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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일대일로의 최종 관문역할? : 체코-중국 관계 전망

체코 김신규 서강대학교 국제지역연구소 연구교수 2019/04/10

인권외교에서 실리외교로의 전환


2010년대 초반까지도 인권을 외교의 원칙으로 내세웠던 체코의 외교정책을 통해 볼 때, 체코와 중국의 관계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1989년 체코의 체제 전환을 주도했던 하벨(V. Havel) 대통령의 기본 원칙은 인권과 시민권 준수였고, 체코 정계를 주도하는 엘리트 대부분이 과거 반체제 인권운동가였기 때문에 인권과 시민권에 기초한 대내외 정책결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벨은 달라이 라마 초청, 천안문 사태 비판 등 중국의 인권과 민주화를 강력히 비판함으로써 중국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체코-중국 관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은 2013년 사회민주당 정부가 들어서고, 최초의 직선 대통령으로 제만(M. Zeman)이 선출되면서부터였다. 사회민주당 정부와 제만 대통령이 친중파로 돌아선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2007년 이후 유로존의 경제 위기를 경험하고 유럽연합에서 난민 수용이나 조세개편과 같은 사법 내부 분야에 대한 통합을 진행하려는 입장을 보이자 이에 반발해 체코의 주권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돌아선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특히 중국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매력적인 파트너 국가로 보였다. 무역규모와 외환보유고 세계 1위인 중국의 거대한 시장과 자금력은 체코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에게는 유럽연합, 특히 그 중에서도 독일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보였다. 2015년 기준 유럽연합이 체코 수출의 약 84%, 수입의 약 69%를 차지하고 있었고, 특히 독일이 체코 수출의 32% 이상, 수입의 27%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체코 대외무역에서 유럽연합과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유로존 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독일 경제 특히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의존도로 인해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경험한 체코로서는 독일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안이 필요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 의존도 심화는 결국 체코의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종속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체코 정부는 우선 ‘수출전략 2012-2020(Exportní strategie ČR 2012–2020)’을 통해 수출 다각화와 FDI 유입을 위한 최우선 국가로 중국과 러시아를 선정한 바 있다. 그러나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과 2014년 크림 합병 그리고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대한 군사 개입 이후에는 러시아보다는 중국을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점에 중국이 16개 중동부유럽 국가와의 협력 플랫폼으로 C-CEE 혹은 16+1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면서 체코와 중국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체코의 입장에서는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과 중국 자본의 유입을 통해 독일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고, 중국의 입장에서는 서유럽으로의 진출을 위한 최우선 관문으로 여겼던 폴란드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체코를 폴란드 대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마침 총선과 대선을 통해 기존의 인권외교를 포기하고 실리외교를 추진하는 사회민주당과 제만이 집권하면서 체코와 중국의 ‘허니문 기간’이 시작되었다.


중국-중동부유럽의 협력 플랫폼: 16+1 이니셔티브


중국과 중동부유럽 16개국 사이의 협력 플랫폼이 만들어진 것은 2011년 6월 부다페스트 17개국 회의였고, 2012년 4월 바르샤바 회의부터는 이를 ‘바르샤바 이니셔티브’ 혹은 16+1 이니셔티브라고 지칭한 이후 본격적으로 16+1이 시작되었다. 당시 원자바오 총리는 중동부유럽 국가들과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구축하고 경제적, 문화적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기본 구상을 발표하고, 중국 외교부에 ‘중국-중동부유럽 협력국’을 설치하는 등 16+1과 일대일로를 결합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16+1이 시작되던 초기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체코는 2013년 제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고, 중국 역시 당초 최우선 국가로 여겼던 폴란드와 문제가 생기자 폴란드의 대안으로 체코를 선택했다. 의회제 국가인 체코는 공식적으로는 대통령의 역할이 크지 않지만, 불안정한 정당체제로 인해 대통령이 정부 구성에서부터 국가의 외교정책에 개입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친중파 제만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제만은 자신이 총리로 재임했던 1990년대 말까지도 중국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었다. 그는 당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요구하던 정치인들에게 “눈을 찢는 성형수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라는 인종주의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었다. 그러나 10년 만에 정계에 복귀해 최초의 직선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에는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제만은 중국의 종전 70주년 행사에 참석한 유일한 서방 지도자였고, 남지나해 영유권과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 외교정책의 목표를 지지하면서, 중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기 보다는 실용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이 낫다는 논리를 설파했다. 한편 제만은 2016년 시진핑(Xi Jinping)의 프라하 방문 당시에는 체코가 그동안 워싱턴과 브뤼셀에 너무 순종적이었지만, 중국과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맺으면서 진정한 독립국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체코가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시진핑은 이에 화답해 100억 유로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대규모 투자에 대한 기대로 주요 정치인들은 중국 인권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고, 회담장인 프라하성 주변을 에워싼 인권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켜 버렸다.


기대와 실망


중동부유럽 16개국의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2015년까지 중국과 중동부유럽 16개국 간의 교역규모를 900억 유로까지 끌어올리려던 16+1의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 1995년 양자 교역 규모가 26억 2,310만 달러에서 2010년에는 470억 2,700만 달러로 그리고 2016년에는 565억 6,780만 달러로 지난 20여 년 동안 약 21.6배 증가했지만, 사실 이런 교역 증가가 16+1의 효과라고는 할 수 없었다.


체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2005년 대중국 수출은 전체 수출의 0.312%에서 2018년에는 1.191%로 3배가량 증가했고, 수입은 5.83%에서 10.51%로 약 2배 증가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바와는 거리가 멀었고 이 역시 16+1을 통한 경제적 효과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더군다나 무역수지 적자폭은 해가 갈수록 벌어져 2018년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3,254억 9,300만 코룬(약 144억 2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또한 중국의 중동부유럽에 대한 투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중국의 유럽 투자는 계속해서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소위 빅 3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들 빅 3에 대한 투자 비율은 2008년 41.7%에서 2016년 59%로 증가했으며, 중동부유럽에 대한 투자는 16+1 이니셔티브 이후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2000-2016년 중국의 중동부유럽 누적 투자액은 49억 200만 유로로 EU 28개 전체 투자 중 4.85%에 불과하다.


이처럼 중국의 투자도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CEFC(China Energy Finance Corporation)라는 사기업이 체코에 진출해 슬라비아-프라하 축구팀, 유서 깊은 양조업체인 로프코비치(Lobkowicz), 대규모 오피스 타워, 체코 최대 온라인 여행사, 체코항공의 지분을 매입하는 등 약 10억 유로를 투자했지만, 당초의 100억 유로 규모의 투자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동시에 CEFC의 회장인 예 지안밍(Ye Jianming)과 측근 인사들이 중국과 미국 등지에서 부패 혐의로 체포되고, CEFC의 부실이 드러나 임금까지 체불하면서 체코는 중국의 투자의지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의 체코 투자는 2015년에는 약 2억 7,000만 달러, 2016년에는 6억 6,500만 달러, 2017년에는 6억 9,130만 달러로 증가했지만, 사실 체코 전체 FDI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고작 0.443%에 불과하며, 2017년 체코 전체 FDI에서 2.19%를 차지하는 한국에 비해서도 상당히 적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인수합병에 집중되어 있는 중국의 투자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일자리를 창출하는 분야가 아닌 부동산이나 소비부문에 집중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결코 중국은 체코의 무역과 투자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파트너가 아니라는 의심은 더욱 더 증폭되고 있다.


인권외교로의 복귀?


CEFC 회장과 주요 인사들이 부패 혐의로 구속되고, 재무구조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제2의 COVEC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생겨났고 실제로도 그랬다. 2018년 CITIC(China International Trust Investment Corporation)이 CEFC를 인수하면서 중국의 투자에 대한 불만은 더욱 커졌다. 적어도 CEFC는 사기업으로 활동했었지만, CITIC은 중국 국영기업으로 중국이 이제부터는 정치적으로도 체코에 접근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16+1 이니셔티브 이후 중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몇몇 기업도 있었지만, 실제로 체코의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업의 소유주인 외국인들에게만 이득이 된다는 비판도 거세졌다. 대표적으로 체코의 스코다 자동차(Škoda auto)가 성공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실제 스코다는 폭스바겐의 자회사에 불과하며, 은행, 보험시장에 진출한 체코의 홈-크레디트(Home Credit) 역시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기업이기 때문에 체코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제만의 맹목적인 중국 사랑이 점점 더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으며, 외무장관 페트르쥐첵(Tomáš Petřiček)은 전통적인 체코 외교정책의 아젠다인 인권외교를 다시 전면에 내세우면서, 2014-2017년 인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중국의 시장과 투자를 얻어내려던 이전 외교정책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2018년 12월 국가사이버 안보부(Národní centrum kybernetické bezpečnosti)가 화웨이와 ZTE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경우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함에 따라 체코 정부는 전자정부(e-government) 구축 프로젝트에 중국 업체들을 배제시켰다.


체코-중국 관계 전망


당초 중동부유럽 국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16+1 이니셔티브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여기에 참여한 국가들 사이에서 점차 중국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미 16+1에서 중국의 가장 열렬한 구애를 받았던 폴란드는 미국-중국 무역전쟁의 와중에 미군의 영구 주둔을 결정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자유세계의 적으로 선언했고, 중국의 사이버 스파이 행위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더군다나 폴란드에서는 COVEC 등 중국기업이 참여한 각종 국책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 중단 되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어 중국기업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있고 교역과 투자에 대한 당초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서 16+1과 중국에 대한 열의가 줄어들고 있다. 2018년 7월 소피아에서 개최된 16+1 회의에 총리가 아닌 부총리를 파견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폴란드와 중국의 밀월 관계는 이미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체코에서도 폴란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강력한 친중파 대통령 제만이 2018년 재선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과 일방적인 중국 사랑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인권을 거스르면서까지 중국에 집착하고 있는 그의 행태에 대해서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게다가 당초 기대했던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이나 중국 자본의 유입도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희망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적어도 당분간은 16+1 플랫폼을 통한 중국의 유럽 접근과 거대 시장과 투자에 미련이 남아있는 체코의 친중국 정책이 어느 정도까지는 유지되겠지만, 중국의 계획대로 폴란드와 체코를 통한 서유럽으로의 진출은 어려울 것이며, 경제를 미끼로 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도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폴란드와 체코에서 방향을 돌려, 중부 유럽의 헝가리와 발칸반도의 세르비아를 통해 계속해서 서유럽으로 향하는 문을 두드릴 것이다. 유럽연합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헝가리와 인프라 투자가 시급한 세르비아에게는 여전히 중국이 가장 매력적인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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