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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라피끄 외교와 제2의 중동 붐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홍성민 중동경제연구소 소장 2015/04/09

중동진출 40년 만의 동반자 관계

라피끄 외교! 실로 놀랍고 가슴 벅찬 일이다. ‘라피끄’란 아랍어로 ‘동반자’라는 뜻이다. 지난 3월 박대통령의 중동순방 때 슬로건이다. 이번 중동순방의 특징은 “한국기업의 해외진출 50년, 중동진출 40여년 만에 중동국가들과 협력의 파트너관계를 재인식했다.”는 점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세계의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이 원조(援助)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탈바꿈하며 당당히 세계 10대 무역강국으로 우뚝 서서 중동의 산유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25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결과다. 이 과정에 한국경제에 윤활유 역할을 한 것이 ‘중동 붐’, 1970년대의 중동진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박대통령의 중동 4개국 순방의 의미도 ‘제2의 중동 붐’으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자는 뜻에서 “‘제2의 경제발전’을 중동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시그널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동의 상황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녹록치 않은 게 현실이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40달러로 저유가 상태이며, 정세 또한 ‘아랍의 봄’ 이후 혼돈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라크전쟁이 끝나긴 했지만, 여전히 정정(政情)은 불안한 상태고, 이란 역시 핵협상이 타결되긴 했지만, 대외개방의 길은 아직 먼 상태다. 여기에 알 카에다의 뒤를 이은 IS(이슬람국가)가 시리아, 이라크에서 위세를 떨치며 주변국을 불안케 하고 있고, 예멘에서는 알 카에다가 내전에 개입하여 중동정세는 다시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박대통령이 순방한 중동 4개국은 교역규모 1천139억 달러로 중동 전체 교역액의 74%를 차지하는 걸프협력회의(GCC)의 핵심국가들이다. 경이적으로 반세기만에 약 480배 이상의 GDP 성장으로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우뚝 선 한국이 포스트-오일시대를 대비하는 중동국가들의 경제협력의 파트너로서 동반자 관계가 되었음은 가히 우쭐할 만하다. 이에 덧붙여 전통적 협력분야인 건설이나 플랜트 수출을 넘어 보건의료, ICT, 식품, 사이버보안 등과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협력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이 기대되기에 여느 때와는 다른 순방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과 중동은 수어지교(水魚之交)의 관계

중동지역은 우리의 전체 원유수입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그동안 상품교역분야에서도 아시아, 유럽지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교역권(연간 1,540억 달러)으로 성장해 온 지역으로 한국경제에서 없어선 안 될 버팀목으로 작용하는 지역이다.

1973년 제1차 석유 위기(oil crisis)로 유가(油價)가 갑자기 4배로 폭등하고 ‘석유금수조치(oil embargo)’까지 취해져 한국경제는 위기상황에 놓였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1963년 한국은 파독 광부들이 송금하는 외화로 어렵사리 경제성장에 불을 지피던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던 한국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정부와 기업들이 과감한 돌파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機會)로 만든 것이 이른바 ‘중동 붐’이다. 석유 위기는 오히려 한국경제에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를 가져다준 결과를 낳았다. 동남아시아에서 처녀 진출로 불과 10여 년의 해외경험을 쌓은 S기업을 필두로 H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형 항만공사를 수주함으로써 중동진출의 문호가 열린 것이다. 약 120만 명에 달하는 한국 근로자들이 열사의 사막에서 피땀 흘린 대가로 이뤄낸 것이 “1970년대의 중동 붐”이다.

중동진출 첫해인 1974년 해외건설 수주액은 2억 6,000만 달러였으나 이듬해 1975년에는 226.3%나 늘어난 8억 5,000만 달러나 됐으며, 2010년 400억 달러를 달성하였고 현재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치솟거나 대통령의 중동순방이 있을 때마다 ‘제2의 중동 붐’이란 말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중동에서 “제2의 중동 붐은 없다. 그러나 중동 붐은 항상 계속된다.” 1970년대 중동 붐의 당사자인 한국으로서는 2000년대에도 ‘테러와의 전쟁’ 속에서 치러진 이라크전쟁 기간 동안에도 ‘두바이 붐’을 이뤄냈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때에도 ‘중동 붐’은 계속되었다. 2010년 중동건설수주 400억 달러 달성이 그 단적인 증거이다.

그렇기에 ‘제2의’라는 표현은 ‘새로운’ 아니면 ‘또 다른’이라는 의미의 수사(修辭)로 이해해야 한다. 그만큼 중동은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지역이며, ‘중동 붐’은 표현이 다를 뿐 항상 있어왔으며, 앞으로도 ‘이라크 붐’, ‘이란 붐’과 같은 특수(特需)로 제2의 중동 붐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중동 붐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실리에 바탕을 둔 외교정책으로 협력관계를 확대시켜 나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동의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그들의 문화적 이해에 초점을 맞춘 ‘라피끄’, 즉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실질적이고 고부가가치의 신성장동력의 경제협력의 확대가 순방의 효과

이번 박대통령의 중동순방의 특징은 과거 단순한 건설이나 플랜트와 같은 인프라 위주의 수출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및 신성장동력의 경제협력분야로 확대되었다는 점에 있다. 실질적 성과로는 비즈니스포럼의 1:1 상담을 통해 약 1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으며, 건설, 플랜트 분야에서는 66억 달러 정도의 쿠웨이트 정유공장 플랜트사업의 수주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105개 중소, 중견업체를 포함한 115개 한국기업이 중동의 260개 기업과 489건의 상담을 진행한 결과, 44건 계약체결로 약 1조원 규모의 계약이 성사될 전망이다. 박대통령의 중동 4개국 순방결과의 성과는 아래의 <표>와 같다.

고부가가치, 신성장동력의 경제협력 확대로는 보건, 의료분야를 한국의 대표적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의료관광에 이어 의료서비스의 현지진출이 본격화되었다는 점도 실질적인 순방효과다. 예를 들면 5년 동안 서울대병원이 UAE 왕립 칼리파병원 위탁경영 계약을 체결하여 약 1조 원의 수익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분야가 보건의료산업에 대한 경제협력의 증대다. 중동은 출생률이 매우 높고 65세 이상 고령 인구도 급증하고 있어 향후 약 20년 동안 시장이 두 배 정도 증가할 전망이다. 중동은 무더운 날씨와 운동량 부족으로 당뇨 비만, 고혈압, 심장질환 환자가 매년 급증하고 있다. 예를 들어 UAE의 경우, 2010년 이후 매년 의료부문에 1,0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고 해외에서 지출하는 진료비만도 2조 원에 달한다. 한국의 값싼 의료비는 한국으로의 의료관광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좋은 여건도 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박대통령의 UAE 순방을 계기로 양국 간 “할랄 식품분야의 협력증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이 체결되어 식품분야의 진출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16억 명 이슬람 신자까지 고려하면 엄청난 시장규모다. 할랄 식품시장은 약 6천 500억 달러 규모로 세계 식품시장의 약 20%를 차지한다. 정부는 이번 할랄 MOU로 2014년 6억 8천만 달러였던 한국의 할랄 관련 농식품 수출액도 2017년에는 약 12억 3천만 달러 규모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순방에서 중동의 여성소비자들에 대한 접근 전략이 부재했다는 점은 아쉽다. 중동 인구의 절반을 구성하는 여성, 그 가운데 젊은 여성층의 소비변화는 최근 크게 변하고 있다. 중동에서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와 함께 아랍의 여성, 특히 교육받은 여성은 패션, 미용, 건강, 가족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소비시장을 창출하고 그 시장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화장품, 의료기구, 패션분야의 진출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분야다.

 

서둘지 말고 거시적 안목에서 ‘중동 붐’을 이어가야

현 중동정세는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미(昏迷)하다. IS와 이라크, 이란의 핵협상 타결, 예멘의 내전상황 등과 같은 정치적 문제 이외에 ‘세일혁명’으로 파생한 유가전쟁으로 저유가가 계속되고 있다. 과거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항상 중동의 혼미한 정세와 고유가 시대에 중동 붐을 이뤄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라크 재건, 이란의 대외개방, 예멘의 개발과 같은 또 다른 ‘중동 붐’이 기다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금년 4월 2일 이란핵 타결로 이란정부는 1천600억 달러 규모의 건설 및 플랜트 사업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라크에서는 2천500억 달러의 재건사업이 예상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중동 붐’은 “단지 시간(time)의 문제이며 계속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만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우리의 대응과 자세이며, 이를 위해서는 협력의 파트너로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며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따라서 너무 성급한 기대로 서둘지 말고 거시적 안목에서 ‘중동진출’을 고려해야 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순방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MOU다. 한-사우디 텔레콤 혁신센터 MOU, UAE 할랄 식품 MOU, 카타르 원자력 인력양성 MOU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MOU가 실제적인 계약은 아니다.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MOU에는 실무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조건(terms)이 많다. 실질적인 계약체결을 위해서는 관련 정보수집과 분석, 실무진의 파견 및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현실적인 해결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 기업들의 진출자세도 변해야 한다. 그동안 지적돼온 한국 기업들 간의 출혈경쟁으로 인한 저가입찰은 배제되어야 한다. 중동의 까다로운 계약조건도 꼼꼼히 따져보고 계약을 체결하여 손해 보는 수주는 피해야 한다. 이제 중동시장도 글로벌화 되어 경제환경도 크게 변하였다. 이라크 유전개발의 쓰라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지정세나 까다로운 계약조건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처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국제통상이나 특히 이슬람의 법률분야에 능통한 전문가의 양성이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서둘지 말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중동사람들은 ‘게으르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중동사람들은 게으르기보다는 서두르지 않는다.”고 이해해야 한다. 유목민의 후예(後裔)인 중동사람들은 매사에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이슬람에서는 “죄를 뉘우칠 때, 남의 빚을 갚을 때, 처녀를 시집보낼 때”의 3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두르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그들의 문화적 전통은 우리의 사려 깊은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중동의 정신문화는 경제개발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국부펀드(SWF)다. 국부펀드는 미래세대를 위해 비축한 기금으로 현재 중동 전체의 국부펀드 총자산은 약 1조 달러에 달한다. 이러한 국부펀드는 특히 미래 산업인 우주, 항공, 보건의료, 정보통신 및 에너지사업에는 계속 과감한 투자를 한다.
최근 유가 하락으로 배럴당 40달러 수준의 유가는 중동 산유국들의 투자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유가가 하락하더라도 대형 프로젝트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다. 중동의 특성을 고려하면, 중동 산유국들은 포스트-오일 시대를 대비하여 장기(長期)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착실히 수행하고 있기에 우리의 진출에는 큰 지장은 없으리라 본다. 다시 말하면 동반자로서의 협력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교류하면 한국인의 근면성은 이미 인정받고 있는 상태이기에 중동진출에서 성공은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중동정세는 우리의 ‘중동 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IS, 이라크, 이란 및 예멘의 정세변화를 예의주시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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