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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에티오피아의 국가비상사태와 다민족연방국가의 미래

에티오피아 이재훈 SGI 컨설팅 대표 2018/04/02

에티오피아의 국가비상사태와 다민족연방국가의 미래

 

악화되는 에티오피아 정정불안

 

군부독재자 멩기스투를 몰아낸 이래 에티오피아를 이끌어 온 멜레스 총리가 2012년 사망하여, 그 빈자리를 대신해 온 하일레마리암(Hailemariam Desalegn) 총리가 지난 2월 16일 갑작스럽게 사임을 발표하였다. 다음날인 2월 17일 에티오피아 내각(Council of Ministers)은 국가비상사태(National State of Emergency)를 선포하였다. 에티오피아의 국가비상사태는 6개월 만에 종료된 지난 2016년 10월의 국가비상사태에 이어 두 번째로, 이는 소수 민족 간 갈등과 폭력 사태에서 비롯된 치안 유지 불능 상황에 기인한 것이라고 에티오피아 국영방송공사(Ethiopia Broadcasting Corporation: EBC)가 내각 결정을 인용하여 발표하였다. 지난 1월, 국민적 화해와 소통을 위하여 단행된 20,000명이 넘는 정치범들의 석방이라는 정부의 유화적 제스쳐에도 불구하고, 오로미아 주(州) 에서는 시위가 지속되고 있으며, 암하라 지역에서도 암하라와 티그라이 소수 민족 간의 충돌로 다수의 주민들이 사망하는 등 에티오피아의 정정불안은 유혈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국가비상사태의 종료 시점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에티오피아의 정치상황은 시위와 유혈사태의 소용돌이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에티오피아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라는 지정학적 중요성과 더불어 역내의 역사, 문화, 종교의 흐름을 선도해 온 매우 중요한 나라이다. 따라서 에티오피아의 중장기적인 안정은 동아프리카 지역은 물론 중동과 지중해 지역 등 국제 사회의 정치사회적 안정과 직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에티오피아는 미국, 유럽 등 서방국가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기에 에티오피아의 정치사회적 변화가 국제 사회의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에게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 지상군의 파견으로 우리를 지원한 혈맹이자 전통적 우방이며 우리 아프리카 외교의 교두보이기에, 에티오피아의 정세 변화는 우리의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에티오피아 위기의 다층적 요인

 

에티오피아는 “성장과 전환 계획(Growth and Transformation Plan: GTP)”이라는 국가개발 5개년 계획 하에 농업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산업화로의 전환을 꾀하였다. 그 결과,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연간 국민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 11%~15% 증가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는 아직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분류되고 있어 10여 년간 지속되어 온 높은 성장의 낙수효과가 의문시되고 있기도 하다. 정치적 자유와 인권 상황도 매우 열악하여 프리덤 하우스 종합지수(Freedom House Index)는 에티오피아의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12/100로, 아주 자유가 없는 나라로 분류하고 있다. 0=가장 낮음; 100=가장 높음

 

아프리카에서 영토 기준으로 열 번째로 큰 나라이고, 인구 기준으로는 세 번째로 큰 나라인 에티오피아는 민족 집단(ethnic group)을 축으로 하는 민족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현재 민족을 중심으로 구성한 7개의 자치주와 지역을 기준으로 한 2개의 자치주, 그리고 아디스 아바바와 디레다와라는 2개의 특별 행정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인구는 2016년을 기준으로 이미 1억을 넘어섰으며, 이 중 오로모 족이 35.3%, 암하라 26.2%, 소말리 6%, 티그라이 5.9%, 시다모 4.3%, 구라지 2.7%, 웰라이타 2.3%, 그리고 약 17.3%의 기타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티오피아와 같이 80개가 넘는 소수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에서 민족 집단 간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7년 12월 14일과 17일 사이  오로미아의 하라르(Harar) 시(市) 인근 아웨다이(Awaday)에서 발생한 오로모 족의 소말리 족 공격으로, 오로모 족 29명과 소말리 족 32명 등 양 측에서 6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55,000명 이상의 피난민이 폭력사태를 피하여 난민이 되었다. 그 간 오로모 족과 소말리 족 간엔 크고 작은 충돌이 있어왔지만 이 번 사태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오로모 족과 소말리 족의 한정된 자원에 대한 전통적인 경쟁관계, 즉 우물과 목초지 등에 대한 경쟁관계가 원인일 수도 있다는 일부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민족 정체성이 한정된 자원에 대한 경쟁관계에서 갈등과 대립으로 발전하는 일은 전혀 새롭거나 놀라운 것이 아니다. 특히 아프리카의 정치경제가 민족 집단 간의 경쟁과 대립 위에 전개되어 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아프리카를 이해하려면 자원 접근성과 소유권에서 본 민족 집단 간의 관계를 먼저 이해하여야 한다는 말은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다. 에티오피아의 2016년 1차 국가비상사태의 단초를 제공하였던 "아디스 아바바와 오로미아 특별지구 합병 마스터플랜(Addis Ababa and Oromia Special Zone Integrated Master Plan)”역시 수도 아디스 아바바의 확장 계획으로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인근 오로미아 주의 수룰타(Sululta) 시의 오로모 거주민의 거센 반대가 시발점이 되었으며, 이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처가 유혈사태로 이어졌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마스터 플랜사태”는 에티오피아의 정치 구조가 국내의 정치경제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포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또 다른 단면을 보여 주었다. 마스터 플랜 사태는 권력을 장악한 소수가 다수의 국민을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권력 독점적 형태에서 비롯되었다. 에티오피아의 토지는 모두 국가소유라는 전제와 더불어, 아디스 아바바 시정부와 소수의 오로미아 친정부 행정가들이 아디스 아바바의 확장 계획의 수립 단계에서부터 제 살던 지역에서 이주해야만 하는 농민 등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을 철저히 외면한 것에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소수의 정치 독점에 따른 다수의 정치적 소외에서 오는 불만을 지금의 정치 구조가 효과적으로 여과해 내지 못하는 데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오로미아 지역민과 암하라 지역의 인구가 1억 에티오피아 전체 인구의 약 6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에티오피아의 정치는 인구의 약 6%에 불과한 티그라이 지역민이 독점하여 왔으며, 이들은 군부 및 보안 분야를 장악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에티오피아의 정치를 지배해왔다고 할 수 있다. 티그라이 민족해방전선(Tigray People’s Liberation Front: TPLF)이 75만 명 이상의 국민을 살해한“붉은 테러(Red Terror)”의 주역인 멩기스투의 “더르그(Derg)”, 그리고 에티오피아 민주주의 인민공화국(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Ethiopia) 정권과의 무장투쟁에서 승리한 이후, 타 부족을 끌어 들여 에티오피아민족혁명민주전선(Ethiopia People’s Revolutionary Democratic Front: EPRDF)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도 무장투쟁의 구심점인 TPLF의 에티오피아 정치 장악은 예견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에티오피아 역사 전개의 결과로, 다민족 정치권력이라고 포장된 현 집권당 EPRDF내에서의 TPLF의 실질적 권력 독점은 분명하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최근 일련의 시위사태는 소수 민족의 정치 독점과 상대적으로 소외된 타 부족, 특히 가장 큰 인구를 가지고 있는 오로미아의 오로모 족과 암하라 족이 그들의 정치적 소외감을 분노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며, 이와 같은 분노와 불만은 정치적 의사 표시의 자유와 인권 등 모든 에티오피아 국민의 기본적 권리 보장 등의 정치적 요구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민족연방제(Ethno-Federalism)의 위기

 

1995년 신헌법을 토대로 에티오피아는 민족 분포를 축으로 하는 연방제를 국가 구조로 채택하였다. 이와 같은 민족연방제는 파키스탄, 네팔 등이 채택하고 있지만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에티오피아가 그 효시이다. 학계에서는 아프리카 민족연방제를 추진한 멜레스 제나위(Meles Zenawi) 전 총리의 이름을 따서 이를 종종 “제나위즘(Zenawism)”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민족연방제는 에티오피아와 같은 다민족사회를 유지하는데 적절한 체제일 수 있다. 민족연방제는 각 소수 민족에게 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내부의 정치경제적 요구를 먼저 자치 정부가 포용한다. 연방정부는 각 소수 민족 대표로 구성되어, 각 지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고, 소수 민족 간 갈등 역시 연방정부 내에서 평화적인 조정과 협상을 통하여 여과한다. 이와 같은 포용적 구조를 통하여 다민족 국가의 안정이 보장 될 수 있음은 물론이며, 소수 민족 각자의 민족적 정체성 또한 유지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반면 민족적인 축을 기반으로 결성된 연방에서는 정치경제적 또는 사회적 이슈가 휘발성이 강한 민족적 이슈로 급격히 전이할 가능성으로 말미암아 소수 민족 간 갈등 및 대립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한다. 상이한 민족적 정체성과 이들의 갈등은 연방의 와해는 물론 소수 민족 간의 무력 충돌로 발전하기도 하며, 이는 이미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하여 파키스탄 등 여러 나라의 사례에서 나타난 바 있다. 


에티오피아와 같은 다민족 연방 체제의 성공은 연방정부가 상이한 민족의 요구를 평화적이고 효율적인 정치 기능을 통하여 수용하는데 있으며, 이를 위하여서는 각 소수 민족이 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인 몫을 온당히 나누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에는 물론 자유와 인권 등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포함된다. 무력에 의한 탄압과 현상 유지는 임시방편일 뿐으로, 중장기적으로 다수 민족 간의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정치적 권력을 소수가 독점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다수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치제도가 소수 민족의 불만과 요구를 수용하고 소수 민족의 정체성을 에티오피아라는 국가적 정체성으로 화합, 승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민족연방제의 구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현 집권당인 EPRDF의 권력 구조 개혁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에티오피아는 과거 아프리카의 외교 분야를 선도하는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나라이다. 이제 정치적 분야에서 진정한 제나위즘을 구현함으로써,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표면적인 속성 때문에 소수 민족 간 갈등과 대결로 점철된 아프리카에 공정한 정치와 제도의 운용이 평화와 번영을 이끌어 낸다는 모범 사례를 에티오피아가 제시할 시점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초반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가 민주화를 향한 정치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거의 30년이 지난 오늘에서 보면 그들의 성적표는 그리 우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에티오피아는 30년 만에 다시 한 번 아프리카의 정치적 개혁을 선도할 갈림길에 서있다. 에티오피아 민족연방제가 성공적인 미래와 번영의 길로 나아 갈 것인가, 혹은 지속되는 정정불안과 소수 민족 간 대립 구도 하에서 연방의 실패라는 길로 접어 들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온전히 현재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 집권 집단의 몫으로, 그들의 민족연방제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과 인식에 따라 에티오피아라는 다민족 연방국가의 미래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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