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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유라시아경제연합(EEU) 성패를 결정할 또 다른 변수-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서로 다른 지향점-

러시아 / 카자흐스탄 이지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국립동방학대학교 강사 2014/09/22

EEU 창설에 대한 지적 소유권

최근 국내외적으로 구소연방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라시아경제연합(이하, EEU)에 대한 논의가 러시아의 전략과 의도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EEU의 성공여부를 결정할 또 다른 핵심국가인 카자흐스탄의 기대와 우려에 대한 분석은 제대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 느낌이다.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1994년 유라시아연합(Eurasian Union) 계획을 최초로 제안했다. 당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회원국 간 평등과 불간섭 원칙, 회원국의 주권, 영토적 통합, 국경 존중 등을 유라시아연합 창설의 기본 원칙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카자흐스탄은 EEU 창립에 관련된 아이디어와 기본 방향에 대한 지적 소유권을 가진 국가인 셈이다.

기대와 우려의 갈림길에서

현재 카자흐스탄 내에서 EEU에 찬성하는 여론은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권 국가들과의 경제적 유대강화를 통해 날로 증대되는 중국의 경제적 팽창을 견제하려는 입장에 있다. 이미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 관세연합의 높은 역외관세율을 통해 중국으로부터의 밀려오는 상품들의 수입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EEU는 카자흐스탄이 구소련권이라는 넓은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EEU를 우려하는 여론들은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의 하위국가로 전락하는 경우와 주권 침해 가능성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그래서 회원국 간 평등과 주권, 영토 존중은 카자흐스탄이 유라시아경제연합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현대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러시아를 불가피한 지리적 이웃이자, 주요 교역 파트너로 인식하지만, 그렇다고 자국의 상위국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러시아가 EEU정치, 군사적 통합체의 전 단계라고 기대하는 것에 대해 카자흐스탄은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카자흐스탄은 EEU의 유일한 목적은 경제적 협력이며 거대한 정치, 군사적 목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그동안 카자흐스탄은 EEU가 정치, 군사통합체로 발전하기를 원하는 러시아가 제안한 회원국들의 공동 여권, 단일 통화, 통합 의회, 공동 국경경비 등을 단호하게 거부해왔다. EEU는 실용적인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순수한 경제기구가 되어야 하며, 회원국의 국내 정책에 어떠한 간섭이나 주권침해가 있다면 참여를 철회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EEU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정치, 군사동맹으로 변질되어 미국과 갈등관계에 놓일 경우 경제,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한다. 뿐만 아니라 독립국가로서 독자적인 대외정책추진과 다양한 국가들과의 협력관계구축이 제한을 받게 되는 경우도 상상할 수 없는 악몽이 될 것이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경제적 격차 역시 우려 대상이다. 카자흐스탄은 자국경제가 중화경제권에 흡수되는 것을 걱정하는 만큼이나 러시아 경제권으로 귀속되는 것 또한 원하지 않는다. 러시아에 밀리는 카자흐스탄의 산업 경쟁력 역시 EEU의 출범을 우려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취약한 농업, 기계, 화학분야가 러시아에 잠식되는 것은 물론, 높은 품질의 서구제품 수입이 차단되고 조악한 러시아 제품으로 대체되는 것 또한 EEU 참여에 따른 손익계산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구 소연방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인구학적으로 다수가 되면서 점증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민족주의 역시 EEU 참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국제사회와 자유롭게 교류하며 성장해온 젊은 세대들이 인구의 주축이 되면서 독립국가 카자흐스탄의 민족주의는 강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세대들의 나자르바에프 정권의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거부감 역시 커지고 있어 향후 카자흐스탄의 미래 향방은 물론, EEU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서로 다른 정체성-유라시아주의(Eurasianism)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요인들을 뛰어넘어 보다 근본적인 갈등 요인은 EEU를 바라보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지향점이 다르다는 점에 있다. 카자흐스탄의 유라시아주의자들은 러시아와 유럽, 중국과 아시아, 기독교와 무슬림 문화권이 만나는 교차점인 카자흐스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로서 EEU를 바라본다.

그동안 러시아의 전유물로 인식되어온 유라시아주의가 카자흐스탄의 국가형성과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사상적 배경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시야를 좀 더 넓혀 보면, 유럽과 아시아적 요소가 공존하는 러시아, 중앙아시아, 터키 등에서 유라시아주의는 원칙적으로 이들 국가들의 대외행동, 지향점을 제시하는 사상적 기저가 되어왔다. 유라시아주의는 슬라브 민족과 투르크 민족은 물론, 기독교, 이슬람, 불교 등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조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상적 토대이자 배경이었던 것이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신생독립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유라시아주의를 가장 역동적으로 표방하면서 유라시아 대륙의 다양성을 조화롭게 융화시키기 위한 협력을 제창, 주도해왔다.

독립 이후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주의에 입각하여 유라시아 대륙의 매개자이자 심장임을 자임해왔다. 이러한 다소 이상적인 자기 암시는 강대국처럼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할 수 없는 약소국 카자흐스탄이 자국의 생존을 위한 역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세계 어느 국가, 어떤 다자기구와도 적극 협력하는 카자흐스탄의 전방위 대외정책 역시 이러한 자기 정체성의 발로이다. 이는 카자흐스탄 대외정책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유라시아라는 공간적, 지리적 개념에서 자국의 매개자적 역할과 사명에 주목한 카자흐스탄 유라시아주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카자흐스탄이 EEU 창설을 가장 먼저 제안한 배경도 경제통합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경제협력을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자기암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카자흐스탄은 자국의 지리적 특성을 활용하여 다양한 종교, 문화, 민족 간 소통, 연대, 협력의 촉진자로서 자국의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더 이상 변방국이 아닌 유라시아의 중심국가라는 자기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중견국가로서 부상 중이다.

EEU의 향배

살펴본 바와 같이 독립 이후 카자흐스탄은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에서 어떤 국가들 보다 자신만의 유라시아개념을 체화한 국가이며, 동과 서를 연결하고, 독자적인 지정, 지전략적 목표를 가진 새로운 행위자로 성장해 왔다.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은 소통과 통합의 매개자라는 사명감을 가진 카자흐스탄의 유라시아주의는 동, 서양과는 다른 자국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러시아식 유라시아주의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 카자흐스탄은 다양한 유라시아 국가들과 문화들이 수평적으로 교류하는 평등한 연대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와는 구별되는 자국중심의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서로 다른 지향점은 어느 지점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

EEU의 향배는 이러한 두 개의 유라시아주의가 충돌을 최소화 하면서 어떠한 접점을 찾을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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