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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말레이시아의 중진국함정 탈출전략과 시사점

말레이시아 엄성필 한-아세안센터 박사(Deputy Head) 2019/05/20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하티르 정부의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말레이시아 정책의 근간으로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말레이인 우월주의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대외적으로는 나집 라작(Najib Razak) 정부의 적폐청산 과정에서 나타났던 반중국 색채도 최근 옅어지면서 중국과의 화해무드로 전환되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중진국에서 선진국 대열로 격상하기 위해서는 내부 개혁과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인종기반의 신경제정책 수정되나?


그동안 말레이시아의 정책 기조는 1971년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과 말레이인우월주의(Ketuanan Melayu, Supremacy of Malays)를 근간으로 해왔다. 1971년 도입된 신경제정책은 말레이시아 사회 재건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말레이인들에게 경제적 이득 및 교육 기회를 우선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 이후 어느 누구도 이 정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당시 말레이인들은 민간경제에서 제대로 역할과 몫을 차지하지 못했고 현재까지도 중국계, 인도계에 비해 교육과 소득 수준면에서 뒤지고 있다. 이와 관련 말레이시아의 레즈완 무함마드 유서프(Datuk Seri Redzuan Md Yusof) 기업개발부 장관은 최근 “말레이시아 인구의 65~68%를 구성하고 있는 말레이인들의 GDP 기여율은 8%에 불과하다. 그것도 대부분은 하위 40%에 속해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인종 기반의 정책이 시행되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말레이인 우월주의가 촉진되었다. 대학 입학, 공무원 채용, 장학금, 비즈니스 대출, 인허가 등에서 말레이인들에게 특혜가 적용 되었다. 예를 들면 기업 상장 시 지분의 30%를 부미푸테라 (Bumiputera, 말레이인 및 원주민을 의미) 투자자들에게 강제 배분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논리를 기반으로 한 부미푸테라 정책은 각종 부작용을 낳았다. 신경제정책은 다수의 지대 추구자들을 양산했다. 이들은 공공 프로젝트 비용의 20~50%를 알선수수료로 받아 챙겼다. 정부가 공공 공사를 발주하면 오직 부미푸테라 기업들만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경쟁이 없었고 낙찰예정 가격보다 20% 높은 가격으로 응찰하여 입찰을 따냈다. 그리고는 20% 마진을 챙기고 하청을 주었다. 즉, 말레이 기업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20%의 짭짤한 중개 수수료를 올릴 수 있었다. 이 방식으로 정부는 말레이 기업들을 돕고, 실제 공사를 이행하는 하청기업들 즉, 대부분 비말레이계 기업들은 일감을 얻게 되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말레이 국민들과 말레이 경제에 돌아왔다. 불로소득 20%는 정치권과 연결된 크로니(crony, 정치 유착 기업인)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모든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없게 하여 두뇌 및 자본유출을 초래하고, 비말레이계 국민들에게  깊은 분노를 심어주었다.


신경제정책은 상당수 말레이인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고 중산층으로 격상하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말레이시아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걸림돌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2018년 4.7% 성장에 그쳤다. 이는 2017년의 5.6%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2019년에도 4.3~4.8%의 성장률로 5%를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마하티르(Mahathir) 정부는 인종차별적 신경제정책을 손보지 않고서는 선진국 진입이 어렵다고 보고 여론을 살피고 있다. 무함마드 아즈민 알리(Datuk Seri Mohamed Azmin Ali) 경제장관은 최근 신경제정책의 수정 가능성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그는 포용, 번영 공유의 개념을 담은 신경제정책을 수립 중이며, 성장과 평등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정책을 통해 작금의 경제적 도전에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말레이시아가 과연 근간이 되어온 인종 기반의 경제정책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결국 중국밖에는 없다?


마하티르 정부는 나집 라작 정부에서 추진하던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를 재검토하여 추진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문제는 전 정부에서 추진하던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들이 중국과 연관돼 있었는데 마하티르 정부가 이들 프로젝트들을 적폐 청산의 일환으로 연기, 중단, 취소를 하자 마치 마하티르 정권이 중국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중국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인식하고 명분보다는 실리를 취하는 전략 즉, 말레이시아 정부는 중국과의 재협상을 통해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East Coast Rail Link 공사 재개


가장 야심찬 메가 프로젝트들 중의 하나인 동해안철도(East Coast Rail Link, ECRL) 프로젝트는 중국과의 재협상을 통해 비용을 크게 낮추는 선에서 재개를 결정했다. 말레이시아의 Malaysia Rail Link Sdn Bhd와 중국의 China Communications Construction Co. Ltd.(CCCC)는 2019년 4월 12일 ECRL 프로젝트 재개를 위한 추가 계약에 서명했다. 즉, 구간을 당초 688km에서 648km로 수정하면서 ECRL 1, 2단계 건설 비용은 655억 링깃에서 440억 링깃으로 크게 줄었다. 새로운 구간은 코타바루(Kota Baru) – 멘타캅(Mentakab) –제레부(Jelebu) - 쿠알라 켈라왕(Kuala Kelawang) – 방지/카장(Bangi/Kajang) – 푸트라자야(Putrajaya) - 클랑 항구(Port Klang)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공사금액 감축 외에 ECRL 프로젝트에 말레이시아 건설 업체들의 참여율을 30%에서 40%로 상향 조정하였다. 2019년 상반기 착공하여 2026년 완공 예정이다.


TRX 그대로 추진


논란의 「Tun Razak Exchange(TRX)」 프로젝트는 그대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매몰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집 라작 전 총리가 2009년 시작한 TRX 프로젝트는 말레이시아를 Top 20 국가로 진입시키기 위한 1,000억 달러 인프라 프로젝트의 하나이다. 400억 링깃을 투입하여 쿠알라룸푸르 중앙비즈니스지구의 70 에이커 부지를 새로운 글로벌 금융센터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중국의 China State Construction Engineering(M) Sdn Bhd가 건설 중인 1,615 피트 높이의 Exchange 106 Tower가 있다.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보다도 133 피트가 더 높다. 「The Exchange 106 Tower」 는 1,2층의 10만 평방피트의 소매 면적, 57층 전망대, 92개 층의 오피스로 구성돼 있으며, 2017년 개통된 총연장 31 마일의 MRT1 무인 지하철과 지하역으로 연결된다. 현재 15%가량이 임차인을 찾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세입자를 찾는 데 10년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나집 라작 전 총리는 「Exchange 106 Tower」와 새로운 금융센터 건립에 애착이 많았다. Tun Razak Exchange도 말레이시아의 2대 수상이었던 그의 아버지 압둘 라작 후세인(Abdul Razak Hussein)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나지브 라작 전수상은 인도네시아의 Mulia Group을 설득하여 「Exchange 106 Tower 」 건립에 필요한 3.4 에이커의 토지를 1억 6,600만 달러에 구입토록 했다. 현재 「Exchange 106 Tower 」 는 말레이시아 재무부 51%, 물리아그룹(Mulia Group) 49%의 지분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28억 달러가 들어갈 17에이커 규모의 라이프 스타일 지구(호텔, 아파트 6개동, 옥상정원으로 덮인 2백만 평방피트의 쇼핑센터)와 오피스빌딩들도 건설 중이다. 또한 새로운 철도와 철도역, 항구, 고속도로, 석유 가스관, 발전소 등이 포함돼 있다. TRX는 2021년에 옥상정원으로 덮인 쇼핑몰을 완성하고, 2022년에는 호텔과 오피스, 2023년에는 시장 수요에 맞춰 주거 빌딩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포레스트시티(Forest City) 건설 제동?


미래형 스마트시티로 조성되고 있는 총 투자 규모 1,000억 달러의 포레스트시티(Forest City) 프로젝트는 2013년 발표됐다. 홍콩증시 상장기업인 광동 소재 Country Garden Holdings Co Ltd가 말레이시아의 Esplanade Danga 88 Sdn Bhd와 합작하여 세운 Country Garden Pacificview(CGPV) Sdn Bhd가 싱가포르와 접경 지역인 조호르주 소재 13.86 평방킬로미터 면적의 4개 매립지 위에 신도시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2040년 모습을 드러낼 Forest City에는 70만 명을 수용하는 주택단지, 공원, 호텔, 국제 학교, 골프장 등이 들어선다. 그런데 순항 중이던 포레스트시티 프로젝트는 최근 마하티르 총리가 제동을 걸면서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그 내용인즉 이곳에 지어지고 있는 콘도가 인근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택보다 평방미터당 가격이 2배 이상 고가이기 때문이다. 방 1개짜리 콘도의 평균 가격이 17만 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실제로 2013년 선 분양을 시작한 이래 단가베이(Danga Bay)에 건설하고 있는 18,000가구 1차분 물량 구매자의 70% 정도가 중국인들이고 20% 정도가 말레이시아, 그리고 나머지가 한국, 인니, 베트남 등 22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마하티르 총리는 포레스트시티가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국인을 위해 지어지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콘도 구입이 자동적인 거주 허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마하티르는 그동안 중국 자본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 대해 불쾌감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전임자가 행정적 무능과 부패에 따른 부작용을 덮기 위해 중국 자본을 끌어들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림관앵(Lim Guan Eng) 재무장관도 “포레스트시티는 사실상 말레이시아 내에서 거대한 중국인 도시를 짓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Interdisciplinary Research & International Strategy(IRIS)의 셰드 아흐마드 이스라(Syed Ahmad Israa) 사장도 “포레스트시티가 고용을 창출하거나 국가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는 투자가 아니라 투자자를 위한 수익을 창출하고 외국인이 싱가포르 근처에 부동산을 소유할 기회를 주는 투자,”라고 지적했다. 조호르주 주민들도 중국기업들이 개발하고 있는 콘도가 주로 외국인을 겨냥하고 있고, 더불어 환경 피해, 부동산 공급과잉, 매립에 따른 어업 피해 등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여론이 악화되자 CGPV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서민주택 건설 계획에 적극 참여할 것이며, 말레이시아 기업들에게 기술이전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8년 9월까지 CGPV는 150개 말레이시아 기업들에게 15억 링깃 상당의 공사를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Country Garden은 말레이시아에 포레스트시티 이외에도 4개의 프로젝트를 더 가지고 있고, 총 200억 링깃을 투자한 말레이시아 최대 외국인 투자자 중의 하나이다.


한편, 포레스트시티에 대한 논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최근 쑥 들어가 버렸다. 중국 측이 대폭 양보하는 모습을 보인데다가 말레이시아 정부도 중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봤자 마땅한 대안도 없는데다가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근거 없는 핍박으로 비춰져 국가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기, 중단, 취소된 프로젝트들


350km의 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 고속철도는 착공 연도를 2020년 5월 31일로 2년 연기했다. 따라서 개통일자는 2026년 12월 31일에서 2031년 1월 1일로 늦춰졌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싱가포르와의 계약에 따라 공사 연기에 따른 보상금조로 1,500만 달러를 2019년 1월 31일 싱가포르에 송금하였다.


2016년 7월 승인된 600km의 석유 수송관(Multi Product Pipeline)프로젝트(53.5억 링깃)와 662km의 가스 수송관(Trans-Sabah Pipeline) 프로젝트(40.6억 링깃)는 아예 취소했다. 두 프로젝트는 말레이시아 재무부의 자회사인 Suria Strategic Energy Resources(SSER)가 담당했고, 동사는 2016년 11월 1일 두 프로젝트의 시공사로 China Petroleum Pipeline Bureau를 선정했다. 두 프로젝트는 2017년 4월 착공된 바 있다. 그런데 마하티르 정부는 2018년 5월 대대적 감사를 진행하여 SSER의 비위사실을 적발했다. 즉, SSER이 두 프로젝트의 공정률이 13%에 불과한데도 총공사비의 88%에 해당되는 82.5억 링깃을 중국 업체에 이미 지불한 것이다.  최근 말레이시아 법원은 SSER이 말레이시아의 공공 및 경제적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1,800만 링깃의 벌금을 부과했다.


시사점


마하티르 정부가 신경제정책을 손보고, 중국과 다시 손잡기로 한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우선, 말레이인 우선 정책으로는 자원의 효율적 활용 측면에서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비말레이계에 대한 포용적 정책을 확대하면서 번영 과실의 공유도 강화한다는 것이다. 한편, 마하티르 정부는 겉으로는 중국에 대해 강경노선을 펼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중국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이미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 대부분 중국과 얽혀있는데, 이들 프로젝트들이 말레이시아의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요소인데다가 이미 상당 부분 공사가 진척이 되어 매몰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중국 이외에 마땅한 대안도 없기 때문이다. 과연 마하티르 정부가 신경제정책과 중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고, 이를 기반으로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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