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참수하는 사회

멕시코 박호진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2015/02/20

요즘 세계의 뉴스거리는 미국의 IS(이슬람 국가)에 대한 제한적 공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공격의 가장 큰 빌미가 된 것은 IS의 인질 참수가 큰 시발점이 된 것 같다. 필자는 후기 산업사회를 끝내고 인터넷이 세계를 주도하는 21세기에 아직도 참수라는 사람을 죽이는 방식이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 나노 과학, 게놈 지도, 사물 인터넷 그 무엇도 인질을 참수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다.

지구 상에서 사람을 참수하여 세계 여론을 끄는 집단은 아랍 문화권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문화권에서 멕시코 마약 갱단들이 있다. 이들은 때로는 참수를 할 때 칼을 쓰지 않고 철사 줄을 졸라매어 목을 자른다고 한다. 하여튼 이들 모두는 인류가 자랑해온 진보, 발전에 대한 믿음에 역행하는 몸서리 처지는 일을 하고 있다.

필자가 이란어과 교수에게 문의해 보니 몇몇 아랍권 국가들은 법적으로 참수를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최고 성직자 압둘 아지즈 알 셰이크(Abdul Aziz al-Sheikh)는  IS가 행한 최근의 처형은 이슬람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번의 일련의 처형사건은 IS가 문화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해 벌인 “문명의 충돌”이 아니다. IS 대원들은 인터넷에 능하고 세계정세에 밝다. 상당수는 유럽에서 살다 온 이슬람이다. 따라서 이들이 문화의 차이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인질들을 참수한다기보다는 적이 가장 혐오하는 것을 행함으로써 공포감을 유포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이 분명하다.
 
오바마 정부는 이런 정치적 의도에 맞서 제한적으로 지상군을 파견하여 IS의 수뇌부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적국지도자 제거하기, 일명 “수뇌부 머리 자르기 전략(Decapitation Strategy)”은 아랍의 테러리리즘을 꺾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보수 야당은 제한적 지상군 파견이 아니라 대대적 공격으로 IS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명 테러 제국의 수뇌를 제거하는 것, 머리 자르기는 잠시 테러 조직을 와해시킬 수는 있어도 와해된 조직은 금방 새로운 지도부를 만들어 낸다. 흡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히드라처럼 머리를 자르면 다시 잘린 부분에서 또 다른 머리가 솟아나는 것 같다. 따라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사태처럼 대대적 군사작전과 장기 주둔을 하여도 아랍의 반서구적 정서에 기반을 딛고 있는 이슬람 테러 세력은 새로운 참수 조직을 탄생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참수 조직과의 대결에서 백기를 든 나라로 멕시코가 있다. 2006년도에 깔데론 정부는 선거 부정 논란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멕시코의 고질적 문제인 치안 불안을 확보하겠다면서 마약 조직과의 전쟁을 선언하였다. 정치적 테러 조직이 아닌 범죄조직에 불과한 마약 조직을 박멸하겠다는 깔데론 정부의 공약은 멕시코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고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면 해결되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마약 조직의 저항은 완강했고 미국에서 밀수한 무기로 경찰과 정부 관리를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마약 조직은 정부조직과 경찰은 물론 지방 행정부 및 의회, 지방 기업, 지역민들과도 밀착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깔데론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그전부터 쉬쉬하면서 얘기되던 마약 조직과 정부 조직, 지방 유력가, 지역민들과의 연루가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만 입증하는 일을 하였을 뿐이다. 의사가 암세포를 제거하려고 메스를 들었는데 암세포가 온몸은 물론 골수까지 퍼져 있어 수술을 하면 환자 자체가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른바 멕시코의 “마약문화(Narco Cultura)”는 멕시코 문화의 하위 주체로서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을 살펴보면 각종 언론들이 이들 갱단의 두목내지 단원과 인터뷰한 기사나 르포 취재한 글들이 많이 있고, 멕시코 학계에서는 물론 국내 중남미학계에서도 이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2008년만 하더라도 멕시코에서 약 170여 명이 참수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멕시코 마약 갱단의 주요 거점인 멕시코 북부도시 시날로아(Sinaloa) 지방의 젊은이들에게 마약 갱단의 두목은 영웅시되거나 마약 갱단의 일원이 되는 것을 출세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일부 멕시코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또 일부 멕시코 북부 지역 주민들이 전설적인 시날로아의 갱 두목 헤수스 후아레스 마소(Jesús Juarez Mazo)를 성자 헤수스 말베르데(Jesús Malverde)로 숭배하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멕시코 최초의, 아니 세계 최초의 마약 성자 숭배가 생겨난 것이다. 이들은 제단을 만들고 제단 앞에서 /저는 그대의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오 나의 주님, 말베르데/ 저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그대에게 자비를 청합니다./라고 기도를 한다. 일부 멕시코 학자들은 근대에 멕시코가 마약 관련 작물을 재배하게 된 것을 미국의 원죄로 돌리기도 한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르핀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멕시코 북부지역에서 마약 관련 작물 재배를 용인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이 한때 중앙아메리카 마약 밀매 조직을 지원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렇다고 멕시코에서의 마약 조직의 득세를 미국의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곤란하다. 물론 미국이라는 최대 마약 시장 옆에 위치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멕시코는 마약 조직이 성행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멕시코의 국내 상황도 마약 조직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 여러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여러 이유를 지적해 왔지만, 필자는 스페인 정복 이후 400여 년간 지속된 빈부차이를 들고 싶다. 배운 것, 가진 것도 없는 북부 지역의 젊은이들이 택한 것은 축구도 랩도 합창도 합주도 아니었다. 마약 조직의 일원이 되어서 자신의 가족을 구원하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나라님도 해결 못한다는 가난을 자신이 속한 범죄 패밀리가 해결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멕시코 일부 지역에서 마약 패밀리가 자신의 가족이 되고 패밀리의 두목이 영웅이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필자가 중동지역 전문가는 아니지만, IS의 참수 행위는 멕시코 갱단의 참수 행위와 일정한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두 집단의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참수 행위를 통해 적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그 참수 행위 밑바닥에는 극단적인 적에 대한 증오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멕시코 갱단의 적은 미국이나 멕시코 정부가 아니다. 멕시코 마약 갱단은 깔데론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치루기 훨씬 전부터 경쟁 조직의 기를 꺾어 놓기 위해 이미 참수 행위를 하였다. 이와 반면 IS의 참수 행위나 그 이전 이슬람 테러 조직의 참수 행위는 주로 미국의 기를 꺾어 놓고 서방에 경고를 주기 위한 것이다. 결국 성전(聖戰)이란 대의를 표방하는 정치 조직이 정치적으로 적과 대결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일반 범죄 조직과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멕시코 범죄 조직들을 따르는 무리들은 마약 갱들을 로빈 후드로 의적화하는 것을 넘어서 종교 숭배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두 집단 모두 한 사회 내에 존재하는 불만 세력을 집결시켜 조직을 키워가고 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직의 수뇌부, 즉 머리를 잘라 낸다고 하여 두 집단이 괴멸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멕시코 마약 갱단의 경우는 마약 작물 재배를 장려했다는 미국의 원죄보다는 스페인 정복 이후 아직까지 한 번도 해결해 보지 못한 고착화된 빈부차가 마약 조직 형성의 자양분이 되고 있고, 이슬람 테러 조직의 경우에는 가깝게는 팔레스타인 문제, 좀 더 멀게는 서구의 아랍 식민지 경영시대까지 그 반 서구적 정서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중세의 십자군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현 IS의 테러 사태를 서로 다른 문명 간의 충돌로 치부할 수는 없다.

유럽의 기독교 문명권과 중동의 이슬람 문명권은 천 년 넘게 서로 치고 받는 앙숙관계였지만, 작금의 사태를 양 세력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최근 IS의 참수 뉴스 외에도 아프리카의 빈민들이 끊임없이 바다 건너 유럽으로의 진입을 시도하다 바다에서 사망하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아랍의 이민자는 유럽 사회의 하층부를 이루고 있다. 유럽이 부유한 것이 무슨 원죄일 수 있겠냐마는 일부 아랍인들은 미국과 유럽이 아랍과 아프리카에서 갖은 이권을 차지함으로서 아랍인들에게 손해를 끼쳐왔다고 생각하고 있고 일부 유럽인들은 아랍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슬람 혐오나, 기독교 혐오는 종교 자체에 대한 혐오보다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치됨으로써 오는 것이다.
식민시기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와 중동을 자유로이 왕래하였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갔다. 또 때로는 아프리카인들을 아메리카에 내다 팔았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어서 아프리카인들과 이슬람인들이 자기 발로 유럽에 들어가 살겠다는데 이를 막고 통제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이익을 취할 것은 다 취하고 이제 굶주린 아프리카인과 중동인들이 유럽으로 몰려드니 이를 막고있는 것이다.

이슬람인들의 반미, 반서구 감정은 이들이 기독교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이들이 자신의 경제권, 정치자주권을 빼앗았다는 피해의식에 있다. 누가 보더라도 미국은 과거에 이스라엘과 이 지역에 묻혀 있는 석유 때문에 간섭을 해왔고 이슬람인들은 이를 부당하다고 보아 있다.

미국과 서구가 IS 참수조직의 머리를 자를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IS가 중동지역이 지니는 암이라면 미국은 그 암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외과적 수술로 환자가 회복될 것인지 아니면, 수술과 함께 환자의 면역력을 높이고 식이요법을 바꾸는 등 보다 폭넓은 치료를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응징 차원에서의 공격이나 미국인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공격은 지금까지 아랍테러 사태에서 보아온 것과 같이 서로 간에 혐오감을 높여만 갈 뿐이다. 지난번의 한인 피해 사태만큼 IS 테러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의 테러 가능성보다도 해외에서 우리 국민이 테러를 당할 우려가 언제든지 있다. 멕시코의 경우도 마약 전쟁의 기사들 때문에 국내 연수생들이 멕시코에서 연수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21세기에 지구 양편에서 참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슬프다. 인류는 지난 세기에 두  번의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을 겪었고 이들 전쟁을 통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만행들이 저질러졌다. 그런 시기와 비교하면 21세기는 평화로운 세기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인터넷에 참수 동영상이 떠도는 것은 섬뜩하다. 미국 정부가 참수 조직을 참수함으로 또 다른 참수가 반복되는 피상적이고 외과적인 수술을 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다. 다만 외과적 수술과 동시에 암을 앓고 있는 환자, 즉 아랍인들의 마음을 힐링시켜 주는 것이 21세기 초의 끔찍한 참수 경쟁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된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