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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에티오피아의 빈곤 원인에 대한 단상(斷想)

에티오피아 설병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2014/11/20

에티오피아의 커피 맛은 가히 일품이다. 에티오피아에는 미인도 많다. 에티오피아인은 여타 아프리카 사람들과 달리 자신들이 식민지 지배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에티오피아에는 금, 탄탈룸, 탄산칼륨 등의 광물 자원도 많이 매장되어 있다. 이러한 여러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의 일반 국민이 향유하는 삶의 질은 아주 낮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경제적으로 빈곤하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14년 자료에 의하면, 에티오피아의 일인당 국내 총생산(GDP)은 541달러로, 183개 조사 대상국 중 174위를 차지하고 있다. ‘옥스퍼드 빈곤 및 인간개발 이니셔티브’(Oxford Poverty and Human Development Initiative, OPHDI)가 개발한 ‘다면적 빈곤지수’(Multidimensional Poverty Index)에서 에티오피아는 4년 연속 2위를 차지했다. 수년간 상당수의 국제기구는 빈곤율, 인권 및 여타 척도에서 에티오피아를 최하위에서 다섯 번째 국가로 평가했다.


필자는 2013년 7월과 8월에 에티오피아의 오로미아 지역 주(Oromia Regional State) 내 도도타 자치구(Dodotoa District)의 데라 타운(Dera Town) 일대에서, 그리고 2014년 1월과 2월에는 오로미아 지역 주 내 둑다 자치구(Dugda District)의 메키 타운(Meki Town) 일대에서 현지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현지조사 기간 내내 필자는 동네 꼬마들로부터 ‘차이나! 마니 마니!’(China! Money money!)라는 말을 질리도록 들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필자는 ‘에티오피아의 빈곤 원인’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갖게 되었다.

 

에티오피아의 빈곤 원인은 크게 생태․환경적 요인, 정치적 요인, 경제적 요인, 사회․문화적 요인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들 네 가지 요인 중 첫 번째 요인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는 서로 맞물려 작동하고 있다. 필자는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역 유지나 엘리트와의 대화를 통해, 에티오피아가 빈곤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사항 즉, 정치 혁신, 교육, 자조 정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곤 했다. 이하에서 필자는 현지조사 경험을 토대로, 에티오피아의 빈곤 원인을 위의 세 가지 사항과 관련지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지난 수십 년 동안 에티오피아 사회에는 제대로 된 통치 철학과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없었다. 20여 년간 에티오피아를 통치한 고(故) 멜레스 제나위(Meles Zenawi) 총리는 리더십이 결여된 지도자였다. 그의 독재 정치로 인해 에티오피아는 민주 국가로 발돋움할 수가 없었다. 장기간 동안 집권 여당으로 군림해 온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thiopian People’s Revolution Democratic Front, EPRDF)도 멜레스의 통치 방식을 적극 지지했다. 그래서 이 정당도 에티오피아 사회의 민주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만난 지역민 중 대다수는 멜레스 전 총리, 하일레마리암 데살렌(Hailemariam Desalegn) 현 총리 및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거나 평가 자체를 꺼렸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최고 통치자와 그의 정부가 얼마나 국민의 정치적 삶을 옭아매고, 정치적 선전을 일삼아 왔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반증으로 보인다.

 

멜레스는 국민의 고단한 삶도 개선하지 못했다. 그는 날조된 각종 지표를 내세워 에티오피아의 경제 성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경제 발전에 대해 망상적 계획만 가지고 있었다. 멜레스와 그의 패거리들은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 틀 내에서 국부(國富)를 나누어 먹었다. 필자는 에티오피아 현지에 체류하는 동안, 나이든 지역민들로부터 “군사 정권 때나 민주 정권 때나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에티오피아 사회의 리더십 부재는 부정부패로 이어져 왔다. 멜레스와 그의 측근들은 한패가 되어 각종 경제 활동에서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에티오피아 사회에 만연해 있다. 심지어 지역 정부 수준에서도 크고 작은 부정부패가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이 지원되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에티오피아는 원조 의존 상태에 빠지고 절대다수의 국민은 여전히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다양한 비정부 기구(NGO)가 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아프리카의 빈국(貧國)들에 지원 체계는 전면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메키 타운에서 현지조사를 마치는 날, 둑다 자치구의 수장(首長)을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티오피아가 빈곤에서 탈피하려면 사회 지도층의 책임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교육을 많이 받고 고위직에 있을수록 국가와 사회에 대해 더 많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사회 지도층은 국가의 호주머니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지역 공동체의 호주머니를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개인의 호주머니를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은 필자가 에티오피아 사회의 리더십 부재 및 정치인과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둘째, 대개의 에티오피아인은 교육에 대한 인식이 낮고 교육 환경도 매우 열악하다. 그래서 에티오피아 사회에선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란 말이 무색하다. 데라 초등학교는 데라 타운이 건설된 지 12년 후인 1964년에 개교를 했다. 메키 초등학교는 메키 타운이 건설된 지 35년 후인 1971년에야 개교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지역에 초등학교조차 없던 시절에 대해, “그 당시 우리는 동굴과 같은 암흑세계에서 살았다.”고 표현했다. 그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대개의 부모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교육의 질도 차츰 향상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그들의 교육열과 교육의 질은 여전히 상당히 낮은 편이다. 특히,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중퇴를 하기 일쑤고, 그들에게 대학 진학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에티오피아의 높은 실업률은 부모들의 교육열을 꺾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 도시 지역의 실업률은 17.5%이다. 그러나 농촌 지역의 실업률은 무려 50%에 달한다. 데라 타운과 메키 타운의 실업률 역시 이와 유사한 수치를 보인다. 그래서 이들 지역의 부모들 사이에서는 “자식을 대학에 보내 봤자 직업을 못 구하는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굳이 무리해서 대학에 보낼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셋째, 에티오피아인은 자조(Self-Help) 정신이 희박하다. 대개의 에티오피아인은 ‘구걸’에 익숙하고, 자신의 힘으로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아주 약하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국가 예산 중 20% 가량을 원조와 차관에 의지하고 있고, 대개의 지역민은 정부가 자신들의 삶을 개선해 주길 기다릴 뿐, 개인이나 공동체 수준에서 자조하려는 의지가 거의 없다. 이러한 ‘구걸 의식’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외부 원조에 대한 의존 습성에서 생겨났다. ‘차이나! 마니 마니!’라는 말이 마치 유행어처럼 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에티오피아인의 자조 정신과 관련된 하나의 실례로는 데라 타운과 메키 타운의 이면 도로 문제를 들 수 있다. 이들 타운의 주도로는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어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이에 비해, 이면 도로는 포장이 안 된 흙길인 데다 상태도 양호하지 못하다. 그래서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길을 걷기가 힘들 정도로 먼지가 일고, 노면이 패이고 비탈진 곳에서는 마차가 전복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며, 비가 와서 웅덩이가 된 곳에는 각종 오물로 인한 악취가 진동한다. 그러나 지역민들은 “우리 타운의 이면 도로 사정이 아주 열악하니 정부는 하루속히 도로를 개선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만 할 뿐, 어느 누구도 “지역민들이 합심해서 이면 도로를 정비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그간 필자는 남아공, 케냐, 가나,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현지조사를 수행했다. 인류학자인 필자는 현지인의 시각에서 그들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자는 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애정을 키우게 되었다. 하지만 필자가 그들의 삶에 직접 개입할 여지는 별로 없다. 필자는 에티오피아 사회가 국가 지도층의 헌신과 민중의 자각을 통해 진일보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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