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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알제리에서 베르베르어(타마지그트어) 관련 논쟁,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알제리 임기대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강의전담교수 2014/08/24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알제리가 변화하는 징조는 대략 2000년대 들어서부터이다. 현 대통령인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집권하고 본격적인 사회 변화를 추진하면서부터 알제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부테플리카에 대한 공과가 크지만 그는 경제 발전 5개년 계획(1차~3차)을 통해 경제의 다변화를 실시했으며, 정치 지형의 민주화에도 어느 정도 공헌했다는 평을 받는다. ‘국가 안정화’를 가장 중시하는 대통령으로 내치 안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의 테러 척결에 대해 강한 의지도 그렇고, 다문화적 정체성을 배려하려는 정책도 모두 ‘국가 안정화’라는 틀 속에서 고려되었다. 독립 이후부터 알제리에서는 아랍 이슬람적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는 요소를 언급하는 일은 금지되어왔다. 특히 이슬람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를 중심으로 아랍 이슬람적 요소 이외의 다른 문화적 요소는 알제리 사회에 이입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당연히 베르베르어는 아랍 이슬람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알제리 사회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알제리만의 새로운 현대 국가 건설을 구상하고자 했다. 그가 중요시한 것은 무엇보다 <국민화합>이다. 1999년과 2004년 <국민화합>을 강조하는 법안 통과는 이를 잘 반영한다. 결국, <국민화합>을 위한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베르베르’ 문제, 더 정확히 ‘타마지그트어’ 사용 관련 논쟁도 예외는 아니다.

 

알제리 현대사에서 ‘베르베르’라는 용어는 억압과 자유의 표상이다. 독립 이후부터 지속하였던 ‘베르베르’ 운동은 다문화 국가, 민주국가 알제리를 상징하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지역적 정체성을 드러내며 문화적 독자성을 주장하기도 하고, 때론 독립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다. 전 세계적인 맥락에서 베르베르운동은 알제리 국내 문제만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프랑스를 위시한 벨기에, 네델란드, 심지어 캐나다까지 외국의 베르베르 이민자들은 전방위적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고 알제리에 있는 베르베르인과 연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알제리 베르베르인들은 자신들의 언어, 즉 타마지그트(tamazight, 베르베르어로 ‘베르베르인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어를 공식어로 요구하고 나서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이를 언제까지 눈 감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 되었다.

 

다문화적 ‘정체성’의 중심에 있는 베르베르(인)어와 문화는 독립 이후 줄기차게 요구되었지만 부메디엔 대통령의 아랍 이슬람화 정책에 가려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1980년 ‘베르베르의 봄’이 발생한 이후에서야 베르베르인은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서 자신의 정체성 확보를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타마지그트어의 공식어 요구도 마찬가지이다. 그 와중에 2002년 국가어로 지정되어 베르베르인의 한을 풀어주는 듯했지만 이후 큰 변화는 거의 없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드러내면서 최근 들어 베르베르인은 국가어가 아닌 모든 영역에서 타마지그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1) ‘공식어의 위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데, 이 요구는 공적 분야와 교육 분야에서 타마지그트어의 체계적이고 합법적인 사용을 말한다. 2014년 6월부터 알제리 지식인, 그리고 집권 정당인 FLN, 카빌리 지역을 중심으로 타마지그트어의 공식어 요구가 논쟁의 중심에 있으며, 올 한해 알제리 사회를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2) 

 

알제리에서 최근 타마지그트어의 공식어 지위 관련 논쟁은 대통령선거 전후해서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일단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타마지그트어를 공식어로 인정하겠다고 선거 기간 동안 공약했던 게 직접적인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선거가 끝난 두 달 후 베르베르어권 지역에서 격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때로는 투쟁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을 요구하면서 베르베르인은 아랍어가 더 이상은 알제리인의 역사와 더불어 왔던 언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각시켰고 타마지그트어의 공식어 사용을 당연시했다. 베르베르인은 더 나아가 아랍어는 알제리 역사와는 상관없는 언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들은 <베르베르어가 우리의 언어이지 아랍어가 아니다. 우리는 아랍이 아니라 베르베르인이다>라는 슬로건을 과감히 사용했고, 실제로도 이런 슬로건은 베르베르어권의 카빌리 지역에서 공공연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렇듯 격한 논쟁에서도 나타나듯이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타마지그트어 사용 관련 알제리 정부가 얼마나 정략적으로 베르베르인을 억압하면서 달래며 구호에 불과한 정책을 펼쳐왔는지를 볼 수 있다. 아래 도표는 알제리에서 타마지그트어 관련 주요 정책의 변화 내용이다.

 

알제리에서 타마지그트어의 공식어 위상과 관련 가장 중요한 기구는 Amazigiteé고등위원회(HCA)로서 타마지그트어와 베르베르 문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온 기구이다. 정부는 HCA를 통해 모든 타마지그트어 관련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지만 실상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 기구가 효율성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무엇보다 HCA는 법적인 효력이 전혀 없는 기구라 언제 사라질지 모르며, 현재는 정치적인 이유로 활동까지 정지된 상태이다. 타마지그트어를 활성화해줄 이 기구가 얼마나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는지 최근의 몇 가지 사례를 볼 수 있다.


‣ 알제리에는 ‘이슬람 고등위원회’(HCI)가 있다. 언어가 아닌 종교적인 내용과 관련된 사항을 총괄하고 있는 HCI 의장이 최근 사망하면서 정부는 곧바로 새로운 의장 선출을 했고, 기구를 더욱 확대하면서 국민들의 종교적 의식을 더 강화하고자 했다. 반면 HCA의 경우는 의장인 Ait Amrane 사망 이후 후임자 선정도 하지 못하고, 현재까지 정부가 무관심을 보이고 있다.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HCA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타마지그트어 교육과 관련한 교육부의 역할을 제대로 감시하고자 HCA를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고, 교육부의 타마지그트어에 대한 무관심과 열악한 지원에 대해서조차 비판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 2007년 국가어의 위상을 부여하면서 타마지그트어로 바칼로레아(알제리 대학수능시험)를 볼 수 있는 11곳의 윌라야(Wilaya, 알제리의 ‘道’를 의미한다)를 지정했지만, 선언에 그쳤을 뿐 현장에서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실제 바칼로레아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타마지그트어 인정이 구호에 불과할 뿐 실제 사용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 국가어의 위상을 부여하거나 지위 향상을 주는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 정부는 교묘히 2008년 헌법 수정을 통해 그동안 타마지그트어 관련 정책을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2008년 수정 법안이 대표적이다.

⁃ 2008년 수정 법안 178조 : 모든 수정 헌법은 국가의 공화국 정체성을 훼손할 수 없고, 다당제에 근거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할 수 없다. 또한, 국가 종교로서 이슬람, 국가어와 공식어로 아랍어를 훼손하는 행위를 금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진정 타마지그트어를 보호하고, 장려할 수 있는가? 타마지그트어를 배울 수 있는 교재나 텍스트 보급이 원활하고 사용자가 접할 기회가 있는가? 많은 전문가는 공식어의 위상을 갖지 못하는 한 정부의 모든 선언은 거짓일 수밖에 없고, 공식어의 지위가 확보되지 않는 한 실질적인 타마지그트어 사용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흘러온 과정을 보면 타마지그트어 정책은 거의 재앙적 수준이라고 사회언어학자인  Mouloud Lounaouci는 최근 El Watan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2014.08.18). 결국, 독자적으로 카빌리 행정부서나 대학에서 타마지그트어를 사용하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반정부 투쟁이나 타마지그트어를 옹호하기 위한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서 활성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특히 프랑스에서 타마지그트어 연구, 교육은 지난 10년 사이 괄목할만하게 증가했다. 프랑스에는 베르베르어 문화 관련 단체가 프랑스 전역에 400여 개 이상이 존재하여 베르베르어와 문화가 프랑스 문화의 일부임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프랑스에서 현재 프랑스어 다음으로 가장 많은 모국어 사용자를 가진 언어가 베르베르어이다. 알자스어, 프로방스어, 부르타뉴어가 아닌 베르베르어 화자가 2백만 명 이상을 넘어선다는 것은 정치권에서까지 (프랑스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여러 선거에서 베르베르어 공약이 등장하고 있다)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교육체계(석사, 박사 과정), 바칼로레아 시험 등이 제도적으로 받침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타마지그트어의 공식어 사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는 알제리에서 이 언어가 이질적인 것이 아닌 알제리의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언어, 알제리 역사 속의 언어, 실제 사용되고 교육되는 언어라는 것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처럼 세계 속의 언어로도 그 위상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스위스와 캐나다에서 프랑스어 사용자가 소수이지만(각각 20,4%와 21,7%임) 공식어로서의 위상을 갖는 것처럼 타마지그트어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현재 타마지그트어를 배우는 학생과 교육자 수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다. 1990년대 37,690명의 학생 수에 233명의 교사가 있었지만, 현재(2012~2013년 기준)는 234,690명의 학생 수에 1,654명의 교사가 있어 교육적 측면에서 엄청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현재는 그 수가 더욱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긋고 있다.(El Watan 08.17) 이런 추세라면 정부가 아무리 타마지그트어의 공식어 사용을 거부한다 해도, 결국 법률적 차원에서 장려하고 보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셀랄 총리도 아직 공식어로 인정할만한 국가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하지만(Algerie-Focus 06.06), 집권 정당 FLN 및 야당, 학계 등은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고, 여론은 ‘알제리는 아랍이 아닌 알제리이다’라는 인식을 급속히 확산시키고 있다. 알제리의 정체성과 관련 ‘타마지그트어’ 관련 논쟁이 향후 어떻게 흘러갈지 주목되는 이유이다.


 

 

 

1) 현재 베르베르어를 국가어로 인정하고 있는 마그레브 국가는 알제리 이외에 말리와 니제르가 있다. 베르베르인이 가장 많은 모로코의 경우 2011년 7월 법안을 통해 아랍어와 함께 베르베르어를 공식어로 지정하였다. 국왕 직속의 왕립 아마지그문화원을 중심으로 한 체계적인 준비를 한 끝에 맺은 결실이며 마그레브에서 유일한 공식어 지정 국가이다.
2) 6월초부터 촉발된 타마지그트어 공식어 요구는 언론, 학계, 정치계, 지역 등 많은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다. 게다가 하반기 헌법 개정이 예상되고 있어, 이런 요구 분위기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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