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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예멘의 봄은 오는가?

아프리카ㆍ 중동 기타 홍성민 중동경제연구소 소장 2014/02/18

‘아랍의 봄’ 이후 협상으로 권력을 이양한 유일한 국가


아랍의 봄은 곧바로 ‘예멘의 봄’을 예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멘의 살레 대통령은 1969년 권력을 잡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장기집권하고 있는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그 후 만 3년이 흐른 지금, 새로운 봄을 기다리는 예멘은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권이 이양된 유일한 아랍국가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그 배경은 과연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리고 예멘의 봄은 언제 오는 걸까?

첫째로 예멘인들의 뛰어난 협상능력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며, 그 협상능력의 원천은 고대부터 이어지는 ‘상인정신(商人精神)’에서 찾을 수 있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은 사랑이야기로 유명하다. 성서에는 솔로몬과 시바여왕의 사랑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오늘날 자유무역협정(FTA)과도 같은 비즈니스 협상이 있었다.

당시 예멘은 ‘향료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고, 이스라엘은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과 예멘이 지중해와 홍해의 해상무역에서 각축하였지만 예멘은 감히 솔로몬의 지배력에 대적할 수 없었다. 이를 간파한 ‘시바의 여왕’은 각종 금은보화를 낙타에 싣고 솔로몬과의 협상에 나섰으며, ‘시바의 여왕’은 안전한 향료무역의 교역로를 보장받고 귀국한다. 그 이후로 예멘은 전례 없는 전성기를 누리며 ‘향료의 나라’라는 명성을 얻었다.
성서에서 “솔로몬 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시바)의 여왕에게 물건을 준 것 외에 또 그의 소원대로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그가 그의 신하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더라(열왕기상 10:13 )”는 구절에서 “그의 소원대로 구하는 것을 주니---”라는 표현이 바로 그 내용이다.

이와 같은 예멘의 협상능력은 오늘에도 잘 반영되고 있다. 비록 내전을 겪긴 했지만 1990년 남북예멘 간에 ‘합의통일’을 이루어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예도 있다. 통일이후에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국경분쟁에서 군사적 충돌 없이 협상으로 타결했으며, 아덴항 테러사건이후 미군주둔문제에서도 충돌 없이 미국으로부터 군사적 원조를 잘 받아내고 있다.
둘째로 문맹률이 높긴 하지만 국민들의 높은 정치적 의식수준을 들 수 있다. 남북 예멘은 1960년대 들어오면서 왕정을 타파하고 일찌감치 ‘공화국 체제’를 마련했다. 중동에서 이러한 과정을 경험한 나라로는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등을 꼽을 수 있으며, 근대적 의미에서 볼 때 ‘중동 민주화과정’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한 국가들이다. 그렇기에 정권이양의 해법이 리비아나 걸프만의 왕정국가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예멘민주화의 특징은 카르만의 노벨평화상 수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동지역에서 비정치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녀는 분명 예멘민주화의 표상이다. 카르만의 여성운동이 가능했던 점은 예멘이 아라비아반도에서는 유일하게 공화국 체제를 택하면서 비정부기구 활동을 허락하고 어느 정도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기 때문이었다.

셋째로 뿌리 깊은 부족주의(tribalism)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새 정부 협상에서 예멘의 정파와 부족을 포함한 565명의 국민대표가 참여하는‘범국민대화(National Dialogue)가 출범할 수 있었던 점은 뿌리 깊은 부족주의에 자리 잡고 있다. 예멘에서 국가통치의 기본은 경제적 이권배분이 그 기초이며, 이권분할의 정점에 부족(部族)이 있다.

이러한 부족제도가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족집단이 가지는 적응능력 때문이다. 과거 국가의 힘이 미약했을 때 부족은 일부지역에 모여 살면서 조직을 만들고 규범을 정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였다. 왕조 성립과 함께 국가의 힘이 강해졌을 때 부족은 국가를 지탱하는 강력한 지원세력이 되었다. 또 국가가 정치를 잘못할 경우 부족은 저항세력의 역할을 하면서 견제세력으로 중앙정부와 투쟁해왔다. 현재도 이러한 역할은 예멘에서 매우 중요하다.

새 정부 협상의 난제가 되고 있는 6개 연방이냐 아니면 남북 2개 연방이냐의 문제도 체제나 이념보다 경제적 이권이 보다 현실적 문제로 작용한다. 따라서 효율적인 자원배분, 특히 석유자원의 이권문제가 해결책의 중요현안이 될 것이다. 예멘은 석유자원에 크게 의존하는 저소득 산유국이다. 원유는 GDP의 약25%, 재정수입의 약 70%를 차지한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면, 새봄을 기다리며 오랜 기간 협상하고 투쟁하며 “협상에 의한 평화적 권력이양”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더 더욱 예멘인들은 큰 틀에서 예멘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 투쟁과 협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시간’은 큰 문제가 되질 않는다. 그만큼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큰 민족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예멘을 위한 기나긴 여정(旅程): 6개 연방 혹은 2개 연방으로 귀결


예멘의 ‘범국민대화’가 활동시한을 3개월 넘기고 지난 1월 21일 “새로운 연방제 도입”을 합의하고 10개월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예멘인 특유의‘자존심과 여유’다. 외세개입을 철저히 차단하면서 예멘 자체의 민주화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음은 그동안 질구한 협상과정에서도 잘 나타나있다(<표> 참조).

길게는 3년, 짧게는 2년(하디 대통령 체제)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새로운 체제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그 시한을 1년 더 연장하여 합의에 이르려는 예멘들의 노력은 주변국가들에게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 알-카에다를 포함한 테러와 폭력이 협상을 가로막기도 했지만, 예멘인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낙타를 이끌고 대상(隊商) 무역을 해오던 방식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민주화를 위한 발걸음을 착실히 내딛고 있는 것이다. 웬만한 신생국이나 급속한 체제변화를 바라는 국가라면 벌써 내전이나 폭력시위에 휩싸였을 것이지만, 정치수준 높은 예멘은 끈질긴 협상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예멘의 민주화는 ‘아랍의 봄’에 의해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불씨를 당긴 것은 그보다 앞선 헌법개정안 의결이었다. 2011년 1월 1일 예멘의회는 대통령 연임규정을 철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의결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1월 3일 야권연합체인 커먼포럼(Common Forum)은 헌법개정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반대시위를 독려하고 사나대학에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 와중에 1월 22일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에 고무된 시위대는 사나대학에서 33년째 예멘을 통치하고 있는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시위가 민주화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살레 대통령은 자신을 포함해 가족과 측근들의 면책보장을 전제로 GCC 권력이양안에 11월 23일 서명하였다. 그해 12월 10일 출범한 통합정부는 2012년 2월 12일 대통령선거를 거쳐 2년 임기의 하디 대통령을 선출하고 범국민대화를 토대로 새로운 헌법에 의한 2014년 2월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로 합의하였다.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자 범국민대화는 일단 ‘새로운 연방제’의 큰 틀에는 합의하고 대통령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여 협상을 계속 하기로 하였다. 범국민대화 특별위원회는 6개 연방제(남부에 2개, 북부에 4개)과 2개 연방제(남부 1개, 북부1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6개 연방이냐 아니면 2개 연방이냐의 문제는 아직도 예멘민주화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여기에 남북갈등과 알-카에다의 준동은 예멘이 필히 넘어야 할 가시밭길로 남아있다.

 

진주목걸이의 끝자락 아덴만(The Aden Gulf)과 알-카에다 테러가 걸림돌


대통령이 위원장인 예멘 특별위원회는 지난 2월 10일 6개 주로 구성된 새 연방국(북부에 아잘, 사바, 자나드, 타하마 4개 주, 남부에 아덴과 하드라마우트 2개주)안을 최종 승인했다. 그러나 남부의 분리주의자들은 즉각 반발하고 남예멘과 북예멘 등 2개 주로 연방제로 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2개 연방으로 할 경우, 자칫 예멘이 남북으로 다시 분열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에 반대하고 있다.

그 핵심에 지리적 장점을 갖고 있는 아덴이 있으며, 아덴은 이른바 진주목걸이의 끝자락에 아덴만(The Aden Gulf)이 있으며, 아덴만은 수에즈운하와 연결되며 아프리카 해상교역의 요충지다. 진주목걸이는 중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대부분이 통과하는 중동의 아라비아해, 인도양, 남중국해를 잇는 에너지 수송항로를 연결하면 마치 진주목걸이와 같은 형태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은 국내소비용 원유의 약60%를 수입하고 있으며, 그 원유수입의 약80%가 진주목걸이 수송항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여기에 현재 예멘에는 약 400명의 알-카에다 대원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빈 라덴 이후 최고의 테러리스트로 알려진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의 지도자 중 한명인 성직자 알-올라키가 2011년 9월 30일 미군의 무인공격기 폭격으로 사살되기도 했다. AQAP는 2011년 민중봉기로 살레 정권이 붕괴한 이래 예멘의 중앙정부에 계속 위협적인 존재로 작용하고 있다. 예멘에서의 알-카에다의 존재는 민주화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예멘의 민주화의 미래는 2개 연방이냐, 6개 연방이냐의 해결에 달려있다. 만일 2개 연방으로 국가가 구성될 경우, 예멘의 또 다른 분단도 예견된다. 이 과정에 알-카에다의 준동은 새로운 외세(外勢), 즉 미국과 중국 등 (G2) 강대국을 끌어들이며 예멘의 민주화를 국제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에 예멘의 민주화는 아직도 터지지 않은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3년을 기다려 곧바로 올 것만 같았던‘예멘의 봄소식’은 다시 추운 계절을 1년 더 기다려야 하는‘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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