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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모스크바와 베이징 사이의 몽골

러시아 / 몽골 이평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2014/09/21

1910년대 몽골인들은 그 당시 자신들의 처지를 빗대어 망치와 모루 사이에 있다고 했다. 몽골은 1911년 수백 년의 청조(1636-1911)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런 독립을, 1915년 러시아와 중국이 담합하여 취소했으니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99년 후인 지난 달(8. 21-22일 시진핑)과 이번 달 초(9.3일 푸틴) 그 망치와 모루의 주인들이 몽골을 찾았다. 그것도 제 발로 왔다. 두 손엔 망치와 모루 대신 선물을 들고 왔다. 몽골인들 역시 옛날의 상전들을 환영했다. 두 나라 정상과 몽골 대통령의 회담도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신뢰, 협력, 상생, 공동번영 등 좋은 말들이 흘러 넘쳤다. 각국 정부의 공식성명은 물론, 정부발표를 받아 적은 언론들도 이들의 만남을 “역사적 사건”으로 보도했다. 이처럼 중ㆍ러 정상의 몽골방문은 모든 일이 잘 된 것처럼 끝났다. 특히 몽골 측에서 그렇게 이야기한다. 중국과는 24개, 러시아와는 15개의 공식문서에 서명했다. 내용도 국가안보에서 자원개발, 인프라건설, 금융협력을 비롯하여 전 분야를 망라한다. 체결된 합의들이 원만하게 이행되면 몽골경제는 분명 풍요로워질 것이다. 몽골의 오랜 숙원이었던 수출항구의 사용(중국)과 사증면제(러시아)가 합의되고, 몽골과 각국의 무역액을 2020년까지 10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기로 약속했다.
그렇다고 시진핑과 푸틴이 몽골에 선물만 주려고 왔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의 선배들은 99년 전(1915. 6. 7) 자신들의 관리를 몽ㆍ러 국경도시 캬흐타(Khyakhta)로 보내 몽골인들이 힘겹게 지은 집(독립)을 모루에 놓고 망치로 부숴버렸다. 그리고 그때 확인된 러시아와 중국의 몽골인식과 몽골정책은 그 뒤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따라서 중ㆍ러 정상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잇달아 몽골을 방문한 데는 그럴 만한 곡절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당연하지만 몽골 측에도 이들과 국가의 장래를 놓고 거래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낸 당사자들은 각각 어떤 뜻을 갖고 있으며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는 최근 몽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 외교행사의 본질을 이해하고, 몽골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우리기업과 정부가 대몽골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점검해보아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망치와 모루의 추억

 

17세기까지 몽골의 대외관계는 남쪽 중국에 한정되었다. 몽골인들이 시베리아의 일부를 지배한 적도 있지만 그곳은 기본적으로 관심 밖 영역이었다. 이를 일변시킨 것이 17세기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이다. 이때부터 몽골인들은 남쪽 중원과 북쪽 러시아 양쪽을 주시하게 되었다. 이는 몽골인들에게 양쪽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져다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두 거인의 세력관계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실제로 17세기 이후 몽골인들은 남쪽 힘이 커지면 북쪽에 기대고 북쪽 힘이 팽창하면 남쪽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러나 거인의 망치는 강했고 모루는 단단하여 일시적인 휴지기를 빼고 몽골은 두 강국의 지속적인 지배와 간섭에 시달렸다. 17세기 말부터 1911년까지는 청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 1980년대 말까지는 사실상 제정러시아와 소련정부가 몽골을 통치했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특히 소련의 붕괴는 몽골인들에게 제3의 길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라가 쪼개진 후 북쪽의 “이반(Ivan, 러시아인을 비하하는 말)”은 전환기의 심각한 질병에 시달렸고, 남쪽의 “호자(Khujaa,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는 내부문제 문제 때문에 몽골에 개입할 여유가 없었다. 이때부터 몽골인들은 역사의 대세에 따라 서방국가들의 힘에 기대어 부도 직전의 나라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지표상으로도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반까지 몽골은 전적으로 서방국가들의 원조에 의존하여 가쁜 숨을 이어갔다. 이와 함께 서방식 정치 및 경제제도가 도입되고 모든 것이 서방기준에 따라 재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몽골인들은 남북강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외교정책을 수립했다. 이른바 “제3의 이웃(Gurav dugaar khörsh)”정책 또는 “제3의 근린정책이다. 서방나라들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중국과 러시아의 압력을 완화시키기 위한 외교수단인데 1990년대 상황에서 보면 이는 매우 돋보이는 정책이었다. 체제전환기 전통적 우방인 몽골과 러시아는 이런저런 문제로 서로가 서로를 방기한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히 양국관계가 소원해졌다. 중국은 몽골인들 머릿속에 안보위협국이라는 인식이 상존한데다 1990년대 초기부터 그 징후들(값싼 중국산 물건의 마구잡이 유입, 중국인들의 몽골이주 등)이 나타나면서 자연히 양국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아무튼 역사적 경험과 시대상황의 산물인 제3의 이웃정책은 몽골이 체제전환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몽골은 서방국가들로부터 모범적인 체제전환국으로 칭찬받았다. 그러나 이 정책이 몽골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제3의 이웃정책은 누가 뭐라 해도 친서방 정책이다. 따라서 몽골이 제3의 이웃에 접근하면 할수록 남북 두 거인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를 상징하듯 두 거인은 가끔 숨겨둔 망치와 모루를 꺼내들었다. 2012년 여름 러시아가 몽골에 경유공급을 끊어버리고, 중국이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몽골을 방문할 때마다 몽중을 오가는 항공기와 열차운행을 중단시킨 조치들이 그 단적인 사례다. 몽골이 본격적으로 광산개발을 시작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통과운송료 인상으로 맞섰다. 자국을 제외한 독자적 행동에 대한 제동이다. 공교롭게도 2000년대 중반은 러시아가 경제력을 회복하고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는 시기다. 망치는 더 강해지고 모루는 더 단단해졌다. 몽골로서는 두 나라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근년 몽골경제가 악화되면서 중ㆍ러와의 협력은 더욱 절실해졌다. 참고로 몽골 경제성장률은 2012년 알탄호약(N. Altankhuyag) 총리가 내각을 인수했을 때만 해도 연 17.5%였지만, 2013년 11.7%, 2014년 상반기 5.3%로 하락했고, 물가는 작년 동기 대비 14.9%나 인상되었다.

 

시진핑의 호소

 

중국정부 역시 시진핑의 방몽에 큰 비중을 두었다. 우선 작은 나라 몽골을 1박 2일 간, 그것도 단독 방문했다. 중국 언론들도 이례적으로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 “양국관계가 새로운 역사적 출발점에 섰다”고 수다를 떨었다. 그렇다면 언론들이 이렇게 떠든 이유는 무엇이고 이번 방문을 통하여 중국정부는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
맨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중국인들이 몽골을 여전히 자신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몽골의 국제문제 해설가 강톨가(Sh. Gantulga)는 러ㆍ중 정상의 방몽을 평가하는 언론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은 주석에서 거지에 이르기까지 몽골을 중국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고 혹평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연구소 부소장 루쟈닌(S. Luzyanin) 역시 시진핑의 방몽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이 내외몽골의 통합의도를 갖고 있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몽골이 러시아의 종속에서 벗어난 다음, 일반 중국인들은 물론 관리들까지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해왔다. 심지어 시진핑의 방몽 직전 중국의 한 웹사이트에 “중국과 러시아가 힘을 합해 불안한 몽골을 안정시킨다”는 제목의 글이 게재되어 몽골인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요지는 몽골을 집나간 사람에 비유하고 속히 집으로 돌아올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중국의 1개 현(縣)의 역량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몽골이 어떻게 딴 살림을 차릴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들 머릿속의 몽골은 독립국이 아니고 집나간 철부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시진핑 주석 방몽 전에 행해진 엘벡도르지 대통령과 중국 13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가 주요 이슈의 하나로 다루어졌겠는가?
이를 의식해서인지 시 주석은 몽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공동성명에서도 몽골의 안보를 보장하고 몽골로의 팽창의도가 없음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이는 몽골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뒤집어 보면 이 말은 “당신네의 안보는 우리가 보장할 때만 가능합니다”라는 협박이다. 생각해 보면 몽골을 자국의 일부 또는 집나간 아우 정도로 여기는 중국 입장에서 그 아우네 앞마당에서 미국, 일본, EU, 한국인들이 활개 치는 것을 마냥 보고만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최대 경쟁국인 미국의 지속적인 군사지원 그리고 영토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의 대대적인 경제 지원 및 몽골접근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도 경제적 이권을 챙기기 위해서도 어떤 방식이든 견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중국은 현재 일본 뿐 아니라 베트남 및 필리핀과도 영토분쟁에 휘말려 있다. 국내문제이지만 서쪽에서는 근래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크고 작은 소요와 민족분규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이는 거꾸로 북방의 안정이 중요함을 말해준다. 중국정부도 “중국의 발전에 평화로운 북방환경이 필요하므로 몽골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몽골 주재 중국대사 왕샤오룽의 몽골 언론과의 인터뷰)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집나간 아우를 귀가시키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시대가 변했으니 예전처럼 모루를 펴고 망치로 그냥 때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동생의 손발을 묶어 그가 사람들을 불러들여 잔치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몽골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이는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조여 버리면 된다. 중국은 요즘 아우가 집을 나간 지난 70년 동안 그 아우의 형 노릇을 한 러시아와도 사이가 좋다. 그 형도 마침 몽골의 행동을 마뜩치 않게 보고 있다. 따라서 둘이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몽골의 국가기능을 마비시켜버릴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자기들도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주변의 시선도 있어 문제가 복잡해진다. 그럴 바에 아우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선물을 주고 더 이상 방황하지 않게 하는 편이 훨씬 편하다. 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 모르지만 아우네 나라에는 자원이 많다. 그러나 돈과 기술이 없어 개발이 지연되고 바다가 없어 수출도 어렵다. 그렇다면 돈 대주고 도로 놓아주고 운송문제 해결해 주면 된다. 이것이 이번 시진핑의 방몽 기간에 합의된 경제협력의 핵심이다. 칭기스칸 이래의 최대의 투자, 금융지원, 동북지역의 8개 항구개방 등 모두가 굵직굵직한 사안들이다. 만약 이 약속들이 제대로 실현되면 몽골이 얻을 경제적 이득은 엄청나다. 루쟈닌은 몽ㆍ중간에 영토 및 역사문제가 상존함에도 몽골지도부가 이 문제를 모른 체 하는 것도 중국이 제공하는 경제적 이익 때문으로 설명한다.
그렇다고 시진핑이 단지 아우네 집안 단속하기 위하여 몽골을 찾지는 않았다. 이번에 양국정부와 기관들이 서명한 각종 문건을 뜯어보면 중국에 떨어질 경제적 이득도 몽골 못지않게 크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자원 확보가 필요한데 몽골의 좋은 광산들이 운 좋게 남쪽에 위치해 있다. 개발과 운송 모든 면에서 중국에 유리하다. 왕판 중국 외교학원 국제관계연구소 부소장의 말마따나 중국은 몽골의 자원개발에서 “뚜렷한 지정학적 우위”를 갖고 있다. 모든 게 우리에게 유리하니 우리와 해야 우리도 좋고 당신네도 좋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번 시 주석의 방문은 아우를 경제적으로 안정시켜 집안에 묶어두는 한편,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경제적으로 몽골을 종속화하려는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월 11일 캠프벨(Piper Campbell) 몽골 주재 미국대사가 몽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제적 독립성”을 강조한 것도 어쩌면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일 것이다.

 

푸틴의 경고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떤 생각에서 푸틴의 방몽을 추진하고 또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 시진핑의 방몽보다 푸틴의 방몽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덜 받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시진핑이 1박 2일의 국빈방문이었던데 비하여 푸틴은 단 하루, 그것도 6시간도 안 되는 실무방문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몽골에 머문 시간으로 보면 부시 전 미국대통령의 몽골방문(2005. 11. 21)과 비슷하다. 비록 시간은 짧지만 푸틴의 방몽 보따리에는 적지 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전략적 가치라고 해도 좋고 경제적 목적이라고 해도 좋다. 어떤 경우라도 푸틴의 방몽은 최근 몽골을 둘러싼 국제관계에서 차지하는 함의가 매우 크다. 특히 몽골의 안보와 관련해서 그렇다. 몽골 측도 이를 잘 알고 그를 극진히 모셨다. 잘 알다시피 금년 들어 푸틴은 매우 분주하게 지낸다. 지난 1월에는 소치에서 동계올림픽을 치르느라 동분서주했다. 그 후 크림사태와 우크라이나사태, 미국 및 유럽 나라들과의 갈등과 경제제제 그리고 이에 대한 반격 등 정말 눈코 뜰 사이가 없다. 방몽 당일에도 분쟁의 당사자인 프로센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했다. 몽골 행 비행기에서도 몽골대통령과의 회담을 할 때에도 이런 문제들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점으로 보아 분명 무리한 방문이었다. 이는 곧 그러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옛날 몽골을 관리하던 망치의 주인으로서 최근 몽골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몽골의 전략 및 경제적 가치가 너무나 크다. 러시아 입장에서 제3의 이웃과 중국이 판을 치는 몽골의 현실을 보면 분통이 터질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100여 년 동안 몽골에 대해 해줄 만큼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몽골인들이 1911년 청나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었던 것도 러시아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1921년에는 붉은 군대를 직접 파견하여 몽골에서 중국 군대를 몰아내고 명실상부한 독립국이 되게 해주었다. 또한 1939년 할힝 골(Khalkhyn Gol)을 침략한 일본군을 현대식무기로 막아 주었으며, 몽골이 현대국가로 거듭나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도와주었다. 몽골 쪽에서 보면 이 모두가 러시아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고, 몽골이 사실상 그들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평가하든 20세기 내내 양국관계가 매우 긴밀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인적 측면에서도 50대 이상 지식층과 여론주도층은 대부분 러시아식 교육을 받았고 그들 중 상당수는 러시아에 대한 향수가 여전하다.
이처럼 긴밀했던 몽ㆍ러의 인적 물적 관계가 1990년대 불과 10년 사이에 완전히 끊어져버렸다. 이를 복구하고자 한 사람이 강한 러시아를 내세우고 등장한 푸틴이다. 그는 2000년 11월, 2009년 3월(총리자격)을 포함하여 이번에 세 번째 몽골을 방문했다. 푸틴의 집권기간을 감안해도 러시아의 최고지도자가 몽골은 세 차례나 방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방몽의 공식적인 이유는 할힝 골 전승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엘벡도르지 대통령과 함께 할힝 골의 영웅 주코프(G.K. Jukov) 장군(1896-1974)의 동상에 참배했다. 그러나 그렇게 바쁜 그가 단지 전승을 기념하기 위하여 몽골에 왔겠는가? 그의 방몽 목적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방문시점이다. 지난 4월 척 헤이글 국방장관의 방몽과 군사협력을 위한 “공동비전” 체결이 보여주듯 경쟁국 미국의 군사행보가 점점 대담해지고 있다. 미국의 부추김 때문에 우크라이나 시태가 발생했다고 믿는 푸틴 입장에서 보면 코앞에서 벌이지는 미국의 군사적 접근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근년 몽ㆍ중간의 경제협력과 시 주석의 방몽이 상징하듯 중ㆍ몽 관계는 전면적 협력단계로 발전했다. 사실 17세기 러시아가 시베리아로 진출한 후 중ㆍ러 관계가 좋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수시로 부딪혔다. 밀월이 오히려 예외이다. 최근의 국제관계가 우연히 둘이 한편이 되게 묶어 준 것 뿐이다. 따라서 이 밀월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고 그럴 경우 몽골은 언제나 분쟁의 중심에 놓인다. 결국 러시아에게 중국은 역사적 경쟁자였을 뿐 아니라 미래의 잠재적 경쟁자다. 그런 중국이 몽골에 힘을 과도하게 투사하고 있다. 특히 광산개발에 필요한 철도가 중국의 의도대로 국제표준규격(협궤)으로 결정되면 러시아의 이해는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그렇다고 이를 대놓고 말하기도 어렵다. 현재 중국은 궁지에 몰린 푸틴의 유일한 동맹자다. 할 수 있는 것은 몽골지도부에 대한 설득과 압박밖에 없다.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몽골의 독립과 현상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는 러시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만에 하나 러시아가 몽골을 버리면 몽골은 존립자체가 어려워진다. 몽골인들 역시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푸틴은 바로 이 점을 몽골지도부에게 각인시키기 위하여 바쁜 시간을 내 몽골을 찾았다. 이는 다름 아닌 자기의 선배들이 쳐놓은 전략 및 경제적 그물망을 넘지 말라는 경고다.

 

총평과 우리의 대응

 

러ㆍ중 정상은 이번 방몽에서 몽골의 경제개발에 필요한 많은 선물을 주었다. 그들은 또한 국제무대에서 몽골의 활동과 동북아분쟁의 중재자가 되려고 하는 몽골의 포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몽골의 아펙 가입을 지지하고, 몽골 측이 발의한 “동북아안보를 위한 울란바토르 대화”와 “몽ㆍ중ㆍ러 3국 정상회담”에 대한 찬성의사를 표명했다. 이중 몽ㆍ중ㆍ러 3국 정상회담은 국내외 전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몽ㆍ중ㆍ러는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정상들이 만나 현안을 논의한 적이 없다. 1914년 9월에서 이듬해 6월까지 캬흐타에서 3국 회담이 열렸지만 이때는 각국 대표들이 참가했다. 루쟈닌은 3국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세 나라 모두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전제하고, 몽골 측은 무역에서의 이익은 물론이고, 점증하는 중국의 정치 및 경제적 영향을 완화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개방초기(1990-1992) 몽골총리를 지낸 뱜바수렝(D. Byambasuren)도 두 정상의 연이은 방몽을 역사적 사건으로 평하고, 만일 3국 정상회담이 열리면 칭기스 칸 이래 최대사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지난 9월 11일 타지키스탄의 두샨베에서 열린 3국 정상회담에서 그 첫 단추가 끼워졌다. 향후 전개과정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대단한 외교적 성과다.
이와 함께 몽골국민들은 금년 여름의 행사를 통하여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중요함을 거듭 확인했다. 시진핑이 국가안보를 공언하고, 두툼한 선물을 주고, 발전하는 중국의 특급열차에 무임승차하라고 권유했으니 실리도 챙겼다. 푸틴 또한 방문 자체가 중국의 전방위적 진출을 우려하는 몽골인들에게 위안을 주었음에 틀림없고, 오랜 현안이었던 비자문제를 해결해주고, 몽골철도의 복선화와 전철화 및 기타 경제협력을 약속했다. 그 역시 큰 선물을 주었다. 시진핑과 푸틴도 몽골정부로부터 향후 몽골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공식적인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에 방문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러ㆍ중 정상의 몽골에서의 행보와 이에 대한 몽골인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러시아가 과거 두 나라의 유대를 강조했다면 중국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푸틴이 과거의 유대를 바탕으로 협력을 강화하자고 했다면 시진핑은 과거의 일이랑 잊고 미래로 함께 달려가자고 했다. 이는 현재 양국이 처한 상황이 다른데다가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영토적 야심이 없고, 자원문제 또한 우라늄 등 극히 일부를 빼고 중국보다 열성적이지 않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푸틴은 정말 짬이 없는 가운데 과거의 영광(할힝 골 전투 승리)을 명분으로 방문했고 체제전환 이후 소외된 사람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시진핑은 “친척 집 방문”을 명분으로 특급열차를 타고 함께 가자고 호소했지만 몽골인들의 의구심을 잠재우지 못했다. 뱜바수렝 전 총리는 몽ㆍ중의 통화 스와프 확대(150억 위안)와 중국 국영은행의 몽골진출의 위험을 언급하면서 잘못하면 나라를 팔아먹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러시아와 체결한 사증면제 협정을 근거로 중국도 똑같은 조건을 요구를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중국인의 유입으로 인구 300만의 몽골독립이 지켜질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는 결국 많은 선물과 안보보장 약속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는 증표다.
중국 측은 특히 자원개발을 위하여 부설할 철도를 중국에 맞춰 표준궤도로 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몽골 국제연구소 슈르후(D. Shurkhuu) 소장은 이 요청을 평가하여, 만약 중국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협정도 미뤄질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로 해석했다. 러시아도 물론 경고를 잊지 않았다. 푸틴의 행보 자체가 경고다. 과거의 유대를 강조하고, 주코프 동상을 참배하고, 참전용사들과 만나고, 내년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식에 몽골대통령과 몽골군의 참가를 요청한 것은 몽골을 과거의 틀에 묶어두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다. 이는 역으로 이를 어겼을 때 망치를 꺼낼 수 있다는 경고다. 17세기 이후 몽ㆍ중ㆍ러 관계를 놓고 볼 때 러시아가 자의든 타의든 몽골을 방기 또는 방치했을 때 몽골은 여지없이 중원의 지배를 받았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결론적으로 시진핑과 푸틴의 방몽은 100년 전 망치와 모루의 주인들이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여 영향력을 유지하고 정치 및 경제적 이득을 챙기기 위한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다르다면 20세기 초에는 무게중심이 북쪽에 있었다면 지금은 남쪽에 있다는 점이다. 그 균형이 깨지면 몽골은 어느 한쪽에 종속된다. 이것이 몽골의 숙명이다. 따라서 몽골은 당분간 모든 방면에서 두 이웃을 중시하는 정책을 일층 강화할 것이다. 이는 곧 제3국들의 몽골에서의 입지가 줄어들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 기준점은 미국의 군사기지 설치와 몽골의 상하이협력기구 정회원 가입 여부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중ㆍ러가 반대하는 한 미군기지 설치는 불가하다고 본다. 상하이협력기구 정회원 가입에 대해서는 몽골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이 엇갈린다. 몽골의 정회원 가입을 공식적으로 말한 것은 지난 7월 왕이 중국외교부장이다. 그리고 9월 11일 두샨베에서 개최된 3국 정상회담에서 푸틴과 시진핑이 몽골의 정회원 가입을 공식 요청했다. 이에 대하여 엘벡도르지 대통령은 “몽골로서는 (동 기구의) 옵서버 지위면 충분하다”고 응답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가부를 판단하기 어렵지만 결국 가입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엘벡도르지 대통령도 몽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ㆍ몽 및 중ㆍ몽 사이에 체결한 통과운송 문제와 기타 경제협력 약속이 실현될 때나 이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하여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렇다면 이처럼 몽골의 주변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대하여 우리정부와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몽골이 외국과 교류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온 제3의 이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번 양국 정상의 방몽과 두샨베 3국 정상회담을 통하여 이 정책의 실효성은 크게 손상되었다. 몽골정부는 물론 이 정책의 기본골격을 유지하려고 하겠지만 안보 및 경제정책에서의 활용은 최소한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그 최소한의 상대는 안보에서는 미국, 경제에서는 일본이다. 따라서 우리정부와 기업은 몽골에서의 운신의 폭이 이전보다 훨씬 좁아질 것이다. 경제 및 외교정책도 당연히 이러한 인식하에서 수립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사증면제와 이주노동자의 적극적 수용이다. 두 사안 모두 몽골정부와 국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 일본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보답을 받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저쪽에서 원하는 것을 주고 그 대가를 받으면 된다.
그리고 대북중재자 역할이야말로 어떤 면에서 몽골정부가 제3의 이웃정책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외교카드다. 거듭 말하지만 중ㆍ러가 존재하는 한 제3의 이웃정책은 뚜렷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북한중재자 카드는 각국의 속셈은 다르지만 러ㆍ몽ㆍ일 등 주변국이 모두 인정하고 적어도 가시적으로는 지지한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도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한국 사이를 오가며 실리를 취하는 몽골의 ‘기술’을 높이 평가한다. 몽골을 친구로 여기고 믿는다는 뜻인데 이는 곧 우리정부가 대몽정책과 대북정책을 한꺼번에 추진해야 함을 말해준다.
경제부분에서는 대형프로젝트의 경우 몽골의 운명을 쥐고 있는 중ㆍ러 회사들과의 협력을 이전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상적이라면 한국기업이 대형 사업권을 독자적으로 따내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지난 7월 6일 누르스트 호트고르(Nuurst Khotgor) 지역의 사업을 포기하고 철수한 석탄공사의 사례가 이를 확인해준다. 공들여 개발하고 사실상 중국의 비협조로 판로를 개척하지 못하여 사업을 접은 것이다. 우리의 역량과 몽골의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근거하지 않은 투자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준 좋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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