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푸틴 집권 4기, 러시아의 전략적 과제와 디지털 전환
러시아 김석환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2018/06/04
2024년까지 러시아 연방 발전의 국가 목표와 전략적 과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5월 7일 취임식을 거행하고 정식으로 제4기 정권을 출범시켰다. 푸틴은 취임 당일인 지난 5월 7일‘2024년까지의 러시아 연방 발전의 국가 목표와 전략적 과제’제하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푸틴은 또 이러한 전략적 과제를 수행할 4기 정권의 초대 총리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재임명했다. 메드베데프 신임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 막심 토필린 노동,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 블라디미르 콜로콜체프 내무장관 등 주요 장관을 모두 다시 천거했고 푸틴이 이를 승인했다. 러시아 극동 개발을 책임지고 한국, 중국, 일본과 협력하는 극동개발부 장관은 교체됐다. 신임 극동개발부 장관은 2015년부터 아무르 주지사였던 알렉산드르 코즐로프다. 이로써 러시아 최고 지도부는 과거 3기 정권 이후 국정을 담당했던 동일한 인물들이 주요 자리를 유지한 채 새롭게 임명된 일부 장관들과 함께 새로운 정책과 전략을 추진하게 됐다.
푸틴이 제시한 ‘2024년까지의 러시아 연방 발전의 국가 목표와 전략적 과제’에는 모두 9개의 목표가 있다. 9가지 국가목표는 ① 인구 증가, ② 평균 수명 신장, ③ 국민의 실질 소득 증가와 연금 보장 금액 인상, ④ 빈곤층 규모의 반감(半減) ⑤ 주거 환경 개선, ⑥ 기술 혁신의 가속, ⑦ 경제·사회 부문에 대한 디지털 기술의 도입, ⑧ 거시 경제 안정과 세계 평균을 웃도는 경제 성장, ⑨ 제조업 및 농업·식품 산업 등 기간 부문에서의 수출 지향 섹터의 창출 등이다. 9개의 목표를 살펴보면 그가 ‘강한 러시아’의 재건을 목표로 외교`안보 분야에 치중했던 과거와 달리 국민의 실생활과 연관된 경제` 산업 및 보건` 복지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9가지 중 대부분은 새로울 것이 없고 평범하다. 인구 감소에 대한 대책이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환경 조성(주택, 보건, 연금), 기술의 발달과 변화에 대한 대응, 거시 경제 환경의 안정 등은 러시아의 역대 정부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주요국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이는 러시아도 이러한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만큼 전 세계가 이 문제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러시아가 주안점을 두고 2024년까지 이행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푸틴 4기의 전략적 목표 중 기존 정책과 차별화된 특이한 전략적 목표가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9개의 전략 목표 중 ‘디지털 혁명에 대한 대응’전략에 주목할 필요
푸틴 당선 이후 필자가 모스크바와 주변국들을 방문하면서 접촉한 전문가들은 9개의 전략 목표 중 디지털 혁명에 대한 대응과 제조업의 수출 지향적 정책을 전략적 목표로 설정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노베이션과 디지털 전환에 관심을 둔 것도 처음은 아니다. 러시아는 2000년대 현대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노베이션과 디지털 전환을 강조해 왔다. 푸틴은 고도기술산업 분야에서 1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또 선도개발구역(러시아명: TOP) 혹은 산업 특구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를 수출지향형 정책으로 연계시켰던 것도 이미 10여년이나 됐다. 때문에 이런 점을 상기한다면 디지털과 수출 지향에 대한 전략적 목표의 설정도 새로울 것이 없다.
이러한 질문에 필자가 접촉한 러시아의 전문가들과 관료들은 이 부분에 대한 강조의 정도와 국가 최고 지도부의 관심 수준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특히 과거 소련이 정보화에 대한 대응이 늦어 미국, 유럽과의 기술 경쟁에서 뒤쳐졌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푸틴 대통령의 기술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4차 산업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디지털 전환에 대한 정책적 관심으로 전환됐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푸틴이 기술, 특히 하이테크 기술에 관심이 지대하다는 발언들은 그동안 간간이 있었다. 푸틴 스스로도 그런 모습을 연출하려고 노력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AI)에 대한 푸틴의 언급이다.
푸틴은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인공지능(AI)의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면서도 인공지능 분야가 거대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은 러시아뿐 아니라 전 인류의 미래다. 인공 지능 분야에서 리더가 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기술에 개방적이었다. 푸틴은 이더리움처럼 블록체인을 활용한 암호 화폐에 대한 관심도 높고 관련 기술에 긍정적이다. 물론 그는 인공지능 분야 기술의 독점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자신은 러시아가 관련 분야 기술의 리더가 된다면 개방할 용의가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 겸 제 1 부총리의 발언도 푸틴의 기술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실루아노프는 “푸틴이 하이테크에 중독되어 있을 정도로 관심이 많으며 디지털 관련 대화를 진행하다 새벽까지 토론을 진행한 적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푸틴이 이번에 ‘디지털 발달 및 통신 미디어부’ 장관으로 임명한 인물은 콘스탄틴 노스코프다. 노스코프는 2012년부터 정부 내 분석센터 소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컴퓨터 및 정보통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모스크바 계측공학 및 컴퓨터 공학대학에서 자동화된 정보 처리 및 제어 시스템을 전공했다. 또 정부 내 정보통신 및 컴퓨터 관련 업무를 실무자로서 오랫동안 담당해왔다. 이들의 분석처럼 푸틴이 집권 4기의 주요 정책 중 하나로 러시아의 디지털화를 선택했다면 한국은 디지털 관련 산업이 발달되어 있고 중소 중견 기업들에도 경쟁력 있는 제품들과 기술들이 많기 때문에 러시아와 이 분야에서의 협력 및 한국 기업들의 진출 가능성 등도 높아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럼 푸틴이 취임 직후 발표한 ‘2024년까지의 러시아 연방 발전의 국가 목표와 전략적 과제’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국산화와 국내 개발 기술이 강조된 디지털화 전략 목표
이날 발표된 대통령령은 17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디지털 기술 전환 및 관련 항목은 11번 항목에 별도로 아주 세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또 직접적 언급은 아니지만 노동생산성 및 일자리 그리고 과학기술 혁신 및 진흥과 관련된 9번 및 10번 항목에도 연관된 프로그램 및 정책들이 있어서 모두 3개 항의 항목들을 세세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때문에 이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러시아의 디지털 전환 및 강조가 한국에 기회를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점이 금방 나타난다. 푸틴 대통령은 디지털 전환의 강조와 함께 소요될 기술과 인프라들을 건설할 때 우선적으로 국산을 사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산화 강조 및 연방 내 장기적 타겟 목표 달성을 위한 일련의 국산화 및 국내 인프라 정비 등의 국가 프로그램들은 이미 발표된 국가 프로그램인 ‘러시아연방 디지털 경제’ 및 ‘연방 타겟 프로그램(FTsP, Federal Target Programme)’에도 관련 내용들이 들어있다.
특히 ‘연방 타겟 프로그램(FTsP, Federal Target Programme)’은 FTsP뿐 아니라 FAIP(Federal Targeted Investment Programme)’ 및 VTsP(Departmental Target Programme)와 함께 일련의 관련 프로그램을 세세하고 연동되게 작성해 진행한 바 있다. 이러한 관련 문서들을 보면 푸틴과 러시아 정부가 우선적으로 시행할 국산화기술 목록 77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러한 국산화 프로그램과 별도로 러시아 정부는 크림 반도 합병 후 서방 제재에 대응하는 방안의 하나로 외국으로부터의 기술 수입을 감소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정보 통신 관련 소프트 웨어는 정부 조달 및 구매 사업의 경우 국산 소프트 웨어나 관련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정부 조달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이미 2017년 이후 시행 중이다. 때문에 러시아와의 협력과 시장 진출을 꾀한다면 이런 국산화 방침 및 기술 개발 프로그램을 사전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국산화 목표가 과연 얼마나 달성됐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디지털 전환과 국산화 목표에 대해서는 비판론과 찬성론이 강력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집권 4기의 주요 전략적 목표 가운데 하나로 다시 디지털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3대 목표 중 하나로 국내 개발 기술의 우대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디지털화 전략의 3개 목표와 주요 내용
푸틴이 내건 새로운 디지털 전략이 과거와 얼마나 다른 지, 그리고 얼마나 큰 효과를 낼 것인지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국가 프로그램인 ‘러시아 연방 디지털 경제’와 5월 7일 서명된 대통령령에 언급된 디지털 전환 관련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주목을 끄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령은 다음의 3가지 목표를 주문하고 이를 2024년까지 달성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시는 대통령령 서명일인 2018년 5월 8일 이후 즉각 실행에 옮겨지도록 명령했다.
- 디지털 경제 발전을 위한 모든 재원의 국내 지출(국내 총생산에 대한 비율)을 2017년 대비 3배 이상 증가시킨다.
- 대용량 데이터의 고속 전송, 처리 보존을 위한 모든 조직, 가정에서 접속이 가능한 안정되고 안전한 정보 통신 인프라를 정비한다.
- 국가 기관, 지방 자치 단체 기관, 단체들은 주로 국산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또 이러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실천 및 해결 과제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적시했다.
- 각 분야별로 유연한 접근에 근거한 디지털 경제 법적 규제 체제를 구축하고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상품 유통을 보급시킨다.
- 대부분을 국내에서 개발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데이터 전송, 처리, 저장 인프라를 정비한다.
- 디지털 경제를 위한 고기능 인력을 육성한다.
- 국내 개발 성과를 바탕으로, 데이터 전송, 처리, 보관 시에 개인, 기업, 국가의 이익을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는 정보 안전 보장을 실현시킨다.
- 보건, 교육, 광공업, 농업, 건설, 도시 경제, 운송 및 에너지 인프라, 금융 서비스 등 경제 우선 분야나 사회 부문을 디지털 기술 및 플랫폼 솔루션을 도입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 기술 및 플랫폼 솔루션을 개발 및(또는) 도입하는 프로젝트에 자금을 제공하는 종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한다.
- 디지털 경제 발전 계획을 실현할 때, 유라시아 경제 연합의 가맹국 간에 합의된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국가 메커니즘을 책정하고 도입한다.
디지털화 전략의 3개 목표와 주요 내용
푸틴은 국방 및 과학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높고 과거 러시아가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던 국방산업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지난 3월의 TV 연례 교서 발표 때에도 푸틴은 러시아의 최첨단 무기들을 소개하면서 러시아의 강건함을 강조한 바 있다. 첨단 무기는 하이테크와도 연관된다.
푸틴은 러시아가 스스로 소련을 해체하고 서방의 일원이 되려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최근의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 사태는 서방이 러시아를 부당하게 대접하고 탄압하고 배제해서 발생했다는 확신에 찬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첨단 무기의 강조는 러시아가 서방의 요구대로 호락호락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당시의 연설은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국내용이었지만 메시지는 서방을 향해 있었다는 게 분석가들의 판단이었다.
그가 집권 4기 공식 업무 수행과 동시에 발표한 전략적 목표 9가지는 이러한 푸틴의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9가지 목표는 러시아의 현대화와 러시아인들의 행복한 삶의 추구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푸틴은 이러한 전략 목표 중 디지털화를 중요시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뒤쳐진다면 강대한 러시아의 재건도, 국민의 행복한 삶도, 러시아의 영광의 지속도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디지털 전략은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위한 전략의 구성 부분이다.
그렇다고 푸틴이 일부에서 이야기 하듯 옛 소련을 재현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방 세계의 일원이 되려는 것도 아니다. 그는 러시아를 러시아의 방식으로 서방처럼 현대화시키고 동시에 서방과의 경쟁과 대립에서 양보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때문에 푸틴이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현대화가 아니라 러시아라는 견고한 성(城) 안에 서구처럼 현대화된 구역을 집어넣으려 하는 것이라는 식의 비판을 듣기도 한다.
디지털화는 개방과 협력을 전제로 기능하는 것이다. 분산, 개방 그리고 협력이 디지털 세계에서의 성공의 키워드다. 이 부분을 푸틴이 ‘강한 러시아의 재건’ 정책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 및 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전글 | [전문가오피니언] 벨라루스의 혁신 정책 현황과 전망 | 2018-06-04 |
---|---|---|
다음글 | [전문가오피니언]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대러 협력이 중요한 이유 | 2018-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