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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마케도니아 국명 변경 국민투표 결과로 본 국제사적 함의

중동부유럽 기타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2018/10/25

마케도니아 국명 변경 투표, 절반의 성공?


현지 시간으로 2018년 9월 30일 마케도니아에선 국명 변경을 둘러싼 국민투표가 단행되었다. 국민 투표에서 찬성률이 91%에 달했지만, 투표율이 전체 유권자 180만 명 중 그 절반에 못 미치는 34.59%에 머물러 국명 변경을 위한 동력은 그리 크지 못했다는 평가이다. 현재 국명 변경과 관련된 결정은 국회로 그 공이 넘어간 상황이다. 이번 마케도니아 국민투표는 국명 변경을 통해 그리스와의 오랜 역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동시에 그동안 그리스의 반대로 무산되어 온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가입을 서두르기 위한 조란 자에브(Zoran Zaev, 1974- , 총리 재임 2017- ) 내각의 정책적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국민 투표 결과 자에브 총리는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반면 이번 국민투표가 ‘그리스에 대한 마케도니아의 항복’이라고 비판하며 투표 참여를 거부해왔던 야당은 이번 부결을 통해 마케도니아 민족 자존심을 지켜냈다며 승리를 자축하기도 했다.


자에브 총리는 투표율 과반 미달에도 불구하고 찬성 표가 월등히 높은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를 토대로 그는 국회에서 야당을 설득해 헌법 개정을 완료하고 나라 이름을 ‘북마케도니아 공화국(Republic of North Macedonia)’ 으로 변경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절반도 참여하지 않은 투표 결과를 내세우며 헌법 개정을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할 것이다.


마케도니아 국명 논란은 오랫동안 고대 마케도니아 제국과 알렉산더 대왕의 유산을 자신의 역사로만 인정해왔던 그리스와 이를 거부하고 공유하려는 마케도니아 간의 역사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케도니아는 ‘마케도니아’란 이름이 고대 마케도니아가 붕괴한 이후 오랜동안 그리스,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등 발칸 지역 여러 나라들에 걸친 단순한 지명으로 그 유산의 공유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는 자국 북부에 이미 고대 제국을 계승한 ‘마케도니아’ 행정구역이 있으며, 6-7세기 이곳에 내려온 남슬라브족 일파 즉 현재 마케도니아인과 불가리아인 등과 달리 혈통상 고대 마케도니아인을 이어받은 그리스만이 그 유산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해왔다. 따라서 그리스는 마케도니아가 1991년 마케도니아 공화국 등 6개 공화국으로 구성되어 있던 구(舊)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 부터 독립할 당시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란 과거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려던 것을 강력히 거부해왔다. 이후 UN의 중재 속에 1993년 8월‘구(舊)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 공화국(FYROM: the 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 / BJRM: Bivša Jugoslovenska Republika Makedonija)’이란 기다란 국명 합의로 마케도니아의 UN 등록이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로도 양측 간 갈등은 계속되었는데, 1994년 2월 양국 간 외교관계 단절, 데살로니키(Tessaloniki) 항구로 이어지는 마케도니아 물품 봉쇄 단행 그리고 국경 병력 집결 등 긴장이 지속되어왔다. 국제 사회 우려 속에 EU와 UN의 중재로 1995년 9월 양국은 관계 정상화에 겨우 합의하였지만, 이후로도 계속해서 국명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27년째 이어져 오는 중이다.


2017년 해결을 위한 여러 논의 속에 양국은 2018년 1월 매튜 니메츠(Matthew Nimetz, 1939- ) UN 특사 중재 아래 국명 분쟁을 해소할 새로운 중재안을 UN에 제출할 수 있었다. 중재안에 포함된‘새로운 마케도니아(New Macedonia)’, ‘북마케도니아(Northern Macednia)’, ‘슬라브 마케도니아(Slav Macedonia)’ 등 여러 안 중 2018년 6월 17일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 1974- , 재임 2015- ) 그리스 총리와 자에브 마케도니아 총리는 ‘프레스페스(Prespes/ 마케도니아어 Prespa)’에서 만나 국호를 ‘북마케도니아’로 변경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회담 장소는 그리스 북부 휴양도시로 마케도니아와 국경을 나누고 있는 프레스페스 호수에 자리해 오늘날 양국 간 우호와 균형을 상징하는 도시가 되고 있다. 이곳에서의 양국 정상 간 합의 결과 마케도니아 국명 변경을 둘러싼 국민 투표가 단행되게 되었다.


강대국 간 외교 전쟁터가 된 마케도니아


국명 변경에 대한 마케도니아 국민 투표는 91%의 압도적인 찬성 표에도 불구하고 과반에 훨씬 못 미치는 투표율을 보였는데 이것은 EU가 가장 우려했던 시나리오 이자 러시아에겐 귀중한 외교적 승리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 EU와 러시아는 현재 EU와 NATO 미가입국들이 자리한 서부 발칸 지역을 둘러싸고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는 중이다. 지난 2017년 6월 러시아와 중국의 강한 반대와 회유에도 불구하고 몬테네그로의 29번째 NATO 가입이 확정된 직후, 러시아는 몬테네그로의 NATO 가입이 다른 발칸 국가들의 NATO 가입을 자극해 역내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며 공개 보복을 다짐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마케도니아 국민투표 또한 순수한 국내 문제를 벗어나 EU와 러시아 간의 치열한 외교전의 결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EU와 NATO는 러시아의 전통적 영향력이 거셌던 서부 발칸 지역 확대를 목표로 이번 마케도니아 국민 투표에 많은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왔다. 실제 앙겔라 메르켈 (Angela Merkel, 1954- , 재임 2005- ) 독일 총리를 필두로 짐 매티스(Jim Mattis, 1950- , 재임 2017- ) 미국 국방장관, 옌스 스톨텐베르크(Jens Stoltenberg, 1959- , 재임 2014- ) NATO 사무총장 등이 국민투표를 앞둔 9월에 들어와 순차적으로 마케도니아를 찾았고, 이들 모두는 마케도니아의 EU와 NATO의 전제 조건으로 그리스와의 합의에 따른 국호 변경 선행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독일 총리가 마케도니아를 방문한 것은 지난 1991년 이후 27년 만의 일로 이것은 독일 등 EU가 이번 마케도니아 국민투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EU는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간 국명 합의 발표 직후인 7월 초, 2019년부터 알바니아와 함께 마케도니아의 EU 가입 협상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 발표하였다. 그리고 NATO 또한 7월에 마케도니아를 30번째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협의에 들어갔다.


반면 러시아는 자신의 전통적 이해 지역인 서부 발칸만큼은 EU와 NATO에 넘겨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으며, 따라서 이번 국민 투표에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서방에선 러시아가 이번 국민투표 결과를 무력화하기 위해 선거 거부를 조직적으로 독려하였다 판단하고 있다. 짐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9월 17일 마케도니아 방문 당시 러시아가 국민투표 부결을 위해 국명 변경 반대 세력에게 자금 지원 등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비판과 함께 러시아가 더 이상 개입하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 가디언지는 2016년 미국 대선을 비롯해 서방 세계 선거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러시아가 마케도니아 국민투표 선거 국면에서도 가짜 뉴스와 해킹, 가짜 트위터 조작 의심이 발견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더불어 서방은 투표 직전 러시아의 지원 속에 엄청난 양의 페이스 북이 새롭게 계정 되었다고 의심 중인데, 이중 “당신은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국명을 바꾸는 것을 허용하려 합니까?”라는 질문을 담은 페이스북 계정 등은 이번 국민 투표를 역내 민족 갈등으로 비화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며 비판을 했다. 이것은 지난 2001년 마케도니아 내전 종결과 ‘오흐리드 협정 (ohrid Agreement)’이후 한동안 수면 아래 잠재워져 있던 알바니아 민족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내 마케도니아 정국 불안을 야기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국민 투표 전후로 수도 스코프예(Skopje)에서 경찰과 무력 충돌한 국호 변경 반대 진영 시위대 중 일부가 소요 대가로 정치 자금을 후원 받았다는 내용이 확인되면서 그 배후에 러시아가 있을 거라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실제, 마케도니아와 국명 합의에 응했던 그리스 역시 러시아 외교관들이 그리스 내에서 마케도니아 국명 반대 시위를 지원하고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를 들어 2018년 7월 러시아 외교관 2명을 추방하고, 다른 러시아 인사 2명의 그리스 입국을 거부한 바가 있어 이러한 의심이 더욱 신뢰를 얻는다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마케도니아 국민 투표 결과는 낮은 투표율로 인해 러시아의 의도가 성공했음이 입증되었다.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 미국 국무부, EU, NATO는 투표 직후 투표에 참여한 90% 넘는 유권자가 국명 변경을 찬성했음을 강조하며 당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간 협정이 완전히 이행되길 강력히 지지한다는 말과 함께 이 길만이 마케도니아가 서방의 일원이 되어 지역 안정과 안보, 번영에 기여할 것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미래 마케도니아로 가는 장애물


오랜 혼란 끝에 2017년 5월 힘겹게 새로운 정부를 구성한 자에브 내각은 이번 국민 투표에 모든 정치력을 응집시켰다. 특히 자에브가 내건 여러 공약들 중 EU와 NATO 가입 재추진, 이를 위한 그리스, 불가리아 등 주변 국가들과의 역사, 민족, 언어 정체성 문제 해결과 관계 개선 강화 약속 등 미래 마케도니아의 문을 열겠다는 자에브의 의지 표명은 국제 사회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따라서 이번 국명 변경을 둘러싼 국민투표 질문 내용이 “당신은 마케도니아 와 그리스가 체결한 합의안을 수용함으로써 EU, 나토 가입에 찬성하겠습니까?”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하지만, 국명 변경을 통해 미래 마케도니아를 열겠다는 자에브 내각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향후 변수에 따른 장애물이 그리 단순하지 않는다는데 마케도니아의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우선, 현재 국명 변경 안을 둘러싸고 진행될 국회 투표 결과의 파장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회에서의 투표는 자에브 내각에게 있어 ‘양날의 칼’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국명 변경에 필요한 의석은 120석 중 80석인 2/3 이상이지만, 여당 의석 수는 72석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대중들의 반발에 모두 찬성 표를 던질지 의심되는 상황이다. 가결될 경우 마케도니아에게는 EU와 NATO에 가입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지만, 만약 실패할 경우 자에브 총리 공언처럼 조기 총선 결과에 따라 마케도니아의 운명 또한 그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게 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마케도니아 정국 불안정성과 이에 따른 정책 지속성이 의심받는다는 점이다. 본래 자에브가 이끌었던 마케도니아 사회민주당(SDUM: Social Democratic Union of Macedonia/ SDSM)은 강력한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마케도니아 국내혁명기구(IMRO-DPMNU: Internal Macedonian Revolutionary Organization–Democratic Party for Macedonian National Unity/ VMRO-DPMNE) 에 이은 제2정당으로 2017년 3월 알바니아계 정당들과 연정함으로써 가까스로 내각을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알바니아어의 제 2 공용어 인정 등 알바니아계 에게 너무 많은 조건을 양보했다는 강한 대중적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것은 자에브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이번 국민투표에서 투표율 하락 결과로 이어졌다. 따라서 만약 국회에서 조차 그의 의지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자에브 의 실험은 좌초하고 오히려 권력이 민족주의 정당에게로 다시 이관될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세 번째, 그리스 내부의 복잡한 셈법 또한 주요 장애물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만약 마케도니아 국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헌법 개정과 함께 국명 변경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이번엔 그리스에서의 비준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특히, 고대 마케도니아 제국의 역사 유적지가 다수 자리하는 그리스 북부를 중심으로 야당과 민족주의자들은 매우 강경한 민족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국명 변경에 있어 ‘마케도니아’ 명칭 자체가 들어가는 것을 절대 반대해 왔는데, 그 배경에는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이 그를 배출한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중심지인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지방에 대한 영유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이 그리스 내부 합의 또한 쉽지 않을 거라 예상되는 이유이다.


마케도니아를 비롯한 발칸반도는 강대국의 주요 이해 지역이라는 지전략적 배경과 함께 지난 2,000년의 역사 속에 이슬람, 가톨릭, 정교라는 세계 주요 종교 문화권의 분기점에 자리했던 이유로 ‘유럽의 화약고’, 혹은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 지역으로 불려왔다. 현재 마케도니아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내외적 위기가 증폭되는 위태로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서방과 러시아의 ‘총성 없는 전쟁’ 속에 마케도니아가 국내외의 여러 복잡한 장애물들을 잘 이겨내고 극복해 나갈지 국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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