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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인터뷰)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선거의 의미와 향후 전망

우즈베키스탄 성동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교수 2016/12/19

지난 9월 2일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 대통령이 사망했다. 그는 1990년 독립 이후 권력을 장악하여 25년간 우즈베키스탄을 통치했다. 12월 4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면서 그의 사망 이후 우즈베키스탄은 건국 이래 최초로 대통령이 바뀌는 순간을 맞이했다. 위와 관련하여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성동기 교수와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선거의 의미와 향후 전망에 대한 인터뷰를 실시했다.

 

 

Q1. 독립 전후 우즈베키스탄의 정치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
우즈베키스탄 전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는 사마르칸트 파벌 출신이며 독립 전에 이미 우즈베크 사회주의 공화국 공산당 서기장으로 있었다.
그는 독립 이후 첫 번째 대통령 선거에서 대중적으로 지지도가 높았던 에르크(Erk, 자유)당의 무함마드 살리흐(Muhammad Slih), 브를릭(Birlik, 통합)협회의 압둘라힘 풀라토프(Abdulahim Pulatov), 그리고 이슬람부활당을 견제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슬람 카리모프는 당선 이후에 정적들을 테러와 추방으로 제거하였으며, 이슬람 단체의 정치적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다. 그리고 사마르칸트 파벌 중심의 권력 집중화를 통해서 여타 지역 파벌들을 통제하였다. 독립 초기부터 이슬람 카리모프는 권력의 중앙집권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하였다.

 

Q2. 카리모프 전 대통령은 어떤 인물이었나?
1938년 사마르칸트에서 출생한 이슬람 카리모프는 사실상 유년기를 고아원에서 보냈다. 그는 1960년에 지금의 타슈켄트 공대를 졸업하고 수자원 기술자로서 활동하였다. 1967년에는 타슈켄트경제대학교에서 경제학석사를 취득하였다. 그는 1966년부터 1986년까지 우즈베크 사회주의공화국의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1986년에 카시카다리야(Kashkadariya)주의 공산당 서기장을 역임했으며, 1989년에 사마르칸트 파벌의 대부인 이스마일 주라베코프(Ismail Jurabekov)가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정치 신인이었던 이슬람 카리모프를 추천하여 그는 공화국의 당서기로 발탁되었다.
이슬람 카리모프는 소비에트 체제 하에서 사실상 고아였지만 이를 극복하고 대통령이 된 입지적인 인물이다. 따라서 그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누구보다도 찬양하는 공산주의자였다.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의 정치ㆍ경제 부문에서 그의 이러한 신념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정치적 권력 다툼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정함과 잔인함은 그의 성장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Q3. 독립 이후 카리모프 대통령의 치세 동안 우즈베키스탄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겪어왔나? 또한, 카리모프 대통령은 후계 구도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왔나?
이슬람 카리모프의 국정운영 방향은 철저하게 정권 안정을 기반으로 했다. 대외정책 노선에서 이것은 잘 나타났다. 독립 초기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으로 노선을 유지하다가 안디잔(Andijan) 사태 이후 러시아로 급변한 것이 대표적이다. 경제 부문에서도 서구자본을 받아들여 급진적 개혁을 시도하다가 정권이 불안해지기보다는 경제적 혼란을 최소화하는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였다.
그의 이러한 국정 운영으로 이중환율, 불태환 등과 같은 문제점들이 지속되고 있으나,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이 독립 초기에 급진적 개혁을 통해서 국가 혼란을 초래했기 때문에 그의 정책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으며, 2000년 이후 연 8%의 꾸준한 성장이 지속되면서 그의 정책은 고착화되어버렸다.
그는 2007년 이후부터 장녀인 굴노라를 후계자로 생각했으나, 국민의 정서를 고려하여 포기하였으며, 이후 미르지요예프 총리에게 무게를 두었다.

 

Q4. 카리모프와 그의 치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슬람 카리모프는 25년 동안 장기 집권한 독재자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지역 파벌들을 통제하여 정치 안정을 유지하였고, 경제적으로 점진적이고 폐쇄적인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연 8% 성장을 지속시켰고, 사회적으로 120여 민족이 거주하지만 민족분쟁 한 번 일어나지 않는 국가로 만들었다.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은 이러한 안정과 평화를 그의 공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2005년 5월에 발생한 안디잔 사태는 지방의 열악한 경제 상황, 무자비한 무력진압, 지역 파벌의 잠재적 위협 등과 같은 카리모프 정권의 숨겨진 문제점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는 탈레반이 한창 세력을 확장할 때, 자국과 지역 안보에 공헌하였다. 그러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악용하여 국내문제를 덮어버리는 전략도 구사하였다.
결과적으로 정권의 안정과 자국의 안보라는 명분을 앞세워 자국을 폐쇄화 시킨 이슬람 카리모프의 과오는 차기 정권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되었다.

 

Q5. 그의 사망 이후 우즈베키스탄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나?
이슬람 카리모프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차기 지도자가 현재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정치에서 지역 파벌의 동요가 나타났다. 기존의 사마르칸트-타슈켄트 연합이 붕괴되어 각각의 지역 파벌이 독자적으로 차기 정권을 차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 당선자는 사마르칸트 파벌이고 수석 부총리인 아지모프는 타슈켄트 파벌이다. 그러나 국가안전위원회 의장인 이노야토프는 기존의 사마르칸트-타슈켄트 연합이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미르지요예프를 지지하였다.
무엇보다 미르지요예프 당선자는 스스로를 제2의 이슬람 카리모프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정책 노선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공표하였다. 따라서 예상보다 평화롭게 차기 정권이 탄생하였으며, 이슬람 카리모프 사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Q6. 현재 대통령 대행이자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는 미르지요예프는 어떤 인물인가?
미르지요예프 전 총리이자 당선자는 1957년생으로 사마르칸트 출신이다. 타슈켄트 구청장, 사마르칸트 주지사를 거쳐 2003년부터 13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였다.
그는 저돌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아서 이슬람 카리모프의 신임을 받았다. 정치적 라이벌인 아지모프 수석 부총리와는 불편한 관계지만, 지역 파벌들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우즈베키스탄의 정치적 안정을 지킬 수 있는 적임자라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해외 전문가들은 그가 러시아와의 관계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어서 이 점이 강대국들과의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르지요예프의 과제는 이슬람 카리모프가 남겨준 이중 환율과 불태환과 같은 왜곡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비록 총리직을 13년 수행했지만 국정 경험이 부족해서 집권 초기에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Q7. 그가 이번 대선에서 내건 주요 공약은 무엇이었나? 각 공약의 의미는 무엇인가?
미르지요예프는 근본적으로 이슬람 카리모프의 모든 정책을 그대로 승계한다고 공표하였다. 그는 국가 발전 목표로 “강력한 국가에서 강한 시민 사회로”로 정의하면서 나름의 민주주의 목표를 공약에서 제시하였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법치를 강화하고 사범제도를 개혁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경제 부문에서는 경제개혁을 보다 더 강력히 추진하고 거시경제의 안정과 지속적인 성장을 정책의 방향으로 정하였다. 특히 GDP를 2030년까지 2배로 향상시키고 전체 산업부문에서 공업이 40%를 차지하게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 밖에도 종교적 관용성, 민족들의 조화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외교 부문에서는 이슬람 카리모프의 정책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외국의 내정 간섭 금지, 평화와 정치적 수단을 통해서 분쟁 해결, 모든 외국과 실천적 협력 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Q8. 카리모프 전 대통령과 미르지요예프의 성향과 정책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르지요예프의 대선 공약은 이슬람 카리모프 정책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미르지요예프는 카리모프와 다른 노선을 갈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슬람 카리모프 정권을 창출한 사마르칸트 파벌은 1999년 폭탄 테러로 그를 살해하려고 시도했다, 이후 이슬람 카리모프는 타슈켄트 파벌에게 이권 분배를 약속하고 연합했다. 그러나 미르지요예프는 타슈켄트 파벌인 아지모프 수석 부총리를 대선주자로 나오지 못하도록 타슈켄트 파벌의 대부격인 이노야토프 국가안전위원회 의장과 합의했다. 그러나 올해 72세인 이노야토프가 사망한다면 그는 사마르칸트 파벌을 중심으로 권력을 집중시키려고 할 것이다.
아무래도 이슬람 카리모프보다 권력기반이 약한 그가 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자신의 권력 집중화에 있다.  

 

Q9. 우즈베키스탄의 정치사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우즈베키스탄의 정치력은 지방 중심의 지역 파벌들에서 나온다. 이슬람 카리모프는 집권 초기에 사마르칸트 파벌을 중심으로 권력을 집중시켰지만, 1999년에 타슈켄트 파벌과 연합하면서 절묘한 힘의 균형을 만들어냈다. 이후에도 그는 여타 지역 파벌들의 도전을 막아내면서 정치적 안정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슬람 카리모프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인해서는 차기 통치자는 지역 파벌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이슬람 카리모프가 25년 동안 정치적 안정을 추구한 것은 지역 파벌을 강하게 통제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의 사후에 그동안 불만을 가졌던 여타 지역 파벌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차기 정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미르지요예프 정권은 기존의 안정적인 지역 파벌 구도를 유지하면서 권력을 강화해 나가야 하는 이중적인 부담을 가지고 출범하게 되었다.

 

Q10. 미르지요예프가 취임한 이후 우즈베키스탄은 어떠한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미르지요예프는 무엇보다 국정 경험이 부족하다.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국가의 특성상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모두 대통령이 결정해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경험이 부족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중환율과 불태환 정책을 고수한다는 것은 현재 침체되어 있는 우즈베키스탄 경제에 독이 될 것이다. 서구에 자국 시장을 개방해서 투자를 유치하면 위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지만, 과도기적인 혼란이 발생하면 정권 안정에 치명타가 될 것으로 예상해서 미르지요예프는 시장을 개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대외관계에서도 이슬람 카리모프의 정책을 유지한다고 약속했지만 러시아에 비중을 높게 두고 있어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결국 국내의 경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러시아의 지원에 의존한다면 국민의 불만이 높아질 것으로 사회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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