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베네수엘라의 미래: 오일달러 없는 성배

베네수엘라 박호진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2015/03/25

차베스주의의 지속과 개혁,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 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Nicolás Maduro)의 사임, 민과 군의 연합에 의한 과도 정부 구성, 두 야당 지도자의 위기, 쉽지 않은 총선 그러나 결과는 야당의 승리, 그럼에도 차베스주의는 죽지 않는다는 단언...

 

이 모든 예언은 베네수엘라의 정치,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2015년 베네수엘라에 미래에 대한 예견이 아니라 프랑스 출신 베네수엘라의 점술가 따마오Tamao가 파나마의 일간지 <끄리띠까 Críitica>에서 예언한 내용이다. 이 점술가는 아이티의 지진과  최근에 베네수엘라 까라까스 시장 안또니오 레데스마Antonio Ledesma의 체포를 정확히 예언하여 베네수엘라 국민을 놀라게 한 인물이다. 

 

일개 점술가의 예언을 베네수엘라에 대한 학술적 칼럼을 쓰면서 인용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베네수엘라에 관한 국내외의 학술 자료와 기사들을 가장 극적으로 시뮬레이션해 보면 이 점술가의 예언은 수많은 객관적 시나리오 중 가능하고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 중의 하나이다.

 

국내에는 학위 논문과 수많은 학술 논문 외에도 국내 보수 및 진보 언론들이 베네수엘라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가 우리의 자원 외교에 미치는 파급 효과 때문에 국내 학자들과 언론이 베네수엘라의 정치 경제 상황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걸까? 아니면 베네수엘라의 좌경화가 우리 국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일까? 각종 경제 지표를 살펴보면 베네수엘라가 좌경화가 되든 우경화가 되든 우리나라와 베네수엘라의 교역량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또한, 베네수엘라가 좌경화되었다 하여 우리나라와 베네수엘라의 외교관계가 결정적으로 바뀌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국내 학자들과 보수 진보 언론들이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심심치 않게 다루는 것은 국내 정치, 경제 정책을 구상할 때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경향 때문이다. 지금은 사망한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차베스에 대해서 국내에서 각종 학술 토론이 있었고 진보 계열 학자와 언론은 차베스의 이른바 <21세기 사회주의>에서 희망을 보았고, 보수 언론은 파퓰리즘의 기승을 보았다. 2013년 선거에서 차베스의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야권 후보자를 부정 선거의 논란이 일 정도로 간신히 따돌리며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2015년 현재 국내외의 모든 언론들이 앞을 다투어 식료품을 사려고 길게 줄을 늘어선 베네수엘라의 시민들을 보도하고 있다. 

 

독이든 성배를 든 현 베네수엘라 대통령

 

집권 초기부터 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의 미래를 밝게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선거 부정을 주장하는 야권의 강력한 시위로 인한 정치적 타격을 제쳐 두더라도 모든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뒤를 잇는 후계자는 전임자의 강력한 후광으로 덕을 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후광이 후임자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전 대통령 차베스가 마두로 대통령에게 넘겨준 경제 성적표는 나쁜 편이 아니었다. 2012년 GDP 성장률은 5.5%, 1인당 국민소득은 14,556불, 실업률 6.4% 외채 GDP 대비 42%로 우리나라 경제지표와 비교하여도 크게 손색이 없어 보인다. 특히 교육, 보건위생, 빈곤 감소를 나타내는 인간개발지수는 중남미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부의 창출이 석유 수출에 주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 경제 안정을 위해 거듭되는 자국 화폐 평가 절하로 2012년 인플레가 20.1%를 기록하였다는 점은 2015년 현재의 높은 인플레와 그로 인한 생필품 공급부족을 예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시민들이 화장지를 사기 위해 상점 앞에 줄을 서게 될 정도로 높은 인플레와 생필품 공급부족을 야기한 것은 2014년부터 시작된 국제 유가의 하락 때문이었다.

 

야권에서는 높은 인플레와 생필품 공급부족을 마두로 대통령의 탓이나 차베스 대통령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마두로 대통령을 비난하기에는 그의 집권기간이 짧다. 또 차베스 대통령 시절의 분배 위주 정책과 독재, 그로 인한 부패, 민간 경제의 위축을 그 원인으로 지적할 수도 있으나 차베스가 아닌 신자유주의적 경제 지향의 대통령이 권력을 잡고 있었을지라도 국제유가의 예상 밖의 하락이라는 파고를 이겨낼 만큼 탁월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가 나왔을 것이라고 가정하기도 쉽지 않다. 차베스 대통령이 오일 달러가 가득 든 성배로 베네수엘라의 빈곤층의 목마름을 채워 주었다면, 마두로 현 대통령은 독이 든 성배는 아니지만, 텅 빈 성배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셈이다. 경제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차베스의 추종자들도 마두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또 마두로 대통령에게 죄를 묻는 저널리스트들도 눈에 많이 띈다. 마두로 정부로부터 편파 보도를 한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고 있는 CNN은 베네수엘라 중소 기업인들이 현행법상 종업원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고 직원들이 제멋대로 놀아서 기업을 운영할 수 없다고 불평한다. 그리고 열렬한 차베스 찬양론자 아주머니가 차베스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다가도 마두로는 아니라고 단언하는 장면도 보여 준다.

 

정치 세력으로서 차베스 주의자이든 反 차베스 주의자이든 마두로 대통령을 속죄양으로 처리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 일반 국민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차베스 주의자들은 차베스 주의의 허물을 마두로 대통령 탓으로 돌려 차베스 주의를 살려내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반대 세력 입장에서는 약 15년 동안 뿌리박힌 <21세기 사회주의>를 하루아침에 몰아낼 수 없으며 차베스를 지지하는 국민을 인정하지 않고는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지원을 받지 않는 집권은 절름발이 정권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2013년 대선에서 마두로 대통령의 맞수였던 카프릴레스(Capriles)가 석유 수익의 공정한 국내 배분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도 차베스의 복지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엎는 공약으로는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권에서는 차베스라는 <21세기 사회주의> 창시자를 때리기보다는 그 꽁무니 격인 마두로 대통령을 때려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 하는 것은 명확하다.

 

베네수엘라 국민들 입장에서도 차베스가 복지 정책 때문에 누린 혜택을 차베스 이전으로 되돌리기는 싫고 CNN이 지적하듯 비생산적인 직원이 중소기업에 끼친 폐해라든지 정부조직의 부패, 무능은 마두로 대통령 탓으로 돌리고 싶을 것이다.

 

사실 마두로 대통령의 죄과라고 해야 차베스주의를 계승하려 했다는 원죄와 대선 승리 후의 시위 처리 과정에서의 40여 명의 사망자 발생 및 야당 지도자 구금이 죄과라 할 수 있다. 또, 카프릴레스가 보다 다양한 국부 창조, 다양한 국제관계, 다양한 사고를 공유하는 민주주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 때 마두로 후보는 <21세기 사회주의>와 기존 연맹국가와의 결속을 공약으로 내건 것도 죄과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도 따지고 보면 마두로 대통령에게는 딜레마였을 것이다. 과감한 정책변화는 차베스 지지자들의 이탈을 유도할 수 있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2015년 3월 중순의 시점에서 마두로 대통령 관련 기사를 읽어 보면 마두로 대통령은 더욱더 극단적으로 <21세기 사회주의>를 강조하고 있으며,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비한 무력시위도 하고 있다. 

 

정치적 위상의 한계로 운신의 폭이 좁은 마두로 대통령과 미국의 관계는 서로 주재국 외교관에 제재를 가하면서 악화일로에 있고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인권 유린 국가로 UN에 고발한 바 있다. 멕시코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어나는 인권 침해로 볼 수 있는 사례들을 고려해 볼 때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비난하고 제재를 가한 것은 다분히 양국 간의 오랜 원한 관계와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공정한 시각일 것이다. 차베스가 반제국주의를 부르짖으며 중남미에서 미국을 따돌리며 반미 동맹을 부추긴 점을 고려하면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악의 세력임에 틀림없다.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은 대외 관계뿐만 아니라 야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야당 지도자들을 쿠데타 기도 혐의로 잡아넣음으로써 야권과 정치적 타협을 이루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배는 돌아올까?

 

그럼에도 마두로 대통령에게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3월 20일자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중국과 100억 달러짜리 차관계약을 흥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차베스를 지지했던 쿠바와 ALBA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이 차베스 후계자의 완전한 몰락을 바라고 있지는 않다. 남미에서 차베스 열풍에 휘말리지 않았던 칠레도 3월 21일 에랄도 무뇨스(Heraldo Muñoz) 총리의 입을 빌어 미국의 제재가 타당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결국, UNASUR를 포함한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이 제재에 반대한 것이다. 입술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베네수엘라가 라틴아메리카에서 맹주 노릇을 하는 것을 속으로 껄끄러워하던 일부 중남미 국가들도 미국의 정치적 입김이 세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한 매체는 전 세계적으로 40개 국가가 미국의 제재에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http://hispantv.com/) 

 

그러나 세계 여론이 미국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막아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CNN이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를 막아 줄 수는 없다. 물론 페루 주재 베네수엘라 대사 알렉산데르 야네스(Alexander Yánez)는 한 페루 방송(La hora N)에 나와 CNN의 보도를 과장된 보도라고 주장하며 페루 방송 사회자와 설전을 벌였다. 즉 CNN이 극단적인 사례만을 보도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도표까지 들고 나와 현재의 높은 인플레 상황은 베네수엘라의 과거 인플레 상황과 비교할 때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보수언론이 언론 플레이를 통해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정부도 차베스 시절부터 같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중립적인 국내외의 언론 매체를 확인해 보면 돈만 있으면 생필품은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암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말이다.

 

마두로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국내 석유 가격을 올리면서 <21세기 사회주의>를 수정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3월 18일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의 조작에 의해 이루어진 낮은 국제 석유 가격이 곧 회복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하며 미국과의 경제 전쟁에서의 승리를 독려하였다. 또, 3월 중순에 대형 슈퍼마켓 판매대에 지문 검색기 20,000대를 설치하며 이 장치로 사재기를 통한 생필품의 암시장 판매를 막을 수 있다고 단언하였다. 일부 시민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이를 쿠바식 배급제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마두로 대통령은 시간을 벌며 석유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총선은 9월이고 국제 유가 전문가들은 미국과 OPEC의 유가 전쟁이 5-6월에 승부가 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설사 유가가 반등한다 할지라도 기존의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오일 머니로 가득 찬 성배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마두로 대통령은 그 성배의 상당부분을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할 것이다.

 

 오히려 배짱 두둑한 차베스라면 성배가 다시 오일 머니로 채워지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성배를 잠시 내려놓고 <21세기 사회주의>를 다소 수정할지 모른다. 성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고 <21세기 사회주의>의 대의가 이 수정으로 손상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로는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이 무리임은 틀림없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