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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가나의 관습적 토지 보유 체계

가나 설병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2014/07/17

세계에는 다양한 형태의 토지 보유 체계가 존재한다. 이들은 법률적․관습적․종교적 및 비공식적 토지 보유 체계 등을 포함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여전히 관습적 토지 보유 체계가 지배적으로 발견된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자연적․생태적 특성뿐만 아니라 역사, 식민지 유산 및 당면한 경제적 압박과 기회 등으로 인해 복잡한 토지 보유 체계를 보여 준다. 일국 내에서도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토지 보유 체계는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아프리카의 토지 보유 체계를 일반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대개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토지 보유 체계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즉, 토지 보유 체계는 해당 민족이나 종족의 문화 및 정체성과 아주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것은 토지 문제가 왜 격렬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해 준다.

 

아프리카의 여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가나도 급속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인구 압박이 증대하면서 토지를 둘러싼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지고 있다. 또한, 도시 이주자들은 농지를 잠식하고 농촌 지역의 청년들을 유인하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대개의 지역 생산 체계는 농업 경제의 상업화와 환금작물의 도입을 촉진하는 세계 경제로 편입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지역의 토지 이용뿐만 아니라 관습적 보유 체계의 작동 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나 사회에는 세 가지 형태의 토지 보유 체계―법률적․관습적․공동체적―가 존재한다. 이 중 법률적 토지 보유는 성문법과 규정, 입법과 사법적 결정에 근거한다. 법률적 토지 보유의 맥락에서 보면, 토지에 대한 권리는 소유권의 발행이나 다른 형태의 소유권 등록을 통해 배당되고 확정된다. 관습적 토지 보유는 성문법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관행과 규범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유동적이고 협상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관습적 토지 보유 체계는 전통적 권위를 가진 지역 추장, 사제 및 원로 협의회나 가장 등에 의해 통제된다. 관습적 토지는 문화적․종교적․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경영하는 일은 정부, 지역 공동체와 개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적 토지 보유 체계는 위의 두 가지 체계에서 유래하는 혼종적 체계이다.

 

가나의 전체 토지 중 78%는 관습적 토지 보유 체계 하에 관리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랫동안 가나 사회에 존재해 온 추장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토지에 대한 지배권은 추장제 존속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그래서 식민지 시대부터 지금까지 추장들은 토지에 대한 주도권을 잡으려는 중앙정부에 공공연하게 저항해 왔다. 그 결과, 추장들은 오늘날까지 가나 토지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필자는 2011년 7~8월과 2012년 1~2월에 가나 아샨티 주(州)의 에지수-주아빈 지자체(Ejisu-Juaben Muncipal)와 볼타 주(州)의 호 지자체(Ho Municipal)에서 행한 현지조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지역의 추장들은 토지에 대한 지배권을 갖거나 토지를 분배해 줌으로써, 지역민의 삶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페프라 오퐁과 주민들. 오퐁(Peprah Oppong, 앞에서 세 번째 줄 제일 왼쪽)은 가나 아샨티 주의 크로프롬(Krofrom)과 주아빈마(Juabenma)의 추장이다. 그는 자신의 토지 중 일부를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어 공동으로 경작케 하고 있다.

 

가나의 농촌 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토지 이용 계약 체계는 물납 소작(sharecropping)이다. 물납 소작 체계는 두 가지 상이한 방식―아부누(abunu)와 아부사(abusa)―으로 구분된다. 아부누 체계 하에서, 완성된 농지는 소작인의 것과 지주의 것으로 구분되며, 경작지의 수확물은 양자가 동등하게 나누어 가진다. 소작인은 경작지에 작물이 남아 있는 한 계속해서 생산물을 획득할 수 있다. 코코아, 기름야자나무, 코코넛 등은 아부누 차지(借地)에서 여전히 흔하게 발견되는 작물이다. 아부사의 경우에는 지주와 소작인이 토지의 수확물을 1대 3으로 나누어 가진다. 이 두 가지 물납 소작 체계의 차이는 노동과 자본에 대한 소작인과 지주의 투자 정도이다. 아부누의 경우에는 지주가 해당 토지 이외에 약간의 자본과 묘목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아부사의 경우에는 지주가 해당 토지 이외엔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아부사 체계 하에서 농사를 짓는 소작인은 수익의 3분의 1을 농장 경영비로, 또 다른 3분의 1을 자신의 보수로,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을 농지 임대료로 사용한다.

 

가나의 관습적 토지 보유 체계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토지 문서의 부재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첫째, 토지 문서의 부재는 누가 해당 토지의 실제 상속자인지를 판단하는 것을 때때로 어렵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해당 토지의 소유주가 상속인을 명확하게 지정하지 않고 사망하거나 고향을 떠날 경우에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둘째, 토지 문서의 부재는 소작인 측과 지주 측 간의 분쟁을 야기한다. 물납 소작이 장기간 지속되는 과정에서, 지주가 토지를 제대로 상속하지 않고 사망할 경우나, 소작인과 지주가 모두 사망할 경우에는 소작인 측과 지주 측 간에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소작인이나 그의 후손은 소작지를 빌리는 과정에서 약간의 돈이나 술을 지주에게 제공했기 때문에 그 땅을 샀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면에 지주의 후손은 땅을 판 것이 아니라 빌려주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대추장의 허가 없이 이루어지는 토지 매매는 서류를 발급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해당 토지를 몰수당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매매 당사자 간에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토지를 팔고자 하는 사람은 해당 지역의 대추장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고, 그로부터 토지 매매 승인 내용이 들어 있는 서류를 발부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토지 매각 대금의 20~30%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대개의 지역민은 자신이나 자기 가족이 40~50년, 때론 60~70년 동안 특정 토지를 경작해 왔으니, 이 토지는 자신이나 자기 가족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지역민들은 대추장에게 지불하는 매각 대금의 일부를 ‘세금’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인식 하에 상당수의 사람들은 대추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채 토지를 팔아먹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대추장이 아니라 지주로부터 토지 매매 서류를 발급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서류는 완전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대추장이 불법적인 토지 거래 사실을 알게 되면, 그 토지를 회수하거나 매각 대금의 일부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중앙정부가 특정 지역에서 개발사업을 진행할 경우, 토지 문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주민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쫓겨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 와서 이러한 현상은 가나 전역에서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토지 문서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는 ‘근대법과 관습법의 충돌’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가나 사회에서 도시화, 토지의 사유화 및 농업 경제의 상업화가 진행될수록, 토지 문서의 부재는 더욱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현지조사를 수행하면서 만난 가나의 추장들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에 와서 가나의 관습적 토지 보유 체계에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대도시나 그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관습적 토지 보유 체계는 결코 단기간 내에 소멸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토지 문제는‘중앙정부와 지역정부 간의 힘겨루기’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추장들은 자신들의 존립 기반인 토지에 대한 지배권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관습적 토지 보유 체계는 오랜 역사와 사회관계를 통해 형성되어 왔다. 즉, 관습적 토지 보유 체계는 개인, 가족, 친족 및 마을 공동체 등 다양한 층위의 구성원이 맺고 있는 사회관계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구축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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