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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인터스텔라>, 진중권, 보르헤스

중남미 일반 박호진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2014/12/18

제목으로 나열한 이 세 단어는 얼핏 보기에 아무 연관성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열혈 네티즌들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사각형 구조의 서재 속에 갇혀 있을 때의 장면이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La biblioteca de Babel, 1941>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하거나, 블랙홀 속의 사각형 구조의 서재가 보르헤스의 작품 <알레프 El Aleph, 1949>에서 온 우주가 한 점으로 응집하는 투명 구체(球體) “알레프”와 닮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진중권은 올해 발간한 그의 저서 <이미지 인문학>에서 보르헤스를 자신의 디지털 시대의 영상 미학론의 엠블렘(Emblem)으로 사용하였다고 밝힌다.

일반 대중은 잘 알지 못하나 결국 보르헤스가 우리 대중과 지식인들의 사고의 일부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불륜 Adulterio>이란 저서를 낸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도 자신의 전작들에서 보르헤스 소설들과 같은 이름의 두 편의 소설 <알레프 Aleph, 2011>와 <자히르 Zahir, 2005>를 국내에 출간하여 재미를 봤으니 보르헤스의 사고가 알게 모르게 우리 대중의 마음속에 이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몇 년 전에 내놓은 작품 <인셉션 Inception, 2010>이 보르헤스의 작품 <두 갈래로 갈라진 정원 길 El jardin de senderos que se bifurcan, 1941>에 대한 철저한 오마주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보르헤스의 사고 내지 개념(Concept)이 한국인의 의식에 “인셉트(Incept) -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념을 타인의 머릿속에 각인시킨다는 의미에서 -” 된 것은 분명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인터스텔라>에서는 구체적으로 보르헤스의 작품들에 대한 “모방”을 찾기는 어렵다. 따라서 필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인터스텔라>가 <인셉션>의 거울 이미지라고 말했을 때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인셉션>에서 보르헤스적인 모티브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면, <인터스텔라>는 위에서 언급한 주인공이 블랙홀 속의 서재에 들어가 있는 장면 말고는 보르헤스 작품에 대한 “모방”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한 열혈 인터넷 기자가 이 장면을 정밀히 캡쳐하여 그 서재 속에 보르헤스 작품이 꽂혀있다는 것을 밝혀내었지만, <인셉션>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놓고 행한 “모방”에 비하면 이는 새발의 피에 불과할 뿐이다. 한 인터넷 기고가는 보르헤스 작품 <바벨의 도서관>은 도서관 구조가 육각형이니 <인터스텔라>의 사각형 서재 구조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밝히기조차 한다.

중남미학 전공자인 필자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언급하는 <인셉션>과 <인터스텔라>의 거울이미지 관계에 대한 언급에는 당혹감을 금할 수 없다. 두 작품이 어디가 서로 닮았다는 것인가?

이미 발 빠른 인터넷 기자, 영화평론가들이 이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내어놓았다. 예컨대 디지털 조선일보 웹PD 정신영은 두 작품의 미묘한 공통점을 들며 그중 하나로 가족 간의 애정을 들고 있다. 이외에도 우리가 쉽사리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인셉션>은 우리의 머릿속이라는 소우주를 다루고 있다면 <인터스텔라>는 우리 머리 밖의 대 우주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두 작품은 소우주(Microcosm) 대 대우주(Macrocosm)라는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 현대 물리학은 소우주와 대우주가 유비관계(Analogy)에 있다는 입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의미를 확장하면 내 머릿속이 전체 우주이고 우주가 내 머릿속이 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 일종의 “범아일여”의 개념을 현대 물리학적 지식이나 동양철학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거나 또는 그가 언급한 대로 다양한 SF 영화나 문학 작품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필자는 부정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현대물리학과 동양철학을 잘 용해시켜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시(時), 공간(空間) 계를 허물어서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시간이 빨리 흘러가게도 하고 때로는 멈추게도 하는 작가, 그리고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이 초침에 “중력 방정식”을 숨겨 놓은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표범 가죽의 얼룩무늬에 우주 창조의 비밀을 숨겨 놓는 작가, 또는 거울의 이미지로 새로운 우주 또는 현실을 만들어 내는 작가는 그리 흔하지 않다. 따라서 <인셉션>과 <인터스텔라>를 통해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보르헤스의 사고가 “인셉트” 되었다고 단언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진중권의 사고에 있어 보르헤스 사고의 “인셉트”는 이미 <미학 오디세이> 3권이나 기타 인터넷을 통한 연관 검색어의 검색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박학한 미학자가 보르헤스가 본인이 읽은 몇 안 되는 문학 작가 중 한사람 이라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진중권의 미학적 사고의 핵심이 보르헤스의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중권이 2014년에 발간한 <이미지 인문학>은 적어도 그 사고의 기본 틀이 보르헤스적(的)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는 전에 썼던 글들을 엮고 책의 1장 서두와  맺음말에 보르헤스를 언급함으로써 책을 완성 지었다. 그는 맺음말에 보르헤스를 본인 책의 엠블렘으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가 맺음말에서 밝힌 보르헤스 작품에 대한 감회는 보르헤스가 그의 작품에서 엠블렘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이미지 인문학>의 핵심 키워드인 “파타피지컬(Pataphisical)”한 공간은 디지털 가상과 아날로그 현실이 중첩되는 세계를 가리킨다. 즉 환상과 현실이 중첩되는 공간을 가리키는데 진중권은 보르헤스가 이미 70년 전에 “우리가 사는 세계의 특성을 이미 요약”하고 있다고 맺음말에서 밝히고 있다.

물론 진중권의 <이미지 인문학>에서 얘기하는 디지털 미학의 핵심은 영어로 “Uncanny” 즉 “섬뜩한 아름다움”으로 요약된다. 디지털 영상미학의 아름다움은 너무 완벽해서 낯설고 섬뜩하다는 것이다. 그는 빌렘 플루서의 표현을 빌려   “디지털 이미지 속에서 가상은 현실만큼이나 실제적으로 되고, 현실은 가상만큼이나 유령스러워진다. 현실 같은 가상과 유령 같은 현실은 섬뜩한 느낌을 준다. 그것이 디지털이미지와 더불어 살아가는 시대의 세계 감정이라면, 디지털 대중은 곧 그 섬뜩함에서 취향을 갖게 될 것이다. 몇몇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 예후를 본다.”라고 단언한다.

진중권은 <이미지 인문학>에서 보르헤스가 “언캐니(Uncanny)”의 미학을 추구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는 “언캐니”의 미학의 추구자들로서 여러 디지털 영상 예술가들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필자에게 보르헤스가 “언캐니”의 미학을 추구했냐고 묻는다면 차라리 보르헤스의 시 <골렘>을 독자에게 소개해 주겠다. 골렘은 전설의 유태인 랍비가 아득한 옛날에 만들어냈다는 최초의 인조인간이다.

 

인간의 눈이라기보다는 개의 눈인 듯한
아니 개의 눈이라기보다는 무생물의 눈인 듯한
골렘의 눈이 랍비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랍비는 골렘을 한없는 다정함과
공포심으로 바라보았다.


                     
인조인간의 눈을  바라볼 때의 “언캐니”한 감정은 보르헤스의 환상문학의 미적 효과를 꿰뚫는 키워드이다. 환상이 현실보다 더 리얼해 보일 때, 우리가 어찌 “언캐니”한 감정을 느끼지 않겠는가?

진중권에게 보르헤스의 “언캐니” 미학을 왜 언급 하지 않았냐고 따지는 것은 어이없고 무리한 요구이다. 그것은 보르헤스가 그의 말년 소설 <피곤한 사람의 유토피아 Utopia de un hombre que esta cansado, 1975>에서 도서관과 인쇄물이 사라지는 미래시대를 언급했는데 진중권이 문자가 없어지는 이미지 인문학을 논하면서 왜 그 작품을 언급 안 했냐고 따지는 것만큼 중남미학 전공자의 과도한 주문이다.

필자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가인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Gabriel Garcia Marquez)가 올해 사망했기 때문에 국내외로 문학사조로써의 마술적 사실주의는 끝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았다. 왜냐하면, 요즘 젊은 학생들은 마르께스의 <백 년간의 고독> 등 기타 중남미 문학 작품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중권의 <이미지 인문학>과 영화 <인터스텔라>를 통해 문학을 포함하는 세계 예술계에서 보르헤스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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