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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2014년 보스니아 소요 사태, 그 배경과 향후 전망

중동부유럽 기타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대학 교수 2014/02/20

 현지시간으로 지난 2월 7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Herzegovina/ Bosna i Hercegovina, 이후 ‘보스니아’로 축약) 경제난에 분노한 시위대가 북부 투즐라(Tuzla) 지방정부 청사에 난입해 방화를 저질렀다. 보도에 따르자면, 경찰 추산 약 7,000여명이 참석한 이날 시위 당시, 시위대 100여 명은 경찰의 방어망을 뚫고 청사 안으로 진입하였고, 청사 내에 있던 가구와 TV 등을 창문 밖으로 던지고 청사 1층에 불을 지르는 등 무정부적 상황이 발생하였다. 심지어, 시위대들은 다른 관공서 난입은 물론, 공무원 소유 차량 여러 대를 강으로 밀어 빠뜨리거나 전소시키는 등 공권력에 대한 강한 부정적 입장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현재 지방 도시 책임자인 일부 지방 총리들과 공직자들은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상황이다. 그리고 투즐라에서 시작된 시위는, 수도인 사라예보(Sarajevo)와 헤르체고비나의 주요 도시인 모스타르(Mostar), 그리고 비하츠(Bihać), 브르츠코(Brčko), 제니짜(Zenica) 등지로 번졌으며, 이로 인해 사라예보 대통령 관저 일부도 불에 타고 진압 과정에서 현재까지 수십 명의 경찰관을 포함 약 20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스니아에서의 이번 시위는 애초 지난 2월 5일 투즐라에 있는 목재 공장 등 4개 국영 기업의 민영화가 실패함에 따라 파산 신청되고, 이 과정에 밀린 임금 지급을 중단하면서 촉발되었다. 투즐라 시 당국은 민영화 실패와 밀린 임금 지불에 개입할 권한이 없음을 강조해 왔으나, 경제난에 쪼들린 시위대의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 문제에서 시작된 시위대들은 “우리는 바꾸고 싶다(Hoćemo menjati)”, “우리는 (공무원들의) 사직을 원한다(Hoćemo ostavke)”등의 구호를 외치며, 공무원들의 부패 문제는 물론 상대적으로 공무원들에게 방만하게 지급되어왔던 월급 등 여러 지원금 문제까지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시위는 2월 19일 사라예보 ‘시민 총회(Građani skupština)’가 비(非)정치인으로 정부 관료들을 구성하고, 퇴직 공직자의 퇴직금 지급을 폐지하는 한편, 공기업 민영화 과정을 검토하는 '민영화청' 설립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개혁안'을 시의회에 제의함에 따라 소강상태에 접어든 상태이다. 시민총회는 앞서의 요구 조건 외에도 의회 의원들이 각종 위원회 등에 참여할 때 받는 보수 지급을 중단하고, 지난 7일 시위의 폭력사태를 조사할 위원회를 설립하는 방안도 포함시켜 놓았다. 이와 함께 시위 진앙지인 투즐라의 시민총회도 지방 의회 의원들과 만나 공무원들이 퇴직 후 1년간 매달 월급 형태로 받는 퇴직금 폐지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으며, 다른 도시인 모스타르와 제니차, 브르코 등에서도 현재 공무원의 월급 삭감, 퇴직금 폐지, 민영화 재검토 등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보스니아 내전(1992. 3 - 1995. 10) 이후 가장 큰 소요로 기록되고 있는 이번 보스니아 소요 사태는 겉으로 보이는 민영화 실패와 경제적 난관에 대한 불만에서 표출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에 있어선 보다 깊숙한 근원적인 배경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진단을 내린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자리 잡고 있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첫째, 다른 여러 외신들의 보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요 사태의 직접적인 배경은 보스니아의 심각한 경제문제에서부터 비롯된다 하겠다. 시위 진앙지인 투즐라 시의 세제 공장과 제염, 가구, 화학 공장 등 4개 국영기업이 민영화 실패와 함께 파산 신청을 한 후, 1년 넘는 기간 동안 1만여 명의 근로자들이 밀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이번 시위가 촉발되게 되었다. 실제, 지난 1990년대 공산주의 정권 붕괴와 독립 내전을 치르면서 보스니아 경제는 극도로 피폐해졌고, 이런 탓에 보스니아의 실업률은 공식 통계(27.5%)보다 훨씬 높은 44%에 이른다고 알려질 정도로 경제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거기에 청년들의 실업률은 비공식적으론 이미 60%를 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정부 관료들의 부패가 만연한데다, 그나마 남은 생산 기반도 소수 재벌들의 손에 들어간 탓에 빈곤층이 급격히 늘어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 소수 재벌들은 민영화에 강력히 반대하여 왔으며, 그 결과 이번 투즐라에서의 국영 기업 민영화 또한 실패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두 번째로 이런 표면적인 시위 배경과 달리,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보스니아 자체 내 내부 문제에서 비롯되는 여러 난제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보스니아 정부는 지난 2010년 총선 이후 빚어진 정치적 혼란과 반목으로 인해 현재 16개월까지 중앙 정부를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EU는 보스니아의 유럽연합(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박탈하였으며, 그 결과 4천만 유로에 달하는 EU 지원금마저 중단된 상태이다. 실제, 이러한 정치적 난제에 대해, 얼마 전 보스니아를 방문했던 슈테판 퓔레(Stefan Pwilre) EU 확대담당 집행위원(EU Enlargement Commissioner)은 우크라이나 유혈 소요 사태를 강력하게 우려하면서 정부와 시민 단체가 서로 만나 협의할 것을 종용했던 것처럼, 이번 보스니아 소요 사태에 대해서도 보스니아 정부와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점을 피력하였다. 또한 무엇보다도 보스니아의 개혁과 각 민족 계파간의 협력만이 궁극적으로 보스니아의 성장과 앞날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현재 보스니아 연방의 여당을 중심으로 정계에선 조기 총선을 통한 정국 수습 방안을 모색 중에 있으며, 올해 10월에 예정된 총선을 앞당겨 치를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하자는 제안을 의회에 제출한 상황이다. 하지만, 1국가 2체제로 이루어진 현 상황에서 전국적 총선거가 이뤄지려면 무엇보다도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밀로라도 도디크(Milorad Dodik) 스르프스카 공화국 대통령은 야당이 총선에 동의할 경우, 그리고 선거법 개정으로 그 동안의 각 체제별 자치권이 손상되지 않는다는 약속 하에서 총선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현재 보스니아의 소요 사태가 그리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낳게 하는 세 번째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보스니아의 정치 행정 체계는 1995년 11월 보스니아 내전을 종결짓기 위해 맺어진 ‘데이턴 합의안(Dayton Agreement)’에 따라 지리적 행정구역이 크게 보스니아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가 차지하고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Federation pf Bosnia and Herzegovina/ Federacija Bosna i Hercegovina, 보스니아 영토의 51%, 수도는 보스니아 연방 수도와 같은 사라예보)과 세르비아계가 차지하고 있는 스르프스카 공화국(Republika Srpska, 보스니아 영토의 49%, 수도는 반야 루카 Banja Luka)으로 1국가 2체제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정치 형태는 연방제와 대통령제가 혼합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오랜 내전의 여파에 따라 행정부에선 3인의 민족 계파 대통령이 연방 대통령으로 4년 임기 동안 8개월에 한 번씩 대통령 의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연방 대통령이 각료들을 임명하면 하원에서 승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연방 대통령은 외교정책 지휘, 통신, 교통 등에 관한 결정권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국방, 경찰, 조세에 대한 결정권은 각각의 공화국 체제 정부에 맡겨지고 있다. 보스니아 공화국의 입법부는 4년 임기의 상원과 하원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민족 계파별로 5명씩 해서 상원은 15명, 그리고 하원은 42명으로 2/3(28명)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에서, 1/3(14명)은 스르프스카 공화국에서 선발된다. 이처럼, 오늘날 보스니아 정치 상황은 각 민족 계파별 구분에 따라 크게 보스니아 무슬림계, 세르비아계 그리고 크로아티아계 민족주의 정당들로 나뉘어 진채 정치 효율보다는 서로간의 견제와 균형 속에 정부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소요 사태는 주로 보스니아 무슬림계와 크로아티아계가 차지하고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에서 일어난 것으로, 세르비아계의 스르프스카 공화국에선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배경 또한 여기서 기인하고 있다. 그리고, 세르비아 단일 민족으로 63개의 소규모 행정 구역(opština)로 구성된 스르프스카 공화국과는 달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은 무슬림계와 크로아티아계의 정치 지분에 따라 행정적으로 총 10개의 지방 정부(canton,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작은 지방의 주(州) 개념)로 나뉘어져 있으며, 지방정부마다 총리와 내각이 구성되어 있는 등 상당한 자치권을 스스로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조기 총선을 바라보는 각 계파별 시각들이 천차만별로 다양하다는 점 또한 이번 보스니아 소요 사태의 해결이 요원한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보스니아는 지난 3년 8개월간의 내전으로 인해 인구가 줄고, 무너진 경제와 사회 간접 자본을 여전히 복구하지 못한 채, 1인당 국내총생산이 4,310달러(2010년 IMF 통계)에 불과하는 등 알바니아 다음으로 유럽 최대 빈국이라는 오명을 지니고 있는 상태이다. 또한 보스니아는 내전이 종결된 지 20년이 가까워지는 현재까지도 민족 간 갈등과 내전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으며, 민족 간, 계파 간 그리고 종교간 긴장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각 민족 계파 간 불신으로 지방 정부의 권한이 비대한데 반해, 중앙정부의 권한 및 관할권이 미미해 독립주권국가로써의 어려움 또한 매우 크다 하겠다. 반면에, 무정부적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보스니아 소요 사태를 두고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보스니아와는 달리, 주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신속하고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 문제에 직접 개입하려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점들이 바로 보스니아의 정치적 자주권과 경제 발전을 향한 앞으로의 행로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 예측하는 이유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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