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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인도 여성의 아이콘 이롬 샤르밀라와 인도 북동부 문제

인도 정호영 자다푸르 대학 사회학 박사 2014/09/10

2014년 8월 19일, 인도 북동지역의 마니푸르 법정은 인권 운동가 샤르밀라를 풀어줄 것을 명했다. 그녀가 석방되자 NDTV를 비롯한 인도 주류 언론들은 매일매일 그녀의 일상을 보도하였으나 우리는 전혀 그녀에 대해 모르고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그녀는 인도 여성의 아이콘이다.

MSN은 2014년 국제여성의 날에 가장 많은 성취를 이룬 인도 여성이 누군가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다. 톱을 차지한 사람은 누구일까? 30위 순위에 들어간 여성들을 보면 정치인으로는 소니아 간디, 자야랄리따, 마마따 바너지, 마야와띠, 기업인으로는 바이오콘(Biocon Limited)을 이끌고 있는 끼란 마줌다르 쇼(Kiran Mazumdar Shaw), ICIC 은행의 CEO인 찬다 꼬차르(Chanda Kochhar), HSBC 인도지부장인 나이나 랄 키드와이(Naina Lal Kidwai), 작가로는 아룬다띠 로이, 끼란 데사이(Kiran Desai)가 있었다. 그러나 1위는 마니푸르의 인권운동가인 이롬 샤르밀라(Irom Sharmila)였다. 정치인도 기업가도 문인도 아닌 그녀가 인도 여성의 아이콘이다. 쟈무 카시미르의 분리 독립 문제와 그로 인한 갈등은 국내에 많은 소개가 있었으나, 북동지역의 정치적 갈등은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은 종족 상으로는 동아시아인들과 같고, 종교 또한 힌두교가 주류가 아니라 불교, 기독교, 샤머니즘 등 다양한 종교를 믿고 있으며, 언어는 힌디도 벵갈어도 아닌 그들 고유의 언어를 대부분 쓰고 있다. 인도 독립 이전까지 이들은 스스로를 힌두 문화권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인도가 독립하면서 인도에 통합되면서 이들은 인도 내에서 계속 갈등 지역이 되었다. 지난달 있었던 이롬 샤르밀라의 석방과 재체포를 짚어보면서 쟈무 카시미르 갈등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은 인도 북동지역 문제를 알아보기로 하자.

그녀는 인권 운동가가 되기 전에는 북동지역의 평범한 기자였다. 이롬 샤르밀라는 2000년 11월 4일에 단식을 시작하였고, 14년째 이어지고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긴 단식을 하고 있다. 2000년 11월 인도 마니푸르의 주도인 임팔의 말롬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 10명이 아삼 라이플(Assam Rifles)이라는 준군사조직에 의해서 테러 혐의로 즉석에서 살해되었다. 이는 인도 북동지역과 카시미르 주에서는 경고 없이 현장에서 바로 테러 혐의자를 살해할 수 있는 군특별권한법(AFPSA, Armed Forces (Special Powers) Act)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희생자 중에는 60이 넘은 노인도 있었고, 18세 소년 시남 짠드라마니(Sinam Chandramani)도 있었는데 이 소년은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은 소년이었다. 수사 없이 즉석에서 살해가 자행된 것이었다. 이 사건 직후 샤르밀라는 군특별권한법 철폐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인도 정부는 그녀의 단식 투쟁을 막고자 감금한 후, 음식을 거부하는 그녀에게 코에 호스를 강제로 주입하여 샤르밀라의 생명을 강제로 연장시키기 시작했다. 코에 호스가 주입된 이후 14년간 그녀는 물조차 거부하면서 인권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 당시 28세였던 그녀를 인도정부가 체포한 명분은 인도형법 309조의 “자살을 시도하는 이는 1년간 감금된다.”였다. 해마다 감금된 지 1년이 되면 그녀는 풀려나고 또다시 체포되는 것을 14년째 되풀이하고 있다. (인도북동지역이 인도에서 받는 차별에 대해서는 2014년 3월 필자의 컬럼 “인도에서 인종주의 반대법은 입법화가 될 것인가” 참조할 것)

2006년 석방 직후 8월 2일 간디가 묻혀 있는 라자 가뜨에 간 샤르밀라는”나의 우상인 마하트마 간디에게 꽃을 봉헌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그녀의 대의를 지지하는 이들과 함께 저녁에 시위를 했고, 8월 6일 델리 경찰에 의해 자살시도로 재체포되었다. 이란에서의 여성과 아동 권리 증진을 위한 활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린 에바디(Shrin Ebadi)는 이때 그녀와 만났고, UN 인권위원회에 샤르밀라의 의지를 전달하기로 약속했다.

2011년 11월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안나 하자레가 반부패법 제정을 위해서 12일간 단식을 했을 때에도 그는 거의 초 단위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샤르밀라는 어떠했던가? 인도의 변방인 마니푸르에서 인류 역사상 최장 단식인 11년째의 단식중이었던 이롬 샤르밀라는 언론으로부터 여전히 철저하게 외면을 받고 있었다. 인도의 여론은 12일을 단식하던 안나 하자레를 제2의 간디라고 부르며 환호했지만, 이에 반해 어느 누구도 샤르밀라를 제2의 간디나 여자 간디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롬 샤르밀라는 안나 하자레에게 자신의 대의를 지지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안나 하자레가 11년째 코에 호스가 주입된 채 감금되어 있는 그녀에게 한 엉뚱한 대답은 "너도 델리로 와서 내게 합류해라"였을 뿐이었다. 샤르밀라는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하자레가 군특별권한법 철폐에 힘을 실어줄 것을 바라며 그를 마니푸르로 초대했지만, 하자레는 대변인 2명을 보내 그녀를 만나게 했을 뿐이다. 반부패 운동의 지지자들은 "지금 투쟁을 한 곳에 모아야 된다"라는 명분하에서 그녀를 무시하였고, 지금은 아예 거론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2011년 8월 뜨리나물 꽁그레스는 자신들이 집권해 있는 웨스트 벵갈의 주수상인 마마따 바너지에게 군특별권한법 철폐를 요청해서 샤르밀라를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정치인들의 헛된 약속이었을 뿐이었다. 2014년 선거 시기가 되자 마니푸르의 주수상인 오끄람 이보비 싱은 샤르밀라를 찾아가서 자신이 속한 국민회의를 위해서 샤르밀라가 선거에 나서면 군특별권한법을 철폐하기 위해서 노력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했으나 샤르밀라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암 아드미 정당에서도 선거출마를 권했다. 샤르밀라는 암 아드미 정당에 대해서는 지지를 표시하기는 했지만, “나는 암 아드미 정당을 지지하지만, 제안을 거부하겠다. 나는 저항하는 사람일 뿐이지 정치가는 아니다”라고 정중히 거절을 했다.

2013년 이롬 샤르밀라의 무조건적인 석방을 촉구하는 국제앰네스티 인도지부의 활동에 18,000명이 넘는 인도인들이 지지를 보냈다. 인도 국가인권위원회도 샤르밀라가 자신의 신념을 평화적으로 표현한 이유로 갇힌 ‘양심수’라 인정하였다.

2014년 8월 19일 마니푸르 법정은 자살 시도로 감금된 샤르밀라를 풀어줄 것을 명했다. 자살시도를 했다는 혐의가 부족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니푸르 법정은 샤르밀라의 단식은 ‘합법적 수단을 통한 정치적 요구’라고 밝혔다. 샤르밀라의 단식은 샤르밀라 스스로 밝힌 것처럼 간디와 마찬가지로 자살을 위한 단식이 아니라 군특별권한법 폐지를 위한 비폭력저항이었다. 그러나 강제로 그녀의 코에 붙인 호스를 떼고난 후 석방된 지 이틀만인 8월 22일에 그녀는 다시 체포되었다. 석방 후에도 그녀는 계속 단식을 하면서 어떠한 의료검사도 거부하였기에, 다시 형법 309조에 의거, 체포된 것이다. 그녀는 난폭한 체포로 손이 심하게 다쳤고, 손톱은 부러졌고 건강은 더 악화되었다. 이에 마니푸르의 시민운동단체인 “총격에 살아남은 여성들 네트워크”(Manipur Women Gun Survivors Network)”의 설립자인 비날락시미 네쁘람(Binalakshmi Nepram)은 “간디를 따르고 있는 평화로운 저항자를 체포하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의 오점이다”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인도 북동 지역 문제를 푸는 키워드는 이롬 샤르밀라이다. 1958년 제정된 군특별권한법이 폐지되지 않고서는 북동지역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28살이 되기 전에는 온갖 장소를 활발하게 취재 다니던 기자였던 샤르밀라는 이제 42세다. 14년째 코에 호스를 물린 채 갇혀서 단식투쟁을 계속 하고 있다. 2007년 밝혀진 그녀의 몸무게는 겨우 37킬로그램 이었다. 그때보다 지금 건강은 더 나빠졌을 것이다. 샤르밀라는 군특별권한법 철폐가 이루어질 때까지 단식을 하겠다고 했다. 철의 여인, 의인으로 불리는 샤르밀라는 아름다운 시를 적는 시인이기도 하다. 군특별권한법 폐지가 되면 시인 샤르밀라는 군특별권한법 폐지의 기쁨을 나누기 위한 시를 적을 것이다.

인도 북동 지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국인들도 특별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제 조금씩 긴장이 풀리면서 외국인들에게도 관광지로 개방이 되고, 산업 유치도 시작했다. 맘모한 싱이 Look East 정책을 제시했을 때 인도 북동지역에 대한 주목이 시작되었다. 한 예를 들면 인도가 인도-미얀마-태국을 잇는 고속도로를 연결하겠다고 했을 때 개발해야 될 지역이 바로 북동지역이다. 한국에서도 북벵골만지역을 새로이 부상하는 교역권으로 보고 연구하는 움직임도 있다. 인도는 동쪽으로 뻗어 남아시아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면서 남아시아의 맹주가 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인도는 어떻게 Look East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선행해야 될 것은 무엇인가?

인도 북동 지역의 개발은 인도 북동 지역 주민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샤르밀라가 요구하는 군특별권한법 폐지는 인도 북동 지역의 긴장을 풀 수 있는 해법이다. 샤르밀라가 국제 여성의 날에 인도 여성의 아이콘으로 선정된 것은 그녀의 주장이 인도 북동부 지역을 벗어나서 인도 전역에서 그만큼 공감을 얻고 있다는 증거이다. 샤르밀라가 처음 단식을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인도 북동지역에서의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린 것은 사실이다. 모디 수상은 선거 캠페인 기간 중 부족민들의 고유의상을 하고 유세를 했었다. 그러나 인도의 지난달 샤르밀라에 관한 언론보도에서 보듯이 아직도 갈등이 증폭될 불씨는 북동지역에 여전히 남아있다. 필자가 인도 북동지역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를 인도여성의 아이콘이 된 인권 운동가 샤르밀라를 통해서 알아본 것은 경제학적 접근과 사회적 접근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투자 가능성을 타진할 때 우리가 자주 간과하는 것은 사회 그 자체와 그 사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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