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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분노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게레로 주에서 시작된 불꽃이 사그라지다."

멕시코 최명호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2015/03/18

2014년 11월부터 2015년 2월 중순까지 멕시코시티의 경제/문화의 중심지 레포르마 거리에서는 거의 매주 시위대를 볼 수 있었다. 8차선, 가끔은 10차선 이상의 주요 간선도로 중 하나인 레포르마를 점거한 시위대는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뻬냐 니에또 현 멕시코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었다. 49명의 희생자들은 사실 하나의 도화선이었다. 2014년 9월 26일, 멕시코 서남부 게레로주 이괄라시의 라울 이시드로 부르고스 교육대학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는 80여 명이었다. 교사가 되고 싶은 이들은 정부의 지원 삭감 철회와 관계 당국의 비리 척결을 요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 시위는 아주 중요한 두 지점을 비판하고 있다. 부정부패라는 아주 오랜 라틴아메리카의 고질병을 언급한 것만이 아니라 현재의 시 정부 혹은 주 정부의 부정부패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비판하고 있으며 불평등의 문제, 일자리의 문제 그리고 소위 신자유주의 시대 정부의 긴축재정 문제를 동시에 비판하고 있었다. 시위가 과격해지자 현지 경찰과 무장 괴한들이 학생들을 막아섰고 조준 사격을 했다. 공권력이 시민들을 향해 폭력/살인을 시도한 것은 우리의 역사에서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2014-2015년 현재에 일어났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사건을 통해 6명이 즉사했고 17명이 부상당했으며 58명의 학생들이 납치되었고 이 중 43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총 사망자가 49명이다.

2011년 레지스탕스 출신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라는 책을 썼고 프랑스 국내에서만 2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스테판 에셀이 말한 분노는 공익적 분노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 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사회적 불의는 잘 참고 개인의 불이익은 못 참는" 그런 치졸한 분노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드는 촛불과 같은 분노, 그의 표현으로 하면 평화적 봉기를 의미했던 것이다. 현재 멕시코에서 일어났던 시위의 성격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정의하는 쉽지 않지만, 화염병과 투석전이 2014년 멕시코에서 벌어졌고, 11월 10일에 아카풀코 공항을 점거하여 공항을 마비시켰고, 11월 20일에는 의회건물을 방화했고, 11월 24일에 검찰청을 점거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진실들이 밝혀졌다. 무장한 괴한들은 게레로주의 갱단이었다. 경찰과 갱단이 하나가 되어 시위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했고 납치했고, 살해했고, 시신은 불태워져 버려진 화장터에 유기되었던 것이다. 과연 이런 진실을 마주했을 때 평화적 봉기를 기대하거나 공익을 위한 분노를 기대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멕시코는 분노했다. 게레로 주의 문제는 비단 게레로 주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현재 멕시코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고 가끔은 폭력적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2015년 2월 20일 피해자들의 유가족 혹은 친구 친지들은 49개의 검은 관으로 멕시코시티의 중심지 중 하나인 레포르마의 앙헬탑, 쏘나 로사 지역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시위참가자들은 현저하게 줄었고 앙헬탑을 가득 메우지도 못했다. 한 달 전만 해도 레포르마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마치 마술처럼 사라진 것이다. 3-4달 동안 유지되던 시위가 새로운 동력을 찾지 못했고,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던 여론 또한 보수적 미디어가 외면하고 멕시코 뻬소의 가치가 달러당 15뻬소 이상 올라가고 전 세계적으로 국제 원유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멕시코 내의 휘발유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었다. 달러당 13뻬소 정도로 유지되던 환율이 15뻬소까지 올라가면서 연말 연초 대목에 물건을 수입하는 수입상들이 결제를 못할 정도로, 다시 말해 연말연초 센뜨로 시장이 환율로 인한 마비라고 판단할 수 있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다. 또한, 미국 체인점이며 미국에서 수입되는 물건을 주로 판매하는 월마트, 코스트코, 체드라위 등의 대형 슈퍼에서 동시에 가격이 오르고 있었다. 물론 수출을 하는 경우 가격적으로 이익을 볼 수도 있으나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멕시코의 경우 일반 민중 혹은 하층민, 혹은 빈곤계층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되었다. 물론 이런 경제적 문제가 정치적 문제와 어느 정도의 연관관계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것은 통용되는 것일 것이다.

사진에 보이듯 레포르마 한편에 사망자들을 추모하고 진상이 밝혀지길 바라는 유가족과 친구, 친지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6명의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중 2명은 레포르마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행려 같았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자신이 피해자들의 친구이며 게레로주에서 올라왔다고 하는 2명의 학생, 혹은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길 거부했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실종자들, 공권력에 의해 학살된 이들의 문제는 역사적 변환기, 전환기에 종종 일어나는 일로 이것은 특히 불평등 문제와 일자리 문제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 정권과 PRI당을 반대하는 것 외의 어떤 대안을 생각한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이들이 무언가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들이 멕시코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일자리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유가족들과는 대화가 쉽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혹은 형제를 잃은 사람들, 그것도 시위 중인 사람들과 냉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의 청년들이 사고도 아니고 공권력에 의한 폭력으로 학살되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영원한 상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이 보여줬던 분노는 이제 사그라진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은 그대로겠지만 대규모 시위가 다시 발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현재 멕시코 환율이 다시 달러당 14뻬소 정도로 다시 안정적인 상황에 들어가고 있고 국제원유 또한 안정적인 상황이 되고 있다. 경제적 안정이 어떤 정치적 변화를 이끌지 단언하기 어렵지만 게레로주에서 있었던 비극이 대규모 시위의 소재가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현재도 아카풀코 등에서는 시위를 강제 진압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있다고 한다. 재발방지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안정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2015년 2월 20일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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