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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베네수엘라의 정치 위기와 러시아의 대응 및 향후 전망

러시아 / 베네수엘라 조준배 서원대학교 교수 2019/05/02

서론

 

2019년 1월 23일, 중남미의 카리브 해안에 위치한 베네수엘라에서 국회의장 후안 과이도(Juan Guaidó)가 돌연 정부를 상대로 자신이 임시 대통령임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작년 5월 실시된 대선은 부정선거였기 때문에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현 대통령은 정당한 국가 원수로 인정될 수 없으며 따라서 대통령 유고 시 국회의장이 대행 의무를 맡는 헌법 조항을 적용하여 오늘부터 자신이 최고 통수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두로 정부는 즉각 반박 성명을 낸 뒤, 자진 사퇴는 불가하며 지난 선거는 합법적이었던 만큼 새로운 대선은 당연히 2025년에 실시될 예정이고 다만 베네수엘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야권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과이도가 이끄는 야당과 지지자들은 마두로 대통령의 대응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현 정권에 결연히 맞설 것을 다짐했다. 브라질을 포함하여 멕시코와 콜롬비아 그리고 코스타리카 등 2018년 중남미 대륙 국가들의 대통령 선거전에 불어닥쳤던 우파 후보 당선의 물결이 베네수엘라에서는 반체제 운동의 형태로 등장한 것이었다.


베네수엘라 정국을 강타한 돌발 사태에 국제사회의 반응은 뜨거우면서도 다양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과이도의 성명이 발표된 당일 즉각 그를 베네수엘라의 합법적 지도자로 인정했고, 일주일 뒤에는 직접 전화를 걸어 대통령직 인수를 축하한다는 인사를 전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국가들 또한 반정부 노선을 표방한 베네수엘라의 국회의장을 적극 환영했다. 아르헨티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대통령과 칠레의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an Piñera) 대통령 그리고 콜롬비아의 이반 두케(Iván Duque) 대통령 등 남미의 우파 정부들이 과이도 의장을 지지했고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도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뒤늦게 동참했다. 유럽연합은 비록 이탈리아의 반대로 공동성명을 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1월 26일,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 등 주요 7개국이 2월 3일까지 베네수엘라 정부가 재선거 일정을 발표하지 않을 경우,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서방과 다수의 중남미 국가들이 과이도를 지지한 반면 러시아와 중국 및 일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오히려 마두로 대통령을 두둔하며 미국을 비난하고 나섰다. 1월 23일, 러시아의 드미트리 페스코프(Dmitry Peskov) 크렘린궁 대변인은 과이도는 국회의장일 뿐 국가 원수가 아니며 미국의 지원을 받아 불법적으로 권력 찬탈을 시도하고 있는 인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 뒤, 베네수엘라가 제3국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러시아는 이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같은 날, 러시아 외무부 또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베네수엘라의 합법적 지도자로 인정했고, 푸틴 대통령은 20여 분에 걸친 정상 간 전화회담을 통해 양국 간 동맹관계가 여전히 굳건함을 확인해주었다. 중국도 외교부 성명을 통해 베네수엘라의 독립과 안정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히며 미국의 내정간섭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고,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볼리비아 대통령은 과이도의 임시 대통령 선언을 정면으로 반대하며 미국의 승인을 얻으려는 그의 열망이 오히려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개입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까지도 극도의 혼란에 휩싸여 있는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외관상으로는 종래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겪어온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빈곤 그리고 사회적 혼란이라는 익숙한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나 그 이면에는 국제사회의 다양한 반응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국 단위의 수준을 넘어서는 복잡한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숨겨져 있다. 이른바 신냉전이라 불리는, 일방적인 패권을 추구하는 미국의 일극주의 세계질서에 맞서 대안적 체제를 구축해보려는 러시아의 거센 도전이 본격화하고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양국을 중심축으로 유럽연합과 중남미 국가들이 서로 나뉘어 반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리적인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남아메리카 대륙의 작은 나라를 상대로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러시아의 태도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두로 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미국을 향한 맹렬한 비판의 배후에 놓여있는 러시아의 세계전략과 지역정책에 관한 인식이 베네수엘라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정치위기의 실상과 미국 및 러시아의 개입


재선 대통령의 임기 시작 이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수요일, 수도 카라카스의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시민들 앞에서 서른다섯 살의 패기만만한 신예 야당 지도자 과이도가 자신을 임시 대통령이라 선포하며 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함으로써 야기된 베네수엘라 초유의 이중권력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 시비가 직접적인 발단이기는 했지만 사실 마두로 대통령의 전임이었던 차베스 정권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1992년 공수부대 중령 시절 시도했던 쿠데타가 실패한 뒤, 투옥과 사면을 거쳐 대중 정치인으로 변모한 그는 1998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사회주의로의 체제 전환과 반미 노선을 적극 표방하여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회 간접자본들이 국유화되었고 석유산업이 정부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베네수엘라의 최대 자원인 석유를 무기로 카리브 해 연안 국가들을 규합하여 미국에 대항하는 국제기구 ‘페트로카리브’(Petrocaribe)가 결성되었다. 남미 좌파블록의 중심으로 4선을 거치며 14년간 지속된 차베스의 철권통치는 하지만 2013년 3월, 그가 암으로 갑자기 사망하면서 동요하기 시작했고 다음 달 실시된 대선 결과에 부정 의혹이 불거지며 반정부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2013년 등장 첫해부터 대중의 저항에 직면한 마두로 대통령은 이듬해 국제 유가의 급락이라는 예기치 못한 충격을 경험하면서 수출 부진과 재정 부족으로 인한 각종 경제적 위기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살인적인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해마다 기록을 경신하며 장기간 지속되었고 국민들은 기초 생필품과 의약품의 만성적인 부족에 시달려야 했을 뿐만 아니라 강도 및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 또한 급증하여 일상생활의 고통과 사회적 불안감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연합의 연이은 경제제재로 인해 국제 금융거래가 중단되고 서방은행에 보관되어 있던 금도 모두 동결되어 해외자산의 자유로운 운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공식 집계된 대외 부채만 무려 1,500억 달러에 달했다. 마두로 정부는 경제적 붕괴라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자국 및 러시아에 보유하고 있던 금을 두바이와 같은 제3국을 통해 매각하여 부족한 재정을 확보하고자 했으나 미국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었고 관련 정보를 입수한 야당이 정치 문제화하면서 선거 이슈로 시작된 국민적 저항이 한층 격렬해졌다.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정국에 국내적 요인보다 더 큰 변수는 미국과 러시아의 개입이라는 외세의 문제이다. 1월 23일 과이도의 임시 대통령 선언이 있던 날, 양국은 지도자를 비롯하여 외무부와 안보보좌관 등 실무진들이 상반된 성명을 주고받으며 대립각을 세웠고 다음 달에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관련 사안을 둘러싸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베네수엘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별도의 결의안을 제출하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획득하려 했지만 미국은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러시아는 15개 이사국들 가운데 4표만을 얻어 과반수 득표에 실패했다. 4월에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미국의 마이크 펜스(Mike Pence) 부통령이 동석했던 베네수엘라 대사를 상대로 돌아가 마두로 대통령에게 하야하라는 말을 전하라며 언성을 높였고, 맞은편에 앉아있던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 바실리 네벤쟈(Vassily Nevenzia)는 이에 맞서 펜스 부통령의 발언이 국제법 위반이며 베네수엘라의 국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유엔이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남미의 작은 베네치아라 불리는 국가를 배경으로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새로운 냉전구도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미국은 차베스 정권의 사회주의 체제와 반미 노선을 이어받은 마두로 정부에 대해 일찍부터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고 과이도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선언한 2019년 초부터는 한층 위협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실제로 1월 말, 마두로 대통령이 자국 내에 체류 중인 미국 외교관들에게 추방 명령을 내리자 미 국무부는 이에 맞서 조치의 철회를 이끌어냈고, 며칠 뒤에는 강경파 인사 엘리엇 에이브럼스(Elliott Abrams)를 베네수엘라 특임 공사로 임명했다. 미국 국가 안보 보좌관 존 볼턴(John Bolton) 또한 같은 달,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콜롬비아에 5,000명의 병력을 파견한다는 메모를 실수인 척 언론에 노출하며 군사적 압박을 노골화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2월 초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한 군사적 행동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하나의 옵션’이라 대답하며 부인하지 않았다. 펜스 부통령도 비슷한 시기, 베네수엘라의 정치 망명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대화할 시간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시간이며 마두로의 독재를 완전히 끝장낼 시간이 다가왔다,”라고 언급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시사했다.


외교적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부를 상대로 다양한 제재 조치들을 단행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첫 임기였던 2014년 이미 미 상원은 베네수엘라의 고위 관료 및 군 장성 일부를 제재 대상자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삼 년 뒤인 2017년 8월에는 베네수엘라의 미국 내 국영석유기업인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PDVSA)의 신규 채권 발행을 금지시켜 마두로 정권의 자금줄을 차단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18년 5월에는 미 재무부가 베네수엘라 채권의 매입을 불허함으로써 재정적 압박 수위를 더욱 높였고 2019년 1월, 과이도가 임시 대통령임을 선언한 이후 취해진 금융 조치들은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 사가 보유한 미국 은행 계좌의 70억 달러 자산이 즉각 동결됨과 동시에 2020년부터 베네수엘라 경제에 110억 달러의 수출 손해가 발생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스티븐 므누신(Steven Mnuchin) 미 재무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3월 11일자 성명을 통해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 사와 관련이 있는 러시아계 은행 에브로파이낸스 모스나르뱅크(Evrofinance Mosnarbank)의 모든 직간접 거래를 전면 중단시켰다.


막강한 자본력과 외교적 우위를 앞세운 미 정부의 파상적인 공세에 맞서 러시아는 경제 및 군사적 지원을 통해 마두로 정권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천명했다. 2018년 12월, 모스크바 인근 국영 별장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요청을 수용하여 석유산업과 금광업에 각각 50억 달러와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결정했고, 60만 톤의 제빵용 밀 공급 계약과 함께 러시아제 무기의 유지와 보수를 위한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다. 재정적 차원에서도 러시아 정부는 2017년 11월, 300억 달러가 넘는 베네수엘라의 국가부채를 재조정하여 10년간 분할 납부하는 데 합의했고 러시아 중앙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베네수엘라 금의 현금화에 상당한 편의를 제공했다. 러시아 기업들도 오래전부터 베네수엘라에 진출하여 석유회사인 로스네프트(Rosneft)는 베네수엘라의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와 복수의 합작 프로젝트들을 진행 중이고 무기 수출회사인 로소보로넥스포르트(Rosoboronexport)는 베네수엘라 현지에 칼라시니코프(Kalashnikov) 소총 공장의 설립과 합작 생산을 추진 중이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러시아는 장기간에 걸쳐 베네수엘라 군에게 러시아제 로켓과 전차 그리고 미사일 및 군용기들을 제공해왔으며 최근에는 합동군사훈련의 횟수도 대폭 늘렸다. 2018년 12월에는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Tu-160 전략폭격기 두 대와 러시아군 장교들이 탑승한 장거리 II-62 제트여객기 그리고 An-124 Ruslan 수송기 한 대가 베네수엘라 수도 외곽에 위치한 시몬 볼리바르(Simon-Bolivar) 국제공항에 착륙하여 미국을 상대로 무력시위를 벌였다. 정규군 이외에도 러시아는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작전 경험이 있는 러시아 용병들을 대거 불러 모아 와그너 민영군사회사(Wagner Private Military Company)를 통해 베네수엘라로 이동시킨 뒤, 최고 요인의 경호나 마두로 정부가 벌이는 게릴라전에 투입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용병들은 2018년 5월 대선 이전에 이미 베네수엘라에 입국해있었고 이듬해에는 러시아 항공기를 통해 추가로 증원되었다. 2019년 봄에는 바실리 톤코시쿠로프(Vasily Tonkoshkurov) 러시아 육군 총참모장이 약 100명의 병력과 35톤의 장비를 실은 두 대의 수송기를 직접 이끌고 베네수엘라를 방문하여 마이클 폼페이오(Michael Pompeo) 미 국무장관의 거센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러시아의 대응전략


패권국가 미국의 강경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사태와 관련하여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의 대담한 태도에는 대략 네 가지의 대응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은 러시아가 과거 차베스 시절부터 15년 넘게 맺어온 베네수엘라와의 오랜 동맹관계를 여전히 중시하기 때문이다. 1998년 차베스 정권이 출범할 당시 내세웠던 반미주의로 인해 양국은 일찍부터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의 토대를 같이할 수 있었고 차베스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악마라고 비난했던 2006년부터는 보다 본격적인 관계로 발전하여 모스크바 정상회담 이후인 2009년 9월을 기점으로 굳건한 동맹 상태에 진입했다. 실제로 당시 베네수엘라는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해 주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로 조지아의 친 러시아 분리 지역들인 압하지야(Abkhazia)와 남 오세티야(South Ossetia)를 독립국가로 승인했을 뿐만 아니라 시리아에서의 러시아 군사작전을 적극 옹호했다. 마두로 대통령 시절에도 양국 간 신뢰는 계속되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찬성하는 한편으로 6년간의 임기 동안 총 네 차례에 걸쳐 모스크바를 방문하며 돈독한 관계를 쌓았다.


외교적 배경 이외에 지적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베네수엘라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의 이용 가치와 러시아가 오랫동안 제공해온 투자 또는 차관의 회수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금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철 및 석탄과 보크사이트 외에도 전자산업에 쓰이는 콜탄(Coltan) 등 다양한 희귀광물들이 대량으로 묻혀 있어 많은 국가들이 탐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 러시아도 원유와 금광 분야에 현재까지 무려 180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전직 부총리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석유기업 로스네프트는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 소유의 미국 내 정유회사 시트고(Citgo)의 지분 49.9%를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의 삼대 은행 가운데 하나인 가즈프롬방크(Gazprom bank)도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 사와 합작으로 벤처회사인 페트로자모라(Petrozamora)를 설립하여 지분 40%를 소유한 상태에서 네 건의 유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 또한 베네수엘라가 갚아야 하는 기존 부채의 상환 기일을 연장해주는 한편으로 무기 제공과 같은 간접적 방식으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차관을 추가로 제공해왔다. 따라서 마두로 정권이 붕괴할 경우, 러시아가 입을 재정적 손실은 천문학적 수준에 이를 것이다.


세 번째 동기는 앞선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한 지정학적 이유로 중남미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저지하겠다는 러시아의 강력한 의지이다. 즉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베네수엘라 사태를 중남미 아메리카에서 러시아를 추방하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음모로 바라보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의 뒤뜰에 해당하는 베네수엘라의 반미 노선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분쟁지역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 추구를 좌절시키겠다는 것이다. 사실 최근 시리아 내전이 끝나면서 베네수엘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러시아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처럼 베네수엘라가 2,800마일에 못 미치는 미국의 코앞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각종 군용기와 함대를 파견하며 군사적 시위에 나섰다. 2018년 12월, 사정거리가 약 5,500km에 달하는 러시아제 최신형 Kh-101 장거리 순항 미사일이나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Kh-102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Tu-160 전략 폭격기의 출현은 미국 본토를 향한 러시아제 미사일이 언제든 발사될 수 있다는 현실적 위협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러시아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Sergei Shoigu)는 항공기와 전함의 추가 투입을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는 미국에 맞서는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교두보를 확보하는 가운데 중남미 지역에서도 의미 있는 전진기지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베네수엘라는 남아메리카 중심에서 미국 남부 국경에 이르는 볼리비아-베네수엘라-니카라과-쿠바 축의 전략적 링크로서 매우 중요한 국가이며 베네수엘라에 배치된 러시아 장갑차들은 추가 연료의 공급 없이도 콜롬비아 북부 지역까지 타격이 가능하다. 사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집권 이후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여 러시아가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창출하고자 노력해왔으나 그 과정에서 유럽안보 협력기구(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OSCE)를 범 유럽적 안보의 축으로 전환해달라는 요청이 미국에 의해 거부당하고 오히려 유럽연합의 동진이 추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소련 국가들인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에서 친미적 성향의 컬러혁명들을 경험해야 했다. 따라서 미국의 연속적인 반 러시아 정책들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것이 푸틴 정부로서는 매우 절실한 형편이며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방치로 인해 힘의 공백이 발생한 중남미 카리브 해 지역의 베네수엘라를 무대로 새로운 전략적 발판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결론: 향후 전망


강대국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한 베네수엘라 사태는 당분간 지속되리라 전망된다. 무엇보다 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의회는 과이도의 리더십과 미국 및 유럽연합의 강력한 지원 아래 반정부 시위를 이어갈 것이며 경제난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상당수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반면 마두로 정부는 격렬해지는 대중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군부의 지속적인 충성을 담보로 정권의 안위를 보장받고 있어 러시아의 후원을 받으며 반미주의를 더욱 가속화하는 가운데 권위주의적 통치를 유지할 것이다. 실제로도 베네수엘라의 군대는 브라질과 콜롬비아 다음으로 강력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제 최신 무기로 무장되어 있는 상태다. 게다가 일부 정치인과 관료들의 발언에서 확인되듯이 마두로 정부는 야당과의 대화 의사를 피력하거나 제3국의 중재안을 수용할 용의가 있다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통해 강온 양면책을 병용하며 정국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문제는 최근의 전국적인 정전사태에서 드러나듯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불안감을 정부가 어떻게 조기에 해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들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개입했지만 베네수엘라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물리적 거리가 상당했던 시리아에서는 러시아의 개입을 방관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뒷마당이나 다름없는 베네수엘라의 경우, 제2의 쿠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마두로 정권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베네수엘라만이 아닌 남아메리카 대륙의 삼대 반미 국가들인 쿠바와 니카라과까지 겨냥한 조치이며 이들 모두의 정권을 교체한다는 것이 미국의 궁극적 목표이다. 실상 지난 2년간 트럼프 행정부의 중남미 전략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 타도에 인생을 건 모리시오 클래버-카로네(Mauricio Claver-Carone) 국가안보회의 중남미 책임자가 주도해왔으며 마코 루비오(marco rubio) 상원 의원 및 마리오 디아즈-발라트(Mario Díaz-Balart) 하원 의원 등 중남미계 정치인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도 마두로 정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엇보다 마두로 대통령이 몰락할 경우 입게 되는 경제적 손실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러시아제 무기의 구매대금 지불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으며 식량과 공산품 부문에서도 상당 수준의 부채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정부에게 제공된 차관과 기업 사이의 투자는 여전히 상환 중이다. 외교적 측면에서도 마두로 정권의 붕괴는 친러 정부의 연쇄적 붕괴라는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러시아 동맹국들 가운데 최대 국가인 동시에 쿠바와 니카라과를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나아가 레바논에 기반을 둔 헤즈볼라와 심지어는 러시아 마피아까지 연결된다. 그리고 오랜 앙숙인 미국을 근접거리에서 견제할 수 있다는 지정학적 장점을 단념할 수 없다. 러시아 정부는 지금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국면에서의 뼈아픈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전략이 순조롭게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시리아와는 달리 베네수엘라는 러시아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적대적인 지역 강국인 브라질과 콜롬비아에 포위되어 있어 지상군 투입이 매우 어렵다. 게다가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러시아군 주둔은 회원 국가들의 거센 항의를 초래할 우려가 크며 미국 또한 고위 당국자들의 위협적인 발언에서 확인되듯이 ‘속옷 속에서 고슴도치가 활보’하는 상황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어서 군사적 개입의 가능성 또한 높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정국 불안으로 인한 국민들의 비참한 모습이 국제사회에 전해지면서 남아메리카 전역에서 마두로 정부를 지원하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도 커다란 부담이다.


국내 여론 또한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 러시아 정부로서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일부 고위 인사들 사이에서는 마두로 정권의 몰락으로 인해 국제지도자로서 푸틴 대통령이 지니는 명성에 금이 가는 동시에 국내 지지기반의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여 마두로 정부와 야당 사이의 대화를 촉구하는 보다 균형 잡힌 접근을 옹호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정계 일각에서도 러시아 정부가 마두로 대통령에게 은신처를 제공함으로써 위기를 진정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과연 러시아가 꿈꾸는 국제적 위상의 제고와 패권국가 미국과의 대결 및 정권 유지라는 냉정한 현실 사이에서 푸틴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당분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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