 중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을 세워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터키어의 경우는 최근 몇 년 사이 알제리 안방극장을 점령한 것과 무관치가 않다. 프랑스의 식민지배 이전 오랫동안 오스만터키의 지배를 받아 터키 문화에 익숙해 있었지만, 최근 들어 경제 교류 및 문화 교류가 급증하고 있다. 과거에는 알제리인의 이름과 지명을 중심으로 터키식 이름이 수도 알제와 서부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하지만 안방극장을 터키가 점령한 것은 가히 획기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최근 알제리 가정의 저녁 시간 장악을 통해 터키문화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터키는 알제리의 7번째 큰 교역 국가가 되었다(2013년 기준). 최근에는 비자 면제와 직항 노선이 열려 양국 관계는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안방극장의 점령, 교역 규모의 증가 등은 알제리인이 터키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을 언론은 지적하고 있다.

 

알제리에서 한국어 교육은 2007년에 단절된 후 2012년 재개되었다. 세종학당이 세워지면서 알제리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국어가 강의되고 있는데, 많은 알제리인이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심을 표하고 있다. 특히 K-Pop을 통해 한류 문화를 체험하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지중해 근처의 대도시는 물론 사하라사막에서조차 길을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한국어로 인사하며 한국 연예인에 대한 정보를 묻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이 상당히 고무적인데,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과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중국인들이 알제리어와 베르베르어를 배우는 데 적극적인데 반해, 국내에서는 알제리 아랍어와 베르베르어와 같은 현지어를 배우는 인력이 없는 점도 양국 간 파트너십의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중국인은 최근 수십 명의 학생이 알제리어를 배우면서 학사 및 석사 과정에 등록되어 있다. 중국과 프랑스와의 경제 교류가 많은 알제리 안나바(Annaba) 대학교와 블리다(Blida) 대학교를 중심으로 중국어 정규 대학 학위과정 개설을 협약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중국어와 터키어 사용자를 집중적으로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알제리 교육계가 강조하는 점도 어쩌면 갈수록 한국어의 입지를 좁게 할 수도 있다(El Watan 2013.11.10). 현재의 세종학당 차원이 아닌 알제리 대학에서 정규 학위 과정, 양국 간 학생 교환 프로그램의 정착, 한국어만을 배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알제리 아랍어를 배우려는 우리의 적극적인 자세도 중요해진 것이다.

 

알제리인은 다양한 문화와 언어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아랍어, 베르베르어, 프랑스어, 그리고 제 2 외국어인 영어, 스페인어, 터키어, 중국어, 한국어까지 그들의 외국어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은 상당하다.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異)문화를 접하고 배우는 것에 익숙한 탓도 있겠지만, 경제적 가치가 있다면 전 세계 어느 나라에든 가려는 그들의 평소 신앙관도 한몫한다. 알제리인은 어느 언어를 선택하여 사용하는가에 따라 자신들의 정체성도 다르게 드러내는 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에 익숙한 알제리인은 프랑스에 대해 훨씬 긍정적인 사고관을 갖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아랍어에 부정적인 세계관을 갖는 경향이 있다. 각각의 언어와 관계 맺고 있는 방식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달리한다. 현재 한국어 습득자의 경우 대부분이 한류와 연관되어 있다. SNS에서도 이들은 거의 한국 연예인의 이름을 따서 예명을 사용하거나 연예인이 하는 일상의 일들을 주된 관심사로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류를 통해 드러난 그들의 한국어와 문화 사랑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알제리 자선단체 포렘(FOREM)의 기술국장 함마디Hammadi씨는 필자와의 E-Mail 인터뷰를 통해 지속적인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미 여러 개의 프랑스어 교육기관을 세운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 조만간 설립될 중국 공자학원 등은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 조언해준다.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무엇보다 현재 알제리에 있는 세종학당의 기능과 역할이 확대돼 세종학당이 <세계 속의 작은 한국>으로 우뚝 서고 지구촌 한류 문화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기구로 자리 잡기 위해선 정책적 지원과 함께 적극적인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 동시에 우리 젊은이들이 더 도전적인 정신으로 알제리와 같은 제 3세계 지역을 누빌 수 있는 인식의 확산과 대학 교육 교류 등의 지원도 필요해 보인다. 기업들은 상품 파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닌 우리 문화와의 연계속에서 수익의 극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최근 판매에만 몰두했던 한국 상품이 한계를 보이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여러 난관에 있는 알제리에서의 경제 전략은 언어와 문화를 통해 보면 새롭게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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