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쿠바 의료외교의 배경과 시사점

중남미 기타 곽재성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ODA 센터장 2019/11/28

공중보건의 국제화
2015년 2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지카 바이러스와 소두증 확산에 대해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한 적이 있다. ‘인간안보’라는 비전통적 안보 이슈가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전염병 문제는 단순한 의료적 관심사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재산권을 위협하는 안보 이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그 핵심은 신종 또는 변종 바이러스가 창궐하거나 예기치 못한 긴급구호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또 누가 할 것이냐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던 글로벌화 추세, 그리고 개방화와 건보기술의 발전은 과거 공공재 및 비상업적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보건 부문의 국제화를 가속화시키기 시작했다. 즉 보건의료서비스의 국경간 공급증가 등 보건의료부문의 세계화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OECD의 구리아(Angel Guria) 사무총장은 “날로 분화되고 있는 지구촌 이슈를 이제 소수의 국가가 독점하던 시대는 지났으며 전 세계 인구의 86%를 차지하고 있는 신흥국의 기여에 대해 열린자세로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를 확립해야한다”며 신흥국 특히 약소국의 역할에 대한 포용성을 강조했다.

 

결국 국제보건을 담당하는 집단을 소유한 국가의 의료외교(Medical Diplomacy) 또는 질병외교(Disease Diplomacy)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은 선진국이며 약소국인 쿠바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2014~2015년에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전개된 에볼라 퇴치 노력을 계기로 쿠바의 의료외교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뜨겁다.

 

실제 쿠바 정부는 에볼라가 창궐한 시에라레온에 베테랑 의사 62명과 간호사 103명을 6개월간 파견하였다. 미국의 제재를 받고있는 약소국 그리고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의 행동이라고 보기엔 스케일이나 난이도 차원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행보였다. 게다가 이전까지만 해도 쿠바의 의료외교를 보는 일반적 시각은 사회주의적 국제주의 또는 의료서비스 수출을 통한 달러벌이 정도였기 때문이다.

 

쿠바 의료외교의 배경과 동인
그렇다면 왜 쿠바는 정치적 고립과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의료외교를 전개하는가? 이와 같은 정책 동인에 대해서는 시대별 특징을 내포한 몇 가지 요소가 결합된 것으로 봐야한다.

 

첫째, 1960-80대에는 냉전시대의 패턴에 따라 사회주의 혁명의 이념에 입각한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의 발현으로 다소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이니셔티브였다. 혁명 직후 피델 카스트로가 알제리와 칠레에 의료 인력을 파견한 것이 초반의 실적이며, 전자의 경우 사회주의 연대강화 차원에서 후자의 경우 대규모 지진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이었다. BBC(2014)는 쿠바 의료외교의 기원을 혁명의 리더였던 체게바라에서 찾기도 한다. 스스로가 의사였던 그는 의사들이 의술을 아낌없이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도 일방적인 의료외교가 이어졌지만, 시대의 대세였던 비동맹운동이라는 국제적인 조류에 맞추어 남남(South-South)의 연대의식을 강조한 인적자원 역량강화 활동에 주력하는 등 보다 세련된 면모를 띄게 된다. 이와같이 쿠바는 1960-80년대를 통해 국내외적으로 의료외교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두 번째, 1990년대에는 의료 서비스의 전문화를 바탕으로 국가 간 공식협력 채널의 수립을 통한 구조적이며 지속가능한 접근을 시도했다. 대표적으로는 아이티에 대한 지원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허리케인이 카리브해에 몰아쳤던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이티에서는 230명이 사망하고 80%의 작물이 수몰되었으며, 16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시 쿠바와 아이티 간에 외교관계 조차 없었지만 쿠바는 허리케인 이후 포괄적 협력협정을 제안했다. 이후로 쿠바는 오늘날까지 아이티 의료 체계를 담당하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백 명의 쿠바 의사를 아이티에 체류시켜 최빈국 아이티의 의료공백을 메우면서 2007년까지 쿠바 의료진이 아이티 인구의 75%를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우선적으로 아이티의 의료 인력을 쿠바의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 (Escuela Latinoamericana de Medicina, ELAM)에 초빙하여 교육하고 있다 (Kirk el.al. 2010).

 

셋째, 21세기 들어 차베스가 집권한  베네수엘라로부터의 전폭적인 재정지원 덕분에 쿠바의 의료외교가 크게 확대되었다. 특히 2003년부터 본격화된 쿠바와 베네수엘라 간의 석유-의사 구상무역(Oil-for-Doctors)을 시발로 한 의료서비스의 수출이 본격화 되었다(Hammett 2014, 45). 베네수엘라 정부는 의료인력 1인당 1만 1,000달러로 계산하여 쿠바정부에 지급한다. 2010년에는 총 54억 달러를 지급하였다. 파견 의료 인력은 425달러를 월급으로 받는데, 물론 쿠바 정부가 대부분을 흡수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이 돈은 쿠바에서 받는 월급인 64달러의 7배에 달하는 액수이다. 이와는 별도로 파견 의료 인력은 베네수엘라 정부로부터  60-70달러정도의 주거비 보조금도 받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Piccone and Trinkunas 2014). 베네수엘라는 이후 ‘미주를 위한 볼리바르 대안(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 ALBA)’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볼리비아에서 무료 안구 수술 및 의료 종사자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쿠바 의료 수출 서비스에 대한 후원을 확대하였다. 이후 쿠바는 쿠바경제를 위한 의료 전문 서비스 수출의 새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의료외교 시행 초기에는 혁명의 이념을 전파하고 사회주의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목적이 컸지만, 1990년대 이후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변함에 따라 쿠바의 생존을 확보하는 한 방편으로 목적이 추가된 것이다.

 

이를 통해 쿠바는 국제적인 위상을 얻게된다. 에볼라 퇴치에 기여한 공적에 대해 국제언론이 앞다투어 칭송하기 시작했고, 의료외교에서 얻은 수익은 2005년 이래로 매년 관광 수입을 초과하는 경상 소득의 주요 원천이 되었다. 실제로 의료외교를 통한 수익은 니켈 및 코발트 수출 및 관광보다 많은 23억 1,200만 달러로, 이는 총 무역액의 28%를 담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결정적으로 베네수엘라와의 우호적인 무역협정은 쿠바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및 남태평양 지역을 포함하여 68개국에 의료 서비스 수출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Blue 2010).

 

쿠바의 의료외교는 시대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단기적 또는 긴급구호’에서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화했고, 쿠바의 의료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아짐과 동시에 경제위기로 인해 쿠바의 외화수요도 증가하여 ‘원조 또는 지원’에서 ‘수출’로 자연스럽게 협력 모형이 변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와 도전 과제는 여전히 남는다. 주로 △현지 의료체계와 쿠바 의료진이 충돌하는 현상 △파견 의사들의 재이주 또는 망명으로 인한 두되 유출 △예산 상황이 여의치 않은 쿠바 의료(교육)의 질적인 문제 △활발한 국제활동으로 인한 쿠바내의 의료 공백 등이 꼽히기도 한다.

 

쿠바 의료외교의 시사점
쿠바 의사들이 아프리카의 에볼라 바이러스와 일전을 벌인 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은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발표를 듣게 된다. 물론 오바마 정부의 국교정상화 결정에 쿠바의 의료외교 노력이 어떻게 얼마만큼의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선 지금 단계에서 밝히기 어렵지만, 딱히 부정할 근거도 없다. 오히려 쿠바의 의료외교를 통한 성과 사례는 계속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파나마의 안질환 환자에 대한 무료 치료를 통해 파나마와의 외교 관계를 복원한 바도 있다.

 

일반적으로 약소국이 추진하는 외교정책은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한 국가의 외교 역량은 정치경제적 역량 (국력)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 간 불평등이 제도화된 국제질서에선 예나 지금이나 약소국이 살아남는 방법은 강대국이 수립한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정치의 구조주의적 접근에 한 둘씩 예외가 싹트면서 세계체제가 단순한 약육강식이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바로 한국의 경제발전 사례, 그리고 북한과 쿠바의 생존 사례 덕분이다. 이는 현실주의적 시각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며, 약소국의 외교전략에 대한 재접근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경제구조가 세계화된 상태에서 약소국 또한 국제정치경제의 주요 변수로서 지위와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점에 있어 풍부한 의료인력이라는 쿠바의 자산과 개도국의 의료 위기로 인한 글로벌 의료 수요의 폭발적 증가라는 공급과 수요의 매칭 현상이 쿠바의 의료외교라는 약소국 외교의 매우 특수한 사례를 낳기에 이르렀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