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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2019년 태국 총선과 군사독재의 제도화

태국 신재혁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2019/06/28

군사쿠데타 주역이 새로운 총리로 선출된 태국


2014년 5월 육군 참모총장 프라윳 찬오차(Prayut Chan-o-cha)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여 군사정부를 수립하였다. 그 후 프라윳은 2015년 말에 선거를 실시하여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선거는 2016년으로 미뤄졌고, 2016년 선거도 2017년으로 연기되더니 다시 2018년으로 미뤄졌다. 2018년 11월에는 선거를 치르겠다고 프라윳이 공언했으나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그 사이 군부는 헌법을 개정하였다. 쿠데타 이후 최고 권력기구인 국가평화질서위원회(National Council for Peace and Order, NCPO)는 새 헌법안을 마련하여 2016년 8월 국민투표에 부쳤고, 이는 투표 참가자 61%의 지지로 가결되었다(투표율 59%). 새 헌법은 이듬해 4월 국왕이 서명하여 공포되었다.

 

여러 차례 연기된 선거는 2019년 3월에 드디어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하원 의원 500명을 선출했는데 프라윳과 군부가 만든 팔랑프라차랏당(Palang Pracharath Party, People’s State Power Party)은 하원 500석 중 116석을 얻는데 그쳤고, 2006년 쿠데타로 실각한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을 지지하는 푸어타이당(Pheu Thai Party, For Thais Party)은 137석을 얻어 원내 1당이 되었다.

 

태국은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행정부 수반인 총리를 선출한다. 2019년 6월 상하원 의원이 함께 모여서 실시한 총리 선출 투표에서 프라윳은 67.2%의 지지를 얻어 새로운 총리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태국은 군부의 지배가 지속되게 되었고, 군사 독재가 선거를 통해 제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2014년 쿠데타는 왜 발생했을까? 이때 집권한 프라윳과 군부는 왜 선거를 계속 연기하다가 2019년에 와서야 실시했을까? 군부가 만든 정당 지도자인 프라윳은 적은 의석 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총리로 선출될 수 있었을까? 태국 정치는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이고, 그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하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순서대로 구할 것이다.

 

2014년 쿠데타 발생 원인: 옐로셔츠(반탁신)와 레드셔츠(친탁신) 시위


잉락 친나왓 총리를 몰아낸 2014년 군사 쿠데타가 왜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잉락 총리의 친오빠이자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태국 총리를 지낸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의 업적과 그가 남긴 유산을 이해해야 한다. 탁신은 정보통신회사인 친코퍼레이션(Shin Corporation)을 설립하여 막대한 재력을 축적한 사업가였다. 1994년 정치에 입문한 그는 아시아 금융위기 직후인 1998년 타이락타이당(Thai Rak Thai Party, Thais Love Thais Party)을 창당하였는데, 2001년 총선에서 타이애국당이 전체 500석 중 248석을 획득하는 큰 승리를 거두어 총리에 선출되었다.

 

많은 정당들이 난립하는 태국 선거에서 하나의 정당이 절반에 가까운 의석을 획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처럼 탁신의 정당이 큰 승리를 거둔 데에는 그의 재력도 한몫을 했겠지만, 농가 부채를 탕감해 주고 적은 비용(30바트, 약 1천 원)으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보건 정책(30 Baht Healthcare Scheme, 이하 30바트 헬스케어)을 약속하는 등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탁신은 총리가 된 후 친 농민 공약을 실행에 옮겼다. 30바트 헬스케어를 신속하게 시행하였고, 부채 탕감과 대출, 개발 자금 투입 등 농촌 지역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각종 정책들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2005년 총선에서 탁신의 타이애국당은 전체 의석의 75%를 획득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견고할 것 같았던 탁신 정부는 2006년 1월 탁신 총리 일가가 친코퍼레이션(Shin Corporation)을 싱가포르 국영기업에 매각하여 큰 이득을 취한 것이 알려지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자국의 주요 기업을 보호하는 대신 외국에 매각하고, 그 과정에서 소득세를 내지 않는 등 탁신 일가가 부당하게 이득을 챙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국민민주주의 연대(People’s Alliance for Democracy)를 결성하고 탁신 총리 사퇴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노란색 셔츠를 입고 시위에 참가하여 ‘옐로셔츠’라고 불린다. 옐로셔츠 시위가 거세지자 탁신은 2006년 6월 조기 총선을 실시할 것을 제안하지만 야당은 이 선거에 불참할 뜻을 밝혔다. 사태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자 탁신은 다시 2006년 10월 조기 총선을 실시하고 자신은 총리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제의하였다.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결국 그해 9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탁신 정부와 타이애국당을 해산시켰다. 이때 탁신은 해외로 망명을 떠났다.

 

군부가 이끄는 과도정부는 대법원을 통해 타이애국당을 해산시키고 2007년 12월 총선을 다시 실시하였는데, 해산된 타이애국당 인사들이 이끄는 인민역량당(People’s Power Party, PPP)이 전체 480석 중 233석을 획득하여 집권에 성공한다. 다수 농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친탁신 세력이 다시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다. 이때 제1야당인 민주당(Democrat Party)은 165석을 얻는데 그쳤다. 반탁신 세력이 선거를 통해 친탁신 세력을 이기기 어려운 것이다.

 

탁신에 반대하는 옐로셔츠 시위가 다시 시작되었고, 2008년 12월에는 헌법재판소가 선거 부정을 이유로 인민역량당(PPP)을 해산시켰다. 그 후 제1야당 민주당이 집권하자 이번엔 탁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일어났다. 2006년 탁신 정부를 붕괴시킨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여 결성한 반독재민주주의 연합전선(United Front for Democracy Against Dictatorship, UDD)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빨간색 셔츠를 입고 시위에 나서 ‘레드 셔츠’로 불린다.

 

레드셔츠 시위대가 2009년 5월에 이어 2010년 3월부터 5월까지 거센 시위를 벌이자 민주당 정부는 조기 총선으로 다시 총리를 선출하기로 약속하고 2011년 7월에 선거를 실시한다. 이 선거에서 역시 인민역량당(PPP) 해산 후 창당된 친탁신 정당인 푸어타이당(Phen Thai Party)이 전체 500석 중 265석을 차지하며 승리를 거두고, 탁신의 여동생 잉락이 총리로 선출된다. 

 

평온을 되찾은 듯 보이던 정국은 2013년 잉락 총리가 탁신을 사면할 움직임을 보이자 반탁신 세력이 다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 시작하면서 다시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잉락 총리는 2014년 2월 조기 총선을 제안했고 제1야당 민주당은 여기에 불참할 의사를 밝혔다.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치러진 2월 총선은 그해 3월 21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무효화되었고, 5월 7일 다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잉락 총리는 파면되고 부총리가 이끄는 과도정부가 수립되었다.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프라윳 육군 참모총장은 5월 20일 계엄령을 선포했고, 이틀 뒤에는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후 과도정부를 대신하여 군부가 이끄는 국가평화질서위원회 (NCPO)가 국정을 담당할 것임을 선언했다. 친탁신 세력(레드 셔츠)과 반탁신 세력(옐로 셔츠) 간의 갈등이 선거를 통해 평화롭게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군부가 나서서 질서 회복을 시도한 것이다.

 

선거 연기와 2019년 총선


국가평화질서위원회 수장이자 총리가 된 프랴윳은 군사정부를 오래 지속할 의도가 없다며 최대한 빨리 선거를 실시하여 민주주의를 복원할 것을 약속했다. 당장 이듬해인 2015년 말에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태국 군부가 이러한 약속을 했다가 이행을 연기하는 것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2015년 말 총선은 2016년으로 미뤄졌고, 2016년 선거는 2017년으로, 이는 다시 2018년으로 연기됐다. 2018년이 되자 프라윳은 다시 한 번 선거를 연기하며 늦어도 2019년 2월까지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기다리던 태국 총선은 결국 2019년 3월에 실시되었다. 이처럼 여러 차례 선거를 연기하다가 2019년에 이르러서야 실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라윳은 무엇을 기다린 것일까?

 

먼저 태국의 딜레마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레드 셔츠와 옐로 셔츠 간의 갈등은 선거로 해결되기 어려웠다. 선거를 실시하면 친탁신 세력이 승리하는 데 이를 반탁신 세력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친탁신 정당 해산 등 선거 외의 방법으로 반탁신 세력이 집권하면 친탁신 세력이 반발한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친탁신이나 반탁신 계열이 아닌 제3의 정치세력이 국정을 이끌어 갈 필요가 있었는데, 군사정부를 이어가는 것 역시 답은 아니었다. 친탁신(반독재 민주주의 연합전선)이나 반탁신(국민 민주주의 연대) 세력 모두 민주주의 복원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상황은 제3의 정치세력이 성장하여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태국 군부는 2006년 쿠데타 이후 2007년에 선거를 실시했는데, 이 선거에서 친탁신 세력이 승리한 후 반탁신 세력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극한 혼란이 초래된 경험이 있다. 프라윳은 2014년 쿠데타 이후 그러한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선거에서 반탁신 세력이 승리하더라도 군사정부의 지원 때문이라는 선거 부정 논란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다. 따라서 프라윳은 제3의 세력이 부상하여 친탁신 세력을 압도할 때 선거를 실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제3 세력의 부상은 더디었고, 2015년이나 2016년, 2017년에도 약속했던 선거를 실시하면 친탁신 세력이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태국 군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민주적인 방법, 다시 말해 선거 승리를 통해 제3의 정치세력으로서 집권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스스로 친탁신 세력을 압도하는 정치세력이 될 것을 결심한 것이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강력한 정당이 필요했다. 군부는 2018년 3월 프라윳을 지지하는 자신들의 정당(팔랑프라차랏당)을 창당하였고, 1년 뒤 총선을 실시하였다. 결국 프라윳이 약속했던 선거를 수차례 연기한 것은 친탁신 세력의 재집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9년에 이르러 총선을 실시한 것은 자신들이 선거를 통해 집권을 연장할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군부 지도자 프라윳 새 총리로 선출: 2017년 헌법과 군부 집권 연장


하원 의원 500명을 선출하는 2019년 3월에서 프라윳의 팔랑프라차랏당은 116석을 획득하여 2위에 머물렀고, 친탁신계 푸어타이당이 137석을 얻어 원내 1당이 되었다. 친탁신 세력의 여전한 강세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6월 초 상하원 의원이 함께 모여서 실시한 총리 선출 투표에서는 프라윳이 새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 태국 군부는 친탁신 세력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2019년에 선거를 통해 집권을 연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 답은 군부가 주도하여 개정한 새 헌법(2017년 헌법)에서 찾을 수 있다. 2014년 쿠데타 이후 최고 권력기구로 등장한 국가평화질서위원회(NCPO)는 새 헌법안을 마련하여 2016년 8월 국민투표에 부쳤다. 군부는 약속했던 선거를 미루면서 헌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투표에서 59%의 유권자가 참가한 가운데 투표 참가자 61%의 지지로 헌법 개정안이 가결되었고, 새 헌법은 2017년 4월에 공포되었다.

 

2017년 헌법의 중요한 내용으로 다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도 총리가 될 수 있다. 둘째, 상원 250명, 하원 500명으로 나눠진 국회에서 하원위원은 전원 유권자가 선출하되 상원 의원은 전원 국가평화질서위원회가 임명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첫째, 프라윳이 2019년 총선에 출마하여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총리가 될 수 있다. 둘째, 상하원 의원 750명 가운데 과반의 지지(최소 376표)를 얻으면 총리로 선출될 수 있으므로, 프라윳은 자신이 임명한 상원 의원 250명에 더해 하원 의원 126명의 지지만 얻으면 총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태국 군부는 하원에서 25% 남짓(126/500) 의석만 확보해도 프라윳이 총리로 선출되어 집권을 연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선거를 실시했던 것이다. 2019년 총선에서 프라윳의 팔랑프라차랏당은 116석을 얻었으므로 10명의 지지만 더 얻으면 총리로 선출될 수 있었다. 내각의 장관 자리 등을 약속하면서 다른 군소 정당 소속 의원 10명의 지지를 사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프라윳은 반탁신계 민주당 소속 의원 등 하원 의원 251명의 지지를 얻어 총리로 선출되었다. 군부는 2019년에 선거를 통해 집권을 연장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군사독재의 제도화


군부 지도자가 통치하는 이러한 상황은 변화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 역시 새 헌법에서 찾을 수 있다. 2017년 헌법에 포함된 또 하나의 중요한 조항은 헌법 개정 시 상원이 하원의 안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군부가 임명한 상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군부 지도자에게 유리한 헌법을 개정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 폐지를 왜 찬성하겠는가? 그러므로 설사 다음 선거에서 군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하원 500석 중 376석 이상을 확보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 총리가 되더라도 헌법을 개정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군부가 그다음 선거에서 하원 126석 이상을 확보하여 다시 집권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을 것이다. 군사독재가 제도화되어 오래 지속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프라윳 총리는 선거 이전과는 다른 통치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먼저 총리 선출에서 자신을 지지해 준 다른 정당들과 연립정부(연정)를 구성했기 때문에 내각의 장관 자리를 비롯하여 그들이 원하는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특히 국가평화질서위원회를 통해 원하는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던 이전과 달리 이제부터는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돼야 정책 시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연정 파트너의 지지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프라윳 정부는 경제성장에 초점을 둘 가능성이 높다. 다음 선거에서 126석 이상을 얻어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다수 유권자에게 혜택을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불리한 제도로 인해 집권에 실패한 친탁신 세력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탁신 정부 시기에 실시됐던 농가 소득을 높이는 각종 정책을 시행할 가능성도 있다.

 

장기간 불확실성이 높았던 태국에 정치적 안정이 회복되고, 이를 기반으로 정부는 경제성장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 등 해외 기업으로서는 태국과 무역이나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 위험 요인은 여전히 불만이 강한 친탁신 세력이 군부의 장기 집권에 반대하여 다시 시위를 벌일 수 있다는 점이다. 프라윳 정부가 이들의 불만을 달래는 친 농민 정책을 얼마나 강력하게 시행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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