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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쁘라윳 정부 한 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럼에도 조용한

태국 박경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 2014/09/29

쁘라윳 총리의 말말말.

 

군부쿠데타의 주체였던 쁘라윳 짠오차 장군이 총리직에 오른 지 한 달이 됐다. 장기화된 시위와 곤두박질치던 경제 지표, 그리고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국가 혼란 상황에, (군부 개입을 계속 부인하던 과거와는 달리) 마치 준비된 해결사처럼 등장하여 며칠 만에 상황을 ‘정리’해 버린 5월 22일 쿠데타의 주역. 당시 군부의 개입을 은근히 바라고 있기까지 했던 적지 않은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임시총리직을 수행한 지 세 달이 지난 후, 쁘라윳 장군은 못이기는 척 총리직을 수락했다.

 

강단 있는 성격에 호기로운 이미지의 쁘라윳 장군은 정권 찬탈의 과정이 비민주적이었음에도 적잖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막말’로 몸살을 치르며 자신의 지지자들마저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평소 직설적이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잘 알려져 있는 쁘라윳 총리이나, ‘막말’ 논란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비키니’ 발언 때문이다. 지난 9월 16일, 태국의 유명 관광지인 쑤랏타니주(州)의 꺼따오(‘거북이 섬’)에서 20대 영국인 관광객 남녀가 잔인하게 피살당한 사건이 발생하여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서 언급한 쁘라윳 총리의 말이 문제였다. (최대한 뉘앙스를 살려 쁘라윳 총리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자면)"...(외국인 관광객들은) 우리나라(태국)가 아름답고 안전하니 뭐든지 다 해도 되고, 아무데서나 비키니를 입고 다녀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내가 묻고 싶은 건) 태국에서 비키니 입고 과연 무사하겠냐 이거지, 이쁘지나 않다면 모를까...“ 이 정도면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뿐만 아니라, 사석에서 술잔 기울이면서 해도 야유를 받기 충분한 수준으로 볼 수 있을 지경이다. 쁘라윳 총리는 이 발언에 대해서 바로 대국민 사과를 하고, 피해자와 영국에도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등 황급히 사태를 수습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천연 고무 가격 폭락으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서 농민들이 제시하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그렇게 비싼 가격에 팔려면, 화성에나 가서 팔아야 겠다”고 말해 농민들에게 좌절감과 서운함을 선사했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친근감의 적극적인 표현인지 몰라도) 주로 반말로 대화를 하는 쪽인데, 얼마 전 인터뷰 중 다음에 다시 총리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에 모든 것이 하늘에 달려 있는 거라고, 선거를 통해서 총리에 선출되고 싶은 마음은 없는 지를 묻는 기자에게는 싫다고 답하더니, “그냥 쿠데타로만 총리가 되고 싶으신 거군요” 하는 장난기 어린 기자의 질문에 “(단상을 잡으며) 확 던져 버릴까보다... 됐어 이제 인터뷰 그만” 하고는 돌아 나간 것이다. 다행히(?) 웃음으로 마무리가 되었기 때문에 농담조로 받아친 쁘라윳 총리의 대답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친근감을 표시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당사자는 간담이 서늘한 경험이었을지 모르겠다.

 

쁘라윳 총리는 자신이 반평생 이상을 군에서 살아온, 말 그대로 뼛속까지 군인인 것을 이해해 달라며, 평소에도 직설적이고 무뚝뚝한 말투라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쁘라윳 총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이미지에 훼손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누구보다 언행에 신중해야 하는 국가 지도자로서 부적절한 모습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막말’을 일삼던 탁씬 친나왓 전 총리의 예전 모습이 겹쳐진다는 아이러니컬한 지적도 나와 쓴웃음을 짓게 한다.

 

양철버킷을 뒤집어 쓴 명문대 교수

 

이러한 논란과는 별개로 인권과 언론 탄압에 대한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군부쿠데타 이후 소환되거나 구금된 인사가 600여명에 달하고, 이중 수십 명은 고문을 당한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태국인권변호사협회의 보고서가 나오고, 국제인권단체와 NGO등에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일설에서는 “길에서 샌드위치만 먹어도 잡아 간다”는 괴담이 돌기도 했다. 탐마쌋대학교 학생들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정치적 토론을 벌이는 것을 계엄법 위반으로 연행해 가면서 시작된 소문으로, 이후 방콕 도심 육교위에서 소설 <1984>를 읽으며 샌드위치를 먹던 대학교복차림의 남학생이 사복 경찰에 의해 처참하게 끌려가는 영상은 정부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했다. 계엄령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 집회나 모임은 원칙적으로 금지다.

 

이렇게 불만이 있어도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 9월 10일 명문 대학 중 하나인 국립 마히돈대학교 음대학장으로 있는 쑥끄리 짜른쑥 교수가 양철 버킷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것이다. 이유인즉슨, 마히돈대학교 총장인 랏차따 찻차따나윈 교수가 현 내각의 보건부 장관직을 수락한 것에 대해, “교육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정치든 교육이든 하나를 택하라”라고 1인 시위를 한 것이다. 쑥끄리 교수가 머리에 쓴 버킷(태국어로는 “삡”)은, 사각형 양철통으로 업소용 대형 식용유 통이나 페인트통을 연상하면 되는데, 앞면은 투명하게 되어 있어 앞이 보이도록 머리에 완전히 뒤집어쓰는 형태다. 쑥끄리 교수는 수치심의 표현으로 양철 버킷을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쑥끄리 교수의 이러한 1인 시위가 진정한 교육자로서의 순수한 양심선언만은 아니라는 의혹도 있다. 쑥끄리 교수는, 지난 2006년 쿠데타의 배후세력으로 알려져 있는 왕실 추밀원 원장 쁘렘 띤나쑬라논의 측근이다. 최근 쁘라윳 장군이 쿠데타 이후 총리직에 안착하면서 권세가 너무 막강해지자, 그 권력 불균형에 불만을 품은 쁘렘 장군 측에서 움직임을 시작했다는 추측이다. 물론 쑥끄리 교수는 교육자로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누구의 말이 사실이든, 쑥끄리 교수의 행보는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우선 잊고 있던 쁘렘 장군의 존재감을 재확인시킨 것이 첫 번째고, 쁘라윳 정부의 독재적 인사와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존재의 부재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처음으로 일었다는 점이 두 번째다.

 

지난 9월 18일 “민주주의 교실: 제2장 외국의 독재 타도 사례” 라는 주제로 탐마쌋대학교에서 열린 강연회가 경찰에 의해 중단되고, 발표자로 초청되었던 저명 학자들과 행사 관계자, 그리고 일부 학생들이 인근 경찰서로 불려가 조사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전국 여러 교육기관의 학자 60명은 학문적 자유를 짓밟는 군경의 행태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탐마쌋대학교 법과대학 위롯 아리 교수는 쑥끄리 교수와 같은 양철 버킷을 쓰고, 학자로서 자유가 보장되지 못하는 실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나섰으며, 치앙마이대학교 법대교수는 이 “삡”의 상징성에 대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쁘라윳 총리는 탁씬 측 인사들의 계속되어오던 반정부시위 패턴이라는 식으로 치부했지만, 이것이 앞으로 또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태국인의 열두 가지 가치” 암송, 그 감출 수 없는 억지스러움

 

얼마 전, 교육부는 전국 학교에 “태국인이 신봉하는 열두 가지 가치”의 대대적인 홍보와 암송문 게시 작업을 마무리했다. 쁘라윳 장군이 지시한 지침에 따른 (신속한) 조치이다. 태국인의 열두 가지 가치는 아래와 같은 것이다.

 

하나, 국가와 종교와 왕실을 사랑한다.
둘, 정직하고 희생하고 인내한다.
셋, 부모에게 전심으로 효도한다.
넷, 높은 뜻을 두고 학문에 정진한다.
다섯, 아름다운 민족문화를 계승한다.
여섯, 종교적 윤리와 도덕을 숭상한다.
일곱, 민족의 자주정신을 배운다.
여덟, 법과 규율을 준수한다.
아홉, 국왕폐하의 말씀을 실천한다.
열, 안분지족의 생활 방식을 이어간다.
열하나, 몸과 마음을 늘 강건히 한다.
열둘, 무엇에서든 공익을 먼저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가치관은 태국 국민들이 오랜 시간 중요한 가치로 여겨 숭상하고 또 실천해 온 것으로, 국민 70% 가 이러한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물론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의 실천에 있어서 아이들을 세워놓고 그저 달달 외우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를 외우던 우리네 그 시절을 상기시킨다.

 

사회 구성원 사이에 공유되는 가치를 이해하도록 교육하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전 세대들의 발걸음을 따라서 자연히 실천하는 수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암송을 강요하는 것은 강압적인 주입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뿐 아니라 과연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더 나은 길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현 정부 하에서는 더더욱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은 (역시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개정 역사 교과서에서 탁씬 친나왓 전 총리의 이름이 삭제되는 것만큼이나 억지스러워 보인다. 훗날, 후대들이 그 사람이 이름이 뭐였더라...? 하며 외려 탁씬 전 총리 이름을 검색어 순위 상위권으로 만들어주는 상황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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