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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아르헨티나 대선 우파가 승리하다

아르헨티나 안태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 지역원 HK교수 2015/12/14

아르헨티나 중도우파 정당인 PRO의 마크리 후보가 2015년 11월 22일 결선투표에서 승리했다. 그는 기업인 출신이다. 경제정책의 실패로 국내 산업은 붕괴되고 노동자 대부분은 실업자가 된 2001년 위기를 수습한 2003년부터 페론주의 좌파인 키치네르가 집권하고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가 집권한지 12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었다. 키치네르 정부는 신자유주의와 거리를 두는 사회적 경제 정책을 집행하고 평가절하 정책을 취하고 무너진 산업의 복구와 수출 증대를 꾀했다. 그리하여 유럽연합, 메르코수르, 중국, 러시아, 인도의 호황에 연결하여 쇠고기, 콩, 석유 등 일차산품의 수출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었다. 특히 2011년에 그랬다. 그러나 경쟁력확보를 위한 별다른 산업정책의 대안이 없었다. 이런 오랫동안 축적된 구조적 어려움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정치의 아킬레스건일지 모른다. 말로는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일차산품(농산물, 광산물)의 채굴을 통한 대외 수출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복합적인 산업화와 과학기술 발전, 교육의 발전 등을 통한 선진 공업국가 모델의 산업구조를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할 것인가의 실천의 문제는 다르다.
이번의 우파 승리는 21세기 들어 라틴아메리카에서 매번 좌파정부들이 승리하여 ‘신자유주의 이후’의 시대가 열렸다는 주장이 나온 이후 처음 좌파 정권의 패배이므로 아르헨티나만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 그동안 아르헨티나는 미국과 중국을 에워싸고 있는 BRICS사이에서 후자와 긴밀한 통상, 투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세계체제의 권력관계의 변화에 전략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사망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그리고 브라질의 전직 대통령 룰라,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전직 대통령 키치네르, 이렇게 대서양을 옆에 두고 있는 나라들이 서로 연대하여 2005-2006년 미국의 대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정책 확장을 막아왔다. 전통적으로 아르헨티나는 급진좌파가 미약하고 중도실용주의가 강하지만 키치네르 정권은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통합운동의 핵심적 행위자로서 ‘신자유주의 이후’모델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상기의 이유로 인해, 산업의 고도화를 위한 거의 유일한 전략은 대외적으로 ‘독립’적인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UNASUR, CELAC 등)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이 제 속도를 내야만 좌파의 비전이 가지고 있는 국가발전과 경제 사회 진보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이 출범한 이때와 거의 동시에 중도좌파의 아르헨티나가 우파로 기우는 것은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에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아르헨티나 정치 외교의 중심축이 그동안의 메르코수르를 중심으로 한 ‘대서양’노선에서 ‘태평양’ 노선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흥미롭다. 마리아노 투르시는 이번 아르헨티나 대선 변화가 있기 전에 TPP출범을 두고 21세기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미 멕시코, 페루, 칠레는 TPP회원국이고 콜롬비아가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마리아노 투르지에 의하면, TPP의 성공 또는 침체가 지정학적으로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0세기에 파나마 운하가 라틴아메리카의 남과 북을 갈랐다면 21세기에 라틴아메리카를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분리시키는 전략이 시작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한다. TPP의 출범으로, 아시아의 기업들과 라틴아메리카의 기업들이 과거와는 다른 비용/이익 산출의 구조 변화를 체험하게 되고 기회/위험의 새로운 부상으로 인한 전략의 재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마리아노 투루지는 언급하고 있다. 특히 다국적 제약회사와 연결된 지적재산권 분야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영향은 태평양 동맹이 메르코수르를 위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두 동맹 모두 경제 못지않게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그동안 좌파정부들에 의해 추진되어온 독립적 성격의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예: CELAC, UNASUR)은 위축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아르헨티나 대선의 결과를,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패배, 또는 퇴조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본다. 아르헨티나는 전통적으로 자유주의 우파가 원래 강하다. 극우 군부독재도 싫어하지만 급진좌파도 싫어한다. 아르헨티나에서 헤게모니가 아주 강한  페론주의 즉, 포퓰리즘도 오히려 좌파를 약화시켰다는 게 전문학자들의 지적이다. 페론주의는 국가발전 전략으로 민족주의와 노동자를 우대하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승리한 마크리의 선거 구호는 “바꿔봅시다”였다. 페론주의 좌파는 페론주의 우파 즉, 1990년대의 메넴과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정통 페론주의(포퓰리즘)를 의미한다. 즉, 노조의 정치적 지지를 중시하는 ‘조합주의’성향을 가진다. 이번에 승리한 마크리의 세력에는 과거 1980년대의 집권 여당이었던 자유주의 세력인 Union Civica Radical도 합세했지만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우파라고 할 수 있다. 왠지 선거 마케팅 전략이 우수했다는 느낌이 든다. 정권교체의 핵심적 이유는 2001년의 경제위기 당시 대규모 시위에서 수많은 중간계급과 노동자 대중이 “엘리트들은 모두 물러나라”고 외쳤었는데 이제는 페론주의 좌파 정권의 민족적, 포퓰리즘적 정책 흐름에 반대하기 때문인 것 같다. 2001년 당시는 넥타이만 입고 있어도 대중의 혐오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존경의 대상이 된 것 같다.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고 시민 대중의 생각도 바뀌기 마련이다.
우파 신문인 La Nacion의 칼럼에 의하면, 새로운 정부는 전임 키치네르 정부가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재분배’만 중시하는 즉, 노동자 대중의 구매력 유지에만 신경 쓰는 포퓰리즘 정부였다고 비판했다. 사회공공성 프로젝트도 지나치게 많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낮은 에너지 가격으로 인해 수요는 폭발하고 공급은 줄어들어 석유와 가스 개발, 채굴 생산이 낮게 되어 에너지를 수입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외환보유고도 고갈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제부터 우파정부답게 경제성장을 중시하게 되고 분배보다 투자를 중시할 것이라고 한다. 에너지, 광업, 농업, 인프라에 투자를 강화할 것이다. 즉, 아르헨티나는 다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 방향의 정책을 펼칠 것이다. 앞으로는 안전, 투자, 시장 신용, 생산성 이런 단어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경제, 산업구조가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와 대규모 비즈니스 농업의 일차산품 채굴-수출 경제 구조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2001년에는 국가가 유지하기도 어려울 정도였고 페론주의당을 비롯해 정당체제도 붕괴했으므로 모든 사회세력 특히 소외되고 배제된 사회운동세력을 포섭하고 그들의 사회 정책적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제, 산업 구조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해서 ‘대중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2001년의 상황에서 국가의 전통적 기능에 회의적이고 단절적인 급진적인 정서가 급격히 ‘정상의’ 방향으로 즉, 국가의 기득권 엘리트들과 자유주의적 대의주의의 제도를 신뢰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맥락과 다른 것 같다. 물론 현재 베네수엘라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고 볼리비아는 그렇지 않은 차이는 있지만 두 나라는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새로운 좌파의 헤게모니가 강해져서 풀뿌리 대중에게 상당한 ‘권력’을 준 상태와 그런 급진적 변화가 없었던 아르헨티나는 시간이 흘러 자유주의 우파로 돌아오는 게 상식이란 의미이다.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맥락에 놓여있는 나라가 브라질과 우루과이이다. 낮은 원유가와 일차산품 즉, 원자재의 가격하락으로 전반적으로 라틴아메리카는 경제적으로 힘든 맥락에 있다. 라틴아메리카에 큰 도움이 되었던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도 낮춰지고 중국의 야심찬 국제적 거대프로젝트도 아시아, 아프리카를 더 중시하는 상황이다. 현재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베네수엘라를 포함하여 다양한 발전모델(산업/서비스, 농업/광업)사이에 헤게모니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에보 모랄레스의 리더십아래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볼리비아와 같이 원주민 문화에서 오는 공동체적 소농이 아르헨티나 등 경제적으로 규모가 큰 나라에서는 대안으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마리스텔라 스밤파는 2001년 이후 집권한 키치네르 정부의 포퓰리즘적 정책 방향 자체에 애매성이 깃들어 있던 것도 페론 좌파 정부의 퇴조를 불러온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스밤파는 이 당시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 처음으로 아르헨티나 역사상 페론주의 좌파가 집권한 것인데 아래로부터의 변혁의 열정이 지속적으로 그들의 헤게모니를 보장해줄 것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그런 착각이 가능했던 것은 2001년의 경제위기 직전의 집권세력인 자유주의 세력과 일부 진보세력의 연합정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정상적인 정당으로서 기능하고 있던 것은 페론주의 좌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페론주의 우파는 이미 90년대의 메넴 정부가 여러 가지 치명적 정책 실패로 국가 존망의 위기를 불러온 주체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혁명의 전략과 일면 비교 되는데 대중의 ‘자율적 에너지와 에토스’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구체화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차베스 혁명은 미션사업과 주민평의회 사업을 반혁명 세력의 쿠데타 및 자본가 파업의 공격에서 정신을 차리자마자 2002-3년부터 곧 제도화시켰던 경험을 연상할 수 있다. 또한 ‘노동자 자주경영’조합운동 등의 반 신자유주의 운동이 있지만 노동, 농업, 토지, 주택 등의 다양한 투쟁들 사이의 연대성이 약화하도록 한 것이 크리스티나 정권의 최대 약점이었다고 한다. 좌파 진영의 헤게모니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제, 사회 부문 사이의 강한 연대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페론주의 전통 자체가 지나치게 공식 노조의 조합주의 운동을 중시하고 경제구조적인 문제 즉, 기존의 농업과 광업의 소위 채굴경제 모델을 비판하는 다양한 사회운동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전국 여러 곳에서 정부의 토지정책에 반대하는 시민에 대한 인권 억압적인 상황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한편 키치네르 집권 십 여 년 동안 오늘날 마크리를 정상으로 올려놓은 자유주의 우파는  경제위기 상황과 달라진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상황을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새롭게 정책과 이미지를 재구성한 정치세력이다. 다시 말해 대선의 선거운동기간 중 앞으로 집권 후의 경제정책의 방향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피함으로써 대중을 설득하는 선거 전략을 구사했다는 평가이다. 이번 대선에서 마크리가 압승한 것은 아닌데 바로 이런 큰 격차 없는 승리가 다시 ‘정상적’인 정치 즉, 좌. 우 양당제를 복원하게 되어, 자유주의 세력인 우파에게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참고문헌]
Maristela Svampa(2011), Argentina, una decada despues, Nueva Sociedad, no. 235
__________________(23006), Civilizacion o barbarie, Buenos Aires: Taurus
Orlando Ferreres(2015.11.25), Despues del populismo, La Nacion
Mariano Turzi(2015), “El Acuerdo Transpacifico, ? una amenaza a la integracion latinoamericana?, Nueva Sociedad, no.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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