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터키의 통화 위기 현황 및 전망

튀르키예 Meltem Ince Yenilmez Yasar University, Department of Economics Associate Professor 2018/11/21

2000년 말 발생한 터키의 금융위기(banking crisis)는 대규모 자본도피 및 경기침체로 이어지면서 국가 경제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이에 터키는 경제장벽 제거 및 경제개방, 금융시스템의 재편과 대대적인 개혁을 조건으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총 19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다. 당시 집권하던 연립정부가 IMF의 요구에 따라 구조개혁에 착수했으나, 경제위기는 세속주의를 채택한 터키 공화국에서 친(親) 이슬람 노선의 정의개발당(Justice and Development Party, 약칭 AKP) 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이 부상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변화를 갈망하던 유권자에게 정치적 불안정성과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솔직한” 대안이 되었다. 국가 안팎에서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으나, AKP는 IMF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이행하고 터키 공화국의 세속주의 건국이념을 유지할 것을 약속했다. AKP는 IMF 프로그램 및 이에 따르는 조건을 충실히 이행했다. 1999년에 시작된 터키의 유럽연합 정회원 가입 과정 또한 도움이 되었다. 터키가 현대사회 및 경제 구축의 길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자 지지대 역할을 해주었다.


그 결과, 탄탄한 글로벌 경제 성장세와 맞물려 터키의 경제 또한 발전했다. 당시 터키의 인플레이션율은 30년 만에 다시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터키는 2002년부터 2007년 사이 연간 6.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며, 2012년에는 기존 대비 세 배 이상 높은 수출 실적을 거두었다. 2008년 대규모 글로벌 금융위기마저 별다른 타격 없이 버텨내자 경제성과 뒤 보다 깊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하던 비판론자들은 설 곳을 잃었다. 터키는 2001년의 금융시스템 재편에 힘입어 위기 이후 빠른 회복을 일궈낼 수 있었다. 


유럽과 미국이 부채에 허덕이는 가운데, 터키는 매우 낮은 수준의 기업 및 가계부채를 바탕으로 지속적 수익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투자 대상을 찾던 외국 자본의 이상적인 투자처가 되었다. 이로 인해 터키 은행권에는 저리금융이 넘쳐나게 되었고, 이는 터키 기업과 가계의 무분별한 지출을 가능케 하는 재정적 토대를 제공했다.


한편, IMF와의 대기성 차관협정(standby agreement)이 2008년에 만료되었다. “터키는 이제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졸업했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장으로, 갱신에 관한 협상은 2년 간 이어진 교착상태 후 결국 중단되기에 이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이 터키 경제를 무한한 발전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며 터키 기업의 외화차입을 매우 용이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터키 기업은 리라화의 가치 하락에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에르도안 대통령은 민관 파트너십을 통해 값비싼 고속도로, 도시병원 및 공항 등 대규모 공공 인프라 건설에 투입되는 정부자금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는 우호적인 대출환경과 맞물려 건설 부문의 호황을 이끌었다. 특히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기업들이 수혜를 입었다. 중앙은행이 발표하는 주택가격지수는 2010년 초부터 2016년 말 사이 두 배로 증가했다. 이는 곧 경제 호황으로 이어졌으며, 이에 힘입어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거에서 승리하고 더 큰 권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분별한 지출은 경상수지 적자 악화로 이어졌다. 일례로, 2003년에는 GDP 대비 16%로 낮았던 민간분야의 외부부채비율이 2017년 말 기준 40% 가까이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성에 대한 경제전문가 다수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위주의 및 지지도는 계속해서 강해져만 갔다. 그리고 지난 6월, 에르도안 대통령은 재선되었으며 원하는 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잃어버린 기회


그러나 장밋빛 전망과 함께 어두운 그림자를 불러왔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있어 외국자본 및 수입에 대한 터키의 의존도는 점차 높아져만 갔다. 경상수지 적자는 한 국가가 수출 가능한 양보다 더 많은 물자와 서비스를 수입하고 그 격차를 해외로부터의 차입으로 충당할 때 발생한다. 차입규모 증가로 인해 터키는 위기 발생시 해외 투자가의 충동적 움직임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터키 리라의 미화 대비 가치는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1/3가량 하락하여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모든 수입품의 가격이 거의 하룻밤 사이에 상승했다. 해외 물자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터키인 만큼, 식품, 가솔린, 의류 및 가구 등 거의 대다수의 상품이 영향을 받았다. 이에 추가적 물가상승 및 수입 의약품 부족 사태에 대한 터키인의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또한 터키 리라가 20% 이상 폭락하며 지난 8월, 인플레이션율도15년 내 최고치인 18%를 기록했다.


통화가치 급락에 인플레이션 상승이 겹치며 터키가 경제 및 금융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발생했다. 애널리스트 및 투자가들은 입을 모아 중앙은행이 금리를 최소 4%포인트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리라의 추가 가치 절하를 막기 위해서는 10%포인트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8월 1일자 제재조치 또한 현 위기를 촉발한 매개체가 되었다. 터키 정부는 약 2년 간 터키에 구금된 미국인 목사에 대한 미국 정부의 송환 요청을 거절한 바 있다. 터키는 이로 인해 내려진 제재에 반발하며 미국산 주류 및 차량 등의 상품에 대한 관세를 높였다. 터키에 대한 추가적 제재 집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터키가 겪고 있는 실질적 경제 고충은 수십 년 전부터 불거져 온 것으로, 현재 벌어진 미국과의 외교적 다툼 그 이상으로 훨씬 복잡하다. 한편, 카타르는 150억 미국달러 규모의 대(對) 터키 투자와 구호금 증액을 약속했으나 이런 약속은 실질적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현 경제위기를 악화시키는 추가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제 및 통화가치 안정화를 위한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이며, 선거에서의 승리를 이용해 자신의 견해를 터키 중앙은행에 고집하고 있다. 금리에 관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의 외교관계마저 눈에 띠게 경색되었다. 뿐만 아니라, 터키는 미국인 목사 앤드류 브런슨(Andrew Brunson)을 테러리즘 혐의라는 미심쩍은 명목으로 가택연금했으며, 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키산 알루미늄 및 철강 수입품에 관세를 두 배로 매기고 제재를 부과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터키의 경기 침체 자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나, 침체의 직접적 여파는 비교적 심각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 동안 안정적 성장을 구가한 인구 8천만 명의 국가임에도 불구, 터키가 전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로존 국가의 터키에 대한 무역 의존도도 크지 않다. 터키에서 발생한 최근 두 건의 금융위기로 유럽 수출기업들이 신흥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터키의 위기가 유로존 금융시스템을 통해 퍼져나갈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을 표명한 바 있다. 위기에 대한 노출도가 가장 높은 국가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터키발 위기가 다른 신흥국가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가 보유한 달러표시부채가 3천억 달러가 넘고, 이것이 국가 재정에 미치는 실질적 부담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만큼 터키가 직면한 위기는 그 자체로 보아 매우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멕시코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국가 또한 글로벌 경기 침체 이후 미국의 저금리 환경을 틈타 달러표시부채를 늘렸고 이후 통화 문제를 겪게 되었다. 비평론자들은 복수의 신흥국에서 대규모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율 증가


터키는 정부지출 감소 및 자금공급제한 등 통화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요소를 아우르는 구체적 경제정책전략을 구축하지 못했다. 오히려 현 위기의 책임을 외국에 전가하고 특히 미국 대통령을 배후로 몰았다. 리라 안정화를 위한 경제정책을 내놓는 대신 터키 통화가치 절하를 터키에 대한 공격인 것으로 매도했다. 이는 리라화의 가치가 추가 절하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리라화 가치절하는 터키의 부채부담이 자국통화 기준 두 배로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터키의 외채는 2018년 2분기 초 기준 총 4,667억 달러로 집계되었으며, 이는 터키 GDP의 55%에 달한다. 터키의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 자체는 비교적 낮은 반면, 외화표시채무가 국가 공공부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에 육박한다. 이는 국가예산이 통화가치 절하 및 해외자본 가용성 감소에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부채 비율이 준 것은 지난 10년 동안의 탄탄한 성장 덕분이다. 2008년 글로벌 부채위기에서 빠르게 회복한 이후 터키는 평균 약 7%의 연간 실질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2018년 1분기 터키의 연간성장률은 이전 분기의 7.3%에서 7.4%로 증가했다.


터키가 완전한 채무불이행을 면하게 될 경우, 급격한 통화가치하락과 지속적인 금리인상이 맞물려 터키로의 투자 유입량과 이익폭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실업률이 증가할 것이다. 터키의 소비자층이 물가 상승과 실업률 증가에 직면할 확률이 높다. 현재 기준 18%인 인플레이션율은 연말에는 20.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기록된 수치의 평균값의 두 배에 달한다.


터키 정부가 앞으로 해야 할 일


지금까지 터키 정부는 엄격하고 강력한 조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이 터키를 배신했다고 지속적으로 비난하며, 위기와 관련된 가짜 뉴스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파하는 개인에 대한 단속을 지시 및 발표했다. 한편 중앙은행은 터키 은행의 자금조달에 필요한 요건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터키의 금 보유량 및 외환보유고가 적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이와 같은 터키의 행보 두 가지 모두 현재 불거진 대규모 위기에 대처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터키 정부가 택할 수 있는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해결책이자 가장 채택 가능성이 낮은 안은 IMF 프로그램에 다시 복귀하는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이 생각하는 경제 및 금융 성장에 필수적인 저리금융 유입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IMF 프로그램으로부터 너무나도 빠르게 등을 돌린 바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 경제에 구조적 문제는 존재한 바 없다고 공공연히 언급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해결책은 고려대상조차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안은 EU 등의 지원을 받아 터키가 자체 안정화 계획을 수립 및 이행하여 당면한 단기 문제 일부를 완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에 있던 긴장관계 및 금융 관계의 부실 또는 부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안의 시행 가능성 또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안은 부국이 되겠다는 터키의 목표 달성에 보탬이 될 경제운영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 계획에는 경제구조 다각화와 동시에 국내금융구조의 회복력 및 유연성 확대를 위한 방안이 포함되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터키는 거듭 증가하는 성장률과 안정적인 인플레이션 기조를 유지하며 높은 수준의 경제안정성과 진전을 구가해 왔다. 터키의 통화위기가 주는 교훈을 터키만이 아닌 다른 행위자도 배워야 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현재 터키가 겪고 있는 통화위기는 경제구조가 취약한 국가의 개혁 필요성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