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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동남아 시장에서 그랩(Grab)의 우버(Uber) 인수
동남아시아 일반 이지혁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2018/05/10
지난 3월에 세계 최대 차량 공유·호출 서비스 업체인 우버(Uber)가 동남아 시장의 경쟁 업체였던 그랩(Grab)에게 동남아 사업부문을 매각하기로 했다. 우버는 동남아 사업을 그랩에게 넘기는 대신 그랩의 지분 27.5%를 갖기로 합의했으며, 우버 최고경영자(CEO)는 그랩의 이사회에 합류하기로 했다. 우버는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업체로서 2014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법적 문제 때문에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철수한 경험이 있다. 그랩은 우버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사이지만 미국에서 시작된 우버와 달리 말레이시아 태생이고 본사를 싱가포르에 두고 있다. 우버가 전 세계 시장을 공격적으로 공략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반면, 그랩은 동남아 시장에만 주력하면서 현지 맞춤형 영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우버와 그랩은 어떤 회사인가?
우버는 지난 2월을 기준으로 72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지닌 공유경제 플랫폼 기업이다. 세계 비상장 기업 중에서 기업 가치가 가장 높고, 기업의 평가 가치만으로 비교하면 한국 대기업 중에서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우버보다 가치가 높은 기업은 없다. 사명인 ‘uber’는 본래 독일어 ‘Über’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영어 ‘over’, ‘above’ 등의 의미로 형용사 혹은 명사와 결합하여 ‘매우 좋다’는 의미의 접두어로 사용된다. 우버는 2009년 개릿 캠프(Garrett M. Camp)와 트래비스 캘러닉(Travis Cordell Kalanick)에 의해 ‘UberCab’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고, 공식적인 서비스는 2010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됐다. 초기 사업의 핵심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특정지역의 개인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하는 택시 운송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기본 요건만 충족하고 개인 차량만 소유하고 있으면 누구나 서비스 제공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존 택시보다 가격이 저렴하며, GPS 기반으로 승객과 운전자의 위치를 실시간 공유하고, 운전자 평점제도를 도입해 서비스 신뢰성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대체 교통수단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차량호출 서비스 영역에서 입지를 다진 우버는 각종 주문형(on-demand) 사업으로 다각화하고 있다. 음식 배달 서비스를 비롯하여 세탁, 청소, 마사지, 주차, 가사도우미 등 스마트폰의 앱을 통해 주문을 신청하는 주문형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우버는 택시 회사라기보다는 도심 종합 물류의 공유 경제 플랫폼 회사라고 할 수 있다. 2015년부터는 자율주행차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2018년 3월에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인근 템페의 한 교차로에서 자율 주행 차량이 여성 보행자를 치어 사망시킨 사건이 발생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우버는 세계에서 가장 논란을 많이 일으키는 스타트업이라는 불명예도 가지고 있는데, 우버가 진출하는 도시마다 택시기사들의 반발이 극심할 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법원에서 영업정지 판결을 받기도 했다. 영업방식이 진출 국가의 국내법과 상충하는 경우가 많아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우버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반면 그랩은 동남아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랩은 본래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My Teksi’라는 한국의 카카오 택시 같은 콜택시 사업에서 시작했다. My Teksi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재학 중이던 앤서니 탄(Anthony Tan)이 자신을 보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찾아온 친구가 택시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 계기가 되어 만들었다고 한다. 2013년 필리핀을 필두로 이웃 국가인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말레이시아에서는 ‘My Teksi’, 해외에서는 ‘GrabTaxi’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그러다 2016년 지금의‘Grab’으로 통합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랩은 2018년 3월 기준 동남아 8개 국가 189여 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그랩에 등록된 운전사 수가 260만 명에 이른다.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했지만, 현재 본사는 싱가포르에 있고 그랩 앱도 싱가포르의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랩도 우버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는데 특히 동남아 시장의 특성을 살려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에서는 오토바이 택시인 ‘GrabBike’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핀테크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금융업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버와 그랩 비교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중심으로 두 회사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우선 우버는 카드 결제 방식을 사용하는 반면 그랩은 카드와 현금결제를 모두 사용한다. 아직도 카드 보급률이 낮은 동남아에서 현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고객 확보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다음으로 동남아에만 특화된 그랩이 운전기사의 수적인 측면에서 우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앱의 완성도에서는 우버가 그랩보다 우수하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기사의 수에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차량서비스 혹은 각종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처지에서는 그랩을 더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다. 가격 경쟁력 부분에서도 그랩이 우버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후발주자로서 우버와 경쟁하기 위한 전략으로 판단된다. 전반적으로 그랩은 세계 시장 전반을 공략하고 있는 우버와 달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동남아 시장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국가마다 차별화된 현지화 정책을 폈다. 예컨대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은 국가에서 카드와 현금 결제를 병행해서 실시하고 있으며, 소득 수준과 현지 교통체증 상황을 고려하여 오토바이 호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다라 코스로우사히(Khosrowshahi) 현 우버 CEO가 자신의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밝힌 것처럼, 우버의 글로벌 전략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많은 전선에서 너무 많은 경쟁사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We take on too many battles across too many fronts and with too many competitors.”)는 것이다. 반면 그랩의 경우 동남아 지역에서 우버와 경쟁하기 위해 다른 국가에 기반을 둔 차량 호출 서비스 회사-디디추싱(중국), 올라(OLA, 인도), 리프트(Lyft, 미국)-와 소위 반-우버 연합을 형성하고 있다. 네 회사는 2016년 초부터 각 회사의 서비스 이용자가 해외여행을 하는 동안 연합 사업자의 현지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네 회사는 모두 일본의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2015년에는 디디추싱이 리프트에 1억 달러(한화 약 1천억 원)와 그랩택시에 3억 5천만 달러(한화 약 4천억 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과 사업의 다각화
두 라이벌이 존재하는 동안 고객들은 각종 프로모션과 가격 경쟁으로 다양한 혜택을 누렸다. 우버가 떠난 동남아 시장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그랩의 독점이다. 특히 후발주자였던 그랩이 우버와 경쟁하기 위해 낮은 가격 정책을 표방했었는데 우버를 인수하면 더는 낮은 가격을 고수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랩 독점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몇몇 국가에서는 우버와 그랩의 서비스 통합에 제동을 걸기도 했었다. 우버가 떠난 시장을 독점하려는 그랩의 새로운 경쟁자로 인도네시아의 토종 업체인 고젝(GO-Jek)이 거론되고 있다. 고젝은 영어의 ‘Go’와 인도네시아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지칭하는 ‘Ojek’을 혼합한 이름으로, 본래 자동차가 아니라 오토바이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고젝은 우버에서 일하던 운전기사들을 흡수하면서 인도네시아를 넘어 이웃 국가로 진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고젝은 인도네시아에만 90만 명 이상의 기사를 두고 택배, 배달, 장보기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체 금융 결제 서비스인 ‘고-페이(Go Pay)’로 온라인 결제 시장에 진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고젝은 금년 상반기 동안 싱가포르와 필리핀, 태국 등 주변국으로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이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동남아의 단면
공유경제라는 다소 민주적인 느낌의 새로움으로 시작했던 차량 호출 서비스 스타트업의 진화는, 점차 공유경제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로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나의 공통점은 택시를 대체하는 사업에서 출발한 후, 배달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 제공 업체로 영역을 확대하고, 종국에는 핀테크 산업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남아 시장에서 우버에 승리한 그랩의 최고경영자인 앤서니 탄은 지난 4월 미국 CNBC과의 인터뷰에서 회사의 다음 성장 동력으로 핀테크에 주목하고 있으며, 은행계좌가 없는 ‘인비저블’ 고객 수백만 명을 적극 공략할 것을 밝혔다. 작년 11월 그랩은 모바일결제 플랫폼인 ‘그랩페이’를 출시하면서 핀테크 시장 개척에 뛰어들었다. 그랩의 새로운 경쟁자가 될 고젝은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고-페이’ 기술을 앞세워 차량호출 서비스에서 후발주자라는 약점을 극복할 것으로 예상한다. IT와 금융이 결합한 핀테크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데, 동남아에서 핀테크 산업은 선진국과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 아직도 동남아 주민의 상당수는 개인 계좌도 없이 평생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스마트폰을 기반을 둔 테크 산업은 은행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그동안 현금 거래만으로 살아오던 전통적인 삶의 패턴을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유선 전화, 무선 전화, 핸드폰, 그리고 스마트폰이라는 순차적인 발전의 단계를 거쳐 왔던 대부분의 선진국과는 달리 일부 지역에선 유선 전화에 필요한 인프라도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스마트폰 시대로 진입한 동남아의 모습과 흡사하다. 대도시를 제외하면 아직도 대중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많은 동남아 국가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는 저렴하고 이용하기 쉬운 교통수단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서비스가 동남아시아인들의 삶으로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삶의 양식과 최첨단의 현대 기술이 혼재된 동남아의 일상적 삶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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