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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러시아의 문화전쟁: 배경과 전망

러시아 라승도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2014/09/16

■ NTV의 흑색선전: ‘훈타의 친구들’

 

- 러시아 국영 NTV는 지난 8월 17일 뉴스 쇼 ‘직업: 기자(Profession: Reporter)’에서 다큐멘터리 방송 ‘훈타의 친구 13명(13 Friends of Hunta)’을 내보내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2주 후 8월 31일 다시 ‘훈타의 친구 17명’을 후속작으로 내보내며 반정부 성향의 러시아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흑색선전을 노골화함.
 ㅇ ‘훈타(Hunta)’는 쿠데타 발생 이후 등장하는 정치체제를 의미하는데, NTV를 비롯한 러시아 친정부 언론에서는 지난 2월 합법적으로 선출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축출하고 집권한 불법 세력(그 연장선상에서 현 정권)을 가리켜 ‘훈타’라고 부름.
- NTV 프로그램은 크림 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반군 지원 등 푸틴 대통령의 대우크라이나 정책에 대해 공공연하게 반대, 비판하는 러시아 문화계 유명 인사들을 ‘훈타의 친구들,’ 즉 ‘우크라이나의 친구들’이라고 부르며 ‘반애국자’이자 ‘내부의 적’으로 낙인찍음.
- 8월 17일 첫 방송에서는 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로 통하며 러시아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록그룹 ‘타임머신’의 간판 안드레이 마카레비치가 ‘훈타의 친구들’ 가운데 대표 인물로 지목됨.
- 마카레비치는 3월 18일 러시아의 크림 합병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8월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전쟁 난민 아동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열었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를 비판하고 우크라이나에 동조하며 지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 러시아 언론에서 십자포화를 맞음.
- 특히 8월 17일 NTV 프로그램의 첫 번째 방송 ‘훈타의 친구 13명’은 마카레비치의 콘서트 공연 장면들과 포성이 오가고 주택이 불타고 주민들이 시신을 옮기는 장면들을 교차 편집하여 어린이를 비롯한 민간인 희생이 우크라이나 군대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야기됐는데도 마카레비치는 (친)우크라이나 관객들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비난함. 
- 8월 31일 두 번째 방송 ‘훈타의 친구 17명’에서는 야당 언론인 올레크 카신, 힙합 가스 ‘노이즈 MC,’ 작가이자 시인 드미트리 비코프, 정치학자 스타니슬라프 벨콥스키, 야당 정치인 일리야 포노마료프 등이 ‘우크라이나의 친구들’이자 러시아 ‘내부의 적’으로 설정됨.
 ㅇ 이들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반푸틴 성향이 강한 문화계 인사들로 유명했으며, 크림 합병 이후부터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사태가 러시아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 말하면서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를 향해 서슴없는 비판을 퍼붓고 있음.
 ㅇ ‘외부의 적’과 언제 전쟁을 벌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부의 목소리를 제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반정부 인사들을 서방의 돈줄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자 ‘외부의 적’과 내통하는 ‘내부의 적’으로 여론 몰이하여 러시아 대중 사이에서 고립, 고사시키는 것임.
- 또 ‘훈타의 친구 17명’은 미하일 호도르콥스키가 키예프에서 연 ‘러시아-우크라이나’ 포럼에 참석한 시인 겸 작가 드미트리 비코프에 대해 ‘시를 돈과 바꾼’ 지식인으로 매도하고 다른 반정부 문화예술가들에 대해서는 외국 자금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노골적으로 암시함.  
- 또 스타니슬라프 벨콥스키에 대해서는 그가 미국 함대가 크림을 폭격해야 한다고 호소한 것처럼 묘사하면서 가장 악랄한 ‘내부의 적’으로 매도했고, ‘노이즈 MC’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국가 상징들을 좋아하는 ‘반애국자’로 묘사함.

 

■ 러시아 정계의 대응

 

- 러시아 정치권은 2014년 3월 18일 러시아의 크림 합병 이후부터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위기 상황을 둘러싸고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를 비판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문화계 인사들에 대해 강경한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음.
  ㅇ 예브게니 표도로프 통합러시아당 의원은 마카레비치가 러시아의 크림 합병을 반대하고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주민 보호 시도를 비판하면서 러시아의 적 편에 서게 됐다고 말함.
  ㅇ 러시아 국마두마(하원) 문화위원회 위원인 드미트리 리트빈체프는 마카레비치가 러시아의 정책을 반대한다면 러시아는 소련 시절 반체제 인사들에게 했던 식으로 마카레비치를 러시아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임.  
  ㅇ 또 다른 러시아 정치권 인사들은 마케레비치가 ‘배신자’로 확실히 적의 편에 서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그의 공연활동을 금지해야 하고 더 나아가 그가 지금까지 받은 국가 훈장과 상을 모두 몰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야당인 공산당은 마카레비치처럼 우크라이나 정부를 지지하는 러시아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공연 금지법 제정을 청원하는 서명운동에 나서기도 함.
  ㅇ 이 밖에 러시아 극우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알렉산드르 프로하노프는 일간 ‘이즈베스티야’ 기고문 ‘시인들과 악당들’을 통해 마카레비치가 친러 반군의 피가 채 마르지도 않은 우크라이나군 점령하의 슬라뱐스크로 가서 콘서트를 열고 ‘반데라주의 음악’을 연주했다고 말하면서 마카레비치가 우크라이나 적군에 부역하는 러시아 예술가인 것처럼 매도함.
- 한편,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문화부는 러시아의 크림 합병과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을 지지하는 러시아 문화예술계 유명 인사들의 우크라이나 입국을 금지하는 명단을 발표했는데, 이러한 조치는 그보다 앞서 라트비아 외무부가 이오시프 코브존 등 푸틴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는 예술가들의 자국 입금을 금지한 데 이어 나온 것임.
  ㅇ 이에 대해 러시아 의회 의원들은 러시아 TV 방송에서 우크라이나인 가수들의 출연을 금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러시아 문화부는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문화예술계 인사 입국 금지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맞대응 조치를 공식으로 내놓지는 않음.

 

■ 시사점과 전망

 

- 러시아 국영 NTV의 ‘직업: 기자’ 프로그램이 반정부 문화계 예술가들을 표적으로 삼아 ‘훈타의 친구들’을 기획하여 두 번에 걸쳐 내보는 것은 NTV가 2012년 10월 ‘시위의 해부(Anatomy of Protest)’를 2회에 걸쳐 제작해 방송한 정치적 의도와 크게 다르지 않음.
  ㅇ ‘시위의 해부’는 2011년 12월에서 2012년 2월까지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최대 규모로 벌어진 반정부, 반푸틴 시위 주도자들을 표적으로 삼은 흑색선전이었으며, 당시 푸틴 정권에 큰 위기감을 심어줬던 러시아 야권은 이 방송 이후 거의 고사하다시피 함. 
  ㅇ 당시 NTV는 보리스 넴초프와 세르게이 우달초프 등에 대한 사실 왜곡과 허위 정보를 전달하며 러시아 야권 인사들이 서구의 자금과 조종 아래 활동하는 ‘반애국자’이자 ‘내부의 적’이라고 선전하여 야당 파괴에 크게 일조함.
- 이번 우크라이나 위기 상황에서도 NTV는 당시와 똑같은 전략을 구사하며 러시아의 대외정책과 관련하여 애국주의 분위기 속에서 내부의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고 국민 지지와 동원 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임.
- 특히 NTV의 ‘훈타의 친구들’이 9월 14일 러시아 지방선거를 한 달 정도 앞두고 두 번에 걸쳐 방송된 사실은 이 프로그램이 러시아 대중 사이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야권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네거티브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도 기획됐다고 볼 수 있으며, 공교롭게도 9월 14일 지방선거는 집권 통합러시아당의 압승으로 끝남.
- 또 러시아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정부정책 비판에 대해 흑색선전을 동원해 즉각 대응하는 러시아 관영 매체들의 행보는 소련 시절 반체제 예술가들에 대한 당국의 대응조치와 크게 다르지 않음.
- 더욱이 반체제 사상에 대한 예민 반응과 강경 대응은 18세기 예카테리나 2세 때부터 역사적으로 이어져 오는 러시아 특유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21세기 푸틴 시대 러시아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여줌.
-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이 깊어져 전쟁으로까지 번지면 반정부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 등 ‘내부의 적’들에 대한 색출과 탄압도 그만큼 거세질 것이 확실해 보이지만, 우크라이나 위기가 원만하게 해결되더라도 서방과의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반애국적 언행도 당분간은 강경 대응을 부를 수 있을 것으로 보임.
- 2012년에서 2014년 현재까지 러시아 의회가 ‘역사 왜곡 금지법’ 등 각종 금지 법안을 일사천리로 제정하며 ‘러시아 사회의 나사’를 단단히 조인 데서 잘 알 수 있듯이, 반체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이른바 ‘반애국적’ 언행을 계속한다면 이들의 활동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법안도 실제로 제정될 것으로 전망됨.
- 이와 함께 러시아 정부의 애국주의 정책 아래서 문화와 미디어 전쟁도 내외부의 적들을 상대로 더욱 강화되면서 러시아 사회 내부의 비판적 목소리와 다른 견해들이 설 자리가 계속 줄어들 것으로 예상됨.
 

※ 참고자료

- “Russian Cultural Figures Targeted as New Opposition.” www.themoscowtimes.com/article.php?id=506237

- “Russian Lawmakers Want to Ban Artists Who Support Ukraine.” www.themoscowtimes.com/.../russian-lawmakers-wa

- “Russian Rock Star Makarevich Slammed in State TV Smear Campaign.” www.themoscowtimes.com/article.php?id=505907

- “Rock Star Makarevich Slammed for Criticizing Russia’s Role in Ukraine.” www.themoscowtimes.com/article.php?id=505285

- “Russian TV series demonises ‘anti-Putin’ cultural figures.” http://calvertjournal.com/news/show/3050/state-tv-channel-ntv-screens-series-demonising-anti-putin-cultural-figures

- “The Kremlin is widening its hunt for ‘enemies’.” www.globalpost.com › ... › Europe › Russia

- “Депутаты хотят лишить Макаревич государственных наград.” izvestia.ru/news/575313

- “«Друзья хунты» идут в наступление.” http://www.novayagazeta.ru/columns/64976.html

- “Как пятая колонна из смешной превратилась в опасную.” slon.ru/.../kak_pyataya_kolonna_iz_smeshnoy_prev...

- “Певцы и подлецы.” izvestia.ru/news/575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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