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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사우스 스트림(South Stream) 폐기 선언과 동유럽

러시아 / 불가리아 / 세르비아 / 튀르키예 / 헝가리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학대학 교수 2014/12/19

2014년 12월 2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터키 방문 자리에서 그 동안 러시아가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 등의 동유럽 국가들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과 함께 추진해 왔던 ‘사우스 스트림(South Stream) 가스관 사업’을 폐기하고 이를 대신해 터키와 새로운 가스관 개설 사업을 모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더불어 이에 대한 대가로 터키에게 가스 공급량 확대 및 가격 혜택을 당근으로 제시하였다. 터키 또한 세계적인 에너지 허브로서의 도약 기대감을 담아 러시아의 이런 제안에 현재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 자리에서 푸틴은 “현재 EU는 그 동안 러시아가 추진해 왔던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 사업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말과 함께 “만약 유럽이 이 사업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이를 계속 추진해 나갈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불안정한 수송로로 간주된 우크라이나를 대신해, 동유럽과 남부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기로 계획된 러시아의 사우스 스트림 사업은 2007년에 계획되어 201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 사업 안에 따르자면, 약 2,400km 길이의 천연가스 공급 파이프라인이 러시아에서 흑해(Black Sea) 해저를 통과하여, 동유럽 국가들인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헝가리 외에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스로 이어지기로 되어 있었다. 러시아는 가스관이 지나가는 주요 국가들 외에도, 발칸반도에 자리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도 가스 공급망 연결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러시아의 적극적인 가스관 확충 사업을 둘러싸고, 그 동안 EU 내 각 국들은 에너지 무기화가 가속화 될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해 왔었다. 따라서 EU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이를 견제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을 구사하였다. 그 중 하나가 ‘나부코(Nabucco)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약 79억 유로 예산이 들어가기로 한 이 사업은 카스피해 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러시아를 거치지 않은 채, 유럽으로 직접 공급하기 위해 서방이 추진해온 프로젝트이다. 이에 따르자면, 수송관은 카스피해 연안에서 출발해 터키와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지나 오스트리아까지 약 3,300㎞에 걸쳐 건설하기로 되어있었다. 만약, 이 사업이 계획대로 실행되고, 가스관이 본격 가동되었다면 유럽 전체 가스 소비량의 약 5%를 충당하며,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는 크게 약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부코 프로젝트는 자금 모집 어려움과 함께, 아제르바이잔의 천연가스를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수송하는 ‘TANAP(Trans Anatolian Natural Gas Pipeline) 사업’에 밀려 지난해인 2013년 중단되고 말았다.

이와 달리, 사우스 스트림 사업은 러시아 국영회사인 가즈프롬(Gazprom) 외에도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내 여러 에너지 회사들이 사업 참여에 관심을 보여 왔고, 2012년 12월 사업개시 기념식 이후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특히, 2014년 6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간에 사우스 스트림 파이프라인 건설 착수가 합의되면서 이 사업의 실현이 보다 구체화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푸틴 대통령의 사우스 스트림 사업 폐기가 선언됨에 따라, 여러 복잡한 변수들이 전개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예측되는 변수 중 가장 큰 것은 현재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내 국가들 간의 갈등과 여론 분열이 보다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 사우스 스트림 사업과 관련하여 유럽 여러 국가들은 자국의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이를 주시해 왔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제가 본격화되자, 유럽 각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게 되었다. 실제, 약 500억 달러 규모의 거대한 이 프로젝트는 얼마 전까지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유럽 각국들 사이에 찬반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해 왔던 게 사실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가 본격화되자, EU 집행위원회는 “경제제재 대상인 러시아 기업에 다른 유럽 기업들이 공사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EU법 위반이다”라는 점을 들어, 그 동안 가스관 사업에 관심을 보여 왔던 유럽 내 기업들에게 압박을 가해왔었다. 더불어, EU 회원국이자 유럽 내 첫 가스관 출발지인 불가리아를 비롯한 가스관 수송로에 자리한 유럽 국가들에도 또한 러시아 가스관 설립 사업에 협력하지 말 것을 공공연하게 요구해왔다. 미국 정책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 영국에선 “만약 사우스 스트림이 완공되면 유럽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한층 심해질 것”이라 언급하면서, EU 차원에서 유럽을 향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러시아와 전략적 이해 충돌 관계인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 또한 영국과 그 뜻을 같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유럽 동남부까지 직행하는 사우스 스트림이 건설될 경우, 대규모 일자리 창출은 물론 가스값 인하,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스경유에 따른 추가적인 소득 등 여러 경제적 과실을 기대하던 동유럽 국가들은 EU의 제동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못하여 왔었다. 실제, 러시아의 사우스 스트림 사업 폐기가 발표된 얼마 뒤인 12월 9일, 가스관 건설 사업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과 오스트리아,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럽 7개국 에너지 장관들이 별도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EU집행위원회가 나서줄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이들 국가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번 러시아의 발표가 현재로서는 비공식적인 성격”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EU가 러시아와 협상하여 현 상황을 명확히 정리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하지만 얼마 전 <러시아 24>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가즈프롬의 밀레르(Alexey Borisovich Miller, 1962- ) 사장은 “사우스 스트림 사업 폐기는 이미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이다”라고 못 박으면서, 중요 이유 중 하나로 불가리아 정부가 가스관 건설 허가를 지연시키며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실제, 올해 6월 미국 상원의원들의 방문을 받은 직후, 불가리아는 에너지 장관 등 여러 반대를 무릅쓰고 우크라이나 사태 책임을 물어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사업 중단을 선언해야 했다. 당시, EU는 사우스 스트림 사업자 선정에 있어, 제재 대상에 오른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불가리아 정부를 비난하여 왔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EU가 미국의 러시아 봉쇄 정책에 종속되었다 비난하면서, EU의 이런 조치들은 에너지 문제의 명백한 정치화를 시도한 것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 불가리아는 사우스 스트림이 통과하는 첫 번째 유럽 국가로,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던 EU 집행위원회는 사우스 스트림의 종착점인 오스트리아나 중간 기착지인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불가리아에 대한 압력과 사업 중단을 강력히 촉구하는 경고성 발언을 연일 쏟아내 왔었다.

지난 3년 간 러시아 가스프롬사는 사우스 스트림 건설작업에 들어간 자금의 절반에 가까운 46억 6천만 달러의 재정을 지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폐기 선언되었다. 사업 폐기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에 대한 러시아의 시각은 푸틴의 연설을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지난 6월, 미국과 EU의 압력에 굴복해 불가리아가 사우스 스트림 공사 중단을 선언했을 때, 푸틴은 빈에서 가진 기자 회견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빌미로, 모든 정치적 수단을 동원해 러시아 가스의 유럽 에너지 시장 진출을 막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반대는 철저히 러시아에 대한 경쟁의식에서 기인하고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더불어, 러시아의 가스 사업을 방해하고 있는 미국의 실질적인 최종 목적이 “셰일가스를 적극적으로 개발 중인 미국이 직접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길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러시아 측의 일방적인 사업 폐기 선언은 그렇지 않아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긴장돼 있는 EU와 러시아간의 관계를 더욱 힘들게 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스 스트림 사업에 대해 러시아는 “유럽이 원했고, 유럽이 제시한 조건에서 우리는 건설 프로젝트를 착수했다”라며 유럽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번 사업 폐기로 러시아의 가즈프롬사의 손해는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 분석에 따르자면 러시아는 터키를 통한 새로운 가스 수송로 개발을 완공할 경우, 손해의 상당 부분을 만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반면, 이번 일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입을 국가들은 바로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일자리 창출 등 여러 경제적 이득 외에도 불가리아는 가스 수송관이 완성되었을 경우 매년 4억 유로, 세르비아는 매년 2억 유로의 경유 비용을 받도록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특히 발칸유럽 국가들은 지난 여러 번의 유럽 내 가스 파동과 그 고통 경험을 통해 우크라이나 가스 수송로의 여러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더불어, 이번 사업 폐기로 인해 동유럽 국가들의 가스 값 인하에 대한 바람도 사라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발칸유럽 국가들의 소망처럼, 유럽 내 일부 전문가들 또한 사업을 되돌릴 수 있는 여지가 아직 남아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활용하고자 하는 터키의 적극적인 구애와 함께,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싼 러시아 대 미국, EU간의 치킨 게임(Chicken Game)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번 폐기 선언이 그리 쉽게 거두어 지지 않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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