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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외교 다변화와 공공외교로서의 신남방정책 모색: 몇 가지 개념 공유와 제안
동남아시아 일반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정치학 교수 2018/10/10
문재인 정부는 국민과 소통하여 국민의 외교역량 결집을 목표로 하는 국민 중심 외교 실현을 천명한 바 있다. 이는 정부 독점형 전통 외교에서 국민 참여형 공공외교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창의적 제안, 정보의 다양화, 사회적 투입 요소를 제약하는 외교부 엘리트 독점형 외교 혁신, 가용한 외교자원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크며, 관-민 협력 모델로서의 거버넌스(Governance) 개념이 외교정책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외교 다변화(Diplomatic Diversification) 추진을 목표로 설정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외교 다변화의 목표는, 소극적으로는 기존 균형외교의 결핍에서 야기될 수 있는 위험회피(Risk Hedge)에 있고 적극적으로는 다자협력 체제로서의 지역공동체 건설에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정과제에서의 동북아 플러스 책임 공동체 구축은 외교 다변화의 궁극 목표이다. 그리고 이때의 외교 다변화는 외교 대상국의 다양화뿐만 아니라, 외교 주체의 다양화, 외교 의제의 다양화를 포괄한다. 특히 외교 주체의 다양화, 외교 의제의 다양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민외교, 공공외교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또한 이는 특정 강대국에 의지하는 기존 냉전 시대의 외교정책 틀로부터의 확실한 변화를 추구하는 ‘외교혁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세안 중시 전략’으로서의 신남방정책
아세안 중시 전략’(Pivot to ASEAN Strategy)으로서의 신남방정책은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로 인한 경제적 타격 이후 교역 다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미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박까지 가중되면서 부상한 하나의 대안이다. 여기에다가 남북한이 동시에 가입해 있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한반도 평화 정착 과제 이행을 위한 중요한 지렛대로 부상하고 있다. 결국 신남방정책의 출범은 경제안보, 정치안보와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람-평화-상생번영 (3P)이라는 다분히 규범적인 외교철학을 공식화하였다. 3공외교(공생=Peace, 공유=Prosperity, 공감=People)로도 표현 가능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철학은 이익의 교환이 곧 공동선을 구현한다는 자유주의적 세계관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구성주의적 인식론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에 모순된 세계관이 공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공외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치명적 약점은 아니다. 자유주의 세계관이 강조하는 이익은 물론이고 윤리적 구성주의적 담론에 해당하는 3P와 관련해서도 무엇이 국익이고, 또 무엇이 사람 중심의 평화,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두고 정부와 민간부문이 함께 숙의(Deliberation)하는 과정을 거칠 때 상호 모순된 세계관은 화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외교를 통한 서발턴 연대체의 구축
공공외교의 세 가지 조건으로 이해(Understanding), 교류(Exchange), 옹호(Advocacy)를 얘기한다. 이해는 타국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이고, 교류는 이해를 넘어 양자간, 다자간 교환을 통한 이익의 공유를 의미하고, 옹호는 이를 통해 타국과 윤리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과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정부가 제시한 3P는 공공외교와 밀접히 관련이 있고, 민간부문 특히 정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시민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주변부(Periphery) 약소국가들을 지칭하는 서발턴(Subaltern)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반식민, 반제국주의 국제동맹을 서방 헤게몬(Hegemon)에 도전하면서 자주권 확보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외교정책 수립 과정에서 보편적 인권 개념보다는 국익 개념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자주권에 이어 개발권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권이나 환경권이 주변화되고, 경제안보, 군사안보 차원에서 생존 이데올로기(Survival Ideology)가 지배적으로 활용되었다. 탈식민화, 국민국가 건설, 경제개발 단계를 거쳤던 한국도 서발턴 국가의 진화 현상과 일치한다. 기존 헤게몬 중심 국제질서에 대한 서발턴의 도전이 탈식민, 반서방이라는 정치적 구호와 서방의 생산력을 따라잡는 추격 성장이라는 경제적 성과 양 측면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때 한국의 비약적 경제성장 역시 기존 헤게몬 중심의 국제질서에 대한 서발턴 도전의 대표적 예이다.
주체, 대상, 의제의 다변화의 맥락에서 출발한 신남방정책은 서발턴 국가들과의 상생과 연대 외교의 시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점진적이면서 단계적 변화를 보이고 있는 아세안 회원국들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현지시간(Local Time)을 무시할 수 없는데, 이는 북한과의 평화와 공동번영 문제를 절박한 과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체제 변화(Change of Regime)보다는 체제 내 변화(Change Within Regime)로서의 ‘질서 있는 이행’(Orderly Transiton)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는 정황과도 연동되어 있다. 물론 위로부터의 점진적, 단계적 변화는 탈 식민화 과정을 경험한 서발턴 연대 체제들의 공통된 경향이다. 1950년대 중반 최초로 선보였던 대표적인 서발턴 연대체인 아시아․아프리카(AA) 회의를 주도한 국가들 대부분이 식민지 경영을 했던 서방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견제하였는데, 국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데 실패해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민주주의 가치보다는 국민 단합과 경제개발 의제를 중심에 내세웠다. 이것은 시민사회에 대한 통제 내지는 배제와 병행되었다.
개발과 인권을 지원하는 신남방정책 기대
시민사회는 정의상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면서 공론장을 주도하는 비정부 영역이다. 시민사회는 상호 이해와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민족과 국경을 넘어 보편적 인권 개념을 지향한다. 물론 글로벌 시민사회의 형성에 반(反) 국가, 반자본 영역만이 기여했다고 볼 수는 없다. 사회 발전과 기회의 증진이 오히려 사회적 불만을 가중시킨다는 토크빌 효과(Tocqueville Effect)의 맥락에서 보자면 이익의 거래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국가간 협력과 현지에 초대된 다국적 자본이 시민사회의 형성과 역량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인간 사회에서 정치적 결정은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제약과 기회란 배열 양태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때의 제약조건으로는 자연환경, 고유 역사, 기술 수준, 생태적 제약, 유행, 여론, 문화적 가치 등을 들 수 있고, 이것들이 정치적 행위자의 행동영역을 규정한다. 그런데 이 제약조건은 인간의 창조적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산업혁명이나 시민혁명이 대표적이다. 일국적 맥락에서 보자면 산업혁명이 시민혁명을 이끌 수 있으나 국제적 맥락에서 보자면 국가 간 경계를 넘는 경제교류가 산업혁명을, 시민사회 간 교류가 시민혁명을 각각 촉진시킨다. 아세안 국가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국가들이 대중소비 사회로 들어가기 위한 산업혁명을, 민주주의 사회로 들어가기 위한 시민혁명을 각각 거쳐야 한다. 물론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자면 아세안 회원국 10개국의 정치, 경제, 시민사회 발전 정도가 다 상이하다. 따라서 발전 수준, 정치와 환경 조건에 맞는, 이른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공유와 적정가치 (Appropriate Value) 공유가 필요하다. 이때 정부 주도의 적정가치 공유 전략은 보편적 인권 잣대로 접근하는 국내외 시민사회와 이견을 보이는 지점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정부로서는 내정불간섭이라는 아세안 규범(ASEAN Norm)을 신중히 고려할 수밖에 없다면 국내외, 아세안 내 시민사회 진영은 이러한 벽을 허물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는 신남방정책의 기조가 되는 사람 중심, 평화와 번영에 대한 정부와 비정부 간에 지속성 있는 대화가 필수적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시민사회의 확장과 평화의 정착, 개발과 인권의 진전이 병행하는 개방적 서발턴 연대체의 구축을 위한 기초를 다지는 수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한국의 신남방정책이 동등한 서발턴으로서 아세안 국가들과 수평적 연대를 강화하면서도 공공외교의 맥락에서 정치적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나누고 경제적으로 중심-주변 이분 구도(Centre-Margin Binary) 를 허물기를 기대하는 구성주의적 관점을 반영하는 공공외교의 경로이기도 하다. 한국이 경험한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 아세안 국가들과도 공유되는 동아시아 평화․번영 모델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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