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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베트남 정치의 궤도 변화 : 공산당 총비서의 국가주석 겸직

베트남 백용훈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박사 2018/10/29

지난 9월 21일 쩐다이꽝(Trần Đại Quang) 베트남 국가 주석이 별세했다. 이후 누가 주석직을 맡을 것인가에 대한 추측이 구구하게 나돌았다. 응웬티엔년(Nguyễn Thiện Nhân, 1953년생) 호찌민시 당비서, 쩐꾸옥브엉(Trần Quốc Vượng, 1953년생) 정치국 위원 겸 당비서, 응오쑤언릭 (Ngô Xuân Lịch, 1954년생) 국방부장관 등이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10월 3일 개최된 제12기 8차 회의에서 당중앙집행 위원회는 만장일치로 공산당 총비서 응웬푸쫑(Nguyễn Phú Trọng)을 주석 후보자로 추천했다. 그리고 10월 22일 개최된 제14기 국회 6차 회기에서 투표를 통해 공식 선출되었다(찬성 99.79%). 공산당 총비서와 국가주석이 동일한 인물로 추천을 받아 선출된 것은 베트남 역사상 처음이다.


베트남 집단지도체제와 경제성장


집단지도체제는 공산당과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적인 통치 형태로서 권력을 분산시키는 구조이다. 즉, 당, 국가, 그리고 정부 등의 의사결정이 한 개인 지도자에 의해 좌우되는 독재 정권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해당한다. 호찌민(Hồ Chí Minh) 주석은 과거 한 신문 (바오스텃[Báo Sự Thật] 100호, 1948년 9월 23일)에 기고한 “책임 있는 개인 지도자들이 집단적으로 일하는 방법,”이라는 기사에서 집단지도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베트남의 집단지도체제는 수십 년 동안 반복적으로 실험되었고 실행 가능한 접근법으로 입증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그동안 총비서(공산당), 국가주석 (외교·안보), 수상(행정), 국회의장(입법)이 상호 균형을 유지하면서 정치국, 서기국, 당중앙위원회 등과 같은 합의체들을 통해 권력을 공유해왔다. 물론, 당의 지도부 내에서도 사회주의 체제의 고수를 주창하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그룹(주로 북부 출신)과 급속한 개혁을 지향하는 그룹(주로 남부 출신) 간의 갈등과 대립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동안 표면적으로 드러난 베트남의 정치 경제적 양상은 집단지도체제를 통한 안정적인 정치문화와 이를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이었다. 특히, 소련, 헝가리 등 경제개혁 실패 사례와 비교해보면 베트남이 개혁개방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집단지도체제를 기반으로 한 독재 권력의 유연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실용주의적 외교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응웬푸쫑 총비서, 그는 누구인가


응웬푸쫑 총비서는 1944년 하노이 외곽에 위치한 동아인현(Đông Anh district) 동호이사(Đông Hội Commune)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향은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고, 학식이 풍부한 사회주의 이론가이자 경험이 많은 정통 관료 출신이다. 학문적으로 그는 하노이 종합대학(현 하노이 베트남 국립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중앙완애국당학교(Trường Đảng Nguyễn Ái Quốc Trung ương, 현 호찌민국립정치아카데미)에서 정치 경제를 공부했고, 그리고 구소련 사회과학한림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1983년 8월, 논문 제목 - 대중과의 관계 강화를 위한 베트남 공산당의 활동: 소련 공산당의 경험을 기반으로)를 수여했다.


관료 출신으로서의 주요 이력을 살펴보면, 1967년에 그는 베트남공산당의 당원이 되었다. 소련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그는 당 이론지인 『땁찌꽁싼』 (Tạp Chí Cộng Sản, 공산 잡지)의 당건설위원회에서 일을 했고, 부위원장(1983년 10월) - 위원장(1987년 9월) 그리고 편집위원(1989년 3월) - 부편집장(1990년 5월) - 총편집장(1991년 8월)을 차례로 역임했다. 이후 1994년 보궐선거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99년 8월에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제9차 당대회의 문건 편집을 직접 지도했다. 이후 하노이시 당비서(2000-2006), 국회의장(2006-2011)을 역임한데 이어 2011년 공산당 총비서(2011-2016)에 올랐고 2016년 제12차 전당대회 에서 연임(2016-2021)에 성공했다.


당대회 직전 언론들은 보수 그룹에 속하는 응웬푸쫑 총비서와 개혁 그룹에 속하는 응웬떤중 전 수상(2011-2016)이 차기 총비서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고 보도하였고, 응웬떤중의 선출을 예상하기도 하였다. 응웬떤중은 혁명 2세대로 실무경험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개혁파로 분류된다. 따라서 응웬푸쫑과 극단적으로 반대의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인물로 평가된다.


응웬푸쫑 총비서가 연임하자마자 베트남 공산당은 부패, 경제 개혁 과정에서의 과오, 국가 규정에 대한 위반, 횡령 및 권력 남용 등을 이유로 수십 명의 고위 공무원들을 숙청했다. 응웬푸쫑 총비서는 “부패와의 싸움은 어렵고 복잡하며 장기적인 일이다. 부패는 분명히 막을 수 있을 것이고 이는 공산당과 국가를 단계적으로 점점 더 강하고 투명하게 만들며 인민의 열망에 부응하도록 할 것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응웬푸쫑의 반부패 운동은 개혁과정에서 증가한 부패가 공산당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켜 온 것에 대한 염려와 함께 자신의 연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여 인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후 베트남 정치판은 누가 “장작”의 대상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렸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자 호찌민시 당비서였던 딘라탕(Đinh La Thăng, 1960년생)을 체포하여 기소한 것이다. 그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페트로 베트남 (Petro Vietnam)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오션뱅크(Ocean Bank) 투자와 관련한 불법행위로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고 직위 남용, 횡령 등을 저지른 혐의를 받아 총 30년의 형을 구형 받았다. 딘라탕은 전임 수상을 지낸 응웬떤중 개혁파 그룹의 핵심 일원이었다. 그 후 지방 정부, 정부 부처 등 다수의 관료들과 국영기업의 현직 및 퇴직 인사 등이 부패 혐의로 체포되었다.


지난 10월 4일 당중앙위원회는 두 건의 징계를 발표했다. 하나는 제11차 당중앙위원회 위원과 정보통신부당 위원회비서(2011-2016)를 지낸 응웬박손(Nguyễn Bắc Son, 1953년생)의 파면이다. 그는 모비폰(Mobifone)이 AVG사 주식의 95%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국가 재산의 손실을 초래한 혐의를 받았다. 그리고 당중앙위원회는 전 다낭시장(2006-2011)과 다낭시 당부비서를 지낸 쩐반민(Trần Văn Minh, 1955년생)을 출당시키는 징계를 발표했다. 중앙검사위원회에 따르면, 그는 국가 자산 및 토지 관리와 사용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


한편, 2018년 응웬푸쫑의 첫 번째 행보는 당내 권력 구도의 움직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2018년 3월 5일, 중앙비서국 상무위원이었던 딘테후인(Đinh Thế Huynh)이 건강상의 문제로 물러난 자리를 대신하여 중앙감찰위원장 쩐꾸옥브엉(Trần Quốc Vượng)이 임명되었다. 비서국 상무위원은 총비서의 오른팔과 같은 역할을 하며 베트남 공산당 정치구조에서 권력 서열 5위에 해당할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즉, 쩐꾸옥브엉은 현재 정치국 내에서 응웬푸쫑의 후원자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다. 그리고 정치국 내에서 응웬푸쫑과 쩐꾸옥브엉의 동맹이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팜민찐(Phạm Minh Chính, 1958년생) 정치국 위원 겸 당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은 당과 정부의 지위를 “통합,”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험 중이다. 목표는 지방 (현(Huyện, District)과 사(Xã, Commune) 수준)의 당대표직과 인민위원회 위원장직을 합병함으로써 이중적 거버넌스 시스템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한 온라인 블로거는 이러한 시범 프로그램이 공산당 총비서와 국가주석을 통합하기 위한 실험이라고 설명한다.


베트남의 정치 지형에 대한 기대와 우려


응웬푸쫑 총비서는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려는 이론가이자 실천가이다. 그리고 그가 취하는 행보가 중국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친중국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베트남의 향후 정치 지형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2013년 초 시진핑(Xi Jinping) 중국 국가주석이 당총서기가 되면서 중국 공산당은 반부패 운동을 강화했다. 부패 척결이라는 구호 아래 “호랑이,”와 “파리,” 등 수많은 고위급 당간부들이 숙청되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 중심에는 왕치산(Wang Qishan)이라고 하는 시진핑의 오른팔이 있었다. 왕치산은 공산당 내부를 감찰하는 기관에 해당하는 중앙기율검사 위원회의 위원장이다. 그리고 시진핑 주석은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애며 장기집권의 막을 올렸다.


베트남 역시 응웬푸쫑의 재임과 함께 “큰 장작,”과 “작은 장작,”을 화로 속에 던져 넣으며 반부패 운동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응웬푸쫑이 큰 호랑이를, 그의 오른팔인 쩐꾸옥브엉이 파리와 작은 호랑이를 숙청하는 모양새는 중국과 유사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국가주석이 병환으로 별세하면서 당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을 모두 장악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정의를 구현하고 국가를 안정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 입장이 있는 반면에 결과적으로 일인 중심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현재 베트남의 정치는 기존 집단지도체제의 정치 지형과는 다른 실험적 상황에 진입했다. 응웬푸쫑은 고령으로 2021년 차기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물러나겠지만, 이러한 실험이 차기 전당대회에서 제도화될 가능성도 열려있다. 베트남의 경우 카리스마적 지도력 하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나은가 혹은 기존 집단지도체제 내에서 균형 잡힌 힘이 필요한가. 베트남 지도부는 반부패, 해양 주권,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의 영향에 대한 통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있다. 2021년까지 응웬푸쫑 중심의 정치 구도가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줄지, 베트남의 대외관계, 경제성장, 그리고 사회적 요구 등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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