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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하샤르(hashar)의 사례로 보는 전통문화와 현지 비즈니스

우즈베키스탄 방일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2014/02/21

우즈베키스탄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어려움은 끝이 없다. 관료들의 뇌물 문화, 예상보다 저조한 노동생산성, 통관 및 해외 송금의 어려움, 소규모 국내 시장, 예측 불가능한 법률의 변화, 국가의 법률적인 보증이나 공증을 받은 계약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행되지 않는 계약 등. 하지만 이런 노동환경은 우즈베키스탄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어서 오히려 예상 가능한 일들이다. 이에 따른 문제들은 법률적 도움을 받거나 구조적인 문제로 순응하는 식의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더 적응이 어려운 문제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발생한 우즈베크 근로자의 돌출행동이다. 실제로 자주 발생하는 경우들로 고용주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사례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종업원이 이웃의 생일이나 결혼식이라고 출근을 안 한다. 상사의 꾸지람을 들었다고 아버지나 변호사와 함께 찾아와 회사를 고소한다고 협박한다. 당사자가 아프다며 가족이나 친구를 대신 출근시킨다. 이런 생각들은 도대체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

현지 비즈니스 중에 만나게 되는 이런 문화적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 ‘하샤르(hashar)’라고 불리는 우즈베크인들의 품앗이 문화를 살펴보려 한다. 우즈베크인들의 공동체 문화를 납득하려면 ‘마할라’라는 마을 공동체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전통적으로 마할라는 농경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현재는 우즈베키스탄의 가장 작은 행정단위로 주로 단독주택으로 이루어진 마을을 지칭한다. 마할라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안이 전혀 보이지 않은 높은 담을 가진 집들을 보면서 우즈베크인들이 폐쇄적인 생활을 할 것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양과 달리 마할라에 사는 사람들은 현재까지도 서로의 이름이나 가정사를 모두 알고 지내며,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공유하고 있다.

마할라의 개인 가정사는 ‘하샤르’라고 불리는 일종의 ‘계’ 모임을 통해 공유된다. ‘도움’이라는 뜻을 가진 ‘하샤르’는 마을 공동체의 품앗이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우리 옛 농촌의 노동계와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 우리가 그러하듯 단지 오래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라고 여겨질 뿐 하샤르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다. 같은 마할라에 속한 사람(주로 남성)들은 사원이나 학교 등의 마을 공동 건물이나 개인 주택의 건축, 다리나 상하수도관 공사, 도로 건설, 결혼식이나 장례식 혹은 손님 접대가 필요한 중요한 행사, 나무 심기나 농사일 등 일손이 필요할 때 노동을 제공하거나 받는다. 여성들의 하샤르는 주로 카펫을 짜거나 결혼식 의상을 짓고, 잔치 음식을 장만하거나 남성들의 하샤르 노동에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 풍속은 집단 노동의 제공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개인이 말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밭을 갈 시기에 이 말 주인이 홀로 여러 집을 다니며 자신의 말과 노동을 빌려준다. 이런 도움도 하샤르다.
 
공동체의 자발적인 노동 교환 시스템을 의미하는 이 풍속은 반대급부적인 품앗이가 아니다. 그 모임에 노동력을 제공한 가족뿐만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자발적으로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고아나 과부, 노인 가정 등에 집을 지어주고,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도와주거나 식량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즈베크인들은 마할라에 속하는 한 절대로 굶주리거나 이겨내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고 생각한다. 무료 노동의 제공이라고 하여 노동의 질이 낮은 것은 아니다. 질을 높이기 위한 재미있는 장치들도 하샤르에 존재했다. 예를 들어 집을 지을 때는 마을 내에서 가장 실력 있는 네 명이 동시에 사방의 벽을 쌓기 시작하는데, 이때 가장 먼저 일을 끝낸 사람에게는 우즈베크 전통 의상인 초폰(chopon)을 집주인이 선물하고 다음 하샤르 모임 때까지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가장 실력 있는 일꾼이라고 칭찬한다.

마을 공동체 내의 건설 현장뿐 아니라 마을에 필요한 일이라면 지역 차원의 일에도 하샤르가 조직되었다. 1960년대 이전에 페르가나와 타슈켄트, 자랍샨, 사마르칸트 등에서는 인근의 강에서 도시로 연결되는 수로관을 모두 하샤르의 노동으로 건설한 바 있다. 우즈베크인들의 품앗이인 ‘하샤르’는 마을 공동체  뿐만이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관리되고 있다. 예를 들어 봄이나 가을이 되어 도시나 시골의 작은 운하들을 청소해야 할 시기가 되면 국가적으로 모월 모시에 하샤르를 동원한다며 방송을 통해 공고한다. 그러면 마을 공동체에서는 그 일정에 맞추어 하샤르를 모아서 자신들의 구역을 청소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은 학교에 청소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샤르라는 이름으로 동네 청소를 하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로 여기며 성장한다.

하샤르 문화는 우즈베크인들의 생활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우즈베크인들의 중요한 행사는 마할라에서 이루어지고 하샤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는 아파트에 사는 소수의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우즈베크인들은 아파트에 산다고 해도 자신이 태어나서 속했던 마할라에서 잔치를 치르게 된다. 따라서 우즈베크인들에게는 마할라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가 매우 중요하며, 하샤르에 참여하는 것은 가족을 돌보는 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하샤르’ 의식 구조는 한국인에게 돌출행동으로 보이는 우즈베크인들의 근무태도로 나타난다. 우즈베크인들에게는 유대감을 지속해야 할 이웃의 잔치가 돈을 버는 일(직장생활)보다 당연히 중요하며, 본인이 일할 수 없는 상황이면 친구나 가족이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 또한, 본인이 해결하기 힘든 일이면 마을 공동체의 어른(부모나 이웃집의 권위 있는 사람)이 나서서 해결해 주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샤르에 기초한 우즈베크인들의 의식 구조는 근대화 이후 경제활동에서 사적인 영역보다 공적인 영역을 우선시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수용하기 힘든 부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 기원과 그 작동에 대한 이해에 기초할 경우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특히 대도시 이외 지역에서 경영해야 하는 외국 기업들은 경제활동에서도 사적인 영역을 우선시하는 우즈베크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근무조건에 제약을 걸어서 타협해야 할 부분이라 여겨진다. 전통문화의 이해를 기초로 그 장점을 발견하고 이를 현지 비즈니스에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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