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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안드레스 마누엘 로뻬스 오브라도르는 누구인가?

멕시코 안태환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강사 2018/07/23

지난 7월 1일의 멕시코 대선에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뻬스 오브라도르(이하 오브라도르로 부른다)가 압승하였다. 우리가 레스토랑에서 매운 맛 소스를 달라고 할 때 자주 시키는 ‘타바스코’주 출신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를 일컬어 ‘암로’(AMLO)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름 첫 글자의 약칭으로 별로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이번의 승리는 분명히 멕시코 정치에서 ‘역사적’ 사건이다. 2006년과 2012년 대선에서도 그는 패배했는데 당시 선거부정의 혐의가 매우 컸다. 세 번째 도전에서 기득권층의 억압을 뚫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큰 사건이고 거의 백년 동안 좌파가 승리한 경우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멕시코 대중의 선거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선거일 훨씬 전에 있었던 여론조사에서 경쟁자를 압도하고 있었고 이들 지지 세력은 변하지 않을 고정지지층이었다. 오브라도르 정치 철학의 키워드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경제 사회적 ‘배제’를 깨트리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의 정치 구호는 ‘사회정의와 복지’이다.


우리나라 주요 언론에서 부정부패, 치안문제, 경제적 위기 등을 정권교체의 원인으로 꼽고 있는데 이런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 사건은 오랜 시간을 두고 축적된 힘이 쌓였다가 위로 분출한다는 점에서 단기적 해석이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 경제적 ‘위기’의 강조는 지배 권력이 좋아하는 맥락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멕시코 대중이 이런 기득권계급의 레토릭을 믿지 않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멕시코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 과두 지배(oligarquia) 권력이 만든 정치, 경제적 질서에 대한 집단적 거부이다. 따라서 오브라도르를 단지 중도 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2006년 7월 대선의 경우, 멕시코 시사주간지 [프로세소](Proceso)에 의하면, 선거결과 발표를 둘러싸고 선거부정의 혐의가 ‘있다’와 ‘없다’로 멕시코 사회가 크게 둘로 분열되었다. 예를 들어, 전자 개표시스템의 사전입력을 통한 조작가능성과 선관위 위원구성의 불투명성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일부 개표소의 경우, 오브라도르에게 투표한 투표용지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기도 했고 이런 상황에서 투표함 개봉과 재검표를 요구했으나 선관위가 거부하고 결국 사법부의 선거법원에까지 가서 펠리페 깔데론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그 후 11월에 오브라도르는 멕시코시티 중심부인 소깔로 광장에서 ‘정통성 있는 대통령’ 선포식을 가지고 자신의 독립적인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다양한 대안적 정책들을 발표하면서 장기 농성에 돌입했다.


이에 대해 주류 미디어들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교통 방해 등의 비난만 가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가 속한 민주혁명당(PRD) 소속의 정치인들은 안이하게 현실에 타협하게 되고 오브라도르는 탈당하게 된다. 이번 2018년 대선에서 오브라도르가 당선된 가장 중요한 맥락은 2006년만 하더라도 경쟁후보와 백중세였는데 비해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멕시코 시민들의 지지가 늘어나 선거직전 여론조사에서 이미 그 차이가 크게 앞서갔기 때문이다. 2006년 11월 당시 오브라도르가 전국을 여기저기 도보 행진하면서 선거부정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일 때 그를 따르는 멕시코 시민들이 엄청나게 많았던 데 비해 그 때 당선자였던 펠리페 깔데론은 시민들의 비난이 많아 경찰과 경호원들이 없으면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고 [프로세소(Proceso)]는 보도하고 있다. 2006년에는 멕시코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루이스 만도키가 오브라도르에 대한 다큐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번에 오브라도르가 멕시코의 막강한 기득권 계급을 이겼다는 것은 오브라도르 개인의 능력 외에 멕시코의 변혁을 바라는 젊은이, 여성을 포함한 대중의 힘에서 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브라도르는 좌파 포퓰리스트이다. 이미 미국의 어느 보수적 성향의 연구소에서는 오브라도르를 트럼프의 쌍생아로 비유하고 있다. 이는 물론 잘못된 해석이지만 기층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2006년 7월의 대선이 끝나기 무섭게 멕시코시 중심부에서 가진 선거부정 항의 대규모 시위에 구름같이 많이 모인 대중의 숫자와 열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시위에서 투표함 개봉을 거쳐 한 표씩 손으로 재검표를 요구했지만 당국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2년에도 유권자에 대한 매표 혐의의 논란이 일었었다.


오브라도르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국면이 오면 전국 곳곳의 도로를 지지하는 대중과 함께 도보 행진을 한다. 먼 거리의 도로를 따라 수많은 대중과 함께 하며 대중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실제 ‘현실’을 알게 된다. 특히 멕시코의 대중이 얼마나 가난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리고 수 십 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체제의 결과 특히 남부와 남동부(대표적으로 베라크루스) 그리고 대도시의 변두리의 가난한 사람들이 수없이 미국 또는 북부 공업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경험을 오브라도르는 2007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마피아가 대통령직을 우리에게서 훔쳤다(La mafia nos robo la presidencia)]에서 밝히고 있다.


2006년에 오브라도르를 이긴 펠리페 깔데론 정부는 집권한 뒤에 신자유주의적 개혁 작업을 서둘러 교육,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고 공무원 연금제도를 개혁하여 퇴직 시 연금인정 비율을 줄이는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정책들을 실행했다.


오브라도르는 기득권 계급을 ‘정치적 마피아’로 부르고 있다. 예를 들어, PRI당이나 PAN당이나 서로 다를 것이 없어 소위 PRI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득권계급은 주류 미디어 , 대기업, 노조 지도부, 전통적 정치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평상시에 이들은 따로 따로 활동하지만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리는 위기 시에는 위계서열적으로 규율 있게, 열정적으로 서로 힘을 합친다. 중요한 반 오브라도르 세력이 미디어 그룹이다. 이들의 독점적 권력의 힘은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하다. 또한 여기에 많은 우파 지식인들이 적극 참여하여 현실을 왜곡하여 해석하고 있었다고 오브라도르는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멕시코 대중의 복지 또는 삶의 질을 담보로 자신들의 엘리트적 특권을 유지, 강화하고 오브라도르를 광신적인 ‘메시아적 포퓰리스트’로 비난했다. 특이한 것은 멕시코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노조 지도부가 기득권 계급에 속한다는 점이다. 다른 기득권세력과 서로 돕는 ‘연고주의’의 전통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들 기득권 계급은 오랫동안 오브라도르를 괴롭혀 왔다. 단지 2006년과 2012년의 대선과정의 불공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치적으로 오브라도르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게 법적 제약을 가하기도 했다.


현재 오브라도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부분의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변혁의 희망을 젊은이들에게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경우에도 신생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Podemos)’당은 그 주축이 온라인을 잘 활용하는 젊은 세대이다. 오브라도르를 지지하는 세력도 젊은이들, 여성들, 문화예술인들이 많다.


오브라도르의 고향은 타바스코주로서 멕시코의 대표적인 트로피칼 기후의 주이다. 쿠바와도 제일 가까운 지역이다. 여기서 ‘트로피칼’이란 호칭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쿠바의 사회주의를 ‘트로피칼’ 사회주의라고도 부르는데 과거 소련의 교조적이고 경직된 관료적 사회주의와 다르게 인간적이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여유 있고 느린 사회주의의 에토스를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오브라도르 정부의 여러 정책들의 배후에는 이와 같은 여유 있고 느린 에토스가 깔려 있을 것이다.


오브라도르가 좌파 정치인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가 어떤 좌파 이념을 추종하고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실천하는 것으로 연상하기 쉬운데 그를 비롯하여 라틴아메리카의 좌파는 그런 이분법보다는 엘리트/대중의 이분법을 중시한다. 소수의 기득권 엘리트가 아닌 다수의 많은 대중의 이익을 위하는 점에서 이들은 실용적 공화주의를 중요한 정치철학으로 삼고 있다.


오브라도르는 위에서 언급한 저서에서 “멕시코의 크게 잘못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해결책이 엘리트계급이 아니라 사회 아래의 일반 대중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사회의 타락을 고치기 위해서는 그들 정치인들에게 기대할 수 없고 대중을 중시해야 하고 공공적 삶의 변혁을 추진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추상적으로 노동자 대중을 배려하는 식이 아니라 예를 들어, 치아파스와 오하하카의 가난한 원주민들, 어린아이들, 은퇴한 고령의 노인들과 직접적 소통을 통해 설득력이 강한 경제 사회 정책을 구상하고 집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체제 변혁적 과제 수행에 있어 중요한 시금석의 하나가 오브라도르 정부가 멕시코의 악명 높은 마약단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가 많은 멕시코인 들의 관심사이다. 아마도 마약단에 대한 최근 수 십 년 동안의 정책방향을 바꿀 것이다.


예를 들어, 마약단의 사면과 마약단과의 ‘전쟁’등의 군사화를 철폐할 것이다. 이런 방향이 오히려 마약단이 멕시코에서 중요한 정치행위자로서의 역할을 거세시킬 것이다. 앞으로 멕시코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폭력, 범죄(2017년 한 해 동안 앰네스티에 의하면 약 4만 2천명 암살, 언론인 12명 암살 등)도 어느 정도 제어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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