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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한국의 신(新)국익공간으로서 발트 3국

중동부유럽 일반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2018/10/02

발트 3국의 한국적 재구성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 반도가 북유럽과 동유럽을 완만한 ㄱ자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바다를 ‘발트해’(Baltic Sea)라 부른다. 덴마크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발트 해 남동 해안을 따라 에스토니아(Estonia), 라트비아(Latvia), 리투아니아(Lithuania)가 국경선을 연이어 맞대고 있는데, 이 세 나라를 ‘발트 3국’으로 통칭한다. 발트 3국은 물리적 환경이 비슷한 북유럽의 소국이다. 에스토니아 (45,336km²/132만 명), 라트비아(64,589km²/195만 명), 리투아니아(65,300km²/280만 명) 삼국 모두 남한(99,200㎢)보다도 국토가 협소하다. 발트 3국 전체 인구 규모도 서울에 훨씬 못 미치는 600만 명 남짓이다.

 

주지하듯, 발트 3국(The three Baltic countries: B3)은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유럽의 지도 위에 새롭게 등장한 ‘오래된’ 신생국이다. 그리고 독립된 국제관계 행위 주체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지 2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발트 3국은 세계무역기구(WTO),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유럽연합(EU),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가입해 정치 경제적으로나 군사안보적으로 서구 세계의 구성원이 되었고, 국제무대에서 평화유지 활동과 공적개발 원조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발트3국의 경제성장도 괄목상대하다. 독립 이후 시장경제 로의 체제 전환 과정에서 두 차례의 경제 위기를 겪었지만 지속적인 구조개혁과 기업친화적 정책을 추진한 결과 오늘날 발트 3국은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작지만 강한 북유럽의 강소국(强小國)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인 발트 3국은 독일,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등 강대국이 즐비한 EU 내에서 자신들 공통의 집합적 이익을 확보하고 동시에 러시아로부터 안보와 주권을 침식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중부 유럽의 ‘비세그라드 그룹’(Visegrad Group: V4)처럼 지역 내 소(小)다자 협의체를 구성해 힘을 합쳐야 하고 정책적 연대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자면 약육강식의 냉혹한 국제정치적 현실 속에서 국가적 번영과 생존을 위해서는 약소국의 운명을 짊어진 이 세 나라가 공고한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것이 최상의 전략인 것이다.

 

실제로 B3는 공동안보와 상호 협력 증진을 위해 발틱 장관급 회의(Baltic Council of Ministers), 발틱 의회(Baltic Assembly), 발틱 대대(Baltic Battalion) 등 발트 3국 정부 간 공식 상설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EU 및 NATO뿐만 아니라 역내외 국가들과도 “B3 Plus(B3 + ?),”라는 틀을 활용해 적극적인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Platform은 발트 3국이 하나의 그룹으로써 다른 파트너 국가와 협력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하고 있는데, 지난 4월 3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B3+1(미국)’ 정상회담이 적절한 사례일 것이다.

 

평창올림픽과 발트 3국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발트 3국의 주권 선언을 가장 먼저 승인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다. 1991년 12월 21일 소련의 공식적인 해체를 선언한 소위 ‘알마아타 협정’ 체결 이전인 10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수교 이후 한국은 B3와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물적·인적 교류를 늘려가면서 우호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8년은 한국과 발트 3국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이례적으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세 나라의 국가 지도자들이 모두 같은 시기에 한국을 방문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월 6일에는 케르스티 칼유라이드(Kersti Kaljulaid) 에스토니아 대통령과, 2월 7일에는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Dalia Grybauskaite) 리투아니아 대통령, 2월 13일에는 라이몬즈 베요니스 (Raimonds Vējonis) 라트비아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의 주요 관심사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둘째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정상의 방한(訪韓)이 1991년 수교 이후 처음이라는 점이다. 달리아 그리바우스 카이테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집권 이후 한국을 세 번째 방문했다. 이는 한편으론 한국과 발트 3국 개별 국가 간의 관계를 한 차원 격상시키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다른 한편으론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협력을 희망하는 발트 3국 정부의 강한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는 라트비아의 제안을 바탕으로 2018년 올해 안에 ‘한-발트3국’(B3+1) 경제공동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한국과 발트 3국 사이에 ‘B3+1(한국)’ Platform 형식의 외교부 국장급 정치협의체가 2016년 2월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처음으로 조직되었고, 2017년 3월에는 서울에서 개최되었으며, 2018년 11월에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예정되어 있다. 이어서 ‘B3+1’ 경제공동위원회 출범 합의는 한국과 발트 3국 간 협력의 제도화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볼 때 2018년은 한국과 발트 3국 간 관계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전기가 되는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트 3국은 한국인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유럽이다. 발트 3국의 생경함은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지리적 원격성, 역사적 상호작용의 부재, B3를 모두 합쳐도 600만 명 수준인 적은 인구, 한반도보다 협소한 영토 면적, 빈약한 부존자원, 낮은 수준의 인적․물적 교류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B3는 한국의 외교적 시야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게 사실이다.

 

발트 3국의 한국적 재구성

 

국제사회에서 발트 3국이 차지하는 존재감이 미약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물리적 환경의 착시 현상에 가린 발트 3국의 잠재적·현실적 가치를 한국의 국익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해볼 때, B3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스위스(41,277㎢)와 네덜란드(41,543㎢)의 영토 면적은 에스토니아(45,336km²)보다도 작지만 양국은 각기 제약 및 금융업과 물류 분야에서 글로벌 강국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그렇다면 탈소비에트 신생국 발트 3국은 21세기 한국의 대외 공간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가?

 

우선 발트 3국의 가치는 한국이 추구하는 ‘중견국 외교’(Middle Power Diplomacy, MPD)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세계무역 10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개도국의 수준을 넘어서 지구적 책임을 분담하는 중견 국가로서의 자기정체성 확립과 그에 걸맞은 역할 수행을 위한 외교적 변혁기에 돌입했다. 이를 반영해 우리 정부는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중견국의 실현을 중요한 대외정책 과제로 설정해 추진하고 있다.

 

중견국 외교는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격 향상과 국제적 위상 제고를 목표로 하는데, 2013년 9월 한국의 주도로 결성한 글로벌 국가협의체 ‘믹타(MIKTA)’가 그 유효한 사례에 해당한다. MIKTA는 한국을 포함해 멕시코(Mexico), 인도네시아(Indonesia), 터키(Turkey), 호주(Australia) 등 세계의 주요 지역을 대표하는 5개의 핵심 중견국들이 국제사회의 공공이익 증진을 위해 형성한 비공식 다자협의체이다. 이 MIKTA의 출범으로 한국은 글로벌 거버넌스에의 능동적 참여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높일 수 있는 유익한 환경을 창출했다.

 

2015년 12월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 4개국으로 구성된 소위 비세그라드 그룹(Visegrad Group: V4)과의 다자협의체 구축도 중견국 외교의 성공사례로 기록된다. 한국의 중견국 외교 대상이 세계질서의 중심지인 유럽으로 확대되었고, One of Them(5)으로 참여하는 MIKTA와는 달리 한국의 이니셔티브 하에 중부 유럽 4개국과 ’V4+1(한국)‘ 형태의 정상급 다자협의체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같은 맥락에서 발트 3국도 한국의 국제적 지도력 강화에 기여하는 중견국 외교의 중요한 대상이고, 2016년 ’B3+1’ 외교부 국장급 협의체 구축에 이은 2018년 ’B3+1’ 경제공동위원회 출범 합의는 그 가시적인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발트 3국이 탈 사회주의 체제 전환의 성공적 모델 국가라는 점도 B3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오랜 기간 제정러시아와 소련의 지배를 받아왔던 발트 3국은 1980년대 후반 탈냉전의 흐름을 타고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과감한 체제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룸으로써 지금은 유럽의 강소국으로 성장했다. 발트 3국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경험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들이고, 단기간에 시장 민주주의에 기초해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국가군이다. 발트 3국의 이런 성공적인 체제 전환 경험은 통일한국의 연착륙, 즉 북한의 탈공산화· 민주화· 시장경제화를 통한 남북 간 통합과정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발트 3국이 한국의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발트 3국이 글로벌 디지털 혁신성장의 ‘메카’ 라는 점이다. 스스로를 ‘e-stonia’ 로 부르는 에스토니아가 특히 그렇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디지털 혁신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e-stonia’는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이다. 실제로 최근 에스토니아는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종사하는 국내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디지털 공화국이다.

 

에스토니아는 지난 2005년 전 국민 전자 ID 시스템과 전자 투표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디지털 전자정부 선도 국가다. 2015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자 영주권(e-residency) 제도를 시행해 전 세계인들이 에스토니아의 시민권을 얻어 에스토니아에 회사를 설립하고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에스토니아는 국제사회에서 스타트업의 ‘성지’(聖地)로 불린다. 에스토니아에서는 매년 1만 개가 넘는 기업이 새로 문을 여는데, 그중 200여 개가 스타트업이다. 세계 최대 인터넷 전화 회사인 ‘스카이프’(www.skype.co.kr)와 국제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 최대 핀테크(금융기술) 업체 ‘트랜스퍼 와이즈’(TransferWise)가 에스토니아가 배출한 대표적인 스타트업 성공기업이다.

 

에스토니아가 스타트업의 성지가 된 비결은 정보통신기술 (ICT)에 있다. 에스토니아는 독립 직후부터 ICT를 국가 기간산업으로 정해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코딩(coding)’ 교육은 세계 선두주자다. 1996년부터 전국 초중고교생에게 코딩 교육을 시작했고, 2012년에는 학년별 맞춤형 코딩 교육 프로그램인 ‘프로지 타이거(Proge Tiger)’를 만들었다. 코딩이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지능형 로봇, 빅데이터 분석 및 활용 등 제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 시스템 덕분에 에스토니아는 ICT 인력을 풍부하게 보유하게 됐다. 이것이 에스토니아를 디지털 혁신 선두 국가로 이끌게 한 중요한 동인이고, 새 기술 패러다임으로 ‘골디락스(Goldilocks)’ 시대를 준비하는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경제적 측면, 특히 물류유통의 지경학적 입지 면에서도 발트3국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발트 3국은 북유럽과 동유럽, 러시아 및 CIS 지역을 연결하는 교차점에 위치해 북동유럽 물류운송망의 허브(Hub)로 기능한다. 인구와 경제규모 자체 면에서 발트 3국은 협소한 상품시장이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 진출을 하기에는 일정 수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발트 3국이 EU 회원국이자 유로존 국가이고, 여기에 서유럽(3억 4천만 명)-북유럽 및 동유럽(1억 1천만 명)-러시아 및 CIS(2억 5천만 명)를 잇는 발달된 도로와 철도망, 그리고 발트 해의 항구 시스템 등으로 약 7억 인구의 거대 시장망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평가는 달라진다. 수출시장 다변화가 절실한 한국에게 발트 3국은, 러시아 및 CIS 지역을 포함 북동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중요한 물류 전진기지로서의 의미가 매우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 소련의 일원이었던 발트 3국은 한국산 첨단 제품의 서부 러시아 및 CIS 시장 공략을 위한 ‘테스트 시장’(Test Market)으로서의 가치도 있다.

 

발트3국과의 새로운 협력의 모색

 

발트 3국은 유럽의 주변부에 위치한 소국으로 화려한 역사와 높은 수준의 국력을 구비한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위에서 확인했듯이, 발트 3국이 지닌 숨겨진 강점과 효용성을 분석해볼 때, B3와의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회의 창’은 의외로 풍부하다. 이를테면 중견국 외교의 중요한 대상으로서, EU 시장 진출의 전초기지로서, 러시아 및 CIS 시장 공략을 위한 일종의 테스트 시장으로서, 한반도 통일 과정에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는 성공적인 체제 전환 경험의 모델 국가로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대북 전략적 우위 확보를 위한 글로벌 지원세력으로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동반자적 협력자로서, 유럽 내 한류 확산의 거점으로서의 가치 등을 지적할 수 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관점에서 B3에 대한 협력의 방향성을 적절히 설정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 강화와 국익 증대에 적지 않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소견이다.

 

최근 발트 3국도 EU에 대한 과도한 경제 의존도를 완화하기 위해 한중일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확대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과의 협력을 내심 가장 희망한다. 그 이유는 압축성장의 신화를 달성한 한국이 발트 3국이 지향하는 국가 경제발전 모델이고 자본과 첨단 산업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이며 무엇보다도 제국주의적 강대국이 아니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 있게 협력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트 3국 최고지도자들이 모두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공식 방문한 것이나 ‘B3+1’ 경제공동위원회 출범을 합의한 것은 B3가 한국과의 협력 강화에 거는 기대를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2016년 외교부 국장급 ‘B3+1’ 정치협의체 창설에 이어 2018년 ‘B3+1’ 경제공동위원회 출범 합의는 낮은 단계에서 ‘B3+1’ 파트너십 형성을 의미한다. 이제 한국과 발트 3국 간 협력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좀 더 현실적으로 구체화시키기 위한 외교적 공진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 판단된다. 21세기 한국의 신(新) 국익 공간으로서 발트 3국 개별 국가들과의 인적·물적 소통과 교류 확대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B3+1’ Platform의 제도화 및 활성화가 요구된다. 최근 B3가 아시아 신흥국 못지않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자유지수’(Liberty Index)로 '신 유럽의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고, 동시에 2011년 7월 한-EU FTA 발효 이후 저렴하고 풍부한 고급 노동력과 대외개방형 투자 유인 정책으로 B3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투자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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