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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볼리비아-칠레의 영토 분쟁

볼리비아 / 칠레 차경미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 연구교수 2016/06/08

최근 볼리비아-칠레 양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Evo Morales:2005-현재)은 칠레 정부가 접경지역 군사기지 설립 및 미사일 배치 등 다양한 군사적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바첼렛 대통령은(Verónica Michelle Bachelet:2014-현재) 마약과 밀수 통제 그리고 각종 범죄로부터 자국민 보호를 위해 국경 지역 수비강화는 필요한 조치라고 대응했다. 그러나 모랄레스 대통령은 국경 지역을 대상으로 한 군사적 행동은 엄격하게 이웃 국가에 대한 전쟁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양국의 영토 분쟁은 태평양 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태평양 전쟁은 1879년 4월 칠레와 페루 그리고 볼리비아 세 나라가 아타카마(Atacama) 사막 초석 지대를 둘러싸고 대립하여 발발한 전쟁이다. 볼리비아가 칠레의 초석 수출 회사에 과세를 강화하자 칠레는 볼리비아의 영토 리토랄(Litoral)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초석 획득을 목적으로 페루의 타라파카(Tarapacá)에 병력을 파견하였다. 1880년 페루와 볼리비아 동맹군은 칠레에 패하였고, 1884년 체결된 강화조약으로 칠레는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지역과 광물자원이 풍부한 타라파카 그리고 리토랄 지역을 병합했다.

태평양 전쟁 패배로 볼리비아는 해안 진출 통로를 상실하였다. 안데스 산악지역에 위치하여 육로운송이 원활하지 못한 볼리비아가 해안 진출로를 상실한 것은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이었다. 페루 역시 타라파카를 포함하여 영토 일부를 상실하였으며 모케과(Moquegua) 지역은 페루가 관할하는 탁나(Tacna)와 칠레 영토로 편입된 아리카(Arica)로 분리되었다. 또한 볼리비아의 아타카마 사막은 칠레 주민과 자본에 의해 통제되었다. 현재 볼리비아-칠레 양국 분쟁은 태평양 전쟁을 계기로 볼리비아가 상실한 해상 영유권을 주장하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태평양 경제권의 부상과 수자원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해상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심화되고 있다.

볼리비아-칠레의 분쟁은 실랄라 강(el Río Silala) 수자원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볼리비아의 초케우안카(David Choquehuanca) 외무부 장관은 양국 국경으로부터 4km 떨어진 자국의 영토 포토시(Potosí)에 위치한 실랄라 강의 물을 칠레가 불법으로 남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볼리비아 정부의 허가로 1908년 칠레 철도 회사가 건설한 터널을 통해 칠레는 타국의 수자원을 사용료 없이 마음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실랄라 강물은 칠레 광산 회사에 의해 북쪽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칠레 정부는 양국 모두 강물에 대한 동일한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다. 강은 볼리비아 영토에서 시작되지만, 강물이 칠레의 태평양 수로인 산 페드로 강 (el Río San Pedro)으로 흘러 들어옴으로써 칠레 역시 강물 사용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언급했다.

칠레 정부는 모랄레스의 해상영유권 주장은 국내 정치적 위기 모면용이라고 말했다. 외무부 장관 무뇨스(Heraldo Muñoz)는 양국 국경선이 확정된 1904년 협정을 아무런 반론 없이 인정했던 볼리비아가 최근 들어 해상영유권을 구실로 칠레와 분쟁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첼렛 대통령 역시 모랄레스 대통령이 재선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실패한 이후 국내정치적 문제 출구용으로 칠레를 이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만약 볼리비아 정부가 지속해서 갈등을 유지한다면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언급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해상영유권 주장에 대해 칠레정부는 일관되게 1904년 양국이 합의한 국경선 협정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볼리비아-칠레에서 전개되는 분쟁을 포함하여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국경선의 불화로 이웃 국가들과 무력충돌 및 다양한 강도의 정치적 긴장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리고 그 갈등의 불씨는 항상 존재하고 있다. 최근 페루-볼리비아 접경지역에서는 아이마라 원주민의 영토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야기되었다. 양국은 해발 3,600m 세계 최고 고지에 위치한 티티카카(Titicaca) 호수를 둘러싸고 접경을 형성하고 있다. 티티카카 호수 주변은 아이마라(Aymara) 원주민 밀집 거주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마라 원주민은 티티카카 호수에 인접한 알티플라노(Altiplano) 사이에 고대도시 티아우아나코(Tiauanaco)문명을 형성하였다. 티아우아나코 문명은 현재 볼리비아의 수도 라 파스(La Paz)를 중심으로 성장 발전하였다. 아이마라 원주민은 타완틴수요(Tawantinsuyo)와 티와나쿠(Tiwanaku)라는 중앙 행정체계를 통해 영토를 정비하였다. 타완틴수요는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던 잉카와 경쟁 관계를 형성했으며 콜롬비아 남쪽, 에콰도르, 페루, 아르헨티나 북서쪽 그리고 칠레의 중앙지역까지 연방을 건설하였다. 오늘날에도 아이마라 원주민은 페루, 볼리비아, 칠레 접경지역 그리고 아르헨티나 일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1936년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선이 형성되었다. 국경선은 양국의 정치적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여러 번 변경 혹은 수정되었다. 페루와 볼리비아 접경지역 푸노(Puno) 주 산티아고 데 욱시(Santiago de Ojje)1) 마을은 국경선 형성과정에서 최초로 분리되었던 아이마라 공동체였다. 1932년 페루와 볼리비아 양국은 영토를 직선으로 분할하는 데 합의하였고 원주민은 혈연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국적 아래 놓이게 되었다. 협정에 따라 볼리비아의 산티아고 데 욱시 마을은 페루 영토로 변경되었고, 페루가 관할하던 타푹시(Tapojje)2)마을은 볼리비아 영토로 수정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현재 접경지역 토지소유권을 둘러싼 원주민 종족 분쟁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볼리비아 국적의 76세의 마마니(Guillermo Arratia Mamani) 아이마라 원주민은 1958년 페루 정부가 발행한 토지소유 증명서를 근거로 부모님 명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적이 변경되었을 뿐 조상에게 물려받은 토지에 대한 권리가 상실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류상의 국적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셈이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영토분쟁은 동일한 역사적 유산을 놓고 분쟁국 모두 자국의 역사를 주장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영토분쟁은 국제정치뿐만 아니라 국내문제의 주요쟁점으로 발전하였다. 각국은 분쟁지역에 대한 자국의 역사를 도구로 동원하여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였다. 볼리비아-칠레 역시 역사적 논리를 내세워 자국의 이익을 대변했는데 이러한 주장은 경제적 이유나 군사 전략적 이유 등과 같은 실질적 동기와 연결될 때 힘을 발휘했다.

볼리비아-칠레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지역 해양 국경 지역 한계선은 그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분쟁 해당 국가들은 자국의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특정 지역에 대한 일국의 귀속기준들은 객관성을 확보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상황에 따라 임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진행되었던 여러 분쟁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볼리비아-칠레는 각각 자국의 역사적 근거를 내세워 해상영유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만 실제로 그 배후에는 경제적 이해가 자리하고 있음을 판단할 수 있다. 

날로 격화되는 볼리비아-칠레 분쟁 상황에서 우리는 2014년 국제헌법재판소 페루-칠레 분쟁중재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페루-볼리비아-칠레 삼국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접경지역은 역사적으로 아이마라 원주민의 삶의 터전이다. 독립 이후 엘리트들의 전쟁과 갈등을 통해 형성된 국경선으로 아이마라 원주민의 공간은 분리되었다. 접경지역 원주민은 서로 다른 국적 아래 살아가고 있지만, 동일언어를 바탕으로 종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페루-칠레, 볼리비아-페루 그리고 볼리비아-칠레 영토분쟁 지역은 아이마라 원주민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국제헌법재판소는 페루-칠레 양국 분쟁중재 과정에서 아이마라 원주민의 전통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이마라 원주민은 전통적으로 바다를 전쟁이나 분쟁 도구로 활용하지 않으며, 바다는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인식하였다. 원고인 아이마라 쿠야나 원주민 의회 (Parlamento Pueblo Qullana Aymara:PPQA)는 근대국가 페루와 칠레가 형성되기 이전 페루의 모케과(Moquegua)로부터 칠레의 이키케(Iquique)까지의 영토는 아이마라 원주민의 공간이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국제헌법재판소는 페루-칠레 양국의 해양영유권 분쟁 중재에 앞서 양국에 걸쳐 삶을 영위하고 있는 아이마라 원주민의 영토에 대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국제헌법재판소는 분쟁지역에 대해 페루와 칠레는 단지 18세기 이후의 자주권을 인정하였고 반대로 이 지역에서 5천 년 이상 삶을 유지해온 아이마라 원주민의 권리도 인정하였다. 해양이 전쟁과 분쟁이 아닌 통합과 공존의 공간임을 수용한 것이다.

국민국가의 경계선이 명확하게 형성된 이후 접경지역 사람들은 동일한 문화권 속에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고 세계도처 접경지역은 공동의 문화공간 위에 놓여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페루-볼리비아-칠레 삼국 접경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아이마라 원주민은 국가의 소속을 달리하지만 하나의 삶 터전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동일한 문화권 속에 공통의 정체성을 지향할 가능성 높다. 국제헌법재판소는 페루-칠레에서 전개되고 있는 영토분쟁 중재과정에서 국민국가가 접경지역을 영유하기 위해 고안해낸 민족사적 논리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접경지역이 현실적 삶의 공간이자 역사적 공간이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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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마라어 발음으로 표기하였음.
2) 아이마라어 발음으로 표기하였음.

 

[참고문헌]
- Albó Xavier(2000). "Aymara entre Bolivia, Perú y Chile". Estudios Atacameños, No. 19. Instituto de Investigaciones Arqueológicas y Museo, Chile: Universidad Católica de Norte.
- 차경미(2015). 페루-볼리비아 접경 푸노(Puno) 지역 아이마라(Aymara)원주민 종족 갈등의 원인. 비교문화연구 제 41집.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 El Mundo(http://www.elmundo.es/internacional/2601d91158b4590.html)
- BBC Mundo(http://www.bbc.com/mundo/2016/chile_bolivia_disputa_rio_silala_)
- El Pais(http://internacional.elpais.com/internacional/2015/10/06/actualidad/.html)
- La Republica( http://larepublica.pe/peru-y-bolivia-por-tierras-en-lago-titicaca)
- Diario U Chile( http://radio.uchile.cl/2016/03/28/chile-bolivia-un-conflicto arte-i)
- Laula.pe(https://redaccion.lamula.pe/aymara-garantizan-de-paz-en-e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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