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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CPTPP와 베트남의 공기업 개혁

베트남 윤미경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19/06/28

베트남의 CPTTP 비준과 그 의미


아시아-태평양 11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이 2018년 12월 30일 발효되었다. 7번째 비준 국가인 베트남에서는 2019년 1월 공식 발효되었다. CPTTP는 2017년 미국의 탈퇴로 환태평양동반자협정(TTP)이 무산되자 일본이 주도하여 나머지 11개 국가들이 협정을 지속한 결과 탄생한 것으로, TPP의 기본적인 내용을 계승하고 있다. 특히, 개도국들이 부담스러워했던 지식재산권 보호 및 투자 분쟁해결 절차 등 22개 조항들은 유예(suspend)한 반면 국영기업(state owned enterprise: SOE) 규범은 수정 없이 그대로 계승하였다.

 

CPTTP 국영기업 규범은 기존의 무역협정에 산재해 있던 국영기업 관련 여러 조항들을 취합 및 체계화하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의무조항들을 추가하여 국영기업들의 상업적 행위를 엄격히 규율하고 있다. 이 규범은 일정 규모 이상이 되는 국영기업의 상업적 활동이 무역과 투자에 영향을 미칠 때 적용된다. 적용 대상 국영기업은 상업적 거래에서 다른 국가 기업들을 차별하지 말아야 하며 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등 다른 목적이 아닌 오로지 상업적 고려에 의해 거래를 하여야 한다. 더욱 중요하게는 이들에 대한 비상업적 지원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비상업적 지원(non commercial assistance)이란 국영기업에만 지원되는 차별적인 지원을 일컫는다. 단, 국영기업 규범이 민영화를 강제하거나 국영기업의 설립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구조조정이나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지원 또는 불가피한 공공정책 수행에 대한 예외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CPTTP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국영기업 규범이 하나의 독립된 장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자유무역협정들이 국영기업을 경쟁정책 조항에 의해 부수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것에 반해 CPTTP가 국영기업의 규율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시사한다. 무역협정에서 국영기업 규범이 경쟁정책과 분리되어 독립적인 분야로 부상하게 된 것은 정부 행위 또는 정부 통제를 받는 국영기업에 대해 경쟁 법을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많은 국가에서 정부 및 정부 행위와 국영기업에 대해 경쟁 법 적용을 면제하고 있어 경쟁정책만으로는 정부가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을 누리며 때로는 독점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국영기업들을 규율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영기업들이 민간 기업들과 공존하며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서, 국영기업 규범의 역할은 국영기업이 정부 특혜 없이 민간기업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는 민간기업과 차별 없는 경쟁, 그리고 건전한 국영기업의 경영을 주창하는 OECD의 “경쟁중립성(competitive neutrality)” 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국영기업 규범은 또한 일부 개도국이 자국 국영기업을 산업정책이나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이들 국영기업들이 통상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주체로 성장하기 시작하자 선진국들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한 방어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국영기업 규범이 특히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은 규범의 주요 내용에 보조금, 반덤핑, 시장경제지위, 주권면제 등 국영기업과 관련된 미-중 통상 분쟁에서 미국이 취한 입장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CPTPP의 발효는 이제 환태평양 지역에서 국영기업 규범이 이 분야 표준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나아가 향후 독자적인 규범분야로 자리매김하여 다른 무역협정에서도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이미 2018년 11월 타결된 USMCA에도 경쟁정책과는 별도로 CPTTP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독립된 국영기업 규범이 포함되었다.

 

중국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 CPTTP에서 국영기업 규범이 가장 부담스러울 수 있는 회원국은 베트남이다. 국영기업은 베트남 경제에서 아직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 국영기업은 베트남 GDP의 28.8%, 투자의 37.6%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공기업들은 2017년 현재 베트남 산업에서 6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담배, 전력, 통신, 석탄, 원유, 천연가스, 농업, TV 등 분야를 거의 독점하고 있고, 베트남 상위 10대 기업 중 9개 기업이 국영기업이다.

 

그러나 CPTTP 국영기업 규범은 베트남을 비롯하여 브루나이와 말레이시아의 경우 발효 후 5년간 적용이 유예된다. 또한 규범은 상업적 활동으로 발생한 수입이 연간 2억 SDR 이상인 국영기업에만 적용되고 상기 3개국의 경우에는 발효 후 5년간 5억 SDR 기준이 적용되므로 실질적으로 적용 대상이 될 베트남 국영기업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은 모든 국영기업에 대해 구조조정을 위한 금융 지원, 고용안정을 위한 일회성 부실채권 및 미사용 자산인수 등의 정부 지원 제공, 낙후지역이나 취약자, 사회적 약자, 중소기업과의 거래, 경제 안정 및 공공재 확보를 위한 거래 등에 대해 주요 의무 조항을 유보하였으며 주요 금융기관들과 Vietnam Oil and Gas, Airport Corporation of Vietnam, Vietnam Airline Corporation, Vietnam National Shipping Lines 등 주요 대기업 및 그 자회사에 대해서도 비상업적 지원 및 상업적 고려 등과 같은 주요 의무의 적용을 유보하였다. CPTTP가입으로 인해 다른 분야에서 베트남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이 워낙 큰 것까지 감안하면 국영기업 규범이 베트남에 큰 실질적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베트남이 CPTPP 국영기업 규범으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단기적이고 경제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장기적인 제도 변화를 통한 경제체질 강화다. 베트남 산업무역부 다자간무역정책부 응오쯩칸(Ngo Chung Khanh)부국장도 CPTTP 관련 한 워크숍에서 “CPTTP 발효로 인한 베트남 기회 요인은 시장 개방이 아닌 제도 개혁이다.”라면서 향후 베트남 제도가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했다고 한다.7) 이 예에서 베트남 정부의 강한 개혁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베트남의 국영기업 개혁 노력


베트남은 1990년대 초반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면서도 열악한 민간부문의 대안으로 대규모 국영기업을 육성하는 산업정책을 유지해 왔다. 한국과 일본의 재벌기업집단을 모방하여 1990년대부터 상업성이 강한 국영기업 중 규모가 큰 국영기업을 상사(general corporation)로 지정하여 대기업으로 육성하였고 2005년 이후에는 이중 일부를 중심으로 국영기업집단(state enterprise group)을 만들어 정부가 지주회사 역할을 하며 이들 기업 경영에 관여하여 왔다.8) 이들 국영기업집단은 단기적으로는 일정한 성과를 보였으나 일부 대규모 국영기업들이 부실화되는 등 그 구조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 2010년 베트남 최대 국영 조선사인 비나신(Vinashin)의 부도 사태가 대표적이다. 비나신 사태는 베트남 국영기업에 만연한 비효율성, 방만한 경영과 정경유착에 따른 부실감독 실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는 국가신용등급의 하향조정으로 이어졌고 주춤했던 국영기업 개혁 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정부의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는 베트남 국영기업의 개혁과 효율성 향상은 베트남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핵심 과제가 된 것이다.

 

베트남의 국영기업 개혁은 주로 투자금 회수(divestment)와 주식회사화(equitization)이 근간을 이루며 반드시 민영화(privatization)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초기의 국영기업 개혁은 소규모 기업 위주로 진행되어 1만 2,000여 개의 국영기업이 2016년까지 약 3,000개(정부 일부 지분 소유 기업 포함)로 감소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으며 민영화를 거친 2,400개 기업들은 영업이익과 순수익이 증가되는 긍정적 결과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영기업 핵심사업 주식 매각을 통해 효율성을 향상시키고자 했던 2011~2015년 민영화 계획은 그다지 성공적으로 집행되지 못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한편, 베트남 정부는 2016~2020년 국영기업 개혁 마스터플랜에 따라 국방, 공안, 원자력, 화폐 주조 등 전략적으로 국가가 소유해야 할 국영기업 103개사를 제외한 다른 국영기업의 주식을 매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망과 시사점


베트남이 그간 추진한 국영기업 개혁은 주로 투자회수와 주식회사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성공적인 주식 매각과 민영화 이후 효율적인 경영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시장 환경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발전과 법률 개혁, 규제완화, 기업 투명성 제고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이 선결되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국영기업에 대한 소유권과 규제와 관련하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갈등 또한 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어 베트남 정부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국영기업 개혁이 빠르게 진행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CPTPP 이행의 관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국영기업의 기업지배구조 개혁이다.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관건은 국영기업의 주주로서 정부가 행하는 경영 기능과 정책집행자로서의 정부 기능을 명확히 분리하는 것이다. 남일총(2011)은  정부가 국영기업집단의 주주로서 계열회사에 대해 광범위한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여 상업적 활동과 관계없는 정부의 각종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면 기업의 경제적 가치나 경쟁력 극대화를 심각하게 제한할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한다. 정부기관이 수행하고 있는 국영기업집단 지주회사 기능은 공기업집단의 상업적 성과만을 대상으로 하여 주주권을 행사하는 별개의 기관으로 이관하고 경쟁정책이나 여타 규제정책 또는 공공정책 등 정책기능은 주주가 아닌 정책집행자로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국영기업 지배구조의 개혁이 전제되지 않으면 CPTTP 국영기업 규범도 이행하기 어렵게 된다. 국영기업의 상업적 활동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으면 협정의 대상이 되는 국영기업의 상업적 활동을 특정하기조차 어렵고 정부 지원의 대상이 상업적 활동인지 공공정책을 위한 활동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베트남 국영기업 개혁의 성공 여부는 부실화된 기업들의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도 중요하지만 주식회사화 이후 국영기업이 민간부문과 공정한 경쟁을 하면서 건전한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제반 제도적 구조조정을 선제적으로 단행하고 진정한 지배 구조 개혁을 감행하는데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협정문상 의무가 실제로 적용되는 베트남 국영기업이 많지 않다고 해도 CPTTP 국영기업 규범은 국영기업의 건전한 운영을 위한 기준을 제시하고, 그 이행을 위한 국내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 국영기업 개혁을 촉진하는 데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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