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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동유럽 진출을 향한 러시아의 판도라 상자, 우크라이나의 생존 전략과 향방

러시아 / 우크라이나 / 중동부유럽 일반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대학 교수 2014/09/21

2014년 9월 18일, 텔레그래프(Telegraph)와 데일리 메일(Dailymail) 등은 독일 권위지인 쥐트도이체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 기사를 인용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러시아 푸틴(Vladimir Putin, 1952- , 총리 2008-2012, 대통령 2000-2008, 2012- )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푸틴이 포로셴코(Petro Poroshenko, 1965- , 재임 2014- )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내가 원하기만 하면 이틀 내에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Kiev)뿐만 아니라, 발틱 3국인 라트비아의 리가(Riga),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Vilnius), 에스토니아의 탈린(Tallinn) 그리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Warszawa)는 물론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Bucureşti)까지 러시아군을 진주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전했다. 더불어, 푸틴이 포로셴코에게 EU와 미국의 경제 제제 및 외교 압박은 러시아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 계획 자체를 무산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EU와 미국을 너무 믿지 말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 보도에 따르자면, 포로셴코 대통령이 조제 마누엘 바호주(José Manuel Durão Barroso, 1956- , 재임 2004- ) EU 집행위원장과 키예프에서 회동했을 때, 이러한 푸틴의 협박과 위협 내용을 전달했으며, 실제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는 물론 폴란드와 루마니아, 발트 3국 등 6개 나라를 침공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보도에 대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자국의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NATO 회원국인 폴란드 등 주변국들을 끌어들이려 한다고 비난하며 이러한 언급 자체를 부인하였다. 하지만 러시아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과거 푸틴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EU의 압력이 거세지자 바호주 EU 집행위원장과의 만남에서 “러시아가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지 키예프를 2주 안에 장악할 수 있다”고 협박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국제 사회 또한 포로셴코 대통령의 주장에 신빙성을 가지고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오늘날 푸틴이 언급한 국가들 중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나머지 5개국은 NATO 회원국이자, EU 회원국이다. 따라서 다른 국제 분쟁 전문가들의 의견처럼 만약 푸틴이 포로셴코에게 이러한 언급을 했다면, 지목된 국가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겠다는 의도보다는 러시아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서방을 향한 일련의 경고성 멘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런 발언들이 밖으로 흘러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근거를 들어 생존을 위한 우크라이나의 의도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 의심할 수 있다.
 
첫째는 크림 반도가 러시아로 넘어간 데 이어, 본토마저 동서로 분열될 상황에 처해 있는 우크라이나로선 본 발언 전달을 통해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흔들리는 EU와의 공조 강화가 더욱 확대되기를 희망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과거 역사적 경험에 따라, 우크라이나 영토를 대상으로 EU와 미국 등이 러시아와 일련의 비밀 합의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스처(Gesture) 외교라 판단할 수 있다. 세 번째 의도는 우크라이나가 냉전(Cold War) 당시 과거 소련 블록의 군사 공동체인 ‘바르샤바 조약 기구(WTO)’의 대응 조직체였던 NATO의 보호를 기대하고자 한 전략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무엇보다도 자국의 자체 방어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역사적으로도 러시아의 위협에 자주 직면해왔고,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 영역(Interest Sphere) 범주 안에 있는 폴란드와 루마니아 그리고 발틱 3국 국가들과의 신속한 군사 공조가 절실했다는 점이다.
  
현재, 네 가지 요소에 기초한 우크라이나의 생존 전략과 의도는 그 시험대에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우크라이나는 첫 번째 요소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인한 유럽 분열과 미온적 대응 가능성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우려는 현재 EU 회원국, 특히 동유럽 국가들이 처해 있는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유럽 국가 중 독일은 수요량을 기준으로 전체 천연가스의 37%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동유럽 국가들로 올 경우 더욱 심각한 형태로 나타난다. 우선, 우크라이나는 국내 소요의 전체 천연가스 중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60%에 달하고 있으며, 폴란드 59%, 라트비아 등 발틱 3국은 거의 100% 가까이, 그 외 다른 동유럽 국가들 중 체코는 57%, 슬로바키아 84%, 헝가리는 80%, 불가리아 89% 등 만약 러시아가 당장이라도 가스 공급을 중단할 경우 독일은 물론, 거의 모든 동유럽 국가들은 심각한 에너지 부족 위기에 직면할 처지에 놓여 있다. 실제, EU가 지난 9월 8일, 우크라이나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러시아 최대 국영 석유기업인 로즈네프트(Rosneft)를 포함해 주요 에너지 기업 3곳을 향해 유럽 시장에서의 자본 조달 금지와 금융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곧 바로 서방 항공기의 영공 통과 금지 가능성 및 지난 6월 이후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공급이 중단된 우크라이나를 향한 유럽 국가들의 러시아산 가스 재수출에 대해 해당 국가 제재 등 강경 입장 발표로 맞불을 놓았다. 실제, 슬로바키아는 러시아에서 수입한 천연가스 중 하루 2,100만㎥, 헝가리와 폴란드는 각각 1,600만㎥와 400만㎥를 우크라이나로 재수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이미 재수출 국에 대한 제재 발표 전후부터 폴란드로 향하는 가스 공급의 20%-24%, 슬로바키아는 10%, 루마니아는 5%의 줄어든 양만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점은 EU 국가들 간의 공조와 연합을 깨트리기 위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와 함께, 자국의 이해 영역 지역인 우크라이나를 EU에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러시아의 분명한 의지 표출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고민이 크다 할 것이다.   

두 번째 의도의 배경은, 지금 푸틴의 행태가 과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주범인 히틀러의 유럽 정복 작업 형태와 유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행태가 제 2차 대전 이전 히틀러의 주변국 침공을 그대로 빼 닮았다는 비난이 높아지는 중이다. 세계 대전 직전인 1938년, 히틀러는 게르만 소수 민족이 거주하던 체코슬로바키아 서부 수데텐란트(Sudetenland) 병합을 요구했고, 당시 세계 대전을 우려한 체임벌린(Arthur Neville Chamberlain, 1869-1940, 재임 1937-1940) 영국 총리 등이 ‘뮌헨협정(Munchen agreement)’을 통해 독일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히틀러의 오판과 제 2차 대전 발발을 불러온 것처럼, 국제 사회는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의 소극적 개입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제적 여론 반발에 따라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1961- , 재임 2009- ) 미 대통령이 EU와 함께 러시아 경제 제재 조치에는 공조하였으나,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국과 러시아 간의 대리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등 직접적인 개입은 꺼리고 있는 중이다. 이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고민이 이러한 전략으로 표출되었다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세 번째 의도는 러시아의 동유럽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NATO 회원국 간의 공조 강화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분명한 효과를 보고 있다. 푸틴의 협박이 알려진 직후, NATO 28개 회원국 국방장관들은 빌니우스에서 회담을 갖고, 동유럽에 4-5곳의 NATO 지역본부를 배치하는 데 합의하였다. 유사시 NATO군 지휘통제 센터 역할을 하게 될 지역 본부 후보지로는 푸틴이 지목한 우크라이나, 폴란드, 루마니아와 함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틱 3국 등이 대상지로 논의되고 있는 중이다. NATO의 이 같은 조치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러시아의 동유럽으로의 이해 영역 확장 의도가 분명해 진 시점에서, 이를 불안해하는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하겠다.

우크라이나의 네 번째 전략적 의도 또한 신속한 결실을 이루어, 푸틴에 의해 지목된 주변국들의 우크라이나 방어 신념 확보는 분명한 효과를 보고 있는 중이다. 푸틴의 발언이 우크라이나에 의해 알려진 이후, 지목된 국가들의 경우 심각한 반응과 함께 발 빠른 대응을 서두르고 있는 중이다. 이 보도가 나온 바로 다음 날인 19일,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리투아니아 국방 장관들은 바르샤바에 모여 러시아 침략을 겨냥한 수천명 규모의 공동 방위부대 창설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이 자리에서 코모로프스키(Bronisław Komorowski, 1952-, 재임 2010- ) 폴란드 대통령은 “3국간의 공동부대 임무는 평화유지이며, 무엇보다도 위험성이 높아진 동유럽 지역 방어능력을 높이기 위한 확고한 의지 표현”이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창설 목적이 러시아의 동유럽으로의 영토 확대와 침략 위협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내년에 첫 합동훈련을 실시할 계획인 공동부대의 본부는 폴란드 동부 루블린(Lublin)에 두며, 평소에는 각 나라에 병력을 주둔시켰다가 유사시에 동원시키기로 합의함으로써 우크라이나는 이번 푸틴의 발언 보도로 무엇보다도 값진 성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국제 사회는 크림반도 장악과 우크라이나 사태 촉발로 인해 동유럽 진출을 향한 판도라의 상자를 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가 마련한 생존 전략들을 향후 어떻게 무력화시키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나갈 것인지, 그리고 이에 대한 EU와 미국의 대응은 또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초미의 관심을 지니며 지켜보는 중이다. 어쩌면 국제 역학구도의 변화 시기, 복잡한 국제 질서 속에서 단행된 강대국들 간의 과거 역사적 경험들에서, 향후 미래를 점쳐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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