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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보스니아의 EU 가입 신청과 향후 과제

중동부유럽 일반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학대학, EU 연구소 교수, 소장 2016/04/12

얼마 전인 2월 15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Herzegovina/ Bosna i Hercegovina, 줄여서 ‘보스니아’로 약칭함) 각 민족 계파를 대표하는 ‘3인 대통령 위원회’ 의장인 드라간 쵸비치(Dragan Čović) 대통령이 EU 본부에 보스니아의 EU 가입을 신청했다. 이번 신청은 지난 3년 8개월간의 내전을 종결지었던 ‘데이턴 평화안(Dayton Peace Agreement)1)’이 발효된 지 20주년을 맞이해 나온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보스니아의 평화 구축을 희망하는 국제 사회의 깊은 관심을 받고 있다.


EU 회원국이 되려면 ‘EU 가입 예비 후보국’을 거쳐 ‘EU 가입 후보국’에 올라야 한다. 이후 35개 분야의 가입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등 절차를 밟아야 한다. 보스니아는 지난 2003년 ‘EU 가입 예비 후보국’으로 지정되었고, 2008년엔 EU 가입 예비절차인 ‘안정화 협약(SAA: Stabilization and Association Agreements)’까지 체결했다.


그러나 보스니아 내 민족-종교별 3계파인 가톨릭 크로아티아계와 정교도 세르비아계 그리고 이슬람 보스니아 무슬림계 간 내부 다툼과 민족 간 갈등으로 인해 사회 개혁이 지체되면서, 그동안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얻지 못하여 왔었다. 이런 이유로 이번 보스니아의 EU 신청에 대해, EU 본부는 “보스니아가 회원국이 되기 위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했다”는 입장을 표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점을 의식한 쵸비치 대통령 의장 또한 “보스니아가 EU 가입까지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경제 여건을 개선해 신뢰할 수 있는 EU 회원국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EU는 “보스니아가 이제 개혁의 길에 들어선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앞으로 EU는 보스니아가 맞이하게 될 수많은 도전을 이겨내고 개혁해가는 변화들을 지켜볼 것”이라며 화답하기도 했다.


보스니아의 EU 가입 진행 속도는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다소 더딘 편이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2004년 5월과 2013년 7월 이미 EU 회원국에 가입하였고,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또한 가입을 위한 본격적인 협상을 진행 중에 있다. 이런 점에서 쵸비치 대통령 의장은 이번 EU 가입 신청을 위한 대국민 호소를 통해 “보스니아가 물러설 길은 더 이상 없으며, 우리는 (EU 가입의 가속화를 통해) 구유고슬라비아 연방 국이었던 주변 국가들을 반드시 따라잡아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보스니아 정부는 이번 EU 가입 신청서에 보스니아가 2017년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개혁을 더 빠르게 추진해 나갈 것을 밝혔다. 하지만, EU 가입까지 보스니아는 여전히 많은 과제와 숙제가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우선, 가장 큰 문제로 보스니아의 내전 종결 이후로 지속되어 온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 정치적인 분야의 더딘 개혁들을 들 수 있다. 보스니아는 1995년 내전 종결 이후로 지난 20년 동안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민족 간 깊은 갈등을 겪어 오고 있다. 여기에 경제 개혁 지연과 어려움은 보스니아 각 민족 간의 불신을 더욱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4년 2월 전국 33개 도시에서 일어난 시민 봉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여전히 40%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과 심각한 빈곤 문제, 정치 부패와 다양한 사회 문제 등으로 고통을 받는 중이다.


이 외에도 지난 2014년 11월 총선거를 치르고도 2015년 4월까지 거의 6개월 가까이 연방 정부와 의회를 구성하지 못하는 등 정정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경제 현안 및 개혁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내 아직 미가입국인 남동부유럽 국가들로의 회원 확대를 추진 중인 EU에게 있어, 보스니아의 평화 정착과 사회 통합은 큰 과제 중 하나로 남아있다 하겠다.


이에 따라 지난 2015년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EU는 경제 발전 및 개혁을 요구 조건으로 보스니아에 EU 기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이후 EU 집행위원회는 향후 3년간 10억 유로를 들여 보스니아 개혁을 지원하고, 인프라 개선에 추가로 5억 유로를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내전 종결 20년이 될 때까지 그 해결 기미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보스니아 내 민족- 종교 간 갈등 해소와 사회 통합 문제의 실마리를 EU 등 국제 사회가 개입할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지난 보스니아 내전 과정상에서 빚어진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의 아픔과 상처로 인해 보스니아 내 민족-종교 간 갈등의 골이 매우 깊게 패여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향후 보스니아가 EU 가입을 하는 데 있어 필요한 개혁들을 민족 계파들이 서로 합의해가며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 국제 사회는 많은 우려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보스니아는 현재, 1995년 10월 내전 종식을 위해 미국이 주도했던 ‘데이턴 평화안’ 원칙에 따라, ‘1 국가 2 체제(One State-Two Systems)’라는 독특한 정치, 행정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그 협정안에 따른 여러 부가적인 조치들이 현재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내전이 종결되고 평화협정이 이행된 지 20년을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보스니아의 현실과 민족 문제는 그 해결 기미가 쉽게 보이지 않고 있다.


‘데이턴 평화안’에 따른 제도적 조치들과 UN 평화유지군의 역할이 비록 외면적인 평화를 가져오기는 했으나, 중세 오스만 터키 지배 이후로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보스니아 내 민족 간의 내면적 아픔과 지난 보스니아 내전 당시 겪어야 했던 고통의 상처들이 쉽게 치유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전 종결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동안 이 지역 내 평화 정착과 민족 간 갈등 해결이 풀리지 않는 배경에는 내부 민족들 간의 ‘역사 인식 공유’와 실질적인 ‘사회 통합 노력’이 실패한데서 그 근본적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2014년 6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린 ‘사라예보 총격 사건 100주년’을 기념해, 내전 당시 불탔다가 재건된 국립 도서관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EU 주제곡인 ‘환희의 송가’와 함께 보스니아 내 민족 간 화합과 사회 통합 그리고 보스니아의 EU 편입 희망 등을 노래했지만, 당시 세르비아계는 총격 사건의 주인공인 세르비아계 청년인 가브릴로 프린찌프(Gavrilo Princip)에 대한 다른 민족 계파의 역사적 해석 차이를 빌미로 이에 불참하며 따로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무엇보다도, 각 민족 계파 별로 자 민족에게 유리하도록 교육되고 있는 ‘조각 난 역사 배우기’의 답습은 앞으로도 이러한 역사 인식에 대한 공유와 민족 간 사회 통합이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게 하고 있다.


세 번째, EU 가입의 전제 조건이 그러하듯 보스니아의 EU 가입을 향한 과제에는 바로 주변 민족들과의 역사적 화해가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하겠다. EU 가입을 국가 최대 목표로 정한 이웃 국가인 세르비아는 EU 가입의 전제 조건인 주변 민족들과의 역사 화해 차원에서 보스니아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를 수차례 보여 왔다.

하지만, 2015년 7월 ‘스레브레니짜(Srebrenica) 학살2)’20주기를 맞이해 보스니아의 스레브레니짜를 방문한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 부취치(Aleksandar Vučić) 총리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유럽연합(EU) 대표단을 비롯해 전 세계 각국 인사들이 함께한 이 자리에서 곤혹을 치러야만 했었다. 그는 이 사건에서 집단 대량 학살을 의미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란 표현 대신에 ‘범죄’라는 표현을 썼었고, 이에 대해 보스니아 무슬림들의 거친 항의를 받아야만 했었다.


이 사건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집단 학살로 규정되며, 2007년 2월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세르비아군에 의한 계획적 집단 학살이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세르비아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하여 왔다. 이에 대해 세르비아 외무부는 “군중들의 공격은 부취치 총리뿐만 아니라 세르비아 국가, 평화 정책, 지역 협력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러한 공격은 양국 간의 더 나은 미래를 이끌 수 없다”고 강력히 항의하기도 했다.


유럽 평화에 있어 보스니아의 영구적인 평화 구축 중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EU 등 국제 사회의 분명한 목표가 되어 왔다. 하지만, EU와 국제 사회가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보스니아의 EU 가입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그리 편안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보스니아가 향후 정치, 경제, 사회의 개혁과 함께 보스니아 내 민족 간의 역사 인식 공유와 사회 통합 노력의 결실을 이루어가고, 이를 기초로 EU 가입을 향한 여러 과제와 난제를 이겨낼 수 있을지 국제 사회의 관심이 커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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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국가 2 체제’라는 독특한 행정 체계와 복잡한 정치 형태를 띠고 있는 보스니아는 ‘데이턴 평화안’에 따라 대통령 선출의 경우, 3개 민족계파를 각각 대표하는 3명 대통령이 4년 동안 대통령 위원회를 구성하게 되며, 가장 다수 득표한 대통령을 시작으로 각 대통령이 8개월에 한 번씩 의장 대통령을 역임하게 된다. 실제, 오늘날 보스니아 정치 형태의 기틀은 보스니아 내전을 종결시킨 ‘데이턴 평화안’에 기인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스니아는 세르비아계(정교도)가 장악한 49%의 ‘스르프스카 공화국(Republika Srpska)’대(對) 보스니아 무슬림(이슬람)과 크로아티아계(가톨릭)가 연합한 51% 영토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Federation of Bosnia and Herzegovina/ Federacija Bosne i Hercegovine)’으로 나뉜 챈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스레브레니짜 대학살’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해 보스니아 무슬림이 집단 학살되어 매장된 사건으로, 현재 확인된 희생자는 7,826명이며, 실제로는 8,000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6,974명이며, 2015년 7월 추모식에는 추가 확인된 136명의 주검이 안장됐다.

 

[참고문헌]
- 김철민, “2014년 보스니아 소요 사태, 그 배경과 향후 전망”, EMERICS, 2014. 02,
- 김철민, “사라예보 총성 100년, 제 1차 대전 발발 100주년, 역사적 교훈과 우리의 선택”,  EMERICS, 2014. 07,
- Balkaninsight, “Bosnia Split Over EU Membership Application”, 2016. 2. 16.
- EUobserver,  “Bosnia applies for EU membership”, 2016. 2. 15.
- Radio Slobodna Evropa, “BiH predala zahtjev za članstvo u EU”, 2016.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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