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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베네수엘라의 주민평의회: 가난한 ‘대중’의 사회 문화적 독립성

베네수엘라 안태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2014/11/20

필자는 지난 8월 베네수엘라에 다녀왔다. 차베스가 2013년 초반에 세상을 떠나고 베네수엘라의 정치 지형의 가장 큰 특징인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친 차베스 진영과 반 차베스 진영의 갈등과 대립이 계속해서 심하다.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두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버스 노조 지도자 출신인 현재의 대통령 마두로가 차베스만큼 개인적 카리스마가 크지 않아 더 어려움이 큰 지도 모른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생필품, 전기, 수도 등 경제생활의 기초적 재화의 부족, 정부에 의한 물가통제의 부작용인 생필품 밀수, 매점매석 및 치안상황의 악화, 외환 보유고의 감소 등 다양한 악재 또는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차베스 혁명’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아옌데가 피노체트에 의해 폭력으로 무너졌다. 아옌데도 당시 기초적 재화 공급의 문제가 심각했지만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런 맥락은 칠레의 일반 대중이 새로운 집단적 주체로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베네수엘라의 맥락은 다르다.

라클라우에 의하면 대중은 저절로 그리고 선험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많은 사회에서 변혁을 지향하는 것은 소수의 지식인과 소수의 시민이다. 저절로 있는 것은 소비 대중으로서의 비정형의 대중이다. 그렇다고 모두 일치된 정치적 성향을 가지는 것으로 선험적으로 가정되는 ‘민중’이 호명되던 시기도 80년대를 고비로 이미 지났다. 베네수엘라 친 차베스 진영의 핵심은 노조나 정당이 아니고 “대중 부문”(Sectores Populares)이다. 이때의 대중은 시민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으로 배제되어온 가난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계급으로 호명되지도 않는다. ‘대중’의 정체성은 먼저 기득권층의 공격이 있을 때 여기에 대해 어느 사회그룹이 저항하고 다른 사회그룹들과 접합하고 연대할 때 형성된다고 라클라우는 주장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베네수엘라에서 1차적으로는 1989년의 “카라카소”(급격한 물가인상에 대한 항의의 대중 소요)에서 그리고 2차적으로는 2002년의 “반 차베스 쿠데타”와 기득권 계급에 의한 “석유파업” 당시에 ‘대중’이 형성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1998년 대통령 당선 이전에 차베스는 이미 헌법의 전면적 개정 복안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헌법에 미디어와 시장의 권력이 아닌, 새로운 집단적 주체로서의 ‘대중’ 권력을 상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헌법 제82조). 따라서 차베스 혁명의 급진적 변혁의 의미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약점인 가난한 대중의 배제를 극복하려는 파격적인 새로운 직접민주주의의 실천을 지향하였다는 데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모범적 사례로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시의 시민 참여 예산제와 베네수엘라의 주민평의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교될 수 없다. 주민평의회는 베네수엘라의 전체 사회에 골고루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로 도시빈민가와 농촌에 있다. 주민평의회는 차베스 정부가 2002년 정치적으로 커다란 위기였을 시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법적으로 제도화가 된 것은 2006년이었다. 이 해에 차베스는 “21
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선언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백지상태에서 이렇게 급진적인 제도가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베네수엘라에서는 1980년대부터 주민평의회와 비슷한 빈민가의 동네 공동체가 작동하고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1980년대는 주류 언론이나 학자들에 의해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린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이 시기는 “사회운동”의 시기였다. 외채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국제 금융기관 등에 의해 강제로(?) 도입된 체제가 신자유주의이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가난한 대중이 자신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해 동네 공동체를 이루었고 기득권층 또는 중상층과 전혀 다른 가치관과 문화를 유지하며 곧바로 신자유주의 정책 집행에 대해 저항했다. 이들 대도시 대중이 사는 빈민가를 바리오(Barrio)로 부른다(브라질의 경우, 파벨라로 부름).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달동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기득권층의 삶의 방식 또는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메렝게, 꿈비아 등의 신나는 춤과 음악을 즐기고 즉흥성이 강함)를 가지고 비공식적(예: 행상 등)인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그들만의 강한 연대성을 보인다. 이들은 대부분 50~60년대의 라틴아메리카 도시화의 시기에 시골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인데 우리의 경우와 달리 공업부문에 취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저항 또는 시위에 중간계급도 참여하고 그들 요구의 아젠다도 다양한 공공성의 이슈로 확산되고 하는 것을 우리는 “사회운동”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 사회운동이 차베스 집권과 차베스 혁명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현재의 정치적 위기에서도 마두로 정부를 지지하는 힘이 된다. 그 에너지의 핵심적 존재가 “주민평의회”이다. 베네수엘라의 사회관계, 또는 권력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80년대와 90년대의 신자유주의 시기에는 단순한 거리 시위 외에는 대중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차베스 집권이후 “주민평의회”를 통해 이들은 대중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기존의 대의 기구 예를 들어, 지방 의회와 지방 정부는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이들 대중이 직접민주주의의 주체가 되고 있다. 이들이 주체로 새롭게 출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제도적 장치들과의 ‘단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의회민주주의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애매한 경계에 있는 것이다. 즉 과거 역사의 맥락과 앞으로의 유토피아적 이상 사이에서 흔들리며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하는 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핵심은 대중권력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여기에 국가가 깊이 개입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모델과는 전혀 다른 모델이다. 이를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 대중은 근대성의 시민적 질서의 범주 밖의 “비공식적”이고 사회적으로 배제된 존재들이다. 80년대와 90년대를 통해 사회적 경제적 배제가 진행된 것에 대한 차베스 집권 이후 이들 대중과 정부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복지국가의 능력이 축소되었었다. 이에 대해 이들 대중은 예를 들어, 세금 같은 것을 내지 않고 불법적으로 토지를 점유하고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살았다. 이들은 일반인들과 분리된 산동네 같은 곳에 산다. 스스로 집을 짓고 그 장소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 일종의 ‘영토’개념을 가지고 있다. 자기들 스스로가 가장 가난한 사람들임을 인식하고 집단적 사회적 주체로 출현한 것이다.

이들은 더 이상 노조 또는 정당에 기대지 않는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 범주 바깥에서 그들 스스로의 방법으로 생존한다. 또한 독특한 하위 주체적 문화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사회의 다른 부문의 논리와 대결하고 저항하며 산다. 흥미로운 것은 가난하지만 ‘축제’적 정신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생존하기 위해 서로 연대하는 방법을 안다. 평등의 이상을 가지고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은 집단적 ‘기억’의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80년대 말까지 이들은 사회정책의 대상이었고 지배적 정당과 연계되는 ‘연고주의’(퍼주기)의 정치적 망 속에 있었는데 90년대부터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90년대부터 자유주의(대의주의) 정치제도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1978년의 선거 기권율이 12.5%이다가 1989년에는 이것이 54.4%로 증가한다. 이렇게 된 맥락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정상적 노동과의 연계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동네’외에는 기댈 데가 없어진 것이다. 1990년 현재, 가난한 이들의 동네 공동체가 약 만 개에서 만이천 개 정도 되고 카라카스에는 약 200개 정도 된다.

주민평의회의 기본적 정치철학은 루소가 언급한 [자기통치]의 정신이다. 특히 80~90년대에 스스로 만든 도시토지위원회(CTU), 건강, 교육, 스포츠 등의 공동체 활동이 현재 베네수엘라 정부의 미션사업과 연계되어있다. 2006년 현재, 물위원회 6,600개, 도시토지위원회 6,740개, 공동체 은행 3,600개, 주민평의회가 27,000개 정도 된다. 그리고 2011년 현재, 주민평의회는 약 43,000개가 된다. 카라카스에는 약 1,500개이며, 술리아 주와 라라 주에 많다.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즉, 차베스 혁명이 소리 없이 진행된 것을 의미한다. 평균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약 67%가 평의회 회의에 참여하는데 주로 공동체의 즉각적 문제 해결을 지향한다. 예를 들어, 81%의 프로젝트는 인프라 건설에 대한 것이다. 주민평의회에 대한 주민들 평가는 아주 우수 70%, 우수 74%이고, 나쁘다 53%, 아주 나쁘다 48%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61%)은 시정부 등의 행정을 공동체에 이관하는 것을 지지한다. 출석률을 보면 자주 참석, 또는 가끔 참석을 합하면 약 67%가 된다. 급진좌파의 시각에서 주민평의회의 도전적 과제는 이 주민평의회가 정치적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이다.  21세기 사회주의를 뒷받침하는 데 아직 거리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설득력이 약하다. 왜냐하면, 이미 반 차베스, 친 차베스 진영 간의 정치적 대립이 격렬한 베네수엘라에서 이들 주민평의회가 친 차베스적 정치노선을 노골화하는 것은 현재의 정부에 유리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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