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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에티오피아의 전통주, 아라케(Arake)에 대한 단상(斷想)

에티오피아 설병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2014/03/20

필자는 2014년 1월 하순부터 2월 하순까지 에티오피아 오로미아 주(Oromia Region)의 메키 타운(Meki Town)에서 현지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메키 타운은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130㎞ 떨어져 있다. 3개의 동(village/kebele)으로 구성된 메키 타운은 둑다 자치구(Dugda District/Woreda)의 중심지이다. 필자가 현지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첫날은 메키 타운의 목요 장날이었다. 필자는 현지보조원(Mr. Alemu)을 데리고 목요 장터를 둘러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필자는 에티오피아의 전통주이자 지역주인 아라케를 맛보게 되었다. 아라케의 도수는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필자는 아라케를 맛보기 삼아 한 잔만 먹은 터라 뒤탈이 전혀 없었다.

 

그 후 어느 날 오후 필자는 면접 조사를 하기 위해 어느 목공소를 방문했다가, 한 부인이 부엌에서 아라케를 만드는 현장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녀는 필자에게 아라케를 한 잔 권했다. 그런데 그 양이 제법 많았다. 그러나 필자는 그녀의 호의를 생각해서 그 술을 모두 마셨다. 그러고 나자 필자의 몸에서는 삽시간에 취기가 돌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필자는 “아라케의 맛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이런 맛 때문에 많은 지역민이 아라케에 중독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라케는 텔라(Tella), 테즈(Tej), 보르데(Borde)와 더불어 에티오피아의 대표적 전통주이자 지역주 중 하나이다. 이들 중 아라케는 에티오피아 남부의 타운이나 농촌 지역의 가정에서 주로 생산된다. 이 술은 일종의 ‘밀주’(密酒)인 셈이다. 아라케의 도수는 35~45도에 달한다. 아라케의 주요 소비자는 농민과 타운 사람이다. 도시 지역에서는 주로 하층민이 아라케를 마신다. 아라케는 옥수수를 주원료로 해서 만든 증류주이다. 그래서 아라케 그 자체는 그리 해롭다고 볼 수 없다. 문제는 사람들이 안주를 전혀 먹지 않은 채, 상당량의 아라케를 짧은 시간 내에 마신다는 데 있다.

 

필자는 현지조사 기간 내내 대낮에도 아라케를 마신 취객을 메키 타운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월요 장날과 목요 장날이 되면 장터 주위의 술집들은 아라케를 마시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아라케를 마신 사람들은 몽롱한 눈빛으로 거리를 배회하거나 싸움질을 하기 일쑤였다. 그들 중에는 타운에 볼일을 보러 나온 농촌 여성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세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첫째, 도대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아라케를 주로 만드는가? 둘째, 사람들은 왜 대낮에도 독한 아라케를 마실까? 셋째, 메키 타운과 이 일대의 지역민에게 아라케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메키 주민 중 일부 지각 있는 사람들은 “아라케가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옳을 뿐이다. 왜냐하면 아래에서 보게 되듯이 지역 여성 중 일부는 아라케를 제조․판매하여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현지조사 자료를 토대로 볼 때, 아라케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에티오피아 사회의 단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첫째, 아라케 제조자의 절대다수는 여성이다. 이들은 가족 부양의 책임을 지고 있다. 이들은 가난한 농촌 가족 출신자, 이혼녀, 과부, 태만한 가장을 둔 부인 중의 한 범주에 속한다. 메키 타운에서는 15세 이상의 여성 경제활동 인구 중 4분의 1정도가 아라케 제조․판매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난으로 내몰린 그들에게 있어서 아라케 제조․판매는‘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들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라케를 팔고 있는 여성이 화를 내면, 사람들은“왜 너의 남편은 너를 도와주지 않느냐?”라고 묻곤 한다. 그러면 그녀는“내 남편은 내가 아라케를 만들 때 사용했던 재료 중의 하나만도 못하다.”라고 대답한다. 이 표현은 메키 공동체 일대에서 아주 잘 알려진 속담이다. 이 표현은“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아라케의 재료가 남편보다 낫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상당수의 남편은 가족을 부양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대개의 메키 남성―특히 오로모족 남성―은 가족 부양에 그다지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둘째, 상당수의 남성은 아라케에 중독되어 있다. 그들은 아라케를 많이 마신 다음 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그들은 일을 하러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들은 늦게 일어난 후에 또 아라케를 마신다. 아라케 중독자들은 이런 생활을 반복한다. 또한 상당수의 농민은 농지를 타인에게 빌려주거나 팔아먹고 타운으로 나와, 아라케를 마시면서 빈둥거리기 일쑤다. 아라케 중독은 가난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아라케에 중독된 남성은 식솔에게 여러 형태의 학대 행위―예컨대 욕설과 구타 등―를 일삼기도 한다.

 

셋째, 아라케 마시기는 환각제인 짜트(chet) 씹기 및 콘돔 없이 행해지는 섹스를 동반하기 쉽다. 아라케를 마신 사람이 짜트를 씹으면, 정신이 더욱 혼미해지고, 성적(性的) 욕구도 더욱 커진다. 문제는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콘돔 없이 성행위를 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각 있는 일부 지역민의 지적에 따르면,“상당수의 메키 사람은 가족계획(family planning)을 세우고 있지 않다. 또한 아라케를 마시고 짜트를 씹은 후에, 콘돔 없이 매춘부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성행위는 HIV 감염 확률을 엄청나게 높인다.”

 

넷째, 지역민은 아라케를‘농민’과‘육체노동자’의 술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아라케를 즐겨 마시거나 중독된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농민이거나 육체노동자이다. 그들은 노동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서, 혹은 절망적인 미래를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 무렵의 한국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 즉, 그 당시 한국의 아버지들 중 대다수도 이러한 이유로 술―주로, 막걸리―을 마셨던 게 사실이다.) 이에 반해 대개의 도시민과 사무직 노동자는 맥주를 즐겨 마시는 경향이 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사무직 노동자 중 일부는 아라케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섯째, 대개의 메키 남성은 배우자 선택에서 아라케 제조 기술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이것은 그들이 결혼 후에 배우자가 만들어 주는 아라케를 즐겨 마시길 원할 뿐만 아니라 아라케 제조를 통해 가계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결혼 조건에서 여성의 학력, 미모, 직업 등은 부차적이라 생각한다. 상당수의 젊은 여성―특히 고학력자―은 남성의 이러한 생각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인류학자이다. 인류학의 가장 중요한 관점은 문화상대론(cultural relativism)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모든 문화는 그들 자신의 입장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는 특수한 환경과 상황에 역사적으로 적응해 온 결과이므로,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인이 보기에 아라케 문화가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을 더 많이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이 문화 역시 지역민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메키에서의 현지조사 기간 내내 아라케 문화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21세기에는 지상의 어떤 공동체도 세계화의 물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즉, 지상의 모든 공동체는 어떤 식으로든 간에 외부 세계와 소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라케 문화에도 일정 부분 변화가 생길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주역은 지역민 자신들임은 물론이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가 메키 공동체, 나아가 에티오피아 사회의 불평등, 착취, 모순, 빈곤을 해소하고, 인권을 신장하는 데 기여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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