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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중미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진출 시사점

중남미 일반 오성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2019/04/29

최근 美·中 갈등 확대에 따라 중미 외교· 안보에도 영향


미 트럼프(Donald Trump) 정부의 출범으로 본격 드러난 미·중간 통상갈등이 무역전쟁 수준을 넘어 2018년 하반기부터는 전 세계 곳곳에서 패권경쟁 양상으로 가고 있다. 시진핑 정부가 추구하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이른바 중국몽(中國夢)과 중국굴기(中國屈起)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이 ASEAN 지역과 중앙아시아, 중동 및 아프리카를 넘어 중남미까지 뻗어가면서 이제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모양새이다.


중국은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부터 브라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자원 부국과 투자협력을 강화하면서 미국을 자극했다. 최근에는 미국 본토와 사실상 맞닿은 중미 국가들에게까지 인프라 투자자금 지원을 무기로 하는 수표장(Checkbook) 외교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2017년 파나마에 이어 2018년에는 도미니카공화국과 엘살바도르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새로 수교를 맺자 폼페이오(Mike Pompeo) 미 국무장관은 해당국 대사들을 초치하여 불만을 표출하는 등 미국의 직접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탈냉전 이후 미국은 중앙아메리카에서 이렇다 할만한 지정학적 안보 이슈가 사라지면서 마약과 불법이민문제 말고는 그동안 거의 주목하지 않았는데, 중국의 영향력은 어느새 미국의 뒷마당(backyard)까지 침투해서 정면충돌 직전까지 와 있는 것이다. 미 행정부는 다소 뒤늦은 2018년 말부터 남미의 베네수엘라와 함께 쿠바와 니카라과를 불량 국가로 지목하고, 이른바 폭정 3인방(troika of tyranny)을 몰아 내기 위해 테러 지원국 지정을 검토하며 미국에게 유리한 국제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과거 미국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중요한 지역이 적대국의 영향력 아래로 넘어갈 때는 침략 전쟁도 불사할 만큼 적극적인 행동을 취한 경우가 많았는데, 중미 지역은 미국의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이번에는 어떤 해법을 찾으려 할지 중미 국가들의 역사적 변화를 오래 지켜봐 온 이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중미의 역사적 형성 과정과 지정학적 의미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은 오랜 기간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아 오다가 1821년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5개국이 독립하면서 최초 중미 연방을 형성하였다. 이후 1903년 파나마가 콜롬비아로부터, 1981년 마지막으로 벨리즈가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중앙아메리카는오늘날의 국가체제와 영토를 갖추게 되었다. 지정학적으로는 미국, 멕시코 및 주변 남미 국가들과의 역내 관계를 고려해서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아이티 등 카리브해 국가들과 함께 중미-카리브해 권역으로 구분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기도 하다.


중미 국가들은 지리적 밀접함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멕시코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 해왔다. 과거 스페인은 멕시코에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을 설치하여 중미를 함께 통치했으며, 이러한 관계는 1823년 멕시코 제1제국의 몰락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20세기부터 미주 대륙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한 미국이 스페인과 포르투갈 외에도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강대국들이 계속 중남미에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먼로주의(Monroe Doctrine) 정책을 펴면서 중남미는 오늘날 미국의 ‘뒷마당’이라는 오명을 받았고, 인구도 적고 자원도 부족한 중앙아메리카는 점차 세계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중앙아메리카의 비애는 비단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류 최대의 재앙이었던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소 초강대국이 대립하는 냉전 시대가 오면서 이데올로기 전쟁에는 참여할 의지도 여력도 없던 중미 국가들은 미국과 다른 이념을 선택하려 할 때마다 시련을 겪었다. 1959년 쿠바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던 바티스타(Batista) 정권이 붕괴하고 무장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카스트로(Castro) 형제가 집권하자 미국의 근심은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다. 1960년 4월 16일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국가를 선언하자, 케네디 정부는 바로 다음 날인 4월 17일에 쿠바 망명자들을 이용해 피그만으로 침공했다. 이 실패한 사건은 미국과 쿠바 간 대립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미국은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50년 넘게 지속된 경제제재는 현지 산업을 도태시키고 쿠바 국민들의 고통만 가중시켰을 뿐 사실상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이와 달리 미국은 다른 중미 국가들에게는 경제 원조와 정치 개입을 병행하면서 사회주의의 확산을 봉쇄하려 하였는데,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정점을 향해 달리던 198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의 조바심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레이건 정부와 CIA는 니카라과 혁명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자국법도 어겨 가면서 불법 자금을 만들어 콘트라 반군을 장기간 지원하였고 1983년에는 카리브해 작은 도서 국가인 그레나다를 침략하였다. 또한 부시 정부는 파나마 운하가 독재자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빌미로 1989년에 파나마 침공을 강행하여 한때는 자신들이 지원해왔던 노리에가(Manuel Noriega) 정부를 전복시키고 파나마의 주권을 무력화시켰다.


물론 미국은 중미 국가들의 사후 재건 과정을 지원하고 지금까지도 원조를 지속하고 있으나, 중미 국가들로서는 오랜 내전과 갈등으로 한참 뒤처진 경제를 단기간 회복시키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다. 더구나 1994년 멕시코가 미국, 캐나다와 함께 북미경제공동체(NAFTA)로 편입되면서 중미 국가들은 미주 대륙에서 존재 가치가 사라져 갔다.


최근 중미 정치 동향과 향후 변화


잊혀진 지역을 다시 전 세계에 알린 계기는 중미 카라반(Caravan) 행렬이였다. 이 현상은 2018년 11월 미국 중간 선거에서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과 함께 불법(undocumented) 이민자에 대한 처리 문제를 가장 우선적인 대외 정책 이슈로 부상시켰다. 카라반 행렬은 2018년 10월 온두라스 북서부에 있는 도시인 산 페드로 술라의 작은 터미널에 모인 120명으로 시작되었는데, SNS를 타고 소문이 확산되면서 순식간에 참여자가 7,0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원래 카라반은 사막이나 초원에서 무리를 지어 이동해 다니는 상인을 뜻하였지만,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 중미 국가의 치안 불안으로 마약, 살인 등 강력 범죄와 정치적 박해를 피해 떠나는 이민자 행렬이라는 정치적 의미로 진화하면서 국제 동조 여론이 크게 형성된 것이다.  카라반의 흥행은 중간 선거를 앞두고 불법 이민을 강력하게 억제하려는 트럼프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었고 역사상 최초로 정권 교체를 통해 중남미 민족주의를 부활시키려는 멕시코 오브라도르(Obrador) 정부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현상은 트럼프 지지자를 결집시켜 공화당이 상원에서 우위를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오브라도르 정부에게는 향후 중미 재건을 위해서는 미국의  원조도 필요하지만 난민들을 잘 통제해야 하는 멕시코의 역할도 적지 않음을 보여주게 되어 당장은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중미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함에 따라 카라반 현상은 앞으로는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선 난민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힘으로도 7,000명 이상의 행렬을 다시 모집하여 미국에게 자신들의 조국과 멕시코에 보다 나은 처우를 요구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한편 오브라도르 정부도 새로운 후원자로서 중국의 등장 가능성에 따라 과거처럼 미국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당장은 미국과 사실상 경제적으로 통합된 멕시코가 스스로 갈등을 자초할 일이 없겠지만, 최근 중국과 멕시코 간의 교류를 활용하여 민족주의 성향의 오브라도르 정부로서는 이제 선택의 폭을 넓혀 멕시코의 중미판 마셜 플랜(Marshall Plan; 2차 대전 후 서유럽에 대한 미국의 경제 원조 계획)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굴복하기는커녕 여전히 국경 장벽 건설 예산을 두고 의회와 갈등하는 상황에서 멕시코와 중미 국가들에게 2019년 원조 금액을 20% 이상 삭감(130억 달러 규모)하겠다고 압박하고 있어 향후 결과가 주목된다.


중미 경제 특성과 향후 전망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남미의 경제 대국들은 각자의 복합적인 이유로 장기간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중미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낮은 엘살바도르를 제외하면 비교적 빠른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10~18년까지 중남미 전체 GDP 성장률이 연평균 2.3%인 반면, 중미 6개국의 평균 성장률은 3.9%로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유지해왔다. 남미 국가들은 원자재 수요 변동과 만성적인 재정·경상 적자로 미국의 금융정책 변화에 따라 외환위기에 늘 시달리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대미 경제 의존도가 높은 중미 국가들은 오히려 미국 경기 호황에 따른 수출증가와 해외 이민자들의 국내 송금이 늘면서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직접투자(FDI)도 꾸준히 늘어 2017년 순 유입 기준으로 파나마 52억, 코스타리카 31.8억, 온두라스 10억, 니카라과 8.9억, 엘살바도르 3.7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이는 2010년부터 2017년까지 해마다 평균 11.7%씩 증가한 수준이다.


중미는 국가별 산업 구조와 특성으로 인해 크게 임가공 무역이 발달한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의 북부 권역과 서비스와 물류업이 발달한 코스타리카, 파나마 등 남부 권역으로 구분된다. 전통적으로 북부 권역은 임금 수준이 낮고 노동력이 풍부하여 의류 가공, 인형 제작 등 봉제업이 발달하였고, 최근에는 인접한 멕시코의 자동차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자동차용 플라스틱 부품 제조가 늘어 산업의 부가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남부 권역의 경우 상대적으로 치안이 좋고 경제적으로 개방적이어서  서비스, 물류업 외에도 고소득 분야인 관광, 바이오, IT 산업이 최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다만 최근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앙아메리카를 둘러싼 역내 관계 변화는 중미 경제 성장에 대한 우려와 기회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중국과 중미 국가들 간의 빠른 교류 확대(중국의 대중미 수출 및 투자 증가)가 예상되지만, 만약 미국이 중미 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줄이고 정치 불안 및 소요 사태를 겪고 있는 니카라과 등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감행할 경우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해외 투자자들의 이탈로 외환위기 가능성 등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중미 진출 전략과 시사점


2018년 2월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중미 5개국 (과테말라는 내부 조율 문제로 추후 가입 절차 진행)과 FTA를 체결하고, 발효를 위해 국회 승인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FTA 체결 시점에 맞추어 중미경제통합은행 (CABEI)에도 가입(4.5억 달러 출자, 지분 7.58%)하여 대만에 이어 최대 지분을 보유한 회원국으로 참여함에 따라 향후 중미 인프라 사업에서 프로젝트 자금 조달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미·중 통상 갈등 여파로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에서 한국은 내수시장 대비 교역 규모가 큰데 반해, 한 · 중 · 일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아 교역 다변화가 절실한 상황이어서 이번 중미 시장 진출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먼저 자동차, 전자 등 제조업이 강한 한국과 바나나, 커피, 사탕수수 등 농산품에서 경쟁력을 갖춘 중미는 상호 보완적인 산업 구조를 갖고 있기에 교역을 통해서만도 마찰 없이 서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지리적·문화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K-Pop, K-Beauty 등 이른바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의 위상도 중미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최근 중미 국가들은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젊은 인구의 증가에 따른 소비재 수요의 높은 성장이 기대되면서 수출시장으로서 매력도가 커지고 있다.


또한 중미지역을 향후 미주 생산 거점으로서 활용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 과거 중미 시장은 주변국들의 낮은 시장 개방도로 인해 주로 저렴한 노동 인력을 활용하려는 단순 가공산업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인접한 멕시코는 NAFTA 재협상(USMCA로 대체) 과정에서 미국 시장에 대한 높은 의존성으로 인해 크게 고전하면서 교역 다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때마침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 대국들도 정부 성향의 변화와 함께 메르코수르(MercoSur; 남미공동시장)의 폐쇄성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교역시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니즈들이 중남미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아시아 국가들과 연결된다면 향후 중미 지역의 거점 역할이 크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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