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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AMLO의 멕시코 개혁, 순항할 것인가, 좌초할 것인가?

멕시코 임상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원장 2019/04/18

2018년 12월 1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이하 AMLO)가 6년 임기의 멕시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부정부패, 폭력, 불평등 등을 심화시킨 기득권 정치에 염증이 난 국민의 지지에 힘입어 두 번의 대선 실패 끝에 대통령이 되었다. 특히 이번 대선은 89년 만에 보수 우파에서 중도 좌파로 정권이 넘어왔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멕시코에서는 1929년부터 2000년까지 제도혁명당(PRI)이 집권했는데, 사실상의 일당 통치 체제 시기였다. 2000년에는 71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어 보수 우파 정당인 국민행동당 (PAN)이 집권하였으나 2012년 PRI가 다시 대선에서 승리하여 2018년까지 멕시코를 통치하였다. 따라서 AMLO 정부의 출범은 1929년 이후 89년 만에 보수 우파에서 중도 좌파로 정권이 교체되었다는 점에서 멕시코 현대사의 일대 전환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AMLO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특히 국내적으로 AMLO 정부는 부정부패, 폭력, 불평등 등 산적한 사회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100일 동안 엄청난 속도로 많은 일을 해냈다.


우선 먼저 한 일은 권력과 지배의 상징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AMLO는 호화로운 대통령궁을 국민에 개방해 문화공간으로 전환했고, 대통령 전용기 매각 후 일반 항공사를 이용하여 국민과의 거리를 좁혔다. 또 AMLO 대통령은 정부 창고에서 발견된 부정부패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가의 트럭,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압수하여 경매에 부쳤다. 정권 출범 100일을 맞는 3월 11일 AMLO 대통령은 1905년부터 1세기 이상 억압, 처벌, 고문의 역사로 상징되던 마리아 섬 교도소를 폐쇄하여 지역 문화센터로 바꿨다.


AMLO의 과감한 개혁 조치


이런 상징적인 조치와 함께 실질적인 개혁 정책과 프로그램들이 추진되었다. AMLO는 고위 관료층의 특권을 개혁하는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먼저 시작한 것은 지나치게 높은 고위 법관의 연봉 삭감이었다. 멕시코 대법관의 연봉은 거의 40만 달러에 이르는데 이는 미국의 대법관 월급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것이다. AMLO는 “위에서부터 아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월급을 절반으로 깎으면서 임금 삭감을 밀어붙였다. 비록 법원에 의해 임금 조정은 일단 중단됐지만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더 높아졌고 결국 판사들은 ‘자발적’으로 월급을 삭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AMLO 정부가 취한 결정 중 가장 충격이 컸던 것은 멕시코시티 외곽 텍스코코(Texcoco)에 추진되었던 120억 달러 상당의 신공항 건설 계획 취소였다. AMLO는 신공항 프로젝트를 정부가 민간기업과 부풀려진 가격에 계약을 맺어 예산을 낭비하고, 수익은 기업이 가져가며, 나중에 나타나는 문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치와 경제 권력의 유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신자유주의 부패의 전형으로 보았다. 신공항 건설이 30%나 진행되어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AMLO는 국민과의 직접 대화를 지렛대 삼아 결국 신공항 건설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국영석유회사 페멕스(PEMEX) 송유관 절도 범죄와 전면전을 벌인 것은 페멕스 개혁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자 마약 등 조직범죄와의 전쟁 예고편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페멕스는 휘발유 운송 과정에서 하루에 약 8만 배럴 정도가 사라지는 것으로 추정해 왔다.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절도하는 이 방식은 지난 10년간 계속 증가해왔고 지상과 지하 심지어 해상 송유관을 가리지 않았다. 특히 절도의 특성상 범죄조직과 페멕스의 관리자급 직원들이 연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AMLO 정부는 이를 근절하기 위해 군을 동원해 송유관을 감시·보호하였고, 그 결과로 초기에는 휘발유 수송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이달고 주의 틀라우엘 릴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절도용 파이프라인이 폭발해 125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문제가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국내 휘발유 공급은 거의 정상화되었고 연료 절도도 대폭 감소하였다.


범죄를 줄이고 치안을 확보하는 것은 AMLO 정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이다. 이를 위해 AMLO 정부는 국가방위대 (Guardia Nacional) 창설을 추진하였다. 멕시코는 지난 10년간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약과의 전쟁에 부패한 경찰을 대신하여 군을 투입해 왔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 멕시코 군은 법적으로 모호한 상태로 마약과의 전쟁에 투입됐고 인권 침해 사례를 빈번하게 저질렀다. AMLO는 군을 대신할 조직으로 국가방위대를 제안하였다. 물론 국가를 지나치게 군대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국가방위대 창설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다. 「El Financiero」지가 2월 15일과 16일 양일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2%는 창설에 동의하였다.


이 외에도 역대급 인권 유린 사례로 지난 정권 내내 논란이 되어온 2014년 43명의 사범학교 학생 실종 사건 재조사를 위한 진상 규명 위원회가 설치되는 등 여러 개혁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 AMLO 정부의 개혁 추진에 대해 여론과 국민들의 지지는 아직 견고한 편이다. 취임 당시 60%대 후반이었던 AMLO의 지지율은 현재 80%대를 상회한다. 아직까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MLO 정부에 대한 전망이 밝다고만 할 수 없다. 가야 할 길 앞에는 반개혁의 장애물이 도처에 산재해있다.


개혁조치에 대한 정·재계 반발


AMLO 정부에 대한 불만은 경제계에서 먼저 분출되었다. 특히 재계의 분노를 가장 크게 산 것은 신공항 건설 계획 취소였다. 신공항 건설 중단의 정당성 자체에 대한 논란뿐만 아니라 AMLO 정부가 앞으로도 민간부문에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민간투자는 위축되고 정부의 신공항 건설 중단 발표 이후 한때 멕시코 주식시장이 흔들했다. 또 미초아칸 교원 노조의 파업도 기업과 자본의 불만을 증폭시켰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교사들의 철로 점거에도 정부는 파업권을 인정하였고, 이로 인해 태평양 무역의 관문인 라사로 카르데나스 항구의 물류 수송 마비로 수출입 기업들의 피해가 컸다. 최저 임금 인상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다. 특히 제조업이 집중되어 있는 멕시코 북부 마킬라도라 지역에서 임금 인상 압력이 커져서 기업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AMLO 정부의 정책에 대해 국제 자본의 압력 상승과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신용 등급 하향 조정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 1일 S&P는 멕시코의 신용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였다. 이유는 낮아진 예상 경제성장률, 정부 정책 변화로 에너지 부문 민간 참여 위축, 국가 부채 증가 위험, 페멕스 적자 경영 위험을 들었다. 무디스 역시 불안한 민간투자 전망과 세계적 경기 불황의 위험성을 들어 멕시코의 2019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의 2.2%에서 1.7%로 낮추어 발표했다.


고위 관료들의 보이지 않는 저항도 무시할 수 없다. 대법관 임금 삭감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AMLO는 기본적으로 멕시코 관료주의가 부패하고 비대하다고 평가하면서 특히 고위 관료층을 공격해 왔다. 멕시코 관료주의의 병폐는 PRI의 사실상 일당 통치 체제에서 고착되어 왔다. 특히 고위 관료층은 주요 직책을 서로 주고받고, 이름만 걸어두고 월급을 받아 가곤 했다. 대신 이들은 PRI 장기 집권의 협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2000년 정권이 PRI에서 PAN으로 넘어갔지만 ‘정권은 바뀌었지만 정부는 바뀌지 않았다’라는 비유가 유행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6년만 버티자’라는 고위 관료층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행정 개혁의 중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지지층 내부에서도 AMLO 개혁에 대한 이견들이 나오고 있다. 이달고 주 송유관 폭발사고는 그 가능성이 사전에 충분히 제기되었음에도 정부가 너무 무리하게 강행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PRI 정부 하에서 부정부패 혐의로 투옥되었던 중남미 최대 노조인 멕시코교원노조(SNTE) 위원장 엘바 에스테르(Elba Esther)가 AMLO 취임 직전 석방되고 AMLO 취임 후 정부가 여러 건의 노사 문제에서 친노동적인 입장을 보이자 멕시코 정치부패의 상징 중 하나였던 노조 관료주의가 다시 부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점증하고 있다. 일부 지지층에서는 AMLO 정부가 외국인 투자를 지나치게 의식하여 페멕스 개혁에 적극적이지 못해 에너지 부문 개혁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개혁(改革, reform)은 말 그대로 바꾸고 다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개혁의 본질은 이것으로 손해를 보는 집단이 생겨서 개혁과 반개혁의 대립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AMLO 정부의 미래는 살펴본 바와 같이 개혁을 외면하거나 또는 반대하는 움직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기득권층의 대응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AMLO 정권의 명운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MLO는 대선 캠페인에서부터 신자유주의로 야기된 문제들을 분명히 지적해왔다. 특히 하류층의 복지 확충 등에 시장이 국가를 대신할 수 없음을 재확인하고 신자유주의 세례를 받은 이전 정부들과 다른 길을 걸을 것임을 천명해왔다. 또 그는 ‘평화롭고 민주적인 사회로의 역사적 전환’을 주장해왔다. 폭력과 범죄 문제를 해결하고 정치적 부패와 특혜를 일소하여 평화와 민주의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AMLO 개혁의 골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AMLO 개혁은 곧 PRI를 중심축으로 하는 기득권 정치와 체제를 개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래서 기득권층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AMLO 정권의 절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멕시코 기득권층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멕시코는 독립 이후 줄곧 백인 지배 엘리트가 과두제를 통해 권력을 독점해온 전형적인 국가이다. 따라서 멕시코의 과두 엘리트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엘리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하고 풍요로운 식민지였기에 멕시코는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ña)’ 즉, ‘새 스페인’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이런 이유로 이 지역의 지배 엘리트는 이것을 지키는 특출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스페인계 엘리트는 본국 출신과 식민지 출신으로 대립하기도 했지만 독립 이후 이들은 재빨리 연합하여 다수 위에 군림하는 체제를 만들어 냈다. 당시 멕시코 엘리트의 가장 큰 관심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원주민과 혼혈인이 가장 많고 강력했던 멕시코가 민중적인 국가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멕시코 엘리트는 민중 위에 군림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가장 경계하였다. 엘리트 독점 통치는 1910년 멕시코 혁명이 발발하여 일대 위기를 맞았으나 멕시코 엘리트는 ‘혁명의 계승자’란 교묘한 슬로건을 고안하여 오늘날까지 지배를 연장해왔다.


이들의 특권은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넘어 거의 초법적인 영역에 있어왔다. ‘법은 있지만 처벌받지 않는’ 불처벌(impunidad, impunity)의 관행은 아직까지 그대로이다. 식민 시대부터 있어왔던 이 관행은 거의 문화의 수준이며 따라서 고위층이 연루된 범죄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또 멕시코에서 부는 상속세 없이 자유롭게 대물림되어 왔고 따라서 경제적 특권은 합법적으로 재생산되면서 공고화되어 왔다. 이렇게 멕시코 특권 엘리트들은 자신들에게 봉사하는 법과 문화로 무장된 멕시코 체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기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세 번이나 혁명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는 아직도 위와 아래가 한 번도 뒤집어져(Upset) 본 적이 없는 나라이다. 이는 멕시코 지배 엘리트가 얼마나 견고하고 강력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AMLO vs 기득권층’, ‘AMLO vs 보수우파’, ‘개혁 vs 반개혁’과 같은 이분법으로 현재 멕시코 정국의 전선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대선에서 일부 보수 세력이 AMLO의 선거연합에 참여하였고 기득권층에 들지 않더라도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도 있다. 특히 ‘멕시코가 이나마 사는 것은 안정에서 온다.’라는 과학주의(los cientificos)적 믿음을 갖고 있는 국민들도 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MLO 개혁의 가장 큰 관건은 반개혁적 조건들과 작용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는데 이견이 없다. 따라서 아직 높은 대중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개혁 반대 세력에 대처하면서 동시에 이들을 포섭해나가는 솜씨를 보여주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하겠다.


보수 야권은 아직 선거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의 AMLO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높다. 하지만 보수의 혼란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혁의 성과는 일순간에 나타나지 않기에 국민의 지지도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AMLO 개혁의 승산은 높다고만 할 수 없다. AMLO 선장의 멕시코호가 순항할지, 좌초할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현대사에서 지금처럼 개혁의 기운이 무르익었을 때는 없었다. 이런 면에서 멕시코는 지금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멕시코는 자국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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