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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베네수엘라-콜롬비아 간 고조되는 군사적 긴장과 그 이면의 ‘불편한 진실’

베네수엘라 / 콜롬비아 정이나 前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現쿠바 아바나 의과 대학 박사 2019/09/30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갈등
얼마 전 베네수엘라 정부가 콜롬비아 국경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면서 양국간 군사적 긴장이 예사롭지 않다. 약 2,000킬로미터가 넘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양국의 관계가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사실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일촉즉발의 위기가 감지되는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국경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단순한 외교적 마찰이나 갈등으로 나타난 일시적 분쟁의 결과는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현재 드러나는 갈등의 표면적인 원인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베네수엘라 정부는 콜롬비아의 불법 준군사조직(paramilitares)에 의한 마약유통 및 밀수 등의 불법 활동이 국경의 치안과 안전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리고 콜롬비아 정부와 불법무장단체의 관련성을 주장하며, 단순한 불법무장단체의 독자적 활동이 아닌 현 콜롬비아 이반 두케(Iván Duque) 정부를 비롯한 과거 우리베(Uribe) 정부로 이어지는 조직적인 개입을 비판해 왔다. 또한, 지난 8월 베네수엘라가 콜롬비아 우리베 전 대통령이 이 무장군사조직을 이용해 마두로 대통령과 정부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암살계획을 시도한 정황을 공개하면서 양국의 관계는 더욱 적대적으로 변하고 있다.

 

둘째, 올해 초 베네수엘라 야당의 과이도 의원이 대통령으로 ‘셀프’ 임명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콜롬비아 이반 두케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소위 반정부 행보를 이어 가고 있는 과이도 의원은 특히 콜롬비아와 라틴아메리카 역내에서 두드러지는 활동을 하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양국 정부의 갈등 관계가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과이도 의원은 2015년 총선에서 약 9만 표를 득표하면서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정치 초년생이다. 과이도 의원은 2015년 야당이 과반수 넘는 의회 의석을 차지하면서 국회의장직을 각 야당이 번갈아 맡기로 하며 2019년 국회의장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스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선언하며 한 나라의 두 대통령이라는 전대미문의 희극을 연출한 장본인이다.

 

셋째, 바로 얼마 전 미주기구(OAS)의 미주상호방위조약(Inter-American Treaty on Reciprocal Assistance)이 발의되면서 현재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개입의 가능성이 한층 가시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조약은 35개국으로 구성된 미주기구 회원국 중 콜롬비아를 비롯한 12개 국가의 찬성으로 결의되었다. 이 조약을 주도적으로 발의한 국가가 콜롬비아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콜롬비아는 반정부 무장혁명군(FARC) 군인들을 베네수엘라 정부가 보호하고 있다며, 이를 군사개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베네수엘라는 콜롬비아 마약카르텔 조직의 불법 무장활동과 이를 지원하는 콜롬비아 정부의 조직적 개입을 들어 국경 지역은 물론 국내의 폭력사태와 혼란을 조장한다는 책임을 묻는가 하면, 콜롬비아는 지난 1월 과이도 의원을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그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며 마두로 정부와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미주기구로 확대되는 베네수엘라의 군사개입 여부를 두고 일어나는 역내 논란 등은 최근 불거지는 양국의 군사적 긴장이 두 국가의 단순한 ‘외교적’ 분쟁의 성격과는 다르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

 

미주기구(OAS)와 미주상호방위조약
우선 역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미주기구의 결정에 대해 살펴보자. 3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미주기구는 사실상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구에 불과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09년 온두라스 셀라야(Zelaya) 정권이 군부 쿠데타로 전복되는 것을 암묵적으로 승인하는가 하면, 2004년 아이타 쿠데타는 물론 역사적으로 미국의 직·간접적인 개입으로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일어난 라틴아메리카의 군부 쿠데타를 묵인하거나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태도를 줄곧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주상호방위조약은 이미 1982년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말비나스섬 영토분쟁을 통해 신뢰성이 크게 훼손된 바 있다. 이 조약이 체결된 1947년 이후 미주 국가를 향한 최초의 군사적 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오히려 아르헨티나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면서 미주기구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공동 이익이 아닌 미국의 이해관계와 결정에 따라 좌우되는 기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었다.

 

최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주상호방위조약을 찬성한 미주기구 회원국은 전체 35개국 중 12개국이었다. 즉 회원국 다수가 아닌 미국의 견해가 지배적으로 반영된 사안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적 개입의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는 순차적 절차에 불과해 보인다. 약 2년 전 베네수엘라가 미주기구 탈퇴 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과이도 의원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그가 보낸 인물을 미주기구 내 베네수엘라 대표 자격을 부여하는 것으로 미주기구, 즉 미국의 입장은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차베스가 집권하는 1999년부터 끊이지 않았던 콜롬비아 국경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언제든지 국지전이 될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우려는 꾸준히 제기되었다. 현재 불거지는 양국의 군사적 긴장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나 최근 두드러지는 콜롬비아-베네수엘라 사이의 고조되는 긴장이 지금까지 양국의 단순한 이해관계 충돌이 빚은 적대적인 외교 관계나 위기와는 다소 다른 복합적인 국제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영향력과 미군기지
주지하듯이, 2000년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 화력이 집중되면서 다소 약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을 시작으로 브라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니카라과, 에콰도르 등 이른바 ‘좌파정권’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소위 반미, 반제국주의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이 새로운 경제 및 외교 파트너로서 급부상하며 라틴아메리카의 국제관계가 다변화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 당시 2009년 콜롬비아 영내에 7개 군사기지를 설치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베네수엘라 정부는 물론 당시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의 소위 ‘반미’ 국가들의 강력한 반발을 산 것은 물론이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미국과 쿠바를 위시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의 관계가 과거 부시 정부보다 다소 유연한 방식의 선린외교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던 시기였으므로 더욱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결정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콜롬비아 정부의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2000년대 라틴아메리카 역내 국가들에서는 베네수엘라를 시작으로 미국을 견제하고 그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주적 노선을 찾으려는 정권들이 들어서는 가운데, 오히려 콜롬비아는 미국에 우호적인 소위 ‘친미’ 정권인 알바로 우리베가 20002년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남미의 가장 대표적인 친미 정권으로 자리매김하였다.

 

2009년 미군기지 설치는 당시 베네수엘라는 물론이고 미국과 우호적이지 않았던 소위 ‘반미’ 국가들에 큰 위협이자 미국의 의도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결정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우려와 비판이 일자 콜롬비아 정부는 자국의 미군기지는 반정부 무장혁명군인 FARC을 소탕하고 역내 마약 거래를 통제하기 위한 것임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크게 설득력 있는 해명이 되지는 못했다.

 

한편, 200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이른바 진보정권들은 급부상하고 있던 중국, 러시아 등 다원화된 국제관계를 통해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자주적 외교 노선을 걷는 한편, 베네수엘라가 주도한 ALBA,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CELAC(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 공동체) 등 역내의 통합체제를 발전시키는 시도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이에 2009년 콜롬비아에 세워진 미군기지는 그동안 소홀했던 남미에 대한 지배권과 통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는 사건에 불과했을 뿐이다. 남미의 군사적 긴장을 두고 미국 개입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미 당시 안데스 전략연구소(CENAE)의 코르데로(Cordero) 소장 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콜롬비아를 거점으로 몇 년간 혼란스럽고 무분별한 폭력, 부패, 정치제도의 해체를 획책하여 차베스 정부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 것이며, 여기에 콜롬비아 무장조직(Paramilitares), 모사드와 CIA의 지원을 받는 첩보당국, 양국의 미디어, 베네수엘라 야당세력, 주지사들과 경찰 등이 동원될 것이라고 보았다. 1) 

 

그리고 강력한 동맹국을 형성했던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등에서 친미 우파정권이 들어서며 베네수엘라의 역내 외교적 입지가 상당히 축소되었다.  콜롬비아, 브라질과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는 이를 더욱 위태롭게 하는 조건이자, 시기적으로 현재 콜롬비아와 고조되는 군사적 긴장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콜롬비아와의 전면적인 군사대립으로 얻어지는 이득이 없다. 콜롬비아 단독으로 공격을 감행할 수도 없다. 만약 미주기구의 결정에 따라 군사개입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콜롬비아의 국경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국경지대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군사적 위기가 만약 전면전이나 국지전으로 확장된다면 두 나라간 돌발적 군사적 충돌만이 아닐 없을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라틴아메리카 역내 다변화된 국제관계의 중심에 있는 중국, 러시아 등의 존재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노골적 개입을 견제하는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미국의 지지를 얻기만 한다면 ‘셀프 대통령’ 선언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가능했던 과거의 라틴아메리카를 상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적어도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독점적인 지배력이 과거와 같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 각주
1) 이성형(2010), 오바마 정부와 라틴아메리카: 선리외교에서 힘의 외교로?, 라틴아메리카연구 Vol. 23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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