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필리핀의 정치변화가 한국기업에 미치는 영향

필리핀 정법모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2019/06/28

필리핀의 경제성장과 한국기업의 진출

 

필리핀은 지난 5년 간 6%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등 중국이나 베트남에 이어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국가이다. 아울러 현 두테르테(Rodrigo Duterte) 대통령은 ‘Build, Build, Build’ 프로그램을 통해 인프라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GDP에서 인프라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2017년 5.5%에서 2022년 7%까지 높여 항만,  철도,  공항,  도로 등에 1,68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이로 인해 건설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신수도로 언급되고 있는 ‘뉴 클락 시티(New Clark City)’는 경제특구로서뿐만 아니라, 의료, 교육, 행정 등을 중심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한인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코트라 2019) 1). 필리핀은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의 수출대상국 8위, 수입대상국 28위를 차지하는 교역국이다. 이에 가능성이 분명 높은 곳이긴 하지만 필리핀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에는 한계점도 분명하다. 필리핀에서는 이론적으로 외국인이 지분 100%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나 필리핀 정부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영역으로 묶어 놓으면 투자가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한국인이 투자하고자 하는 분야는 이에 해당하여 투자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필리핀에서 외국인의 토지 소유가 불가능한 점도 제한 요인이다. 따라서 외국기업 제한 등의 장벽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업역량이 좋고 국가와의 네트워킹이 좋은 기업을 선택하여 컨소시엄을 맺는 방법이라고  한다.

 

2019년 필리핀에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을 가장 놀라게 한 소식 중의 하나는 연초에 발표된 한진중공업 관련한 뉴스일 것이다. 2016년부터 3년간 한진중공업은 줄곧 흑자를 내왔다. 실제로 한진중공업은 2016년 493억 원, 2017년 866억 원, 지난해 729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필리핀의 한진 수빅 조선소는 적자가 누적됐다. 영업 손실이 2016년 1,820억 원, 2017년 2,335억 원에 이어, 2018년에도 3분기 기준 601억 원의 영업 손실이 났다(세계일보 2019/02/13). 수빅 조선소는 조선업 악화와 비숙련 노동력으로 인한 작업 지연 등으로 예상보다 수주 물량을 맞추기 어려웠고 손실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지난 2016년 3,560억 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한 뒤, 2017년에도 2,461억 원의 순손실을 냈으며, 2018년에는 당기 순손실이 1조 5,218억 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한진중공업은 2018년 11월 채권단에 회생 절차 신청을 포함한 수빅 조선소 운영방안 확약서를 제출하고 관련 절차에 들어갔다. 2019년 1월 15일에는 현지 법원으로부터 회생 절차 개시 결정문을 받았다(시사저널 2019/04/23). 필리핀은행에 4억 120만 달러, 한국은행에 5,000만 달러에 대한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회생 절차를 필리핀 지방 법원에 낸 것이다.

 

여러 기념비적인 성과를 내온 한진 조선소가 작금의 상황에까지 이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다. 필리핀과 한국에서 수빅 만에 세운 한진 조선소는 그 설립 배경과 효과 면에서 관심을 불러왔고 성과도 내왔기 때문이다. 1937년 부산 영도에 조선소를 건립한 한진은 협소한 용지 때문에 경쟁력이 뒤처진다고 생각했으며, 인건비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필리핀 수빅 지역을 선택했다. 1991년까지 미군의 해군기지로 이용되었던 수빅 만은 기지 반환 이후 42,000명의 실직과 지역사회에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지를 수빅 경제특구(SFZ; Subic Bay Freeport and Special Economic Zone)로 전환하고 다국적기업을 유치했다. 수빅 경제특구에 입주한 기업은 지방세 면제, 세액 공제, 관세 면제, 외국인 100% 지분 보유, 비자 특혜, 임지 지원 등의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페덱스(Fedex)와 같은 대기업이 철수하고 클락이 새로운 투자 중심지로 부각됨에 따라, 수빅의 경기가 악화되고 있을 때에 2006년 한진이 새롭게 입주하여 활력을 불어넣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300헥타르(약 70만 평)에 달하는 부지 내에 조선소를 지었고, 완공되기도 전인 2008년부터 선박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18개의 하청 업체로 구성된 한진 조선소는 최대 33,000명의 노동자를 고용했을 정도로 수빅 경제특구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으며, 필리핀은 한진 조선소가 지어진 지 6년 만에 선박 건조 착수 100척을 넘어 세계 10위 안에 드는 조선국이 되었다. 필리핀 투자청(BOI)은 한진중공업 투자 건에 대해 수출 지향적, 투자 우선 분야임을 들어 개척 분야 지위(Pioneer Status)를 인정했다. 이로 인해 한진은 8년간 소득세를 면제받았으며, 추가 혜택까지 이어져 10여 년의 면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한진은 실제로 더 많은 혜택을 받기도 했다. 필리핀 수빅 관계자는 세제 혜택 외에도 전기료 할인만 근 10년간 40억 페소에 달한다고 밝혔다(The Philippine business and news 2019/01/10). 이에 대해 한진은 오랫동안 건설이나 토목 분야에서 모기업이 필리핀에서 이루었던 행적에 대한 보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2008년 처음으로 건조한 선박에는 당시 대통령이던 아로요 대통령이 이름을 부여했으며, 2018년 1월의 진수식에도 아로요 전 대통령과 고든 상원의원이 참여할 정도로 한진 조선소는 필리핀 정부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1년 안에 닥칠 기업의 위기를 실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직접 방문했던 2018년 2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사측에서 이야기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믿지 못했다. 2017년 말부터 이어진 대량 해고에 대한 변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 기업의 사례이긴 하지만, 한진 조선소의 급격한 몰락의 원인을 짚어보는 것은 필리핀에 진출한 한인 기업의 위치나 애로에 대해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진 조선소 위기의 원인


노동 생산성
상황이 안 좋아진 전조는 그 이전부터 있어왔다. 노동력 감축이 대대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인건비가 저렴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생산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한진은 한국인 노동자 수를 점차 줄이고 현지 채용의 비율을 높여가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필리핀 노동자 중 숙련공이 되는 속도가 더디고 건조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숙련공이 필요했던 딜레마가 있었다. 실제 2017년 10월 기준으로는 노동자가 22,000명 정도 남아 있었는데, 이 중 중국인이 184명, 루마니아 노동자가 24명이었다. 이들은 실제 다른 국가에서 조선업에 종사하던 숙련공 노동자였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되고, 장기근속한 필리핀 노동자가 해고되는 것에 대해 많은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 문제는 인건비가 저렴한 장점을 갖고 시작했지만, 회사 자체의 한진 훈련센터를 통해서 숙련공을 양성하는 속도가 따르지 못했던 상황을 대변해 준다. 한진이 대내외적으로 강조했던 장점 중의 하나는 설립 초기부터 선박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필리핀에서 노동자들을 빠르게 교육하여 생산 현장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장점 때문에 수빅에 있는 한진 조선소에는 필리핀 전역에서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숙식을 제공하고 연습생 기간에도 임금을 지급하는 장점 때문에 한진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사업 초기의 이와 같은 속도전 과정에서 수많은 산재 사고를 양산하여 필리핀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비판과 상원의 청문회를 겪어야 했다.

 

국제 조선 환경
2010년 이후의 국제경제 후퇴와 함께, 조선업 분야에서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전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저가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필리핀 조선소의 장점이 희석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필리핀에서 보다 영도에 있는 조선소에서 수익이 더 많이 나기 시작했다. 한진은 영도 조선소의 경우 노동자 수를 감축하고 잠수지원선, 극지탐사용 쇄빙선 등 고부가가치선 시장을 공략하는 한편, 수빅 조선소는 대형급 컨테이너선, 탱커, 벌커선을 생산하는 것으로 분화하였다. 이러한 분화는 초기에 효과적인 분업으로 평가되었으나, 국제 조선시장에서 중국이 부상하면서 일반 대형 선박 제조에서의 경쟁력이 예전보다 못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의 정치적 환경 변화
수빅 경제특구를 둘러싼 정치적 지형의 변화나 정부 정책의 변화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두테르테 정부는 두 차례 걸쳐 세제 개혁을 단행했다. 저소득층의 조세 부담을 줄이고 전체적으로는 수입을 확대하는 것이 취지이다. 특히 두 번째 세제 개혁에서는 10년 안에 법인세를 30%에서 20%로 낮추는 등 외국 투자 기업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지만, 부가가치세 및 법인세에 대한 면제 폐지, 원부자재 수입 관세 면제 기한 제정 등 조세 인센티브를 폐지하는 것은 외국기업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세제 개혁(TRAIN 2)가 본격적으로 효과를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 집권이 시작한 2015년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었으나 2018년에는 4.4%가 감소했다고 한다(Nikkei Asian Review 2019/03/11).  외국인 지분 비율을 40%에서 70%로 상향 조정하겠다는 것이 두테르테 대통령의 공약이었으나 이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고, 조세를 늘리는 방향의 정책이 실현되고 있다. 특히 수빅은 경제특구로서 누리던 혜택이 많은 곳이었다. 기존에는 필리핀에 있는 다수의 경제특구를 관할하는 기관이나 제도가 복수로 존재했으나 2차 개편 안에는 이를 일률적으로 재편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여러 기관에서 개별적으로 제공하던 세제혜택이나 인센티브를 필리핀 재정부 산하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골자이다. 이는 세제개혁안이긴 하지만 지역이나 산하 기관이 개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을 축소한다는 정치적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지역 기반 정치세력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으며, 만약 특정 기업이 이러한 정치적 조건에 밀접하게 연관을 맺어 왔다면 기존의 관계나 힘이 약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적어도 한진이 기존에 누려왔던 전 대통령이나 이 지역 출신의 상원위원이 행사하는 영향력이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한진중공업 위기의 파장


경제 문제를 넘어선 국가 안보의 문제
2018년 12월 추가로 7,000명이 해고되고, 2019년 1월 기준으로는 만여 명의 노동자가 남아 있다고 한다. 노동자가 직장을 유지하는 방법은 조선소를 그대로 인수할 투자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아시아를 비롯하여 유럽의 회사가 한진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조선소를 인수하더라도 인수자에 따라 사업 형태나 규모가 달라질 수 있고, 인수 후보자 중에는 이 부지를 관광 리조트와 같이 전혀 다른 용도로 이용하고자 하는 기업도 있다. 한편, 한진의 인수 문제가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 문제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필리핀은 남중국해 문제를 두고 중국과 대립 중인데, 영토 분쟁의 중심지인 스카보로우 숄 (Scarborough Shoal)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중국 기업이 인수 후보자로 제기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군 관계자나 정치인의 잇단 문제 제기와 함께 의회에서도 문제가 되어, 급기야 정부가 한진을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한진조선소 인수 문제는 개별 기업에 대한 사안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구 이동과 지역사회에의 파장
한진 조선소의 급여일인 매달 5일과 20일에는 식당, 쇼핑몰, 주점 등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만큼 한진 조선소는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기업임에 틀림없다. 특히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필리핀 전역에서 노동을 위해 이주한 사람이 정주하고 있었고, 한진은 조선소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이른바 한진빌리지를 1단계에 1,730가구, 2단계에는 1,045가구를 공급했다. 이들은 30년 동안 급여에서 일정액을 탕감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지급하고 주택을 구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따라서 직장을 잃게 되면 이들은 주택에 거주할 권리를 잃게 되고, 그때까지 지급했던 주택 차입금에 대한 보장도 잃게 된다. 직장을 잃었을 때의 문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사측과 정부의 주택기금 기관 간에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점이 있었다. 어찌 되었던 한진만을 바라보고 멀리에서 찾아온 노동자들은 직업을 잃게 되었을 때 더욱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되었다.

 

한진 조선소가 어떻게 정리되든지 간에 여러 이야기를 남길 것임에 틀림없다. 한진 조선소가 큰 족적을 남긴 것은 틀림없지만 건립되는 과정부터 발생한 산재와 급격한 해고사태 등으로 인해 많은 잡음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기업은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국가 전체에도 큰 파장을 끼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 것이 한진중공업의 사례라 하겠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