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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니카라과 반정부시위, 오르테가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중남미 일반 이태혁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교수 2018/10/17

니카라과는 두 번째 혁명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다. 니카라과 혁명 40주년을 1년 남짓 남겨둔 2018년, 또 다른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소모사정권(1937~1979)을 타도한 혁명세대 정부인 산디니스타(Sandinista)에 대한 반혁명이다. 2018년 4월 중순에 발표한 연금개혁안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거리로 표출되며 니카라과는 새로운 정국에 직면하고 있다. 현 정부와 정부의 지지세력(일명, Juventud Sandinista-산디니스타 청년당원)이 산발적인 시위세력에 강압적으로 제재를 가하던 가운데 사상자가 속출하며 친정부와 반정부간의 ‘전선’으로 구도화되며 확장된 형국이다. 2018년 9월 기준 사망자수는 400여 명을 기록하고, 최소 2천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국가적 대화’가 국제사회 그리고 가톨릭 교계와 대학생 및 시민단체 등의 중재로 수차례 진행되었지만, 양 진영은 평행선을 그으며 극심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 가운데 인권탄압과 유린은 지속되고, 니카라과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 하락과 함께 경제성장은 위축되고 있으며, 사회 및 경제지표는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아울러 선진국과 파트너십으로 진행하고 있는 개발협력 프로젝트는 감소하거나 재검토되고 있다. 더욱이, 대중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공공사업비, 특히 보건과 교육에 대한 정부 예산은 축소되고 있다. 이렇듯 니카라과는 혼돈의 상태에 직면해 있다.

 

왜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는가? 더욱이 왜 지금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고, 반정부 시위와 정부의 대응은 왜 한층 격화되고 있는가? 어떠한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니카라과의 이러한 총체적 난국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출구는 있는가? 등의  질문을 통해 오르테가 대통령의 정치적 궤적을 돌아보고, 현재적 문제의 진단과 함께 현 정부의 출구전략을 모색해 본다.

 

오르테가 대통령의 권위주의

 

1) 대권 삼수생의 정치적 학습효과

 

2006년 정권을 재장출한 오르테가 대통령은 앞선 긴 야인의 생활, 즉 대권 도전의 삼수 기간의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산디니스타가 아닌, ‘다니엘리스타’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와신상담하며 정치적 야인으로 보낸 정치 삼수의 기간 동안 다니엘은 반미 좌파 게릴라 출신의 이미지에서 새롭고 신뢰할 만한 정치인의 이미지로 쇄신하면서 정권을 재창출 했다(Henri Gooren 2010, 50). 특히, 2000년대 초 정치적 라이벌이던 알레만(당시 대통령)과의 정치적 야합으로 세력 확산을 도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르테가는 2007년 낙태방지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오랜 기간 동안 불편했던 가톨릭과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이는 산디니스타의 오랜 정치적 동지이며 산디니스타의 정체성과도 직결되는 여성 그리고 여성인권 옹호를 저버리는 정치적 선택이었다(Theler 2017, 162). 즉 산디니스타라는 ‘겉옷’을 입었지만 그 ‘맨몸’은 새로운 산디니스타 혹은 또 다른 산디니스타인 다니엘리스타의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정치 전면에 재등장한 오르테가는 정실자본주의 (Crony Capitalism) 정책으로 경제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했다. 오테르가는 반(Anti) 산디스티나 노선인 니카라과 경제 엘리트의 대표단체인 니카라과 전경련(COSEP)이 친 산디스타 또는 다니엘의 지지자 혹은 동료(Fellow Travellers)로 전향할 수 있도록 친시장주의 정책을 표방하고, 기존의 경제 엘리트 이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했다. 이에, 니카라과의 최대 부호 카를로스 펠라스(Carlos Pellas)는 오르테가가 정치적 안정성 확보를 목표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경제 엘리트들과 동맹을 적절히 추구하고 있다고 피력했다(Theler 2017, 163). 오르테가가 화해와 통합이라는 정치적 슬로건 하에 반 또는 비 산디니스타 세력을 포용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적절하고 또 온전한 방향이다. 비록 경제 엘리트 세력을 포용하고 친시장주의 정책 노선을 견지하면서 거시적 경제지표는 개선되고 안정화 되어갔다.

 

하지만 미시경제는 후원주의(Patronage)화되어 다니엘 이라는 Patron과 민중이라는 보호 대상으로 이원화되었다. 즉 다니엘은 작위적으로 경제를 개인화하고 일반 시민들은 이에 동조하며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2) 니카라과의 정치·경제적 후원자, 베네수엘라

 

다니엘리즘의 대외적 주요 요인에는 베네수엘라가 자리하고 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막시스트 이념을 장착하여 우고 차베스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호형호제 하며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일명 핑크타이드라고 묘사되는 21세기 라틴아메리카 좌파정치 지형화에서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등과 함께 급진적 좌파의 한 그룹을 형성했다.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가 주도한 ALBA와 Petrocaribe라는 지역 단위의 기구 아래에서 오르테가는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적 이상향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동역자인 동시에 수혜자였다. 특히 좌파 성향의 이 지역기구를 통해 포퓰리즘적 복지정책을 수행하면서 오르테가는 민중을 살피며 민심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Petrocaribe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받는 석유를 시민들에게 시장가격으로 지급하는 대신에 그 차액을 정권 유지 비용, 특히 다니엘리스타의 이권 확보에  사용했는데, 그 결과 부정부패와 비리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오르테가 정부는 국내외 요인으로 카우디요적 특성을 장착하며 권위주의화 되고, 권위주의 정책으로 혁명 이후 ‘정상화’ 되었던 니카라과는 2018년 4월 16일을 기해 다른 국면으로 치닫게 되었다.

 

니카라과, 또 다른 혁명의 서곡

 

2018년 4월 16일 니카라과 정부는 사회보장기금(INSS) 개혁안을 발표했다. 연금 개혁안의 골자는 연금 수령인의  기여금 부담은 늘리고, 수령액은 줄이는 것이다. 즉, 고용주의 연금 부담은 월급의 19%에서 22.5%로, 노동자의 부담 비율은 현재 6.25%에서 7%로 각각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연금 수령자의 월 연금 수령액을 5% 삭감했다. 이에 시위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참가자가 소수고 산발적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과잉 진압과 친정부 세력인 산디니스타 청년당원이 주축이 된 가칭 Juventud Sandinista의 무분별한 대응에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시위에 오르테가 정부는 어떻게 응답했는가? 4월 18일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에  오르테가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등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담화내용이 오히려 산디니스타 혁명에 대한 자화자찬 수준에 머무르는 등 현실과 동떨어지자 시위세력을 포함한 대중들의 반정부 정서는 확산되었다. 특히 반정부 시위 3일 만에 사망자 수만 30여명으로 집계되는 등 국가적 재난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4월 22일 오르테가는 연금개혁안 폐지를 발표하며 나름 신속하게(?) 응답했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는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걷잡을 수 없게 확산되었고, 오르테가와 로사리오 무리요(오르테가의 영부인이자, 부통령)의 동반 사태 및 조기 대선 요구가 이어졌다.

 

또 다른 혁명으로의 이행, 그 원인과 과정

 

반정부 시위가 촉발된 계기는 정부의 일방적인 연금개혁안 발표였다. 즉 시민들과의 적절한 합의 과정 없이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정책 입안과 시행이라는 관성에 맞춰 진행했던 것이 여러 변수들과의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정치적 방정식을 만들었다. 산디니스타 청년당원과 반정부 시위단과의 무력사태, 이로 인해 인명피해도 중요 변수였다. 무엇보다도 아래 인터뷰에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니카라과 사회의 새로운 사회적 주체, 즉 대학생들이 인터넷 광역망 확장으로 페이스북 등 SNS의 접속이 원활해 진 것을 적극 활용하며 니카라과의 사회적 적폐를 신속하게 공유한 것도 변수가 되었다.

 

“우리들은 페이스북으로 시위 상황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어요. 저는 UNIPOLI대학교 학생입니다. 제 친구들이 현재 학교 내에서 현 정권의 부패를 바로잡기 위해  시위에 적극 가담하고 있고요. 내일 아침에 학교로 가려고 해요. 친구들에게 음식도 전해 주려고요. 다니엘 오르테가와 그의 영부인이자 부통령 로사리오 무리요는 퇴진해야 합니다.” <2018년 4월 22일 현지 인터뷰>

 

1979년 니카라과 혁명이후 태어난 새로운 혁명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오르테카가 카우디요형 권위주의 정치행태를 장착하고 공고화한 것은 1990년 이후 지속적으로 대권에 도전하면서 학습한 정치적 변화에 기인했다. 특히 오르테가가 대권에 석패하며 습득한 정치적 학습량은 2006년 정권 재탈환 이후 장기 집권하는 동력이었다. 정치권력의 집중화와 이로 인해 수반되는 부정·부패는 현재적 니카라과의 맨얼굴이다. 이에 대해 시민들, 특히 대학생들이 전면에 나서 니카라과를 바로잡고자 거리로 나왔다. 오르테가의 응답은 앞선 표에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조기선거 및 정권퇴진을 일축하고, 오히려 테러방지 법안을 통과시키며 공포정치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니카라과의 반정부시위의 의미와 출구전략

 

니카라과의 현재 혼돈은 오르테가의 정치적 이념 전향, 권위주의화, 그리고 장기집권이 야기한 정치적 참사다. 그리고 이 사태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1979년 혁명시대를 겪지 않은 신세대(대학생)들이 SNS를 통해 새로운 혁명세대로 부상한 것인데, 이는 현재 니카라과 사태를 설명하는 주요 변수이자 사회적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니카라과의 현사태는 어떤 모습이던지 마무리 될 것이다. 반정부 세력이 요구하는 정·부대통령의 퇴진 및 조기 선거 또는 오르테가 행정부가 주장하는 현 임기의 온전한 마무리가 될 것이다. 정치적 소요로 경제는 적잖은 피해를 입고 있다. 년 5% 성장을 유지하던 니카라과는 경제 침체의 희생양은 월 300달러 정도의 수입으로 삶을 영위하는 대중이다. 민중을 등에 업고 정권을 창출한 산디니스타의 오르테가가 진정한 산디니스타로 남을지, 아니면 ‘다니엘리스타’의 수장으로 남을지는 오르테가의 결정에 달려 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는 니카라과 시민들의 염원에 대해 니카라과 시민사회와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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