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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말레이시아 신정부 출범과 메가 인프라사업의 향방

말레이시아 이지혁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2019/05/29

첫 정권 교체


말레이시아는 지난 2018년 5월 총선을 통해 61년 만에 첫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마하티르(Mahathir)가 이끈 희망연대(Pakatan Harapan, PH)가 여당연합인 국민전선 (Barisan Nasional)을 누르고 승리했다는 사실은 말레이시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마하티르가 이끈 희망연대는 총 의석 222석 중 과반인 113석을 얻었다. 세계 최장수 여당연합이었던 국민전선이 패배했다는 것도 놀라운 것이지만, 지난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간 국민전선의 핵심 정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소속으로 총리를 역임했던 93세(당시 92세)의 마하티르가 야당 후보로 다시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도 놀라움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마하티르가 전 세계의 올드보이(Old boy) 정치인들에게 희망을 안겼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말레이시아 정치 변화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전직 총리인 나집(Najib)과 현 총리인 마하티르와의 관계, 그리고 마하티르와 이브라힘 안와르(Ibrahim Anwar)와의 관계에도 어리둥절할 수 있다. 마하티르는 2003년 권력에서 물러날 때 나집을 총리 후계자로 지목하고 그의 멘토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나집 총리의 주도로 만들어진 국영투자회사인 1MDB(Malaysia Development Berhad)의 자금 일부(약 7억 달러 상당)가 나집의 개인 계좌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나집 총리의 비자금 스캔들이 발생하자 그를 퇴진시키려는 버르시(bersih) 운동이 전개되었고 이 운동의주축에는 마하티르가 있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마하티르는 2016년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암노에서 탈당했고, 2017년 말에는 야당 연합인 희망연대의 총리 후보로 추대되었다. 마하티르는 2년 내에(혹은 후에) 여당연합인 희망연대의 제1당인 인민정의당(PKR)의 총재 안와르 이브라임에게 권력을 물려주기로 약속했는데, 안와르 역시 마하티르가 발탁한 인물로서 한때 마하티르 총리 밑에서 부총리를 역임했고 그의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1997~8년 아시아 금융 위기 때 마하티르의 생각에 반대하는 정치적 노선을 드러냈다가 동성애 혐의가 씌워져 구속되기까지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나집 총리의 비자금 스캔들 사건 이후 급반전했다.


메가 인프라 사업의 재검토


새롭게 출범한 신정부는 지난 정권에서 체결한 거대 인프라 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선언했다. 신정부는 말레이시아의 공공부채가 지난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공공부채 감소를 시급한 사안으로 다루고 있다. 나집 정권은 공공부채가 GDP의 50.8%에 달하는 6,868억 링깃(2017년 기준)이라고 발표했지만, 신정부의 재무부장관인 림관엥(Lim Guan Eng)은 GDP의 80.3%에 달하는 약 1조 링깃에 달하는 공공부채가 있다고 발표했다(The Star Online 2018/05/24). 공공부채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지난 정권에서 추진되었던 주요 인프라 사업의 재검토를 발표하고, 진행되고 있던 사업을 중단시켰다.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 사업에 대해 "이 프로젝트의 총사업비는 280억 달러(약 30조 원)로 추산되지만 우리가 얻는 것은 1센트도 없다,"라며 사업 취소에 대해 설명했다(매일경제 2018/05/29). 이러한 조치는 실제적으로 인프라 사업에 투자된 자금이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의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한, 즉 채산성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지난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현재 중단된 대표적인 인프라 사업으로는 싱가포르와 쿠알라룸푸르를 연결하는 고속철 사업, 말레이반도 동북쪽에서 서쪽의 클랑항까지 연결하는 동해안 철도(East Coast Rail Link) 사업, 쿠알라룸푸르의 외곽을 연결하는 순환 철도인 MRT 3호선 사업, 사바 횡단 가스 파이프라인(Trans Sabah Gas Pipelind, TSGP) 사업, 다생산 석유 파이프라인(the Multi-Product Pipeline, MPP)사업 등이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말레이시아의 인프라 사업


일대일로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에 걸쳐 대대적으로 인프라를 정비해 신실크로드 경제 벨트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로서 시진핑 주석의 역점 사업이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의 지정학적 위치가 일대일로 사업에 잘 부합하는 측면이 많다. 동해안 철도 사업의 경우 남중국해에서 말레이반도 동부와 반도 서부를 철도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중국은 말레이반도 동해안과 서해안의 항구가 연결되면 말레이시아의 항구가 싱가포르에 필적할 만한 항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해안 철도 사업은 중국의 입장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의 입장에서도 많은 의미가 있는 사업이다. 철도로 연결될 주요 지역인 클란탄, 트렝가누, 파항 지역은 말레이시아에서도 매우 낙후된 지역이다.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는데, 그 지배가 지역에 따라 매우 비-균질적이었다. 이는 영국의 분리 통치의 영향도 있지만 말레이시아 자체의 역사적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1826년 영국동인도회사는 ‘해협식민지(the Straits Settlement)’라고 명명되는 피낭, 말라카, 싱가포르, 딘딩(현 Manjung)을 직접 지배하였는데, 1867년에는 이 지역들이 영국의 식민지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전반기 동안에는 파항, 슬랑오르, 페락, 느그리슴빌란으로 구성된 ‘연합 말레이 주(the Federated Malay States)’가 영국의 통치하에 들어왔다. 하지만 연합 말레이 주에 포함되지 않았던 ‘비연합 말레이 주(the Unfederated Malay States)’인 조호르, 크다, 클란탄, 프를리스, 트렝가누는 영국의 보호령에 속해 있었지만 직접적인 통치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사회 발전에도 큰 영향력을 미쳤는데 특히 동해안 철도가 관통할  클란탄, 트렝가누, 파항 지역은 인프라 및 경제 발전이 가장 더딘 지역이다. 나집 전임 총리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던 동해안 철도사업은 2016년 10월 총공사비의 85%를 중국의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차관(이자율 3.25%)으로 빌리는 조건으로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 교통건설(China Communication Construction Company)과 공사 계약을 체결하고 2017년 7월 착공되었다. 당시에도 지나치게 중국에 의존해서 인프라를 개발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 나집 전 총리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우리가 그러한 프로젝트에 서명함으로써 국가의 주권을 팔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반대파 정치인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소유권을 가질 것이고, 문을 열고, 우리 국민에게 교역과 기회, 수천 개의 새로운 일자리, 그리고 삶의 수준과 번영을 가져다줄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를 건설하려는 것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다.”(Today Online 2017/08/01)


하지만 이 사업에 대한 마하티르의 생각은 나집과는 매우 달랐다. 2018년 총선 때 마하티르를 총리 후보로 추대한 희망연대는 동해안 철도 사업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계약과 대출 조건이 말레이시아에게 불리하고, 심지어 부패한 권력자가 리베이트를 받았을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신정부 출범 후 마하티르 총리는 “이 프로젝트로부터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철도가 건설되는 주변 지역이 모두 가난한 지역이기 때문에 산업을 육성할 계기가 되지 못한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New Straits Times 2019/01/02). 또한 중국의 돈이 다른 국가의 도시를 건설하는 데 사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이러한 표명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국경에 위치한 조호르(Johor) 남부 지역에 건설되고 있는 ‘포레스트 시티(forest city)’가 외국 자본에 잠식당할 것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말레이시아의 경제회랑과 인프라 건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말레이시아는 지역에 따른 발전의 차이가 크고 종족 간 소득격차도 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오래전부터 지역개발(regional development)을 위한 정책을 실시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가 발전함에 따라 지역개발이라는 개념도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처음에는 공간적인 개념, 즉 지역에 따른 균형 발전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온전히 농촌 지역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였다. 그러다 서서히 초점이 도시화로 옮겨갔고, 더 최근에는 지역의 특성에 따른 경제발전이라는 보다 균형 잡힌 발전을 꾀하고 있다(Hutchinson 2016). 제9차 말레이시아 계획(Malysia Plan)의 중간보고서에서 처음으로 경제회랑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 이때부터 말레이시아는 5개의 경제회랑- ‘북부회랑(the Northern Corridor Economic Region, NCER)’, ‘동해안회랑(the East Coast Economic Region, ECER)’, ‘이스칸다르-말레이시아회랑 (Iskandar Malaysia, IM)’, ‘사바개발회랑( the Sabah Development Corridor, SDC)’, ‘사라왁재생에너지회랑(the Sarawak Corridor of Renewable Energy, SCORE)’-을 도입했다.


경제회랑의 성공과 중단된 거대 인프라 사업은 큰 연관성이 있다. 신정부 출범 후 중단된 고속철 사업은 ‘이스칸다르-말레이시아회랑’이 성공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싱가포르와 근접해 있는 조호르의 남부지역에 경제특구를 만들어 세계적 수준의 비즈니스, 주거,  엔터테인먼트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 ‘이스칸다르-말레이시아회랑’의 핵심 계획이다. 동해안 철도의 경우 동해안회랑의 핵심 지역을 관통하는 철도로서 이 지역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들이다. 이러한 지역들을 개발하려는 계획에는 철도를 통한 연결성을 향상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에 특화된 공업 단지, 경제특구 등을 건설할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바 횡단 가스 파이프라인(TSGP) 사업의 경우도 ‘사바개발회랑’의 주요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2016년 11월 중국의 CPPB(China Petroleum Pipeline Bureau)에서 수주하였고, 2017년 4월에 착공되었다. 총공사비의 85%를 중국의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차관 형식으로 빌리고 나머지 15%는 수쿡(Sukuk)을 발행해서 마련하는 것이 원 계획이었다. 타임라인에 따라 2018년 3월 1일까지 공사비용의 85%가 CPPB에 지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13%만 진행된 상태로 중단되었다.


인프라 사업 중단이 던진 여러 가지 의미


노 정치 지도자의 행보에는 무게감이 있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나이(?)에 다시 정권을 잡았다는 것은 그의 정치적 행보가 정말 국가를 위한 판단이라는 해석에 무게를 실어준다.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가 지금 누리는 경제적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국부로서의 존경과 독재자였다는 비평을 동시에 받아 왔다. 90을 넘은 마하티르는 2년 안에 개혁을 완수하고 안와르 이브라임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정권을 물려줘야 할 의무와 후계자이자 전직 총리였던 나집의 스캔들을 처리할 과제가 앞에 있다. 여기에 딜레마에 빠진 인프라 문제까지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인프라를 중단하면서 발생하는 당장의 손해는 장기적으로 말레이시아가가 감당해야 할 손해에 비하면 그리 큰 것이 아닐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사업을 철회할 것 같았던 강경한 목소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목소리로 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프라 사업의 재검토는 사업의 중단에 따른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과 싱가포르와의 외교적 문제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프라 사업은 국가 균형 발전과 선거에서 표를 얻는 국내 정치와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사안들을 감안하면, 규모를 축소하더라도 사업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업의 규모를 축소하는 조건으로 사업을 재개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투명성, 상업적 지속 가능성, 환경 보호, 현지인들의 고용 창출 등이 함께 고려되어질 때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말레이시아의 인프라 건설 보류는 일대일로 사업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체 공사의 89%를 중국 기업들이 독식하는 방식으로 인프라 사업이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설 사업이 이뤄지는 국가가 과도한 부채로 재정 위기에 내몰리는 등 소위 ‘채무 함정 외교(debt trap diplomacy)’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미얀마의 밋숀(Myitsone) 댐 건설 중단, 빚 부담을 못 견딘 스리랑카가 함반토타 (hambantota)항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넘긴 것, 파키스탄이 140억 달러(15조 4,000억 원) 규모의 수력발전댐 건설 사업을 포기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자본으로 건설되는 거대 인프라 사업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사업이 완성된 후 발생하는 수익을 통해 중국에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데 참여국 중 상당수는 채산성 검토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사업을 보류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도 채산성의 문제가 핵심이다.


출구 전략 모색


부채 우려와 채산성 때문에 중단됐던 중국 주도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속속 재개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 4월에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동해안철도(ECRL) 사업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4월 12일 말레이시아 정부는 철도 연결 사업을 재개하기 위해 중국교통건설(CCCC)과 추가 협상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애초에 655억 링깃(약 18조 원) 규모였던 동해안철도(ECRL) 사업 1, 2 구간의 규모를 440억 링깃(약 12조 1,000억 원)으로 축소해 재개할 예정이다. 이는 원래 비용 대비 33%가 축소된 것이다. 마하티르 총리 사무실(the prime minister's office)은 "이러한 건설비 감축은 분명 말레이시아에 이득이 되며 말레이시아의 재정 부담을 경감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Shukry 2019/04/12). 또한 4월 19일에는 1,400억 링깃(약 38조 5,000억 원) 규모의 부동산·교통 개발사업인 '반다르 말레이시아 프로젝트'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반다르 프로젝트는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남부 202ha(헥타르) 부지에 주택, 공원 등을 개발하고 대형 교통 터미널 등을 짓는 사업이다.


마하티르가 네 번째 총리로 집권하던 1991년 6차 말레이시아 계획(Malaysia Plan)을 통해 ‘비전 2020(wawasan 2020)’이 발표되었다. 비전 2020의 핵심은 2020년까지 말레이시아가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이다. 2020년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중요한 시점에 다시 권좌에 오른 마하티르에게 인프라 중단 사업을 해결하는 것은 다른 과업에 비해 오히려 가벼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말레이시아 정부는 서서히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기실 마하티르 총리 자신이 지난 집권 시절 수도를 쿠알라룸푸르에서 현 행정수도인 푸트라자야로 옮기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추진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  참고자료 >

매일경제, 박의영. “93세 마하티르의 개혁…공무원 1만7천명 줄이고 적폐청산.” 2018.05.29.

ISEAS Economics Working Paper No. 2016-5. Hutchinson, Francis.“Evolving Paradigms in Regional Development in Malaysia.”2016.

New Strait Times. “Najib questions govt's claim that ECRL project a 'waste of money'”2019.01.02.

Today Online. “China wants this Malaysian port to rival Singapore (and that's not all).”2017.

The Star Online. “Guan Eng details how RM1tril govt debt figure was calculated.”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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