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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골리앗과 다윗의 정면승부: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중남미 기타 박호진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2015/01/30

필자가 어린 시절 쿠바란 이름을 어렴풋이 기억했던 이유가 흑백 TV로 맘보나 차차차라는 라틴리듬을 보고 들어서였으니 필자도 이제는 구세대의 반열에 오른 듯하다. 하여튼 어린 시절을 지나 쿠바란 이름을 다시 기억하게 된 것은 대학교 군사교육시간에 교수님이자 예비역 장교였던 분으로부터 체 게바라라는 이름과 게릴라전이라는 용어를 배우면서였으니 이것도 현재 젊은 세대에겐 아득한 옛날 이야기다. 필자는 당시의 운동권 학생들하고는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부끄럽게도 체 게바라의 체가 우리나라 성씨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무지했다. 그때 그 예비역 장교 교수님도 비슷한 농담을 했고 필자도 오늘 대학 강단에서 같은 농담을 하여 필자의 제자들을 웃게 만들고 있다. 유행은 돌고 돌아 필자의 부모님 시대에 유행했던 라틴리듬이 2015년에 다시 유행이다. 젊은 세대는 쿠바가 공산국가라는 사실보다는 낭만적인 카리브 해에 둘러싸인 정열의 라틴댄스를 추는 관광 가 볼 만한 곳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얼마 전에 윤제균 감독이 <국제시장>을 개봉하자 때아닌 진보, 보수 간에 사상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6.25는커녕 베트남 전쟁도 아득한 과거 얘기로 들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 기성세대의 논쟁이 어떻게 비춰 졌을까?

  그리고 한 갑자를 다 못 채운 53년 만에 국교를 끊었던 미국과 쿠바가 국교를 정상화하겠다는 소식이 작년 말과 올해 초의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을 염두에 두고 시장 자본주의의 승리의 예로 쿠바와 미국의 국교 정상화를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판 인터넷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스페인어판 인터넷을 보면 심심치 않게 미국의 승리가 아니라 쿠바의 승리라고 선언하는 기사들이 필자의 눈을 이끈다. 심지어는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는 논지로 글을 쓴 이도 있다. 글쓴이의 이름을 안 봐도 그가 극좌 지식인임을 격앙된 문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좌익의 뿌리는 우리보다 훨씬 깊고 넓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세대보다 반미 감정의 뿌리도 깊고 오래되었다. 서구의 공산주의를 가톨릭과 접목시켜 해방신학이라는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 낼 정도였으니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좌익의 전통이 얼마나 굳건한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좌익 지식인들에게 상징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나라가 쿠바이다. 쿠바는 고작 인구 1천만 명의, 남한 영토 크기의 섬나라이다. 아메리카의 광대함을 생각해 볼 때 쿠바는 하잘것없는 나라이고 특별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는 나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라틴아메리카인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에게 쿠바는 정치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데, 그 이유는 쿠바가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바로 턱밑에 붙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 지난 세기에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커다란 사건들을 고르라면 그중에 쿠바 공산화가 수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실제적인 손실은 베트남 전쟁의 패배가 컸겠지만, 쿠바의 공산화는 자신의 안마당을 빼앗겼다는 면에서 911테러 사건 못지않게 미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건이었다.

반대로 대다수의 라틴아메리카인들에게 쿠바의 공산화는 충격적이면서도 내심 통쾌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의 라틴아메리카인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180도로 반응은 달랐겠지만, 힘센 이웃 미국에게 도움을 받았던 라틴아메리카인이든 피해를 보았던 라틴아메리카인이든, 자신들이 힘센 이웃의 턱에 어퍼컷을 날린 것에 대해서는 내심 많이 놀랐을 것이다. 영국과 스페인의 지배하에 살다가 독립한 미국과 중남미 국가들과의 관계는 기나긴 애증의 역사였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보다 먼저 독립한 미국은 이런저런 이유로 멕시코 영토의 절반을 자기 땅으로 만들었고 중남미 각국이 공산주의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해 중남미 각국의 독재 정부를 지원했다. 요새 말로 치자면 미국이 가까운 이웃나라들에 대해 갑질을 꽤 한 셈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본을 싫어하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일부 라틴아메리카인들이 미국을 싫어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냉전 시대에 쿠바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반미의 선봉에 선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 공산화의 선봉에 섰던 나라이다. 필자의 대학 군사교육 스승님이 쿠바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대는 흘러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은 붕괴되었고, 세계 공산주의의 또 다른 축인 중국도 시장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요새 유행하는 <썸>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공산주의 같기도 하고 자본주의 같기도 한 <마켓 레닌주의>가 시작되었고 공산화된 베트남도 이를 따랐다. 결과적으로 지구 상에 공산 국가는 거의 안 남아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최근에 북한이 권력 3대 세습에 성공하면서 공산주의 같기도 하고 봉건주의 같기도 한 북한을 라틴아메리카 좌익 지식인들이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지는 않다. 형제 권력계승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지만, 그나마 세계에서 정통 공산주의의 국가로 주목을 받는 나라가 쿠바였는데 쿠바가 일부 시장 경제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국가정책을 변경하더니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 것이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나, 소련의 붕괴, 중국의 개방만큼 빅 이슈가 될 수 없다. 쿠바가 약소국일 뿐만 아니라, 국내 보수진영에서 바라보듯, 소련, 중국, 베트남의 시장 경제로의 전환에 잇따르는 당연한 수순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남미 좌익 진영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은 표정 관리가 안 되는 듯하다. 미국을 뺀 범아메리카 동맹을 추진해온 주축 국가들, 즉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는 끊임없이 미국의 쿠바 금수조치와 고립정책을 비판해왔지만, 막상 쿠바와 미국이 손을 잡겠다니 당황한 눈치가 역력하다. 현재 미국과 극단적인 대립국면에 있는 베네수엘라는 물론이고 미국과 외교 단절관계에 있는 볼리비아도 표정관리가 잘 안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마지못해 환영메시지를 공표한 나라들이 비단 라틴아메리카의 반미 정서의 국가들뿐만은 아닐 것이다. 카리브 해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중국, 쿠바에 대한 과거의 영향력을 복원하려 했던 러시아도 표정관리가 안 되는 국가들일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미국이 러시아에 뺨을 한 대 때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국내에도 당황하거나 놀란 지식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쿠바의 성공적인 친환경 농업사례에 대한 글들이 올라와 있고, 필자가 기억하기로, SBS와 기타 지상파 방송국에서 쿠바의 성공적인 일부 의료 사업의 실태와 가난하지만, 행복한 쿠바인의 삶을 다룬 프로그램들이 방영된바 있다. 필자는 SBS가 한 프로그램에서 쿠바가 세계에서 행복지수 7위인 나라로 언급한 것이 기억난다. 이들 지식인들이나 방송국 PD들이 무슨 좌익 사상에 물들어서 관련 글들을 올리거나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이룩하면서 생겨난 농업 부문의 피폐, 환경문제의 대안을 찾다가 쿠바를 살펴본 것뿐일 게다. 쿠바를 관광하고 온 필자의 제자들 반응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낭만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이요, 둘째는 더럽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필자의 대학동기인 친구도 우리 정부의 지원을 받아 쿠바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못 참고 나왔다. 지금은 다른 분이 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필자의 대학에서 초청한 한 쿠바 강연자가 쿠바와 한국의 공통점이 지식 기반 사회이기 때문에 양국이 미래에 크게 발전할 것이라는 취지 아래 강연을 하였다. 그때 필자가 속으로 인터넷도 제대로 안 되는 사회가 지식 기반사회인가 의문을 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여러 가지 통계자료로 확인할 때 쿠바는 소련 붕괴 이후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베네수엘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쿠바의 현 통치자 라울 카스트로도 이를 겸허히 인정하고 있고 앞에서 언급한 외교 정상화가 쿠바의 승리를 의미한다는 좌익 언론인도 쿠바가 경제를 제외한, 정치, 문화부문에서 승리를 해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차마 경제 부문에서까지 승리했다는 말은 못하는 것 같다. 미국과 쿠바의 외교 정상화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미국이 쿠바 고립정책의 잘못을 시인했으니 쿠바의 승리라든지, 쿠바가 시장 경제를 받아들였으니 시장 자본주의의 종국적 승리라고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아마 양국의 진검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쿠바가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결과 공산주의 체제가 완전히 붕괴된다한들 국내 보수 진영에서 특별히 기뻐할 일도 없다. 공산주의의 문제점은 이미, 소련, 동독의 붕괴로 충분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 자본주의의 상대적 우월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의 기쁨을 뒤로 하고, 시장 자본주의 안에 내재하는 문제점을 계속 목도하고 있다.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금융위기, 빈부 격차,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환경파괴가 시장 자본주의의 약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쿠바의 보수 집권층(물론 쿠바에서의 보수층은 공산주의자들이다)들은 이런 자본주의의 약점들을 잘 알고 있다. 경제 위기로 미국과 손을 잡았지만, 쿠바의 국민들이 시장자본주의에 이미 면역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필자가 다니는 대학의 한-중남미녹색융합센터(GCC-KOLAC, 정경원 센터장)는 2015년 1월 14-15일 양일간에 걸쳐 쿠바 외교부 산하 호세 마르티 문화원(La Sociedad Cultural Jose Marti)과 공동으로 ‘International Conference: Looking for Culture and Sustainable Development Cooperation among Korea, Latin America and Cuba’를 주제로 제6회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 참여했던 센터 책임 연구원은 쿠바 공산주의 학자들의 기세가 대단함을 귀띔해 주었다. 강연의 주제들은 다채로웠는데 쿠바 독립 영웅 호세 마르띠가 환경주의자였다는 뉘앙스의 글이 시선을 끈다. 우리 강연자 중의 한 분 역시 인용을 통해서 칼 마르크스가 환경에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언급 한다. 국내에서는 자주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대사들이 국내 각 대학을 다니며 중남미 독립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정신을 강조한다. 라틴아메리카를 통합해서 미국에 맞서는 거대 이웃이 되고 싶었던 시몬 볼리바르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통합의 기치로 사용하고 싶은 것이다. 필자는 미국과 동등한 이웃으로 살고 싶다는 이들의 소박한 꿈에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시몬 볼리바르가 환경주의자라든지, 마르크스가 환경주의자라든지, 호세 마르띠가 환경주의라는 이런 강연들을 접하면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으면 다 이해가 되지만 이들이 환경주의자였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좌우익을 넘어서는 공통적인 이데올로기가 환경과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것이다. 한때 이건희 회장이 어느 경제학에 “동반성장”이라는 용어가 있냐고 따졌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오늘날 중국과 베트남의 공산주의가 ‘공산주의 같지 않은 공산주의’이듯이 오늘날 우리의 시장자본주의도 시장자본주의 같지 않은 면이 많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 경제도 초기에 알쏭달쏭하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오바마의 부자 증세 선언과 일련의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정책은 공화당의 반격이 예상은 되지만 국제적 흐름의 방향을 바르게 짚은 것이다. 현시대의 흐름은 공생과 소통, 차이의 인정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종 차별 논란에서 보이듯 미국은 쿠바의 인권을 말하기에 옹색한 입장이다. 굶주린 쿠바 국민을 생각하기에 앞서 자국의 빈민 문제와 그에 따른 치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리도 쿠바에 가서 우리의 자본주의 모델을 섣불리 지도해 줄 입장이 아니다. 쿠바에 100만원을 줄 테니 한국어를 가르쳐 보라면 88만원 세대의 젊은이들이 줄을 설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제는 50대, 60대 퇴직자들이 그 뒤에 줄을 서게 될 것 같다. 미국이 왜 쿠바에 손을 내밀었느냐에 대해서는 정치학자들마다 말이 많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오바마가 행한 연설의 요지는 ‘차이를 인정하고 금수조치 안하겠다. 잘 살 수 있으면 잘 살아 봐라.’이다. 오바마다운 타자에 대한 인정과 자국체제에 대한 자신감이다. 오바마는 군사적인 대치나, 외교적인 고립 전략이 아닌, 평화적으로 각기 다른 체제의 유효성을 판가름 지을 수 있는 정면 승부를 라울 의장에게 제안한 것이고 라울이 정면 승부를 받아들인 것이다. 좌우익의 수많은 정치, 경제학자들이 쿠바의 금수조치가 풀리면 어떻게 될까 하고 저마다 진단을 내린다. 다윗과 골리앗이 진검 승부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 이 진검 승부는 비단 공산주의 국가로서의 쿠바의 운명을 가를 뿐만 아니라 그 결과는 라틴아메리카의 좌익 성향의 국가는 물론 전 세계에 새로운 교훈과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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