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크로아티아-보스니아 내전 전범 처리 논쟁과 극우 민족주의 확대 의미

크로아티아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2016/12/29

지난 11월 크르스티체비치(Krsticevic) 크로아티아 국방부 장관은 보스니아 전쟁에 참여한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발표했다. 그는 자신이 당시 이끌었던 육군 4여단은 보스니아의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주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자신의 전쟁 범죄에 대해 부인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항의하자 플렌코비치(Plenkovic) 크로아티아 총리가 나서 국방부 장관을 옹호하기도 했다. 위와 관련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김철민 교수와 크로아티아-보스니아 전쟁 전범 처리 문제의 현황과 전망에 대한 인터뷰를 실시했다.

 

 

Q1. 대량 난민 유입과 경제 악화 등 여러 문제로 현재 유럽은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극우 세력들의 득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EU 내 극우 세력 대두는 어느 정도인가? 
영국의 EU 탈퇴와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국제 사회의 불안정성, 그리고 세계 경제의 장기적 침체는 현재 유럽 전역에 걸쳐 새로운 ‘포퓰리즘 폭풍’을 안겨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반(反)세계화’와 ‘반(反)이민자 수용’을 기치로 내건 극우 정당 및 세력들이 목소리를 보다 높이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지지 여론도 계속해서 확대되는 중이다.
네덜란드는 EU 탈퇴, 즉 ‘넥시트(Nexist)’를 주장하는 극우 자유당이 내년 2017년 3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며, 역시 2017년 4월과 5월 실시될 프랑스 대선에선 이미 우파와 극우 간 대결이 예측되고 있다. 우파 성향의 제1야당인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François Fillon, 1954~ ) 후보는 이민자 억제와 기독교적 가족 가치를 되살리겠다고 공약하고 있고,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Marine Le Pen, 1968~ ) 후보는 노골적으로 반(反)이민, 반(反)이슬람 외에도 반(反)EU, 즉 ‘프렉시트(Frexit)’ 정책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더불어, 포용적 이민자 유입과 EU 확대에 적극적인 독일 또한 2017년 8-10월 사이에 치러질 총선에서, 메르켈 총리의 4연임 여부가 불확실하며, 현재 지지율 3위인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의 선전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Q2. 동유럽도 또한 이러한 극우 목소리가 보다 터지고 있고, 이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우려 또한 높아지는 상황이다. 동유럽 극우 세력 양상 소개와 함께 서유럽과 비교해 그 차이점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현재 동유럽에서의 극우 성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국가는 폴란드와 헝가리, 크로아티아이다. 우선 폴란드의 집권당인 ‘법과 정의당(Law and Justice Party)’은 가톨릭적 세계관을 기초로 공영매체 장악, 낙태 금지 법안 추진과 반(反)난민을 주요 정책으로 내거는 등 극우 성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헝가리 여당의 경우 이민자 유입 반대 정책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전체 199석 중 24개 의석을 지닌 극우 정당인 ‘요빅, 더 나은 헝가리를 위한 운동(Jobbik, the Movement for a Better Hungary)’은 헝가리의 이익과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며, 급진적 애국주의와 기독교 정당 색채를 분명히 하면서 헝가리 국민들의 지지세를 보다 확장해 가는 중이다.
이중 발칸 반도에 자리한 크로아티아는 집권 여당인 ‘크로아티아 민주 동맹(CDU: Croatian Democratic Union/ HDZ: Hrvatska demokratska zajednica)’의 암묵적 지지 속에 인종, 종교 등 문화적 민족주의 색채가 보다 가미되면서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되고 있다.
서유럽 극우 성향 확대는 주로 ‘경제 문제로 인한 불만’과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분석할 수 있다. 기존 정치 세력들이 무슬림 난민과 이민자 유입을 인정하거나 이를 방조해 왔고, 그 결과 이로 인한 일자리 축소와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극우 집단의 목소리에 국민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반면, 동유럽의 극우 목소리 안에는 기존 서유럽의 특징들 외에도 오랜 지리적 위치와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한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갈등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과거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불안감과 민족 간 갈등들이 내면 깊숙이 깔려 있는 상황 속에서, 극우 세력들이 주도하는 포퓰리즘이 이를 부추기는 형세라 할 수 있다. 만약 문화, 민족, 종교적으로 복잡한 동유럽의 특성상 극우 세력들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희생자를 찾게 될 경우, 그 폭발력이 더욱 크게 드러날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에 있어 국제 사회의 관심이 보다 높아지는 상황이라 하겠다.

 

Q3. 실제, 동유럽 국가들 중 크로아티아는 보다 강경한 극우 성향을 보이고 있어 국제 사회 우려가 큰 게 사실이다. 이번 크르스티체비치의 신임 국방부 장관 임명과 그의 극단적 발언 등이 논란이 되고 있는 데 그의 이력에 대해 설명해 달라.
‘유고 내전(1991.9~1995.10)’과 ‘보스니아 내전(1992.3~1995.10)’에 참전해 여러 전공을 세운 이력으로 유명세를 얻은 다미르 크르스티췌비치(Damir Krstičević, 1969~ )는 크로아티아 브르고라쯔(Vrgonac)에서 출생해 이곳에서 중등학교를 이수하였다. 이후 1991년 ‘유고 연방군(JNA: Jugoslovenska narodna armija) 군사 학교’를 졸업한 그는 크로아티아 군대에 들어가 ‘유고 내전(크로아티아에선 ‘조국 해방전쟁’이라 부름)’에 참전하여 육군 115여단 지휘관 등을 거치며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내전 종결 이후엔 미 육군 군사 학교에 들어가 우수한 성적으로 1년간 이수 과정을 마쳤고, 이후 돌아와 국방부 참모 차장 임무를 수행하였다.
하지만, 그의 고속 승진은 1999년 말 그의 강력한 지지자이자 극우 민족자의로 ‘유고 내전’을 지휘했던 프란요 투즈만(Franjo Tuđman, 1922~1999, 재임 1990-1999) 대통령이 사망하게 되면서 위기를 맡게 된다. 새롭게 민주 정권인 스트예판 메시치(Stjepan Mesić, 1934~ , 재임 2000~2010) 대통령 체제가 들어서자 그는 2000년 9월, 12명의 공동 발의가 담긴 공개서한을 통해 정부 정책에 불만을 표시했고, 곧바로 직위에서 해임되게 된다. 이후 별다른 정치적 활동 없이 지내오던 그는 이번 2016년 10월 개각에 따른 극우 정권 등장에 따라,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에 임명됨으로써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Q4. 크로아티아와 이웃 국가인 보스니아에서 세르비아계가 크르스티체비치 국방부 장관을 전범으로 고발했는데, 그 내용과 배경은 무엇인가?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가 주도하는 ‘스르프스카 공화국(RS: Republika Srpska)’은 2016년 올해 11월 이번에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크르스티췌비치를 비롯해 다른 15명의 고위 공직자들이 보스니아 내전 동안 인종 학살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들어 전범 재판에 회부할 것을 사라예보 검찰청에 요청하였다.
하지만, 크르스티췌비치는 이에 대해 지난 조국 해방 전쟁과 보스니아 해방 전쟁에 참전한 사실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우며, 당시 이끌었던 육군 4여단은 크로아티아는 물론 보스니아의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주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주장하고 있는 자신의 전쟁 범죄에 대해서도 강력히 부인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고소장을 통해 크르스티췌비치가 유고 내전과 보스니아 내전 동안 크로아티아군의 군사 작전인 ‘폭풍 작전(Operation Storm/ Operacija Oluja)을 주도했고, 전범으로 고발된 안테 고토비나(Ante Gotovina, 1955~ ) 장군과 함께 전쟁을 수행하면서 여러 전쟁 범죄를 행했다고 주장하였다. 
실제, 극단적 민족주의자인 안테 고토비나는 지난 2000년 9월 민주 정부에 반기를 든 12명 항명 파동의 대표 인물 중 하나였으며, 당시 크르스트췌비치와 함께 성명을 주도함으로써 장군직에서 밀려난 인물이다. 그는 지난 내전들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이유로 ‘구(舊)유고 국제전범재판소(ICTY: 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에 의해 전범으로 기소 된 후, 약 4년간을 숨어 지내다가 2005년 스페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이후 헤이그로 이송되어 재판 끝에 2012년 석방된 인물이다.

 

Q5. 그렇다면 소위 크로아티아 해방 전쟁과 보스니아 내전 당시 단행된 ‘폭풍 작전’ 내용 및 그 결과에 대해 설명해 달라.
우선, 유고 내전에 대해 크로아티아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조국의 독립을 가져오기 위한 ‘해방 전쟁’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민족 중심주의와 극우 민족주의자적 시각에 입각한 자의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인에게 당시 내전은 조국 해방 전쟁이지만, 그 안에 거주하고 있던 세르비아계와 타민족에게 있어선 인종 청소 전쟁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발칸반도에서 종종 대두되고 있는 ‘조각난 역사 퍼즐’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고 내전과 보스니아 내전이 끝나가는 1995년에 들어와서야 크로아티아군은 전력 보강을 통해 재정비를 할 수 있었고, 세르비아계에 의해 상실된 영토 회복을 위한 군사 작전들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갔다. 크로아티아 조국 해방을 위한 최대 전투이자 보스니아 내 크로아티아계 지역 장악을 목표로 한 대규모 군사 작전인 ‘폭풍 작전’ 또한 1995년 8월 단행되었다. 이 작전은 안테 고토비나와 크르스티체비치 등이 주도하였다. 작전 결과 크로아티아군은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계가 세운 ‘크라이나(Krajina) 공화국’ 붕괴와 함께 내전 동안 상실했던 영토 회복 그리고 서부 보스니아 지역의 영토 탈환이라는 결실을 이루게 된다.

 

Q6. 당시 크르스티췌비치가 참전했던 ‘폭풍 작전’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나?
유고 내전과 보스니아 내전 초기 중무장한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세르비아계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크로아티아와 서부 보스니아 지역에 걸쳐 대규모 영토를 차지하였으며, 크닌(Knin)을 수도로 한 ‘크라이나 공화국’을 수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95년 8월 국제 사회 지원 속에 전열을 정비한 보스니아군(무슬림계 중심), 그리고 이와 연합한 크로아티아군은 이들 지역 탈환을 위해 대규모 군사 작전을 감행하였다. 당시 작전에서 크로아티아군과 특수 경찰부대는 약 200여 명, 세르비아계는 약 560여 명 그리고 UN 평화유지군 또한 4명이 희생되게 된다. 결과적으로 크로아티아군은 약 4,000명의 세르비아계 병사들을 포로로 잡는 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군사 작전에 성공한 크로아티아군과 보스니아군은 곧바로 세르비아계에 대한 대규모 인종 청소를 단행하게 된다. 이에 대해 크로아티아 정부는 당시 214명의 세르비아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를 포함해 세르비아 측은 이 학살 당시 1,644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으며, 약 15~20만 명이 다른 지역으로 강제 추방되었다고 반발하여 왔다. 이후 이들 지역에 오랜 동안 거주하여 왔던 대다수의 세르비아계는 사라지게 된다. 실제 국제인권단체인 ‘인권 감시(HRW: Human Rights Watch)’에 따르더라도 당시 작전으로 약 5,000여 개의 세르비아계 민간인 집이 파괴되었으며, 122개의 정교 사원 중 1개가 완전 파괴, 17개의 사원은 상당한 피해를 보았는데, 크로아티아군에 의한 사원 공격이 주로 주민 퇴각 이전 감행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이 작전 당시 희생된 세르비아계 민간인들의 죽음을 ‘대량학살(Genocide)’로 규정해 줄 것을 국제 사회에 요청했다.

 

Q7. 그렇다면 국제 사회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였나?
대규모 세르비아계 민간인 피해와 대량 인종 청소가 발생했던 이 사건이 접수되자, 국제 사회는 곧바로 안테 고토비나를 비롯해 3명의 장성을 전범으로 기소하였다. 2010년 세르비아는 ‘국제사법재판소(ICJ: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에 이 사건이 바로 크로아티아군의 ‘대량 학살’의 대표 사례라 주장하며 여러 크로아티아 관련자들을 고발하게 된다.
2012년 11월, ‘ICJ’는 당시 저질러진 범죄 행위에 대해  6,390 건의 신고를 접수받았으며, 약탈, 방화, 살인, 전쟁 범죄 및 기타 불법 행위로 2,380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ICTY는 최종 판결에서 당시 세르비아 주민들이 강제적으로 인종 청소되었다기보다는 대부분 주민이 전쟁을 피해 자발적으로 거주지를 떠났고, 비록 크로아티아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확인되었지만 그 숫자가 324명으로 ‘대량 학살’로 규정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Q8. 이것은 국제 사회가 1995년 ‘폭풍 작전’ 결과를 전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의 일련의 피해 사례들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유고 내전에 대한 크로아티아 국민들의 생각과 입장은 어떠한가?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극우 민족주의적 성향에는 어떻게 투영되고 있나? 
크로아티아 국민들 다수가 바라보는 유고 내전에 대한 시각은 분명하고도 단호하다. 내전이 자신의 조국을 유고연방으로 독립시키기 위한 ‘조국 해방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당시 진행된 크로아티아군의 행위들은 범죄가 아닌, 해방 전쟁을 위해 치를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자기 방어이자, 크로아티아 국민들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군사 행동이었다는 점이라 항변하고 있다.
따라서, 지난 2005년 자신들의 민족 영웅으로 인식하고 있는 안테 고토비나가 체포된 이후 스플리트를 비롯한 크로아티아 전역에선 약 4~7만 명가량의 군중들이 모였고, 이들은 한결 같이 그의 전범 재판소 회부를 강력히 저항하기도 했다. 더불어, 각종 여론 조사에서도 국민의 약 2/3는 안테 고토비나가 범죄자가 아니며, 그의 행위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크로아티아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목소리는 2012년 안테 고토비나가 석방되자 절정에 이르게 된다. 약 10만 명의 대규모 군중이 자그레브 상징 장소인 ‘반 옐라취치(Ban Jelačić)’ 광장에 모여 그를 환영하였고, 여기에 당시 요시프 보자니치(Josip Bozanić) 가톨릭 추기경 또한 자그레브 대성당에서 그를 위한 미사를 열기도 했다. 크로아티아 인구의 약 90%가 가톨릭 신자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가톨릭의 우경화는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극우적 성향 확대 배경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하겠다. 이후 안테 고토비나는 스플리트와 자다르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서 명예 시민증을 받는 등 오늘날 크로아티아 국민들의 영웅이자, 조국 독립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안테 고토비나는 석방 직후 자신과 크르스티췌비치 등이 참전한 지난 내전이 ‘조국 해방 전쟁’이었다는 입장이 국제사회에서 동의를 받은 것이라 주장하였다. 더불어, ‘조국 해방 전쟁’의 승리가 크로아티아의 미래를 새롭게 건설하는 굳건한 토대가 될 것이라 자평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은 바로 이번 우파 정권이 크르스티췌비치를 국방부 장관에 인선하고, 그의 행적들을 두둔하는 것과도 연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Q9. 마지막으로 크로아티아 극우 민족주의 성향 증대에 관한 향후 전망은 어떠한가? 그리고 우리의 상황과 비교하여 그 의미를 짚어본다면?
2016년 10월 19일, 크로아티아는 ‘크로아티아 민주 동맹’의 승리에 따라 우파 정권의 지속을 인정하였다. 새롭게 총리가 된 안드레이 플렌코비치(Andrej Plenković, 1970~ , 유럽의회 의원 2013-2016, 당수 2016. 07~, 총리 2016. 10~ )는 세르비아와의 긴장 관계 개선 중요성을 피력함과 동시에 서부 발칸 국가들(Western Balkans)의 EU 가입 지지를 발언하였다. 실제, 그는 취임 직후 보스니아를 공식 방문하는 등 발칸 지역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크로아티아-보스니아 내전 참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말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등을 자극해 여러 항의를 받았던 크르스티췌비치의 극우 민족주의 발언을 옹호하여 국제 사회의 의구심을 낳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플렌코비치 총리는 보스니아 방문 자리에서도 보스니아 EU 가입에 있어 크로아티아 지지의 전제 조건들을 제시하며 빈축을 사기도 했다. 여기에는 보스니아 내 3번째 소수 민족인 크로아티아계가 보스니아 내 무슬림계와 세르비아계가 누리는 만큼의 권리가 증진되길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더불어, 민족 간 효율성 증대를 위해서라도 보스니아 행정 구역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주장 또한 들어가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그동안 크로아티아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일관된 주장들로,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곧 크로아티아가, 보스니아 정부의 최대 목표인 EU 가입을 활용하여, 역외 크로아티아 소수 민족 문제에 대한 본격 개입 의지와 함께, 이들 거주 지역들에 대한 실질적 영향력 행사 의지를 보이려 한다는 점에 있어 발칸 지역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겠다.
우리는 한국 전쟁 이후 ‘반공(反共)’이 국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러한 역사 인식의 끈, 그리고 이로 인한 갈등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난 내전에서의 아픈 역사적 경험은 크로아티아의 오늘날 모습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극우 민족주의자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 또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한다 할 것이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